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28화 (128/139)

128. 내 편

-뻑! 뻑!

과연 주먹과 주먹이 부딪혔는지 의심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허공을 가르는 발차기는 일순간 거친 바람을 일으켰다.

‘진짜 대단하네.’

김서준의 놀라움과 달리 마주한 둘은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스파링을 이어갔다.

“흡!”

“여전히 강하네!”

도리와 정인선. 그러니까 김서준의 엄마는 마치 오랜만에 본 친구처럼 인사를 나누고는 저렇게 주먹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에 전주인을 만나 행복한 고블과 노움도 양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 사람의 전투를 보고 있었다.

“과연 대단하다움!”

“여전히 강한 고블! 나도 끼고 싶고블!”

“고블은 물 마법 전문이라 안 된다움. 안타깝지만 참으라움!”

“힝···.”

“멍멍!”

아, 물론 리노도 함께였다.

“리노 공은 한번 물어보자움!”

“멍!”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짓던 김서준은 하늘을 보며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6개월 정도인가.”

정인선이 예상한 포식자의 침략 시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다른 세계보다 훨씬, 지구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도록 정인선이 조작한 덕에 생각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포식자는 흑룡···.’

도리의 이야기를 들은 정인선은 확신했다.

“한 시대에 포식자들이 둘 이상 나타난 적은 없어. 그렇게 강한 존재가 둘이나 나오기도 힘들고.”

그 이야기는 모두에게 충격으로 돌아왔다. 드워프 삼 형제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리마저 벌벌 떠는 흑룡이 적이라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물론 우노는 강한 적을 만나게 됐다며 좋아했지만···. 우노는 예외지.’

그리고 또 한 사람.

김서준 역시 예외였다.

‘걱정은 되지만 차라리 잘 됐어.’

막연히 강한 포식자보다는, 마족을 군단으로 끌고 다니는 흑룡이 계획을 짜는 데 훨씬 편했다.

김서준은 도리로부터 흑룡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정인선 역시 차원을 돌며 얻은 그에 대한 단서를 김서준에게 알렸다.

‘전투 방식. 능력. 부하. 군단의 구성. 모든 걸 고려해서 최적의 대비책을 짜내는 거야.’

물론 그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게 있긴 했다.

“농사를 지어야겠지.”

김서준은 언제부터 손안에 있었는지 모를 씨앗을 바라보며 말했다.

*****

“서준, 정말 저 둘이 이 큰 땅을 다하는 거야?”

초록색 원피스가 세상에서 잘 어울리는 아리아가 물었다.

아리아는 고블을 맞이하기 전.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차원을 넘어 보낸 메시지를 통해 아리아에 포식자의 존재를 알렸고, 아리아는 조금이라도 존재를 감추고 힘도 비축하기 위해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지금 리노와 노움을 걱정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잠들어 있어서 내가 산책 때 했던 이야기를 못 들었다고 했지. 보면 깜짝 놀라겠네.’

김서준은 잠시 후 아리아의 표정을 상상하며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 둘을 보며 말했다.

“리노, 노움! 잘 할 수 있지?”

“멍!”

“움!!”

황금색 미니 트랙터부대를 이끄는 노움. 화려하게 장식된 황금 갑주에 거대한 호리를 단 리노.

이제는 익숙해진 둘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믿음직스러웠다.

“그래, 멋지게 해내서 아리아를 한번 놀라게 해 줘.”

“맡겨 주시라움!”

“멍멍!!”

김서준의 말을 들은 둘은 빠르게 감자밭으로 각자의 도구를 들고 뛰어들어갔다.

-콰과과과과과!

일반적인 농사는 느리다. 천천히 하나하나 모든 작업을 이뤄가는 건 농사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러나 둘에게는 아니었다.

‘매번 승부욕으로 불타는 둘에게는 경주나 다름없지.’

노움과 함께 달리는 트랙터부대는 거침없이 흙 위를 달렸다. 케레스의 농기구로 만들어진 트랙터의 성능, 거기에 숙달된 운전실력이 만나니 과장 살짝 보태서 밭이 아니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듯 착각할 정도였다.

“와! 엄청 빠르다! 트랙터라는 거 엄청 대단하구나!”

아리아 역시 눈을 반짝이며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엣헴!”

조종석 안에서 승리감에 도취한 노움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기분.

“멍멍!”

온 관심이 노움에게 쏠리자 질세라 리노가 소리쳤다. 노움의 트랙터부대가 적당히 빠르지만 부드럽고 정확한 작업을 추구한다면, 리노는 훨씬 빠르고 거칠었다.

‘여러 대의 트랙터를 상대하기 위해 속도를 키운 거지.’

리노가 황금빛 갑옷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땅을 박차면 바닥에 단단히 박힌 호리는 사방으로 돌과 잔해를 날리며 땅을 뒤엎어 버렸다.

‘원래 저런 건 아닌데···.’

보통의 소는 아주 천천히 호리가 땅에서 빠지지 않게 조심히 앞으로 나아가지만, 리노는 소가 아니라 늑대.

‘그냥 늑대도 아니고 늑대 부족 왕의 후예라지?’

엄마의 말에 따르면 놀랍게도, 리노는 에인션트 울프나 다름없는 아랑족을 포함한 모든 늑대 부족 왕의 후예였다.

‘엘린이 맞았던 거지. 진짜 대단해.’

물론 김서준의 눈에는 그저 귀여운 솜뭉치지만, 본성은 그 강하고 거친 늑대답게 리노는 거침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을 굴렀다.

‘호리는 땅속 깊이 고정한 채 말이지.’

이게 리노의 기술이었다. 신의 농기구다운 호리의 강도와 예기(銳氣)를 고려한 움직임과 힘 조절 덕에 호기가 절대 땅에서 뽑히지 않았다.

“리노는 보기랑 다르게 남자답네요!”

“크릉!”

리노가 아리아의 평이 맘에 들었는지 기분 좋게 그르렁거렸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절대 멈추지 않는 리노.

“막상막하네요.”

“항상 그래. 둘은.”

두 사람이 감상에 빠진 사이.

“오늘도 하는 겨?”

“아이고, 오늘은 리노 기세가 만만치 않네.”

“노움이도 장난 아녀. 트랙터들 속도가 평소보다 빠르구먼!”

마을 주민들도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좋아하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대단하다니까.’

마을이 워낙 조용해서일까. 아니면 둘이 평소에 마치 손주들처럼 어르신들에게 잘해서일까. 어르신들은 어찌 보면 철없는 아이들의 농사 대결을 자주 이렇게 와서 지켜 봐주곤 했다.

“멍멍!”

“알겠어.”

리노의 요청대로 호리를 갈퀴로 바꿔준다. 노움 역시 트랙터부대의 장비를 갈퀴로 바꾸고 있었다.

‘땅을 갈아엎었으니 이제는 감자 줄기나 잎, 돌 같은 잔해를 치울 차례지.’

이제는 너무나도 능숙해진 둘을 보며 미소를 지은 김서준은 옆을 바라봤다.

“진짜 신기해. 여태 신농들과는 완전히 달라! 서준은 이렇게 농사를 지었구나!”

아리아는 완전히 두 사람의 농사에 푹 빠져있었다. 김서준은 야구장에 데려온 조카 같은 아리아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둘 다 고생했어.”

경쟁을 위시한 작업이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수백 평의 감자밭은 이제 새로운 씨앗과 함께 새로운 밭으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

“완벽하네.”

“맞아. 정말 대단해. 수고했어.”

“감사합니다움!”

“멍!”

아리아까지 나서서 칭찬하자 둘의 얼굴의 화사함이 번졌다.

“근데 누가 이겼습니까움?”

“아···.”

참 힘든 시간이 또 돌아온다. 여기서 승리자가 선정되면 오늘 저녁 시간까지 다른 하나는 침울함에 빠진다.

‘어제는 노움이 심하게 침울해져서 움들까지 영향을 받았지.’

땅 위에서 축 늘어진 채 농사를 짓는 움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좀비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김서준이 아리아를 슬쩍 바라봤다. 초록색 레이스 드레스에 금발 머리를 휘날리는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세상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늘은 둘 다 승자야!”

그러면서 노움과 리노를 양팔로 와락 껴안았다.

“움! 숨 막힌다움!”

“낑!!”

아리아의 품에서 발버둥 치는 둘. 그러나 그 발버둥은 어딘가, 벗어나려는 속셈이 없어 보였다.

‘이거면 되겠네.’

김서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여기엔 이걸 심는 게 좋겠다.”

김서준이 가져온 건 파란 줄무늬가 노란색 씨앗.

“그게 서준이 만든 새로운 씨앗이야?”

“응. 내가 ‘신농의 씨앗’으로 만든 건 블루 페퍼야.”

신농의 씨앗.

아리아가 돌아오면서 새롭게 얻은 스킬이었다. 정확히는 김서준이 이룬 터전화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며 신농으로서 완벽한 인정을 받았기에 얻은 고유스킬.

‘말 그대로 신농만의 씨앗을 만드는 스킬이지.’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두 개의 종자를 합치면 돼.’

하지만 일반적인 종자합성과는 달랐다. 각 작물이 가진 특별한 힘만 뽑아서 종자를 합성할 수 있었다.

‘하나는 무조건 사비오로 하자.’

사비오가 지난번 바이올렛 호퍼를 막을 때 보였던 능력. 마물을 막아냈던 능력이라면 앞으로 일어날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하나는···.’

김서준은 엘린과 상의 끝에 고추를 골랐다. 청양고추 같은 평범한 고추는 아니었다. 엘린의 세계 라이너스 대륙에 난다는 레이지 페퍼(Rage Pepper)라는 품종이었다.

‘먹으면 화끈한 맛으로 각성 효과를 주는 특징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폭발한다는 특성이지.’

위기를 느꼈을 때 줄기에 달린 고추를 미사일처럼 발사하면, 고추가 공중에서 폭발해 매운 기운을 사방으로 뿌리는 특이한 식물이었다.

‘사비오의 습성과 잘만 합쳐지면 몬스터를 막는 새로운 형태의 식물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김서준과 엘린은 그런 기대로 두 종자를 합치기로 했다.

그리고 나온 게 바로 한국말로 블루 페퍼인 블루 페퍼(Blue Pepper)였다.

“사비오 같은 신비한 파란색을 가진 고추가 되는구나. 멋지다.”

아리아가 김서준이 땅에 뿌리는 씨앗을 보며 말했다.

“음?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내 눈에는 아이들이 다 컸을 때 모습이 다 보이거든. 근데 얘 완전 재밌다. 펑펑 터지네!”

아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봤구나.’

김서준은 씨앗을 양산하기 위해 급속성장을 사용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주 작은 블루 페퍼 밭.

‘거기에 마기를 입혀 마물처럼 꾸민 공을 던져봤지.’

결과는 놀라웠다. 고추가 마치 미사일처럼 날아들더니 공을 향해 날아와 펑펑 터졌다. 물론 폭발력이 엄청나진 않았다.

‘하지만 그 부근이 거의 화생방수준이었어.’

모르는 사람이 왔다면, 화학탄이라도 쓴 줄 착각했을 정도였다. 도리와 엘린이 황급히 바람을 일으켜 하늘 위로 보내지 않았다면, 그 일대는 난리가 났으리라.

‘물론 그 효과만 있었던 건 아니지.’

또 다른 효과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어차피 아리아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

‘하지만 이건 이야기해볼까. 아리아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 좋은데 주변이 전부 휘말리다 보니까.”

“응? 그런 걸 고민했어?”

“물론이지. 함께 하는 동료들까지 힘들어지면 안 되잖아.”

“그럼 그러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

그러지 말라고 하라고?

명령하라는 건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니 아리아 역시 이상하단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 아이는 서준의 스킬로 만들었지만, 사실 사비오와 레이지 페퍼의 아이 같은 거야.”

“그거 설마···.”

김서준은 바이올렛 호퍼 때를 떠올렸다. 갑자기 레드 호퍼가 나타났을 때, 사비오는 신농의 명령에 응답한다며 움직이지 않았던가.

“블루 페퍼도 내가 조종할 수 있다는 거야?”

“물론이지. 그리고 이 효과도 아직 잠재력이 덜 발현돼서 그렇지, 잘 키우면 서준의 적들에게만 영향을 줄 수 있어.”

“그런 게 가능한 거야?”

“물론이지.”

그렇게 말한 아리아가 서준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서준은 신농이잖아. 잊지 마. 작물들은 모두 서준의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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