소설리스트

3화 (3/6)

 이튿날에는 몸이 오나전히 나아졌다. 아줌마는 하루 더 쉬라고 권했지만 누나가 있는 집은 내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누나는 늦게 일어나는 편이니 마주칠 가능성이 별로 없었음에도 나는 서둘러 집밖으로 나왔다. 바깥 공기를 맡고서야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학원 수업은 도통 집중이 되질 않아 결국 오전까지만 듣고 나와 버렸다. 이른 시간의 화실은 사람이 없어 무척 조용했다. 대학생인 강사선생님도 없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하얀 도화지를 쳐다보았다.

 뭘 그럴까. 뭘 그려야 할까.

 선생님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그리고 싶은 게 뭔가 모르곘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이 불확실한가. 왜 이렇게 나는 불안정한가. 마치 어둠 속을 방황하는 것처럼 갈피를 못 잡는 내가 이상하고 싫었다.

 의미 없이 연필로 선을 그려보았다. 목적 없는 선이었다. 그 선을 시작으로 아무 생각 없이 연필을 놀렸다. 때로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손을 놀리다가 만들어지는 그림도 있다.

 어느새 신경을 건드리는 시계초침 소리도 사라지고 잡생각들도 사라졌다. 거의 일주일 만에 집중이라는 게 됐다. 어느새 선생님이 들어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를 만치 그리는 것에 열중했다.

 물감도 파스텔도 색연필도 없이 오로지 연필만으로 종이를 채워나갔다. 그리고 내가 연필에서 손을 뗐을 때 종이 위엔 생각지도 못한 형태가 완성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다가와 내게 물었다.

 "손이 참 예쁘다. 음... 여자 손은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의 평가를 흘려들으며 멍하니 그림을 쳐다보았다.

 새벽 2시.

 침대에 모로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하는데 등 뒤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열리는 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바짝 긴장해 이불을 움켜쥐었다. 툭ㅡ 툭 단추를 풀러 내리는 듯한 소리에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침대에 다가 온 그가 내 옆에 바짝 누워 몸을 붙여온다. 내가 흠칫 몸을 떨자 그가 뒤에서부터 내 허리를 감아 바짝 끌어안았다.

 "자. 잠깐만..."

 몸을 비틀자 그가 내 귀에 대고 느릿하게 속삭였다.

 "거부하는 건 못 참아. 차라리 가만히 있어."

 "아!"

 바지 속으로 불쑥 침입한 손가락이 곧바로 비부에 닿았다. 그가 아직 퉁퉁 부어 있는 입구를 만지작거리며 혀를 찼다.

 "경험 있는 척 한 것치곤 몸이 지나치게 정직하군."

 "아..."

 "힘주지 마. 집어넣고 싶어지니까."

 그는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손을 앞으로 가져왔다. 그가 내 성기를 장난감처럼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이 피부를 스치고 올라와 젖꼭지에 닿았다.

 "아... 으응...."

 젖꼭지를 민감하게 반응했다. 빳빳이 곤두선 젖꼭지를 그가 손가락으로 쥐어뜯지 뒷골이 찌릿했다.

 안 돼. 안 돼...!"

 또 다시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최소한 그것을 사고로 치부할 수 있을 때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떻게든 피하리라 다집했다. 그러나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다. 손이 닿자마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이 이성이 빠르게 무너지고 몸이 달아올랐다. 또 후회와 자괴감에 빠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거 알아? 하루 종일 이 몸뚱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 내가 미친 줄 알았어."

 "하아...흐으..."

 "역시 손대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고. 먹고 싶어 안달 내느니 차라리 먹고 어떤 식으로든 손에 쥐는 게 나아."

 "아아...!"

 "그 어떤 식이라는 게 좋은 쪽이 될지 나쁜 쪽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 그러니 헛생각 하지 마. 늦었으니까."

 늦었다. 늦었다라... 그 말이 내게 가져다 준 건 절망감이 아닌 안도감이었다.

 그래. 이미 늦었어. 빠져 나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이건...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앞으로 이 잘못된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내려놓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가 내 가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벌리게 했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다리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삽입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것을 눈치 채고 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달랬다.

 "오늘은 집어넣을 생각 없어. 겁먹지 마."

 그 음성에 힘을 빼자. 그가 한쪽 다리를 약간 들어 올리게 한 뒤 딱딱하게 발기한 자신의 성기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곤 다시 다리를 내려놓았다. 뜨거운 성기가 엉덩이 골에서부터 천천히 움직여 고환을 찔렀다.

 "아응.... 하....!"

 물기 없이 메마른 성기가 차츰 젖어가면서 축축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바짝 일어선 내 성기를 그의 손이 어루만졌다.

 고통 없이 쾌감만이 가득한 행위에 정신없이 빠져 들어갔다. 고개를 살짝 들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입술을 부딪혀왔다. 파고 들어오는 혀를 기쁘게 맞이하며 빨아먹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약을 먹였다.

 그의 말마따나 그것은 끊지 못할 마약이었고, 가라앉힐 수 없는 최음제였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집에 들어왔고, 그 때마다 나는 그와 관계를 가졌다 고나계가 거듭될수록 죄책감은 희미해지고 익숙함이 늘어갔다. 내 몸이 그에게 맞춰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몸은 그의 앞에서 무방비하게 열렸다.

 몸이 부딪히는 횟수가 늘어간다는 건 그와 함께 있는 시간도 ㄴ르어간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섹스만이 전부였던 그와의 시간에 큰 의미 없는 자잘한 대화들이 끼어들기 시작했고, 섹스와는 다른 종류의 스킨십도 생겼다. 이를테면 내가 잠들었을 때 그가 내 머리카락을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린다든가 또는 그가 잠들었을 때 내가 그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웠다 풀었다 장난을 친다던가. 그런 것들.... 

 그와 나 그리고 누나 셋이 함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와 누나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따. 아니. 누가가 그에게 관심이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그랬다. 그는 단 한 번도 누나에 대해 묻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누나를 찾지 않았다. 정상적인 부부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고 그것이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책감을 밀어내는데 일조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점점 그와 누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보다도 그와 누나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기게 되는 것이었다. 그 변화는 몸의 변화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감정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아니,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제발 내가 누나를 질투하는 그런 최악의 상황만은 오지 않길 바랐다. 몸만 얽히는 것은 풀어낼 여지가 있지만, 감정까지 얽히는 것은 풀어내기 쉽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그것을 읽혀 예상하면서도 나는 이감정이란 싹을 어떻게 잘라내야 되는지 방법을 몰랐다. 조절도 되지 않았다.

 갑자기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담임선생님이 기입해 놓은 평가 하나가 생각난다. 휩쓸리기 쉬운 성격이라고 했던가. 아마 맞을 것이다. 그 말이 지금에 와서야 뼈저리게 와 닿는다.

 "뭐해?"

 잠에서 막 깬 목소리가 딴 곳에 두고 있던 정신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던 손은 어느새 멈춤 채였다.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미완성 된 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 스케치북을 덮었다.

 "그냥 이것저것 그리고 있었어요."

 "이것저것?"

 "...네. 이것저것."

 대답을 얼버무리는 나를 보며 피식 웃은 그가 손을 뻗어 내 팔을 잡아채고 끌어 당겼다.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가 내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내 몸을 주무르던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물었다.

 "상처 생겼어요. 알고 있어요?"

 "아아."

 "...왜 생겼는지 물어봐도 되요?"

 요즘의 나는 그에게 묻는 것이 무쩍 많아졌다. 그리고 다행히 그는 내 질문을 무시하지 않았다.

 "일 하다가 생겼어."

 "....무슨 일이요?"

 "알려주고 싶지 않은 ㅇ리."

 "....."

 물론 대부분이 이런 식의 대답이었지만...

 그가 굳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가 중소기업업체의 사장인 줄 알고 계셨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아니었다. 이 집과 타고 다니는 차 그리고 입고 다니는 옷들로 하여금 그가 어느 정도 제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재력이 어떤 걸 바탕으로 만들어진 건지까지는 모른다. 다만 짐작은 가능했다. 나는 가끔씩 그의 셔츠에 묻은 피를 발견한다. 또 나는 종종 잠든 척 하면서 그가 누군가와 통화 하는 소리를 엿듣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내 짐작에 힘을 실어주었다.

 혹시... 누나는 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사이가 아무리 냉랭하다 해도 ....부부니까.

 "....누나는 알아요?"

 속내를 감추지 못해 드러내버렸다. 그가 내 말에 감은 눈을 떴다.

 "돌려서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직접적으로 물어봐."

 "...그냥."

 "그냥?"

 "....아니. 아니에요. ...방으로 갈래요."

 시선을 피하며 다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어깨를 잡아당겨 다시 강제로 눕히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압박해왔다.

 "가끔 네 목을 분질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

 "지금처럼 말이야. 내가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질 나쁜 요부에게 걸려 정신 못 차리는 얼간이가 된 기분이야."

 말도 안 돼. 휘둘리는 건 나다. 걸려든 건 나다. 그는 완전히 반대로 말을 하고 있었다. 요주에 걸려 정신 못 차리는 얼간이라는 표현은 누가 봐도 그가 아니라 내게 더 적합했다.

 "...누나 얘기해서 화난 거라면...."

 "그 여자는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어. 그러니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지. 그 여자를 문제 삼는 건 너야. 아니면 그 여자를 내세워서 도망이라도 치겠다는 속셈인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누나는...."

 당신 부인이잖아. 나는 당신 부인의 동생이고... 그런데 왜 문제가 되질 않는다는 거지?

 "시답잖은 오해할까 말해두는데, 네가 그 여자와 서류상으로만 가족으로 묶인 것 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야. 혼인신고서는 계약서의 일부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없어."

 "계약서...?"

 "그러니 쓸데없이 갖다 붙이지 마."

 "....."

 그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다는 듯 그는 거기서 얘기를 끝내버렸다. 그가 다시 눈을 감았고,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문득 시계를 쳐다봤다. 새벽 4시였다.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잠깐 집에 내려갔다 올게요."

 드물게도 모두 자리에 앉은 아침 식사 시간에 누나가 무심히 집에 갔다 오겠노라 통보했다. 그가 아침을 먹고 나가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누나가 아침 일찍 일어나 식탁 앞에 앉는 것도 드물었다. 그러나 이 드문 상황에서 음식이 쉬이 넘어 갈 리가 없었다. 토스트를 어떻게든 꾸역꾸역 삼키면서 어떻게든 빨리 이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와중에 누나가 말한 것이다. 집에 내려가겠다고... 서울에 올라오고 나선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던 누나가 집에 내려가겠다는데 놀라지 않는 게 이상했다.

 "한 삼일 정도 있다 올 것 같아요."

 누나의 말에 그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물은 적 없이."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묻지 않은 건 할 필요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나?"

 "같이 갈래요?"

 과연 누나가 어떤 의도로 던진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음은 분명했다. 

 그가 차갑게 웃으며 오늘 처음으로 누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뭐하자는 거지?"

 "그냥 물어 본 거예요."

 "거슬려. 그냥도 물어 보지 마."

 오고가는 대화나 분위기가 차갑다 못해 살벌하기 까지 했다. 나도 그렇지만 누나가 마실 커피를 준비하고 있는 아줌마도 이 감당 할 수 없으리만치 무거운 분위기에 숨어 막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가 다시 시선을 거둬가자 누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곧 자시에서 일어난 그가 내게 말했다.

 "나와."

 놀라 되물을 새도 없이 그가 부엌을 나가버렸다.

 누나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문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는 누나를 피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잘 먹었습니다."

 떨면 안 되는데.... 떨어버렸다.

 "왜 그랬어요?"

 원망스레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창틈으로 담배연기를 내보내며 무심히 대꾸했다.

 "뭐가."

 "누나가 있는데 왜 굳이 나한테..."

 "데려다 줄 테니 나오라고 했을 뿐이야. 뭐가 분제지?"

 "누나가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그래서?"

 그는 누나가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는 듯 내게 되물었다. 왜 그는 상관이 없을까. 나는 상관이 있는데. 같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는 상관이 없고 나는 상관이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누나가 이상하게 생각하면..."

 "무슨 이상한 생각. 너랑 내가 섹스 하는 사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운전기사가 앞에 버젓이 있는데도 그는 표현에 거침이 없었다.

 "눈치 챌 거였음 벌써 눈치 챘어. 눈치 채도 별 상관없고."

 "왜 상관이 없어요. 누나가 알면 안 되잖아요."

 "왜 알면 안 되지?"

 벌써 한 번 오고갔던 대화가 또다시 반복되는 것 같다. 그는 처음부터 대화의 흐름이 이렇게 흘러갈 것임을 알았는지 내 대답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가 밖에서 누구와 붙어먹든 상관 안 해. 그리고 그 여자도 마찬가지지. 내가 밖에서든 안에서든 누구와 섹스를 하건 그 여자는 상관없어."

 "...이해가 안 돼요."

 "그런 관계라는 거야."

 "...하지만... 아!!!"

 느닷없이 그가 내 가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성기를 틀어쥐었다.

 "쓸데없는 질문. 생각 모두 집어치워. 아니면 집어치우게 해줄까."

 지금 당장 점해주겠다는 소리로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나는 입술을 사리물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욕정 따윈 보이지 않는 냉혹한 시선이 작살처럼 나를 파고든다. 그가 입술을 비틀며 내게 말했다.

 "들키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변하는 건 없을 테니까."

 어른 그리고 남자.

 스무 살 그리고 서른다섯

 많은 나이 차이만큼이나 그는 나와는 확연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무서운 사람이었다.

 마치 깨진 유리의 파편처럼 날카롭고 가끔은 이를 드러낸 짐승처럼 난폭하고 잔인했다. 그는 내가 누나에 대한 죄책감으로 관계를 가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기민하게 알아채고 나를 겹박했다. 달래고 어르는 게 아니라 헛생각 하지 말라며 윽박질렀다. 내가 뒷걸음질 치려는 걸 두고 보지 않았다. 나와의 관계에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않았고, 내 몸을 탐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게 이상했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의아했다. 그저 내가 잠자리 상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일까. 그렇다 해도 그와 내 관계가 잘못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엄연히 이건... 이건... 불륜이니까.

 모르는 게 아니다. 둘 다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알면서 멈추지 못 하는 것이라면 그는 그 자체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처음은 어렵지만 두 번재는 쉽다. 세 번째는 그보다 더 쉽고... 그런 식으로 거듭되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어느새 당연한 게 되어버린다. 지금의 내가 그랬다. 그가 원하면 당연하다는 듯 다리를 벌린다. 거절이 아닌 애원의 말을 입에 담는다. 비명조차 쾌락에 의한 신음이었다. 게다가 점점 몸이 아닌 감정도 얽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미처 잘라내지 못한 싹이 빠른 속도로 자라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가 가끔씩 내게 성욕과 닮은 소유욕을 내비칠 때마다 그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기뻐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때마다 불안감도 함께 자라났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만드는 그가 무서웠다. 그럼에도 미친 듯이 끌리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나는 나를, 그를, 그리고 그와 내가 만든 이 상황을 막을 수가 없다.

 "으응... 하... 빨...리..."

 귀두 부분을 살짝 넣었다 떼기를 반복하며나를 약 올리던 그가 내 재촉에 낮게 웃으며 장난질을 멈췄다.

 곧발 성기가 안을 깊게 파고들어왔다. 끝까지 집어넣고선 움직이지 않고 그가 내 젖꼭지를 빨아대는 시간이 길어지자 점점 조바심이 일었다. 나는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아 바짝 끌어안고 허리를 들썩였다.

 그가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말만 그렇지."

 "아니, 아니에요... 정말 힘들어요."

 "시험해볼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허리를 크게 움직여 성기를 깊게 쳐박았다.

 "하읏!!!!"

 허리를 비틀며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처럼 신음을 내질렀다.

 "하지마요. 싫어...!"

 그의 어깨를 쥐어뜯으며 울먹였다. 그러자 그가 달래 듯 혀로 눈가를 스윽 빨아주며 속삭인다.

 "안 해. 그냥 넣고만 있을 거야."

 "저. 정말이죠."

 "그래."

 단호한 그의 대답에 몸에 긴장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땀과 정액으로 범벅이 된 몸뚱이였지만 딱히 씻고 싶다는 생각은 나지 않아. 한동안 그와 틈 하나 없이 맞닿은 채 가만히 숨만 내쉬었다. 그러다 불현듯 그에게 물었다.

 "내일도 나가요?"

 "아마 그렇겠지."

 곧바로 돌아 온 대답에 고내히 서운해졌다.

 "...쉬는 날은 없어요?"

 "쉬면?"

 "...그냥..."

 순간 저도 모르게 영화 보러 갈래요? 하고 물어볼 뻔 했다.

 "...그냥 ... 맨날 나가는 것 같기에..."

 어색하게 말을 얼버무리자 그가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캬 올렸다. 그 시선에 초조해져 버릇처럼 입술을 잘근잘근 씹자 그가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쭈욱- 잡아 당겼다.

 "맛있는 건 알지만 이 버릇 좀 고치지 그래."

 "으... 아프으."

 그가 힘을 주어 잡아당기는 통에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 뭉개진 발음이 퍽 웃겼는지 그가 피식 웃으며 손을 놨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입술을 문질렀다.

 "입술 물어뜯지 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해."

 "그런 거 없어요."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힘없이 말했다.

 영화 보러 갈래요?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요? 나랑 하루 종일 같이 있어줄래요?

 .....미친 척 내뱉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말들이다.

 그가 내 속내를 읽어 내리기 위해 다시 관찰을 시작했다. 그래서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자 조금 뒤 그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

 "점점 어려워지는군."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는 언제나 푸르스름한 새벽기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외출을 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혼자 일어나 멍하니 누워있다 아줌마가 오실 때쯤 방으로 돌아갔다. 그와 관계를 가지기 시작하고서부터 그의 방청소는 내 몫이 되었다. 정사의 흔적이 가득한 침대시트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달랐다.

 눈을 떴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내 옆에 누워 자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아직 꿈꾸나? 멍하니 그를 내려다보는데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더 자."

 "하루 쉬려고. 그러니까 더 자."

 "...그치만 곧 아줌마 오실 시간인데."

 "안 와."

 "네?"

 "오지 말라고 했어."

 한동안 멍창하게 앉아 두 눈만 깜빡였다.

 쉰다고? 아줌마도 오지 않는다고? 누나는... 내일 온다. 그렇다는 건 오늘 하루 종일 이 집에 그와 나만 있다는 소리다.

 하루 종일.. 그와 나만.

 그와 내가.

 다시 잠들었다 점심때쯤에야 다시 깼고 깨자마자 그와 질펀하게 뒹굴었다. 뒹굴고 나서는 같이 씻고 밥을 먹었다. 밥상 정도는 차릴 줄 안다며 호기롭게 나섰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결국 생선을 태워먹었더니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초밥이 배달됐다. 배부르게 먹은 다음엔 거실에 앉아 TV를 봤다. 이 내용이 이 내용 같고 저 내용이 저 내용 같은 드라마들과 어디서 웃어야 할 지 모르겠는 코미디 프로그램 그리고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아이돌들이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 등을 돌려보다 지겨워져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대는데 마침 여행 전문 채널에서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를 소개해주고 있었다.

 "와~ 멋있다..."

 안이 훤히 보이는 푸른빛의 호수와 폭포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숲의 풍경에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플리트비체. 요정이 산다는 그 곳.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정호수로 선정된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이었다.

 중학교 때 수채화를 막 배울 무렵 풍경화를 그리고자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투명한 호수는 한 가지 색깔이 아니라 여러가지 조건에 따라 다양한 색을 띠었다. 하늘색, 밝은 초록색. 청록색. 진한 파란색...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단지 사진을 그대로 베끼기 보단 실제로 가서 눈에 담고 그려보고 싶었다. 그 때부터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다.

 내 감탄사에 그가 신문을 보다 말고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며 TV를 가리켰다.

 "저거 봐요. 제가 나중에 돈 벌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저 색 좀 봐요. 되게 예쁘지 않아요? 실제로 보고 꼭 그려보고 싶어요."

 "인물화만 그리는 줄 알았는데?"

 "네? 제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잠깐. 인물화만 그린다니.. 왜 그런 말을 하지? 뒤늦게야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니 스케치북엔 항상 사람만 그려져 있었거든. 그것도 똑같은 사람만. 특히 손을 참 잘 그리더군."

 "네? .....어?! 설마 그, 그걸 봤어요?!!!"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나를 보며 뭐가 문제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그에게 말했다.

 "왜. 왜 그걸... 아니 그건... 그러니까."

 왜 허락도 없이 보았냐고 따져야할지 아니면 왜 스케치북 속에 등장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인지에 대해 변명해야할지. 둘 중 뭐가 우선인지 헷갈렸다. 문제는 정작 그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지만... 그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신문으로 관심을 돌려버리니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괜히 흥분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뭔가 반응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기분이 좀... ...썩 좋진 않은 것 같다. 다리 자리에 앉아 tv로 시선을 돌렸다. 탁자 유리에 비친 내 표정이 시큰둥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내게 그가 대뜸 이렇게 말했따.

 "5월쯤엔 시간 좀 내보지."

 "...네?"

 무슨 뜻인지 몰라 그를 돌아보자 그가 신문을 한 장 넘기며 여상하게 대꾸했다. 

 "방금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디를.. ...저기요?"

 멍청하게 tv를 가리키며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니까 저길... 가자구요? 5월에?"

 "잘 알아들었군."

 "...같이요?"

 "혼자 보낼 거면 내가 시간 낸다고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정말...이에요?"

 "농담엔 취미 없어."

 "...............진짜요? 정말 같이 가자는 거죠?"

 도저히 믿기 어려워서 연신 되묻자 그가 한숨을 쉬며 신문을 덮어 탁자가에 내려 놓곤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여 나를 쳐다봤다.

 "딱히 너한테 거짓말하거나 시답잖은 농담을 지껄여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못 믿지?"

 "그야...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그리고 이런 대화가 오고갈 수 있는 사이는 아니니까...

 "갑자기 결정한 거니 갑자기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잖아."

 "그치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같이 가달라고 한 적도 없고 그저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말 했을 뿐이다. 예쁘지 않느냐며 같이 봐주고 나에게 공감해 달라 조금 조른 것뿐이다. 그런데 그가 내게 돌려 준 반응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글쎄....."

 그가 답지 않게 말꼬리를 늘어뜨리는 것이 신기했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아니 들려주지 못한 게 맞는 것 같았다. 그건 그 역시 충동적이었다는 뜻이었다. 어제의 나처럼....

 "잘 모르겠군.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다. 당연히 중요했다. 그 충동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하지만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모른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니요. 그냥 물어봤어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웃었다. 단순히 말 뿐이라 하더라도 상관없이 마냥 기쁘고 좋았다. 그가 내게 욕정이 아닌 다른 충동을 느낀 것이 좋았고, 나 혼자 감정을 키워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알게 되서 안도했다.

 갑자기 그와 접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입술과 혀를 섞었다. 그의 무릎위에 올라가 목을 감싸 안고 목구멍까지 들어와 안을 휘젓는 혀를 빨아댔다. 축축한 소리가 귓구멍을 찔러대고 몸을 달궜다. 그의 손이 셔츠 안으로 들어 와 젖꼭지를 문대자 순식간에 빳빳해졌다. 굳이 이성을 붙잡고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미친 사람처럼 흐트러지든 듣기 싫을 정도로 교성을 질러대든 상관없으니까. 오늘 하루는 이 집에 나와 그 밖에 없다. 애써 소리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뻐근할 정도로 벌어진 입 사이로 타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가 혀끝으로 흘러내린 타액을 핥아 올렸고 나는 허리를 흔들어 그의 것에 대고 성기를 문질렀다. 그에 참지 못한 그가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구멍을 더듬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삑ㅡ 하는 소리가 마치 벼락처럼 뒤통수를 내리쳤다. 현관에서 나는 그 소리는 분명 비밀번호를 누를 때 나는 소리였다. 다시 삑ㅡ 하고 소리가 난다.

 소스라치게 놀라 그에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또 한 번 삑ㅡ 하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네 번째로 빡ㅡ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야 비로소 나는 그의 무릎에서 일어났고 다음 순간엔 묵직한 현관문이 끼익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현관에 들어선 사람을 확인했다. 내일 올 줄 알았던 누나가 거기 서있었다. 누나와 시선이 마주침과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달아올라 있을 것이 분명한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다녀오셨어요. 누나"

 누나는 내 인사를 받지 않는다. 무릎까지 올라온 부츠를 벗고 슬리퍼를 신은 누나가 거실로 들어섰다. 누나의 시선이 내게서 그에게로 옮겨졌다. 누나의 무표정을 읽어낼 수가 없어 두려웠다. 누나는 한참동안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그는 여느 때 처럼 누나의 시선을 무시했다. 누나로 하여금 편안했던 공간에 숨조차 내쉬기 힘들 정도의 무거운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어느 순간 누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누나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깨달은 순간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내가 어제 그의 목에 남겨 놓은 잇자국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맺혔다. 누나가 금방이라도 저 흔적을 나와 결부시킬 것만 같아 무서웠다.

 "저 이제 들어갈게요. 쉬세요. 누나."

 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내 방으로 도망쳤다.

 방문을 닫아, 걸어 잠그고 자리에 주저앉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쿵쿵 뛰는 가슴이 쉽사리 가라앉질 않았다. 순식간에 다시 밑바닥으로 쳐박혀버린 것만 같다. 그래. 이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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