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34화 (134/139)

134. 예언

회견장에 마이크를 쥔 대통령.

[이제 곧 세계는 멸망의 위기를 맞습니다. 그게 여기 계신 라오친 님이 본 미래입니다. 오늘 저는 그 미래에 대한 발표를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대통령 옆에 선 세계 최고의 예언가 라오친은 그저 담담한 눈으로 카메라를 주시한다. 그 잔잔한 표정에는 농담이나 거짓은 없다. 예견된 미래에 대한 체념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인지 알 수 없는 평온함만이 감돈다.

[그게 진짜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제 라오친님이 직접 제게 말씀해주신 미래이며 몇몇 단서를 통해 우리는 그게 진짜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허철영의 거침없는 대답. 그 대답에 재차 확인한 기자의 안색이 사색으로 물든다. 옆에 있던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몇몇 기자들은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한편, 누군가의 손은 멈춰버린다. 겁에 질리는 이들도 보인다.

[..이번 예언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누군가 미약하게 남은 희망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본다.

[라오친님이 말씀하시길···.]

대한민국 대통령은 여태 티비에서 보여준 적 없던 침울한 얼굴로 말한다.

[...여태 보셨던 미래 중 가장 선명하셨다고 합니다.]

[하···.]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셔터.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탄식. 공황에 빠진 거 같은 사람들의 모습.

‘그래. 여기까지라면 그냥 넘어갈 이야기였지.’

그때 허철영의 표정이 바뀐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 대통령 특유의 단호하고도 강단 있는 얼굴이 화면에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선명한 미래인 만큼 동시에 선명한 해결책을 발견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의 핵심을 찾기 위해 라오친님이 직접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대통령은 그자의 이름을 라오친이 직접 발표한다며 라오친에 자리를 양보한다. 그리고 강단에 선 라오친은 중국어로 말한다.

[김서준. 그가 이 사태를 막을 유일한 희망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헌터는 그를 중심으로 뭉쳐야 합니다.]

-삑.

“카오차오(靠草)!(젠장!)”

결국, 중국의 주석은 참지 못하고 티비를 꺼버렸다.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라오친이 한국으로 넘어간 거야!”

“죄송합니다.”

중국의 헌터관리국 국장이 벌벌 떨며 대답했다. 거대한 풍채를 자리에서 일으킨 주석은 분을 못 이기겠다는 듯 리모컨을 던져 버렸다. 부서진 리모컨이 바닥을 뒹굴자 국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세상의 중심이 어디야!”

“대 중화 인민 공화국입니다!”

“근데 저 소국 따위에서 왜 저런 발표가 나오는 거야!!!”

주석이 고성을 질렀다.

“라오친 그 빌어먹을 매국노 새끼! 중국인이 저딴 소국에서 영웅을 찾아?”

어불성설. 라오친은 언제나 세계를 위해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하는 이였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간 건 한국의 김서준이 정말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 게 맞을 터였다.

“하오위도 그렇고, 하여간 나라에 벌레 같은 새끼들이 너무너무 많아! 저 괴물 새끼들보다 더 심각한 놈들!”

지금 그 반응이 라오친이 몰래 한국으로 간 이유라는 말은 국장은 목 안으로 삼켰다.

“크.”

탁자에 놓인 고량주를 따라 벌컥 들이킨 주석은 말했다.

“게다가 영웅이 뭐? 김서준? 한국에 집결해 한국인의 명령을 따르라고? 감히 우리 대국을 놔두고? 국장! 그게 맞나?”

“아,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할 꺼야?”

국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쓸모없는 가신은 죽는다.’

주석은 그런 남자다. 지금부터 하는 말에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다른 예언 능력자들을 통해 사태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마도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몬스터가 게이트를 넘어오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검은 성배를 얻어서 중국 최강의 헌터에게 그 힘을 먹이려고 합니다.”

주석은 그제야 표정을 살짝 누그러뜨렸다.

“그렇게 중국의 용사가 영웅으로 등극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예언가들도 김서준의 역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용사를 김서준에게 보내고 일단은 사태가 벌어진 다음 모든 공을 가로채는 거로······.”

-쨍그랑!

국장의 귀를 무언가 스쳐 지나가 깨졌다. 살짝 눈을 흘겨 바닥을 바라보자 빛을 반사하는 투명한 조각이 보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김서준 그 새끼를 죽이고 우리가 영웅이 되고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할 꺼 아냐!”

“...”

김서준이 죽었다가 사태를 막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국장은 황급히 삼켰다. 지금 이 말을 했다간 지금 당장 목이 달아날 게 분명했다.

“흑의 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 자신들이 김서준을 처리할 테니 검은 성배나 잘 챙기라더니 역으로 당하질 않나. 도대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새끼들이 없어!”

주석이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렸다.

‘나라 꼴이 언제 이 모양이 된 거야?!’

헌터든 경제든 국력이든 뭐든 세상의 중심은 언제나 중국. 자신은 그 중심의 정점에 선 최고의 인간이어야 했다.

그런데 밑에 있는 어설픈 새끼들만 모여 있다 보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애국심이라곤 하나도 없는 새끼가 나라를 위한 일이라며 나라를 팔아먹질 않나. 저 소국의 문화가 좋다고 치켜 올리질 않나.’

그러더니 이제는 뭔 놈의 사건만 터지면 작디작은 소국만 바라보는 세상이 되게 생겼다. 언제나 중국에 머리를 조아리던 그 소국을 말이다.

‘한국. 그리고 김서준. 그것들 때문에 말이야!’

섬나라 원숭이 새끼들, 서방에 멋모르고 날뛰는 코쟁이 새끼들보다도 더 문제.

그리고 주석은 그 분노가 더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라는 걸 느꼈다.

“하오위는. 하오위는 어떻게 됐어?”

“잠시 이상 현상이었던 거 같습니다. 돌아와서 성배를 찾으러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됐어. 이제 못 참겠어. 그 새끼들 다 처리하고 가족들도 깡그리 다 죽여버려. 그리고 검은 성배. 내가 직접 찾으러 간다.”

“지, 직접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헌터들 잘 모아서 부대 준비해. 이번 주 내로. 알겠어?”

“넵!”

차렷 자세와 함께 대답하는 국장. 그런 국장에게 귀찮다며 주석은 손을 저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

‘착각인가.’

자신이 공포에 사로잡혔던 탓일까. 국장은 묘하게 주석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

“좋은 인재가 많군. 클클.”

강자를 알아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힌 우노가 감탄했다.

[김서준. 그가 이 사태를 막을 유일한 희망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헌터는 그를 중심으로 뭉쳐야 합니다.]

대통령과 라오친의 기자 회견. 이에 맞춰 김서준은 입장을 발표했다.

[김서준, 종말을 막을 대책은 이미 진행 중. 헌터의 성지 천산군으로 헌터들을 초청한다.]

불확실한 미래가 범람할 때, 확신을 가진 사람이 던지는 메시지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는 법.

김서준은 그 힘으로 자연스럽게 헌터들을 모을 계획이었다.

‘예상보다 일이 더 잘 풀렸어.’

인종, 국가를 넘어 수많은 인류가 천산 군으로 몰려들었다. 아니, 도리어 너무 많아서 천산군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 주변 시, 군의 숙소까지 헌터로 가득 찼다.

“만든 무기가 남아돌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우노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김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강해지기 위한 훈련에 참여하겠다고 온 헌터만 대략 천 명이 넘었으니 말이다.

‘운동장을 다 채우고도 남네.’

이제는 폐교가 된 금산초의 운동장이 아주 오랜만에 사람으로 넘쳐나는 장관.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헌터들은 군인이 아니에요. 다들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적이라 다루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하하. 뭘 걱정하나. 전사들을 다루는 방법은 간단하지 않겠는가?”

과연 천생 전사로 태어난 우노일까. 다른 일과 달리 이번 일은 김서준과 생각이 딱 일치했다.

“역시 우노네요.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좋아. 그럼 저놈이 좋겠군.”

우노는 빨갛게 머리를 염색한 남자를 바라봤다.

‘랭킹 5위 헌터. 최현석이군.’

화염계 마스터로서 에픽 길드 장과의 친분으로 바이올렛 호퍼 사태에 참전했던 남자였다. 우노의 말대로 딱 적당한 상대였다.

“바로 시작하겠네.”

우노는 씨익 웃으며 연단에 올라섰다. 그리곤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소리쳤다.

“모두 헌터의 성지를 찾아온 걸 환영한다! 너희들의 훈련 교관이 될 우노라고 한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아니, 가히 중국에 랭커가 사용한다는 사자후(獅子吼)에 버금가는 무언가가 울려 퍼졌다.

‘목청 좋네.’

물론 미리 대비하고 소음을 막는 마도구를 차고 온 김서준은 여유로웠지만,

“컥!”

“으악!”

헌터들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신음이 터지고 귀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했다. 누군가는 아예 쓰러지기도 했다.

‘쓸만한 건 저 정도인가.’

그 와중에 버틴 사람은 10명 정도. 저들이 이번 기수의 핵심이었다.

다만,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환영 인사가 좀 과한데?”

“교관이라고? 나 A급인데?”

“되지도 않는 잔재주로 기습하는 걸 힘자랑이라고 하는 건가?”

그들은 오히려 더 큰 반감을 내비쳤다.

“내가 이기면 내가 교관 해도 되나?”

역시나 으뜸은 최현석이네.

최현석은 화염계 능력자답게 불같은 성질로 유명했으니 당연한 결과랄까.

‘그래서 오히려 좋겠지.’

우노가 그런 최현석을 비웃었다. 그러자 최현석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양손에 화염을 일으켰다.

“진짜 최현석이잖아?”

“최현석도 왔네.”

“최현석이 있는 데 무슨 교관이야?”

겨우 청각을 회복한 헌터들이 딱 알맞은 반응을 보였다.

‘우노, 지금입니다.’

김서준의 생각을 듣기라도 한 듯 우노가 호탕하게 웃었다.

“한번 해보시게나!”

동시에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쾅!!!

그리고 이어지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뿌옇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아니, 먼지 폭풍.

‘역시 우노야. '적당히'가 없네.’

잠시 후, 일 합에 쓰러진 최현석의 모습과 함께 우노는 모두의 훈련 교관으로 정식 임관했다.

****

“...정말 맛있군요.”

한식대전 3등. 충남 최고의 한식 명인. 한식 최고급식당의 대부. 등등.

많은 별칭은 허명이 아니었다. 가온 뫼의 엄민호 셰프는 그 솜씨를 증명하듯 멋진 요리를 연신 내오고 있었다.

‘스승은 스승이군.’

가온 길에 김서준의 초대를 받아 갔을 때 했던 식사도 맛있었지만, 이건 그보다 조금 더 위였다.

“도지사님 덕에 정말 좋은 식사를 하는군요.”

천산군수 홍성필이 마주 앉은 남자에게 정중히 말했다. 그러자 충남의 도지사 조영승이 도리어 더 정중히 말했다.

“다행입니다. 우리 군수님 입에 맞으신다니 말입니다.”

묘하게 뒤집힌 관계. 홍성필은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김서준이랑 한 계약이 이런 효과를 가져올 줄이야.’

천산군은 전례 없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라오친과 대통령이 어쩌면 김서준과 짠 게 아닐까 싶은 ‘종말 예언’ 덕이었다.

‘헌터들은 물론, 많은 사람이 천산군으로 몰리고 있으니까 말이야.’

김서준은 금산면에서 위기를 가져올 적과 전쟁을 치른다고 했다.

‘원래라면 모두 금산면, 아니 천산군에서 도망가야겠지.’

하지만 동시에 김서준은 말했다. 금산면을 제외한 그 어떤 지역도 피해를 보지 않게 철저히 대비했다고.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전례 없는 큰 전투를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 헌터들의 팬클럽 회원들, 거기에 SNS 인플루언서나 너튜버까지 난리가 났지.’

전례 없는 관광객이 몰려든 셈.

그들은 숙박은 물론 주변 시설 모두를 호황으로 만들었다.

거기다 김서준의 금산농장도 한몫했다. 멸망의 위기를 막은 후, 금산농장이 모두 파괴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재밌는 건 이 모든 상황을 김서준이 먼저 홍성필에게 언지 했다는 점이다.

‘곧 이렇게 될 테니 대비하라고 했지.’

홍성필은 반신반의하며 도로와 시설을 점검하고 SNS와 대외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지금의 대호황을 거뒀다.

‘엄청난 수완이야. 보통이라면 말도 안 되는 적을 마주한다면 그것만도 신경 쓰기 바쁠 텐데.’

아니, 어쩌면 그만큼 이번 위기를 헤쳐나갈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겠지.

‘하여간 김서준과의 거래는 내가 평생 들어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되겠군.’

도지사가 홍성필에게 굽신거리는 이유도 이 호황 덕이었다.

“...여행 홍보 정도는 우리 연합사업으로 어떻습니까?”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는 도지사의 태도. 일전의 고압적인 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아이러니한 모습이 묘한 쾌감을 일으켰다.

“고민을 좀 해봐야겠는데요. 하하.”

웃으며 홍성필은 생각했다.

김서준을 어떻게 지원할지.

어떻게 굴러들어온 복을 잡을지.

“음? 잠시만요.”

그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휴대폰이 울린다.

‘하여간 대단하다니까.“

홍성필은 감탄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