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6)

 나는 한 번도 내 성정체성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따. 딱히 여자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도 그건 그저 좋아하는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겼다. 친한 친구 놈 하나가 언젠가 내게 연애세포가 메마른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었지만, 그에 동의하면서도 언젠가는 마음 맞는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남자를 상대로는 단 한 번도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 성정체성을 고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을 알아들어버렸다.

 나는 그로 하여금 일어나는 내 모든 변화가 낯설고 괴로웠다. 내가 미친 것 같은 데 어떻게 하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마치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걸 알았음에도 되돌아가는 길을 몰라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그 날 이후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냥 보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 들어오지 않았는지 아니면 들어왔지만 내가 보지 못한 건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그를 피하려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방에 틀어박혀 방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자다 목이 말라도. 요의가 느껴져도 참았다. 혹여 라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집안에서의 행동을 최소화했다.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걸 알았으니 되돌아갈 수 없다면 적어도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아야곘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이 혼란이 멈추길 바랐다. 또 이 변화가 뭘 뜻하는 건지 차라리 깨닫지 않기를 바랐다. 깨닫는 순간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만 같았고, 그와 단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추락해버릴 것 같았으니까. 

 "...우야. ...수우야? 윤수우?"

 "아,네?"

 "무슨 생각을 하기에 불러도 몰라?"

 또 저도 모르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던 모양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리니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캔버스를 보곤 한숨을 쉬는 선생님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늘도야?"

 "아, 죄송합니다."

 "벌써 사흘째야. 혹시 무슨 일 있는 거니?"

 걱정스레 묻는 선생님에게 고개를 저어보이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그럼?"

 "그냥...."

 "그냥?"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이것은 변명이 아닌 진심이었다.

 선생님은 어려운 문제를 받아든 사람처럼 이마를 짚으며 끙ㅡ 하고 앓는 소리를 내셨다.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니... 그냥 지금 제일 그리고 싶은 걸 그리면 되지 않을까?"

 심플하지만 정답에 가까운 말이었다. 문제는 제일 그리고 싶은 게 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겠지. 아니, 정확히는 그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공부도 그림도 뭐하나 제대로 하질 못하고 있다. 숲을 헤매는 미아처럼 혼란 속을 헤매는 중이었으므로.

 내가 갈피를 못 잡고 있음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선생님의 앓는 소리가 더 커졌다.

 "죄송합니다. 내일부턴 뭐라도 그려볼게요."

 "어? 아. 그래. 정 안되면 모작이라도 해 보던가... 네가 아무것도 안하니까 돈 받기 미안해지잖아."

 장난스러운 대꾸에 마음이 한결 편해져 가볍게 웃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조금 놀란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와 너 웃는 거 처음 보는 것 같다?"

 "네? 저요?"

 "그럼 너지 누겠어. 정말 처음 봤어. 신기하다. 야."

 "아...."

 괜히 민망해져서 턱을 문질러대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선생님이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야~ 너 이제 보니까 웃을 때는 인상이 확 달라지는구나. 좀 애기같이 웃네? 아니 아니. 사실 생긴 거 자체는 순해. 맨날 무표정해서 잘 몰랐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순한 인상이야."

 "...제가요?"

 "응. 남자애가 피부도 하얀 게... 나 사실 너 좀 부러워했다? 나 봐. 난 되게 까맣거든. 미백 화장품을 써도 소용이 없어요. 으휴."

 그렇게 하얀가? 피부가 좀 좋은 편인 것 같다는 소린 들어봤지만 딱히 많이 하얗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가. 뭐라 해야 되지? 막 물감 묻혀 주고 싶게 생겼다고 할까?"

 "네?"

 선생님이 두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데 그게 뭘 표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손동작만 보면... 변태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보면 유독 그리고 싶어지게 하는 종이가 있잖아. 막 연필이나 물감으로 더렵혀주고 싶은?"

 딱히 그런 경험은 없어서 그런지 공감이 되진 않았다. 내가 이해를 못 하고 어리둥절해 하자 선생님이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표현이 좀 이상한가? 내가 문학적으로는 소질이 없어서 어떻게 표현을 못 하겠다. 아무튼 뭐 그래. 꼭 그런 이미지야."

 "...칭찬이에요?"

 의심스레 묻는 내게 선생님이 손바닥으로 등을 가볍게 치며 당연하지 라고 대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칭찬이라면 그걸로 됐다 싶어 더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정리하고 가방을 챙겼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오늘도 그는 없을까. .....없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했다. 왜 안 보이는 건지...

 혹시 어쩌면 그도 나를 피하는 것은 아닐까....

 "수우학생. 혹시 나 좀 도와줄 수 있을까?"

 토요일 늦은 오후. 책상에 앉아 전날 학원에서 봤던 모의고사 시험지를 복습하고 있는데 아줌마가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 네. 뭔데요?"

 "으응. 서재방 청소하려고 하는데 밖에 비가 와서 그런지 어두워서 말이야. 불켜고 하려 했더니 안 켜지네. 전구를 갈아 끼워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손이 안 닿아서 못하겠어."

 "제가 할게요."

 "그럴래? 그럼 좀 부탁할게. 난 설거지부터 할 테니까."

 어차피 집중력도 떨어지고 몸도 찌뿌둥하던 참인지라 잘 됐다 싶었다. 새로 갈아 끼울 전구를 찾아다 주겠다는 아줌마를 따라 방 밖으로 나가 곧징 사제러 행헸다. 그러고 보면 내 방 외에 다른 방을 들어가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재로 쓰는 방은 내 방보다 훨씬 넓었는데 좀 특이했다. 뭐랄까 한 공간을 두 개로 쪼개놓고 각각 다른 느낌으로 인테리어를 해놓은 것 같은 것이. 한 쪽은 말 그대로 서재처럼 꾸며놨고 다른 한 쪽은 침실 방처럼 꾸며놓았다.

 여길 누가 쓰는 거지.. 누나가 쓰는 것 같진 않았다. 누나가 쓰는 안방은 따로 있는데다 전체적인 인테리어 느낌이 여자가 쓰는 공간이라기 보단 남자가 쓰는 공간에 가깝....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누가 이 방을 쓸지 깨달았다. 당연한 거 아닌가. 누나가 아니라면 단 한 명밖에 없는데....

 그가 쓰는 공간에 발을 들였다 생각하자 심장이 또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안함은 잠시였다. 금방 호기심일 나를 지배했다. 나는 다시 찬찬히 방을 구경했다. 흐트러짐이라곤 하나 없이 사람 냄새조차 나지 않을 만큼 깔끔했다. 심지어 침대 시트조차 새것처럼 빳빳하다. 이런 방을 청소하겠다고? 청소해봐야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사용을 하긴 하는 건지도 모를 정도니까.

 "수우학생. 여기 있어. 좀 부탁할게."

 아줌마가 건네는 새 전구를 받아들어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뒤 조명장식 밑으로 의자를 끌고 왔다. 천장이 좀 높은 편이긴 해도 천장 조명등 장식이 줄에 매달린 형태라 전구에 손이 닿기는 했다. 문제는 의자가 생각보다 흔들거린다는 것인데 균형 잡기가 영 안 좋았다. 횩여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천천히 전구를 돌려 풀기 시작했다. 혹 실수로 떨어뜨려 깨질 것을 염려해 두 개씩 풀어 바닥에 내려 놓고 새 전구를 꺼내 하나씩 갈아 끼웠다. 세 개째 갈아 끼우고 마지막 하나를 마저 갈아 끼우려는 참이었다. 뒤에서 달칵ㅡ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줌마겠거니 생각하고 말했다.

 "거의 다 됐어요. 잠시만요."

 "....그거 고맙군."

 순간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에 놀란 나머지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어떻게든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의자가 워낙 흔들렸다. 결국 쿵ㅡ 소리를 내며 밑으로 넘어져버렸다.

 "으...."

 의자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어서 그런가. 생각보단 고통이 덜 했다. 다만 두딪힌 충격 탓인지 머리가 울려서 몸이 금방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바닥이... 아니 잠깐... 이건....

 "....!"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쳐들었을 때 내 시선이 처음 닿은 곳은 그의 입술이었다. 그 다음으로 콧날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눈동자까지 시선이 닿고 나서야 내 몸이 누구 위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죄, 죄송합니....아!!!"

 서둘러 그의 몸 위에서 비키려했지만 되려 더 깊이 접촉하게 되었다. 뭔가가 내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그 뭔가가 그의 팔이라는 건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갑작스런 행동에 나는 빈사에 빠진 것 마냥 얼어붙어버렸다.

 그와 너무나도 가깝게 닿아있다. 코끝이 닿고 그의 숨소리가 내 입술 언저리에서 흩어진다. 조금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맞닿아 있는 하체가 욱신거렸다. 의식하면 할수록 얼어붙은 심장이 무섭도록 뛰었다.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려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오로지 그와 닿아있는 것에만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가 아래로 내려뜬 눈꺼풀을 느릿하게 들어 올려 내 눈동자를 직시한다. 느슨하게 풀려있던 그의 입술이 곧 매끄럽게 호를 그렸다.

 "넌 정말이지 조심성이 없어."

 낮게 깔리는 목소리 속에 웃음을 가장한 뭔가가 묻어나 있다.

 "그래서 수작 걸고 싶어지는데... 또 무서워서 함부로 못 건드리겠단 말이지. 꼭 마약에 손대는 기분이 들거든."

 "....놔.... 놔주...읏!!"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딱딱한 뭔가와 중심이 비벼졌다. 순식간에 몸 전체에 열이 올랐다. 마치 심지에 불을 붙인 것처럼 무섭도록 빠르게 달아올랐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입술만 물어뜯는 내 귓가에 그가 묘한 웃음소리를 흘린다.

 "이. 이 경우엔 발정제라고 해야 하나?"

 낮은 목소리가 입가에 퍼졌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기를 머금은 숨이 닿을 때마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나는 다시 한 번 바닥에 팔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러나 그는 놓아주지 않고 되레 더 내 몸을 압박해왔다.

 "아!!"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이 내려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크게 떨었다. 그러나 움직임은 아까처럼 자극이 되어버린다. 이젠 수치를 감출 수도 없다. 나는 몇백히 흥분했고, 흥분한 중거가 그와 맞닿은 채였으니.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물까지 차올랐다. 그가 그런 나를 한동안 뚤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나를 붙잡은 그대로 내 몸뚱이를 흔들었다. 붙잡힌 채 강제로 몸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자연히 맞닿은 중심도 비벼졌다. 무서웠다. 순식간에 몸의 감각이 예민하게 곤두섰음을 느꼈다. 하체의 살덩이가 더 단단해졌음은 당연했다. 나는 굳은 채로 벌벌 떨었다. 머리로는 어떻게든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그는 어느덧 거친 숨을 쉬어대는 내 귓가에 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다시 한 번 내 몸을 위 아래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마치 장난감처럼 내 몸이 그가 휘두르는 대로 휘둘렸다.

 "아! 흐흐..."

 안 돼. 이건 정말 안 돼.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러나 그는 무시했다. 다시 한 번 몸이 흔들렸다.

 두 번. 세 번. 네 번....

 "아! 아아... 으..."

 안 된다고 말하려 벌린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건 정 반대의 소리였다. 빌어먹게 야한 신음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는게 믿기지 않았다. 이성이 빠르게 무너져갔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몸짓에 점점 속도가 줕었다. 뇌가 무뎌질 대로 무더져 녹아버린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하질 못하겠다. 나는 흔들렸고, 비벼지는 하체로부터 퍼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옷과 옷이 스치는 소리가 방을 적셨다. 비를 맞고 온 것인가. 그의 목덜미에서 서늘한 비 냄새가 난다.

 "으응... 하.. 으..."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축축한 소리가 방안을 적시고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소리 만큼이나 난잡하게 내 허리도 두서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 강렬한 감각에 빠져 멈춰야 된다는 당연한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그렇게 몸이 원하는 대로 따랐다.

 그 때였다. 뚝ㅡ 뚝ㅡ 하고 노크소리가 마치 경고처럼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수우학생. 수우학생 아직 거기 있어?"

 "!!!"

 아줌마의 목소리에 정신이 확 들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내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그가 나를 휘두른 게 아니라 어느새 내가 내 의지로 그의 성기에 중심을 비벼대고 있었던 거다.

 뒤늦은 깨달음에 벼락처럼 충격이 내달렸다. 나는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일으키곤 그를 내려다보았다. 나를 쳐다보는 눈동자가 나른하게 풀려 있었다.

 "수우학생? ....없나? 이상하다.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아줌마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이내 남은 건 무거워 침묵과 숨 막히게 하는 긴장감뿐이었다. 나른한 눈동자로 집요하게 나를 응시하던 그가 이내 입꾸리를 끌어올리며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이 허리로부터 살갗을 타고 올라와 내 목덜리에 닿았다. 굳은 채 숨만 몰아쉬는 내게 그가 물었다.

 "의외군. 도망 갈 줄 알았는데. 괜찮겠어? 지금 아니면 기회가..."

 "아!!"

 목덜미에서 멈췄던 손이 느닷없이 뒷 머리채를 거칠게 붙잡았다.

 "없을 텐데?"

 동시에 느슨하게 풀려있던 그의 눈빛도 광폭하게 변했따.

 무서웠다. 비로소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 건지 실감이 났다.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해서는 안 될 것을 저릴렀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재촉해 방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붙잡지 않았따. 그럼에도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등골이 서늘했다.

 나는 저녁 내내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가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너덜너덜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나는 침대에 누워 고집스레 감은 눈을 단 한 번도 뜨지 않았다. 누나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도 아줌마가 저녁 먹으라며 나를 불러도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차라리 잠이라도 잤으면 좋겠다 싶었다. 잠에 빠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악몽을 꿨다고 치부해버리고 싶었다.

 똑ㅡ 똑ㅡ

 "수우학생. 나 이제 집에 갈게. 혹시 배고프면 식탁에 과일이랑 챙겨놨으니까 가져다 먹어."

 아줌마의 걱정스런 목소리에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죽은 듯 침대에만 누워있으니 결국엔 그토록 원하던 수마가 찾아왔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기절한 사람처럼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떳ㅇ르 때. 여전히 방은 어둠에 휩싸여있었다. 날이 밝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두 눈을 감았다.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한 번 깬 잠이 쉬이 들질 않았다. 결국 뒤척이다 차라리 공부라도 하자 싶어 일어났다.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오후에 복습하다 만 시험지를 다시 펼쳤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글자를 읽어 내렸다. 읽어 내리기만 했다. 읽어 내기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어렵게 불러 온 집중력은 얼마가지 않았다. 참았던 갈증과 요의가 한꺼번에 나를 덮친 것이다. 참다 못 해 결국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방문 앞에 섰을 땐 어쩔 수 없이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신경을 곤두세워 방밖의 기척을 살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먼저 내 방과 가까운 화장실에서 요의를 해결하고 다음으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담배연기 냄새였다. 홀린 듯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베란다 쪽이었다. 누가 있을지 예상하는 건 쉬웠다. 그러니 모르는 척 해야 되는데 ....모르는 척 할 수가 없다.

 기껏 도망친 것이 무색하게 어느새 발걸음이 베란다 쪽을 향했다. 그에 따라 그의 윤곽이 점점 또렸해졌다. 나는 멀지도 그리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멈춰 섰다. 상의를 탈의한 그의 등에 생채기가 나있는 것이 보였다. 그게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 모를 수가 없었따.

 그가 천천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나를 보고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다. 내가 그를 알아챘듯 그도 나를 알아 챌 것이다. 작은 틈만ㅇ르 남겨두고 닫힌 유리문 사이로 그와 나는 말없이 서로 응시했다. 그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약간 들어 담배연기를 밖으로 흘려보냈다. 긴장과는 다른 무언가가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그게 뭔지 알아선 안 된다. 그러니 계속 이렇게 서 있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부엌을 향해 걷지만, 손끝은 차갑게 식어 저려왔다.

 식탁에는 아줌마가 챙겨 놓은 과일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을 냉장고에 넣고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였다. 컵 한가득 찬 무을 쉬지도 않고 다 마신 뒤 헹궈서 식기 건조대에 엎어놓기 위해 싱크대 앞으로 갔다. 그 때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던 걸음소리가 바로 뒤에서 멈췄다.

 "일부러 모르는 척 해주려고 했어."

 "....."

 "그런데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더군."

 "....."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봤지?"

 그의 질문에 대답해 줄 수가 없었따. 왜냐면 정작 나는 내가 어떤 눈으로 그를 쳐다봤는지 모르니까. 내가 무슨 눈을 하고 있었지? 어떤 표정으로 쳐다봤는데?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이써 그의 물음을 무시하고 물을 틀었다. 손으로 컵을 씻는데 그의 기척이 점점 가까워졌다. 신경이 저절로 곤두섰고, 그가 바로 등 뒤까지 왔음을 깨달았을 땐 소름이 끼쳤다. 시큼한 정액 냄새가 착각인지 실제인지 모르겠다.

 "있는 대로 달궈놓고 내뺀 건 너야."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그 목소리에 꿀꺽ㅡ 침을 삼켰다.

 "물론 놔준 건 나지만."

 ".....비켜주세요."

 최대한 담담함을 가장해 말했다. 그러나 그는 웃음으로 내 말을 조롱했다. 

 "그거 알아? 넌 처음부터 발정 난 눈으로 나를 봤어. 애초에 처음부터 수작을 건건 너라고. 발정제에 손대는 기분이라는 게 그냥 해 본 소리 같아?"

 "...그런 적..."

 "맞아."

 ".....아니에요."

 "맞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뒤에서부터 뻗어 온 그의 손이 내 팔을 붙잡아 사지를 옭아맸다.

 "아까는 처음으로 후회라는 걸 해봤는데 그거 참 기분 엿 같더군. 다 잡았는데 그걸 놔주다니. 답지 않은 짓거리를 했어. 그래서 생각했지. 다시 걸리면 그 땐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그가 손가락에 깍지를 끼우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니까 나한테 다시 수작 좀 부려봐. 넘어가 줄게."

 안 돼. 이건 아니야. 잘못된 거야. 정신 차려. 도망가. 거부해. 아니라고 말해. 싫다고 해.

 ".....제발."

 나는 꺼질 듯한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했다.

 "...매형."

 그리고 거부했다.

 그가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 낯선 호칭 하나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동아 물 흐르는 소리만이 어두운 부엌 안을 채웠다.

 이윽고 그가 내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깍지 낀 손이 풀렸다. 그에 안도감을 느껴야하는데 정작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번을 끝으로 다시는 이런 식으로 그가 다가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미련 없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래서 나는.... 나는....

 "누나..!"

 나는...

 ".....누나에요?"

 나는... 붙잡아버렸다.

 숨 막히는 적막이 다시금 흘렀다. 또 느닷없이 깨져버렸다. 기습적으로 뻗어 온 그의 손에 어깨가 붙잡혀 억지로 몸을 돌려졌다. 그가 내 팔을 잡아 거칠게 벽 쪽으로 밀어붙인 뒤 가랑이 사이로 다리를 집어넣어 몸을 가뒀다. 입술이 맞닿을 듯 말 듯 그 미묘한 거리에서 그가 내게 말했다.

 "경고하는데 또 한 번 그 비위 상하는 소릴 지껄이면..."

 "누나랑 했어요?"

 고집스런 내 질문에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가 머리카락을 휘감아 앞으로 잡아당기자 입술이 살짝 맞닿았다. 그 상태에서 그가 말했다.

 "자위했어."

 그 대답이 입가에서 흩어짐과 동시에 나는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애써 붙잡고 있던 이성을 놓아버렸다.

 처음에는 입술이 다음에는 혀가 읽혔다. 뜨거운 혀가 깊숙이 침범해 내 안을 샅샅이 쑤시고 핥아댔다.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내 혀를 짓이기려는 사나운 혀와 더 얽히려 몸부림쳤다. 나는 굶주린 사람처럼 그의 타액을 빨았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응...아..."

 턱이 뻐근할 정도로 입이 벌어졌다. 토기가 나올 만큼 그의 혀가 깊이 들어와 안을 헤집엇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흘러내려 턱까지 닿았다. 그는 그것마저 혀로 핥아 올렸다. 그 덕분에 잠시 떨어진 틈을 타 막혔던 숨을 터트렸다. 맞무린 하체를 비벼대기 시작하는 그를 따라 목에 팔을 두르고 행위에 동조했다. 그러면서 혀를 내밀어 본능적으로 키스를 졸랐다. 그가 내 혓바닥을 입술로 빨아대다 집어삼켰다. 다시금 미끈거리는 혀가 맞부딪히며 난폭하게 안을 헤집었다. 동시에 그의 손이 긴장으로 곤두선 젖꼭지를 짓이겼다. 아픔과 아픔을 닮은 어떤 감각이 치고 올라왔다.

 "아! 흐으..."

 야릇한 것을 느끼고 있음이 확연하게 드러난 소리였다. 입술을 베어내고 나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가 벽을 짚고 있던 팔을 내려 하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 잠...!"

 손가락이 바로 엉덩이 사이의 비부에 닿았다. 물기하나 없는 건조한 손가락으로 그가 바깥부분을 느릿하게 지분거렸다. 혹시라도 그대로 뚫고 들어올까 두려워 저절로 하체에 힘을 들어갔다.

 "여기에 넣고 싸는 거야. 그건 알고 있나?"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모를 만큼 순진하지 않으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럼 됐군."

 그에게 매달린 채 방으로 향하는 내내 맞물린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 놔버린 이성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꼬, 아까와 같은 쾌감을 원하는 몸은 미쳐 날뛰었다.

 그의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눕혀졌을 때 비로소 내가 그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지를 깨달았다. 미처 감추지 못한 두려움을 그는 단박에 읽어 내고선 더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겁박했다.

 "쓸데없는 짓거리 할 생각 마. 봐줄 생각 없으니까."

 그는 대답할 여유 따윈 주지 않고 단숨에 내 상의를 찢어발겼다. 그가 내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목덜미가 빨리고 살결이 깨물리는 행위로 하여금 마치 잡아 먹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싫지 않다. 무섭지만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 으응...."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이 밖으로 새어나왔다. 밖으로 드러나 서늘한 공기와 맞닿은 젖꼭지를 그가 손가락으로 짓눌러댔다. 축축한 신음소리가 갈수록 거칠어지면서 나를 다루는 그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목덜미를 지분대던 그의 입술이 다시 내 입술을 덮으며 혀를 집어넣었다. 도망치지 않고 들어온 혀를 빨아주었다. 그런 내 행동을 그는 좋지 않은 쪽으로 해석했다.

 "생긴 거랑 다르게 제법인데, 처음이 아닌가?"

 그가 말하는 게 동정을 뜻하는 거든 처녀를 뜻하는 거든 둘 다 대답은 같다. 그러나 굳이 오해를 풀려고 하진 않았다. 옹졸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가 처음이 아닐 거라는 건 분명하니까. 그가 상대의 처음에 집착하는 한심한 부류의 남자라면. 나 역시 그런 한심한 부류에 속해주겠다. 유치하지만 그래야 공평하니까.

 "무슨 의미인지 좀 햇갈리긴 하는데... 뭐 좋아. 그냥 나 좋을 대로 생각하기로 하지."

 그의 눈동자에 순간 시퍼런 날이 섰다. 반대로 입술은 차갑게 비틀렸다. 내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심기가 불편해졌음은 명확했다.

 곧 그가 내 바지를 거침없이 끌어내렸다. 놀라 상체를 띄우고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는 간단히 한 손으로 어깨를 잡아 바닥에 고정시키곤 허벅지에 걸려 있던 바지를 마저 벗겨냈다. 하체가 오나전히 그의 눈앞에 드러나자 취한 듯 몽롱했던 정신이 확 깨어났다. 발기한 성기를 감출 틈도 없이 그가 내 위로 올라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바짝 입이 타들어갔다. 초조해서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러자 그가 미간을 찡그리더니 턱을 잡아 입술을 벌리게 해 손가락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의 손가락이 입천장을 훑고 미끈거리는 혓바닥을 긁어내린다. 당혹스러웠다. 손가락이 훑고 지나가는 곳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통증 때문이었다.

 손가락은 깊게 들어와 질척하게 젖도록 안을 헤집었다. 동시에 그가 다른 손으로 내 성기를 문질러댔다. 딱딱하게 열이 오른 성기에 그의 손이 닿자 어마어마한 쾌감이 내달렸다. 금방이라도 싸지를 것만 같았다. 방에서 남몰래 자위 했을 때 느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귀두를 문지르는 그의 손길에 허벅지 안쪽이 부들부들 떨렸다. 남자의 손에 희롱당하는 것이 싫지 않다는 것이 무섭다. 좋아서 무섭다. 손놀림이 진해질수록 내입술 대신 그의 손을 씹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하아. 아! 으흣!!"

 어느 순간부터 그의 손길에 맞춰 흔들리고 있던 허리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사정이 입박해오자 나는 허리를 비틀며 그의 어깨에 손톱을 박았다.

 "읏!!!"

 얼마 못 가 하체를 튕기며 사정했다. 하얗고 뜨거운 정액이 그의 가슴팍까지 튀어 올랐다. 소름과도 닮은 쾌감이 빠르게 몸에 번져나갔다.

 그는 내가 뱉어낸 정액을 눈동자만 내려 응시하더니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느릿하게 핥았다. 야했다. 지금껏 내가 봤던 어떤 영상들보다도. 요부라는 단어가 남자에게도 해당된다면 나는 그를 요부라고 표현하는데 아무 거리낌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내 입속을 유린하던 손가락을 빼내고 발기한 자신의 성기를 꺼냈다. 일부러 보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후회해봤자 늦었다면 후회 할 여지를 주지 말아야하니까.

 무릎이 귀에 올 만큼 내 다리를 바짝 치켜 올린 그가 다물린 구멍에 타액으로 젖어 있던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아ㅡ!!"

 낮선 이물감에 진저리를 쳐댔다. 몸이 튕겨 오르자 그가 내 아랫배를 지그시 누르고선 입구에 머물러 있던 손가락을 더 깊이 집어넣었다. 히익ㅡ 새 된 신음을 내지르며 몸을 떨었다. 빡빡한 안을 뚫어대는 손가락은 반복할수록 빠르고 거칠어졌다. 곧 그가 손가락으 하나 더 넣어 양 옆으로 구멍을 늘려댔다. 안을 억지로 뚫고 벌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적나라하게 느껴질수록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게 닿는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지만 고집스럽게 질끈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역시 젖진 않는군."

 당연하다. 젖을 리가 없다. 여자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그가 낮게 혀를 차더니 안에서 손가락을 빼내고는 다급하게 내 입술을 집어 삼켰다. 하체에서부터 조금씩 젖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가 제 성기를 문질러 사정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얽힌 혀에 집중하는데, 예고 없이 뭔가가 불쑥 안으로 침입했다. 순간 내달리는 고통과 어마어마한 이물감에 눈을 부릅뜨며 그를 밀어냈다.

 "아! 아아!!"

 구멍을 억지로 벌리고 들어온 것이 손가락이 아니란 건 확실했다. 나는 튕기듯 일어나 아래에 박힌 것을 확인했다. 벌리고 들어 온 것은 두텁고 긴 성기의 끝부분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얕게 추삽질을 반복하던 그가 얼마안가 미간을 살풋 찡그림과 동시에 내 안에 사정했다. 그의 정액이 내 안에 들어 온 것이다. 그 사실에 숨이 턱, 막혔다.

 내 안에서 사정을 끝낸 뒤 그는 다시 성기를 빼냈다. 입구 쪽에 싸지른 정액이 빠져 나가는 성기를 따라 흘러나오면서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선연하게 느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다시 안을 무자비하게 뚫어 안에 정액을 펴 발랐다. 젖지 않으니 젖게 만드는 것이다. 긴 손가락이 깊게까지 들어와 안을 휘젓는데 순간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히익. 하고 숨을 삼키며 몸을 떨었다. 그러자 그가 손가락을 잡아 뽑듯이 꺼냈다.

 약간 띄우고 있던 내 상체를 다급하게 눕히고 그가 다시 입술을 겹쳤다. 조금의 여유도 없이 딱딱한 성기가 입구에 닿았다. 본능적인 거부감에 그를 밀어내려하자 그가 머리를 거칠게 잡아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켰다. 젖은 성기가 입구를 헤치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 한순간에 뿌리깊이 치고 들어왔다.

 "으응ㅡ!!"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는 그의 입안으로 먹혔고, 섬뜩하리만치 큰 성기가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매섭게 찔러왔을 땐 목으로 울었다.

 그는 결코 부드럽지도 다정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사납게 안을 휘저었다. 내안을 무자비하게 꿰뚫고 휘저어대는 성기는 흉기나 다름없었고, 나는 그 흉기에 곶혀 어쩔 줄을 모르고 울어댔다. 침이 입가로 질질 새어 나왔다. 눈가는 이미 눈물로 범벅이었다. 점점 숨이 막혀 와서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자 그가 입술을 떼어냈다. 막힌 숨과 동시에 교성을 터트렸다.

 "하윽...! 하...아! 아아!!!"

 그는 난잡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나를 관찰했다.

 "하... 소리가 너무 크면 곤란 할 텐데."

 "그렇...그렇지만... 너무 아파서...."

 "아프기만 한가?"

 아프기만... 하진 않았다. 아프지만... 좋았다. 이토록 강렬한 감각을 느껴보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인가. 도저히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인 것은 이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나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

 "그거 아나? 원래 입보다는 몸이 더 정직해."

 그가 반쯤 걸린 성기를 안으로 깊이 쳐박았다.

 "흐읍!!!"

 크게 터질 뻔 한 비명을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밖으로 새어나가선 안 되는 소리였다. 절대....!"

 그의 웃음소리가 나지막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가 귓구멍에 혀를 집어넣어 안을 핥았다. 축축한 소리가 남아있는 이성을 마저 녹여냈다.

 "허리 감아."

 나는 홀린 것처럼 그의 요구에 따라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쌌다. 순간 그의 눈에 다시금 불길이 일었다.

 "아! 아응!!! 아!!"

 철퍽 하고 살이 부딪혔다. 고환이 엉덩이에 닿으리만치 깊은 결합이었다. 젖은 살덩이가 엉덩이에 부딪혔다. 떨어질 때마다 쩍쩍, 회설적인 소리가 났다.

 "하아.....정말. 약이라도 먹은 것 같군."

 한껏 쉰 목소리에 욕정이 그득했다.

 "아아...그...그만!"

 점점 내 머리칼을 쥔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의 움직임도 역동적으로 변해갔다. 굵은 성기가 내벽을 긁어내리며 거침없이 들어왔다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의 허리놀림이 한없이 빨라지고 억누르는 듯한 신음소리가 거칠어질수록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가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려 내 성기를 쥐고 흔들었다. 속절없이 흔들렸다. 사정은 금방이었다. 내 성기에서 하얀 정액이 다시름 튀어 오르고, 그가 내 입술을 물어뜯는다. 나는 그의 어깨를 할퀴었고, 그는 성기를 한계까지 틀어박았다.

 "아! 아으...흐.."

 뜨거운 것이 안에 확 퍼졌다.

 "하아! 하아...!"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가자앉기를 반복했다. 요정의 여운으로 젖은 눈동자를 멍하니 응시하다 눈을 감았다.

 끝이었다.

 매캐한 연기가 혼곤한 잠에 빠져있던 나를 깨웠다. 나는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려 노력했다.

 "좀 더 자."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너겨주며 그가 말했다. 기꺼이 그의 말에 따랐다.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비며 다시 잠에 빠졌다. 간간히 머리카락을 만진다던가. 몸을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것들은 잠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더욱더 깊은 수면을 유도했다.

 다시 눈을 떳을 때는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새벽이었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그 새벽녘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눈만 뜬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내가 잠들어 있던 내내 내 몸을 지분거리던 그는 옆에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가 6시를 가리켰을 때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몸에 힘일 들어가질 않았따. 그렇지만 이대로 그의 방에 있을 수는 없었다. 억지로 일어나 비칠대며 걸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재촉해 벽을 의지하며 걷는데, 엉덩이 사이로 뭔가가 흘러나와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가 안에 남겨 놓은 정액이었다. 힘겹게 밖으로 나가자마자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을 틀고 욕조에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윤수우.... 미친 놈..."

 후회.. 또는 자괴감. 그것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덮쳤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이런 기분을 아주 오래 전에 느껴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어느 날 너무너무 가지고 싶은 책이 생겼다. 다니엘 메리엄이라는 작가의 일러스트 화보집이었다. 그 몽환적이고 화려한 색채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인 느낌의 표지에 끌려 무작정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당시 내 용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댔다. 손르 벌벌 떨면서도 기어이 지갑을 열어 3만원을 훔쳐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 돈을 가지고 나와 도망치 듯 집을 뛰쳐나가 그길로 학교에 갔다. 하루 종일 돈이 들어있는 주머니가 신경 쓰여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책을 사러 갈 땐 그 돈이 점점 납처럼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기어이 책을 가지고 카운터 앞에 섰다. 사시나무 떨듯 벌벌 거리며 점원에게 책을 건네는데 속이 울렁거렸고, 나를 쳐다보는 점원의 시선이 마치 내가 나쁜 짓을 저질렀음을 아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것들이 모두 죄책감과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냐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섹스라는 게 무조건 사랑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감정이 없어도 얼마든지 몸은 섞을 수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던가.

 그와 잤다. 섹스했다. 몸을 섞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몇 번을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그와 만난 지 얼마나 됐지? 제대로 된 대화가 오고 간 적이 있었나? 그에 대해 얼마나 알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그가... 그가 누구냐는 거다.

 그는 남자고, 내 누나의... 남편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무섭도록 이끌렸다. 내가 나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이... 그러다 결국 붙잡았다. 그가 등을 돌렸을 때 그걸로 끝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붙잡았다. 그가 누나와 자지 않았다고 답하자. 먼저 달라 들었다. 그의 표현대로였다. 나는 발정난 놈처럼 굴었다.

 그게.. .....그게 너무 무서웠다. 내가 왜 의지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 이성을 붙잡지 못하고 본능을 따라버리는 것.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 그 사실들이 나를 무너뜨렸다.

 정신이 무너지자 몸도 무너졌다. 나는 꼬박 하루를 앓아누웠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누나와 마주치지 않게 해주는 변명거리로 쓸 수 있었으니까. 하루 종일 열에 시달리다 새벽쯤에야 진정이 됐다. 잠결에 누군가 방에 들어와 내 이마에 열을 재는 것이 느껴졌다. 이마를 덮은 차가운 손의 주인이 누나가 아님은 자명했다. 

 그럼에도 열을 식혀주는 서늘한 냉기에 마음이 편해졌다. 후ㅡ 하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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