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30화 (130/139)

130. 끈

“이건 미친 짓이야.”

검은 머리의 여인이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대장! 정말 계속 이렇게 할 꺼야? 지금이라도 철수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아니면 도망이라도 치던가!”

여자는 온몸이 크고 단단한 근육으로 가득 찬 사내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사내는 도끼의 상태만 확인할 뿐 대답이 없었다.

“타마더(씨발)!”

하오위는 신이의 거친 욕설에도 애꿎은 도끼만 바라봤다. 몇몇 동료들의 한숨이 귀로 들려왔다.

‘...미안하다.’

북한. 이 안은 생각보다 더 지옥 같은 곳이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가 끝을 모르고 달려들었고 밤낮없이 공격했다.

‘아니, 어쩌면 생각대로인가.’

그래서 중국이 토벌하지 않으려 했으니까.

한데, 갑자기 토벌 명령이 내려졌다. 대영웅들의 새로운 도전이자 국위선양을 위한 행위라고 홍보하며.

그리고 그 영웅은 하오위와 길드원들이었다.

‘중국의 명예를 실추시킨 벌이었겠지.’

하오위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 정도 의도는 단번에 알아챘다.

‘다만···.’

그들의 조국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 아니, 독재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에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 나라가 아니던가.

‘우리가 도망치려 하면 친구, 가족 관련된 모두를 죽이려 들겠지.’

부하들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김서준에게로 망명하려 했는데···.’

그때, 그런 하오위의 발목을 잡은 이가 있었다.

‘라오친.’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헌터이자 북한의 대규모 크라이시스 사태를 유일하게 예측한 예언가. 그런 라오친이 몰래 서신을 보냈다.

[북한에서 자네는 세상의 운명을 바꿀 중요한 퍼즐의 한 조각이 될 걸세. 그러니 나를 믿고 다녀오게.]

대 예언가라 불리는 라오친은 전 세계가 보호하는 존재. 그런 그가 예언을 바탕 해 자신에게 서신을 보냈다면, 충분히 믿을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다간 퍼즐의 조각이 되기 전에 몬스터들의 밥이 돼서 조각나게 생겼어.’

끝을 모르고 반복되는 전투.

기약 없는 토벌.

밤낮없이 습격하는 몬스터.

동료들은 지쳐지고 예민해지다 못해, 서서히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뿐일까. 겨우 일대를 정리하면 또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나타났다.

‘역시 이건 거짓말이었어.’

게이트 발생 방지기라며 챙겨준 마도구는 무용지물이었다. 애초부터 그들이 머뭇거리지 않고 북한이라는 지옥에 자발적으로 뛰어들도록 만들기 위한 미끼 중 하나인 게 분명했다.

‘쉼터를 만들 방법을 고안해야 해. 그러면 좀 더 버틸 수 있을 텐데.’

“한국도 여기 들어왔다며?”

“맞아. 그 한국인들한테 가서 귀화를 요청하면 어떨까?”

“그래! 헌터는 대우도 좋다는데, 가면 받아주지 않을까?”

벌써 한계에 다다랐는지 도망칠 생각을 하는 말단 길드원들의 한탄 섞인 대화가 들렸다.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니 별 얘기가 다 나오네. 그나저나 한국이라.’

중국을 도와줬던 김서준이 있는 나라. 한국. 그때의 따뜻함과 맛있는 밤, 훌륭한 대접이 떠오르자 문뜩 그때가 떠올랐다.

‘마지막에는 내 안위까지 신경 써준 참 고마운 나라였지.’

김서준의 따뜻한 마음이 다시 생각나자 조금은 스트레스 가득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기분.

‘김서준 헌터는 잘 지내려나.’

“들어오기 전에 뉴스 보니까 한국은 하나씩 거처를 만들면서 땅따먹기 식으로 전진한다더라.”

“진짜?”

“그래. 바이올렛 호퍼 막은 김서준이라는 헌터 알지?”

‘김서준!’

마침 그 이름이 나오자 하오위의 귀가 쫑끗 했다.

“그 헌터 능력 중 하나가 게이트를 막는 거라나. 농부라더니 별 능력이 다 있어.”

“!!!!”

이야기를 잠자코 들으려던 하오위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아니, 그런 능력도 있어? 완전···.”

-척.

그리곤 한참 대화를 나누는 남자들의 어깨에 손을 짚고는 말했다.

“방금 한 대화가 사실인가?”

“대화 말씀이십니까?”

“김서준 헌터의 이야기 말이야.”

“사, 사실입니다. 투입 직전에 본 뉴스에서 한국 대통령이 공표하는 중이었습니다. 김서준 헌터의 능력을 이번에 실험해 본다고 했습니다.”

하오위는 그 길로 곧장 한국 거점의 시작인 개성으로 달렸다.

하오위가 가진 특별한 능력, 초고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포션까지 털어가며 쉬지 않고 달리니 단 하루 만에 하오위는 개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오위는 다시 한번 한국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대협! 우리를 도와주시오!”

****

“물론이죠. 바로 도와드릴게요.”

김서준은 곧장 하오위를 도와주기로 했다. 아니, 사연을 들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예전에 한번 봤던 정?

하오위의 남을 위한 착한 마음에 감동해서?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바로 ‘끈.’

“대신 라오친 님과 연결하게 해주세요.”

라오친은 북한의 위기뿐 아니라, 중국, 유럽, 미국 등 많은 위기를 예언한 예언가. 별다른 능력 없이 예언 스킬 하나로 모든 나라로부터 S급으로 인정받은 헌터였다.

그만큼 라오친과 만나 대화를 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중국이 국보라며 꼭꼭 숨겨두고 있으니까.’

천금을 들여도 만나기 힘든 그런 라오친과 하오위가 서로 끈이 있다.

‘나도 저 끈을 잡을 수 있다면, 지금의 사태는 다 해결할 수 있어.’

아니, 어쩌면 라오친은 김서준과 하오위를 만나게 하려고 하오위를 북한에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라오친 님과 연결하게 해달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오친과 제가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말씀입니다.”

[그게 제힘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쪽지를 받은 게 전부입니다.]

수화기 넘어 하오위가 애석하다는 듯이 말했다. 전화라서 다행이었다.

‘거짓말을 정말 못하는구나.’

생긴 모습대로 인 걸까. 이 곰 같은 남자는 곰처럼 순진해서 전화로도 거짓말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바로 앞에 있었으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으리라.

“그럴 리가요.”

그리고 거짓말이라는 건 논리적으로도 그랬다.

“세계를 위기로부터 구할 퍼즐이 되라고 했다면서요. 그래놓고 그 조각이 될 남자와 연락처 하나 교환을 하지 않았다고요? 그랬을 리가 있나요?”

절대 없지.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위기가 다가오고 그걸 아는 게 나뿐이라고 생각해보자. 위기를 막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데 그들에게 대뜸

‘위기가 오니 이렇게 행동하세요.’

이러고 가버린다? 이건 단 한 명의 절대적 구원자가 존재하는 용사 소설 따위에서나 가능할 일.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그 모든 퍼즐을 모으고 협의하고 움직여 제대로 대응하는 게 합당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라오친은 이제껏 그래왔어. 사태를 해결할 열쇠를 쥘 사람을 가까이 뒀었지.’

김서준의 말에 수화기 너머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하오위 씨. 자신 때문에 라오친 님에게까지 폐를 끼치는 걸 걱정하시는 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라오친 님이 비밀로 하기를 부탁하셨을 수도 있죠.”

[...]

“약속하겠습니다. 절대 라오친 님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잠깐의 정적.

그 후 다시 수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겠습니다. 서준 씨를 믿겠습니다. 대신 지금 바로 저희 길드원들을 도와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즉답과 함께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김서준은 부하들에게 곧장 무언가 지시를 내렸고, 거점의 한국인들은 무어라 이야기하며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라오친은 몰랐다.

자신이 지금 세상을 구할 퍼즐에 한 조각이 되었다는 것을.

*****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금호 농장은 휴일을 가진다. 이날은 가온 뫼도 문을 닫고, 산책로도 텅텅 빈다.

그러면 그 산책로는 일호 가족의 즐거운 경주 트랙이 된다.

“컹컹!”

매번 양을 치느라 바쁜 일호 가족은 경주로 휴식을 보냈다. 그러면 반대쪽에선 반달이가 도토리를 퍼먹으며 그늘 아래 늘어져 경주를 구경했다.

“메에에에.”

양들 역시 많은 초원에 자라난 풀을 뜯으며 자유롭게 초원을 거니는 한가로운 금수산 정상.

“흡!”

“합!”

‘탁탁’ 나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기합 소리가 들렸다.

‘피해.’

바람을 가리며 움직이는 목도를 끝까지 바라보며 김서준의 몸이 움직였다. 종이 한 끗 차이로 나무 검날이 김서준의 어깨를 스쳤다.

‘지금.’

동시에 눈에 보이는 빈틈. 김서준은 자세를 고쳐 잡고 곧장 빈틈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아직 멀었어.”

-탁!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검은 궤도를 바꿔 김서준의 검날을 쳐낸 뒤 손목을 강타했다.

“윽!”

김서준은 신음과 함께 결국 검을 떨궈버렸다. 이로써 50전 0승 50패를 달성했다.

“과연 엄마는 대단하다움. 또 주인님이 졌다움”

“멍멍.”

옆에서 보던 리노와 노움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지는 게 당연하지. 인선이는 역대 최강의 신농이었으니까.”

함께 구경하던 아리아가 침울한 표정의 둘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걱정 마. 곧 서준이 인선보다 강해질 테니까.”

“물론입니다움! 믿고 있습니다움!”

“멍멍!”

저렇게 열성적인 신뢰라니. 역시 서둘러 강해져야겠네. 김서준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정인선이 뻗은 손을 잡고 일어났다.

“고생했어. 아들.”

“감사합니다. 역시나 강하시네요.”

“아직 네가 덜 연습해서 그래. 힘에 적응도 덜 됐고.”

힘의 적응.

이 검술 훈련의 진짜 목적이었다. 얼마 전, 강백호와 전투에서 김서준은 분명히 느꼈다. 몸 안에 엄청난 힘이 흘러넘치는 것을.

“그건 신농이 가진 수호자의 힘이야.”

신농이 필요할 때, 주변의 작물과 자연이 신농에게 힘을 빌려준다고 한다. 그것이 스킬로도 표현되지 않은 신농의 힘, 수호자의 힘이었다.

“다가올 위기에서 제대로 싸우려면 그 힘에 빨리 적응해야 해.”

정인선은 그렇게 말한 후, 김서준을 훈련하고 있었다. 훈련은 간단했다. 도리와 했듯 전투하면서 몸 안에 기운을 느끼는 방식.

‘근데 이건 좀 달라.’

지금에서야 사비오 덕에 기감이 열려 몸 안에 흐르는 마나가 선명하게 느껴진다만, 처음에는 마나는 아주 얇고 긴 신이 몸 안을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잘 붙잡아서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게 목표였지.’

그런데 이번에는 기운은 선명한데 말을 듣지 않았다.

‘신경 써서 잡아봐도 물처럼 흘러가 버려.’

덕분에 훈련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검술은 좀 늘었지만, 신체 강화로 몸의 맷집과 속도를 제대로 올리지 못해 결국 검을 놓치고 말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곧 익숙해질 테니까. 농사도 열심히 짓고. 말했지? 이 훈련은 조작하는 방법이라면, 농사는 힘의 크기를 키우는 훈련이라고.”

“걱정하지 마세요. 농사는 훈련이 아니더라도 지을 테니까요.”

“맞다움! 농사는 재밌는 거다움!”

“멍멍!”

“노움이랑 리노는 말도 예쁘게 한다니까.”

아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와락 리노와 노움을 껴안는다. 이제는 익숙해진 둘은 이전과 달리 저항 없이 아리아의 포옹을 즐기는 게 보였다.

훈련을 마친 후, 김서준은 챙겨온 도시락을 꺼냈다.

아리아와 정인선의 취향에 맞게 준비한 각종 나물 무침과 더덕구이. 리노와 노움에게는 특제 미트루트 참치 샐러드를 준비했다.

반응은.

“멍!”

“맛있다움!”

“서준의 요리는 진짜 맛있어.”

“누구 아들인지 손맛이 보통이 아니라니까.”

역시나 열광적이었다. 왁자지껄 행복한 식사를 마친 김서준은 나무 그늘에 기대앉았다. 밑으로 보이는 금산마을의 풍경은 여전히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네 말대로네. 진짜 여기에 계획이 다 있구나.”

정인선은 김서준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정말 대단해. 이렇게 많은 걸 준비해 뒀을 줄은 몰랐어.”

“아직 멀었죠. 파란 고추 말고도 아쥴과 사비오도 최대한 성장시켜 둬야 해요. 더 많은 포션과 헌터 육성을 위해 농사 규모도 키워야 하고요.”

“그래. 하지만 대단한 건 대단한 거야. 수고했어. 아들.”

정인선이 그렇게 말하며 김서준의 손을 잡았다.

엄마의 손.

부드러운 촉감.

기분 좋은 온기.

그리고 느껴지는 사랑.

역시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좋고 소중한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게. 아무리 세계수의 힘으로 한 일이라지만 죄송스러웠다.

“자, 아들이 이렇게 힘을 내는 데 그럼 나도 내가 할 일을 해볼까?”

“어머니가 하실 일이요?”

“그럼 나도 할 일이 있지.”

정인선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곤 익살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이렇게 좋은 판을 준비했는데, 다른 데로 가면 안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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