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궤변
북한 토벌 이후 사업도 바빠진 만큼, 금천면을 방문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상한 징조가 나타난 것도 그즈음이었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졌지.’
뜬금없이 무단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 길을 잃었다며 정해진 루트를 벗어난 관광객이 많아졌다.
관광객 사이 트러블이 일거나, 한번은 금산 내에서 헌터끼리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헌터들의 방문이 많아졌기 때문인 거 같구먼. 평생 전장과 모험을 하는 이들이니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거 아니 겄어?”
임종철과 마을의 어르신들은 그렇게 말하며 껄껄 사건을 넘기곤 했다. 얼핏 맞는 말처럼 들렸다.
‘온천에도 이제는 훈련장이 된 게이트에도 헌터들의 예약이 폭주하는 중이니까.’
하지만, 김서준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하인리히의 법칙.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을 방치 할 때 생긴다는 그 법칙은 몇 번이고 김서준을 위기에서 구해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모든 사건이 점점 금수산으로 모여들고 있어.’
조사를 더 깊게 하니 보이지 않던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빈도,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의 관계. 문제 사건의 유형.
모든 걸 종합했을 때 결론은 하나.
‘금수산을 조사하고 있어.’
왜? 겉으로 보기에 이미 평범한 농장으로 위장된 금수산을 왜?
답은 간단하게 나왔다.
‘세계수를 찾는구나.’
누군지 모를 상대, 또는 조직은 세계수를 찾고 있다.
‘그렇다면···. 원하는 데로 해줘야지.’
해킹의 세계에서 해커는 언제나 화이트 해커보다 우위에 선다. 그들은 항상 발 빠르고 화이트 해커는 뒤늦게 사태를 수습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수백 가지 방어 기제를 깔고 대비해도 결국은 뚫려버린다.
이유가 무엇일까?
상대를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무기로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노리고 쳐들어올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이 딱 그랬다.
‘상대의 목표는 이제 알았지만, 누군지는 모르지.’
미지의 공포는 그 자체로 큰 무기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도 못 잡게 만드니까. 그래서 김서준은 그들이 원하는 걸 주기로 했다. 세계수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
세계수가 있는 부근에 잔뜩 감시 기구를 설치했다. 금수산 특히 세계수 부근에 출입 금지를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했다.
그리고, 얼마 후 상대가 움직였다.
상대는 역시나 김서준이 아니길 바랐던 그 남자였다.
*****
“강백호가 움직입니다움!”
김서준은 노움이 보내오는 감각에 집중했다. 땅속에서 움들이 봤던 영상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펼쳐졌다.
‘도리가 말했던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 사용했던 그 기술이군. 역시 단순한 결계 술이 아닌 이동 스킬이었나.’
북한에서 사라진 지 3일 만에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지금은 트리에서 순식간에 금수산 앞으로 이동했으니 확실했다.
‘근데, 저 스킬···? 그 스킬과 너무 비슷한데?’
아리아가 보여줬던 과거 그 날의 일. 거기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던 남자가 사용했던 그 힘과 매우 비슷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순간 울컥하는 의심과 파도치는 감정은 억지로 잠재웠다. 지금은 당장은 계획을 진행하는 데 집중해야 하니까.
“리노. 모두와 텔레파시를 열어줘.”
“멍!”
리노가 김서준의 옆으로 다가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리노의 교감이 엘린이 만들어둔 장치를 통해 모두와 연결되는 게 느껴졌다.
[우노, 도스, 트레스 준비됐죠?]
[맡겨주시게! 클클!]
세계수의 언덕 주변에서 대기 중인 삼 형제.
[도리랑 고블, 그리고 반달이들은?]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준비했고블!]
산의 중턱인 동물들의 놀이터에 대기한 조 역시 준비 완료. 마지막으로 김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연구자료와 서적 앞에 선 엘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움!”
“멍!”
리노와 노움 역시 마찬가지.
‘좋아.’
김서준은 다시 눈을 감았다. CCTV처럼 머릿속에 2개의 화면이 떠올랐다. 땅속 깊은 곳에서 강백호를 감시하는 움들의 시야였다.
‘EMP 능력으로 장치를 무력화시키고 교란작전을 펼치려는 건가.’
김서준의 생각대로였다.
강백호가 이끄는 조는 그대로 세계수가 있는 곳을 향해, 반대쪽 조는 세계수의 언덕 반대편으로 달려나갔다.
[도리, 고블은 동물들과 함께 그들을 따라가.]
[알겠고블!]
[알겠습니다.]
반대편으로 향한 조는 도착하자마자 불을 일으켰다. 화염계 능력자가 나서서 사방으로 불씨를 뿌렸다. 초록이 가득한 녹림은 그 어떤 저항도 못 한 채 화마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고블! 가자마자 불부터 꺼!]
[알겠고블!]
그렇게 맡기고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됐어. 이제 고블린 소환해.”
복면의 남자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블린?’
그 단어에 김서준의 이목이 다시 이전 화면으로 돌아갔다.
“이정도면 고블린 주술사를 꽤 많이 불러야겠는데?”
“그래. 어차피 이거 말고 능력도 없으면서 뭐 그리 아끼냐. 그냥 닥치는 대로 불러. 그때도 생각보다 불이 커져서 의심받았잖아.”
그때라고?
“설마 신농이라는 놈이 화염 능력자일 줄 누가 알았어? 알았으면 진즉 그랬지.”
신농이 화염 능력자라고?
“신농은 무슨. 그놈은 가짜였겠지. 지금 같은 힘이 없었잖아. 이번이 진짜야.”
“하긴···. 어쨌든 많이 부르면 통제 안 되니까 알아서들 잘 피해. 짜증 난다고 죽이지 말고.”
“우리 걱정을 하는 거야? 별 쓸데없는···.”
고블린. 화재. 그때. 신농. 정체불명의 힘까지.
단어들이 머리에 엉키며 피가 거꾸로 솟는다.
‘안 돼. 아직은 안돼!’
김서준은 마치 약을 먹듯 미리 준비해둔 사비오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
한숨도 크게 내쉬어 본다. 그래도 여전히 당장 저 문을 박차고 나가 강백호에게 묻고 싶은 기분이 치밀었다.
“서준 씨. 왜 그래요?”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움?”
“멍?”
“아냐. 괜찮아요.”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그제야 약효가 도는 듯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니, 가라앉았다고 김서준은 애써 최면을 걸며 눈앞에 상황에 집중했다.
‘강백호를 확실하게 잡는 게 우선이야.’
그가 도망칠 수도 발뺌할 수도 없게. 사실 확인은 그리고 그에 따른 대가는 그다음이야.
그렇게 몇 분 후.
“....15년 전 저희 마을에 몬스터의 습격으로 큰 화재가 일었습니다.”
“....”
“...그날 그 사건과 어르신은 관계가 있으신 겁니까?”
“그렇다.”
“강백호!!!”
김서준은 결국 분노를 폭발시켰다.
*****
‘설마 이정도였을 줄이야.’
함께 온 이들이 누구던가. 그 오랜 시간, 흑의(黑衣)에서 자신이 수족처럼 부리던 이들 아닌가.
‘적어도 A급 상위의 헌터들. 거기에 십여 년에 걸쳐 호흡을 맞춰온 이들이 이렇게 당하다니.’
우노, 도리 외 나머지를 전력이 아니라고 취급한 게 패착이었다.
우노의 형제라는 자들은 하나하나 S급 최상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모델인 줄 알았던 여자는 처음 보는 스킬로 무장하고 있는 데다 애완동물은 신수(神獸) 급이라니.
‘전력을 숨기고 있었군. 내가 그랬듯.’
그리고 그 전력은 가히 한 나라와 전쟁을 해도 될 법한 전력이었다. 대체 저런 이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최초의 각성자건만 전혀 알 수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마지막 부하가 사과의 말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다 끝난 거 같네요.”
“이게 끝인가! 클클.”
“오랜만에 한바탕 시원하게 했군!”
“가끔은 전투도 해줘야겠죠. 클클.”
“크르르···.”
가볍게 준비운동이라도 마친 듯 몸을 푼 그들의 눈이 강백호를 향했다. 그리고 가장 뒤 분노로 가득한 눈을 한 김서준이 보였다.
“대단하군. 우리가 아니라 자네와 친구들이 북한 토벌을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
강백호의 말에도 김서준은 대답이 없었다.
“강백호, 그대와는 꽤 정이 들었는데 아쉽게 됐군.”
대신 망치를 한 손에 쥔 우노가 말했다.
“나 역시 이렇게 된 게 아쉽네. 지금이라도 비켜주면 어떻겠는가? 내 목표는 저 나무뿐이야. 저 나무만 내어준다면 오늘 우린 평화롭게 헤어지고 다시 술잔을 나눌 수 있을걸세.”
“자네 저 나무가 무엇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물론이지.”
“그런데도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는 건가?”
우노가 망치를 쥔 손을 떨며 말했다.
“평화와 풍요를 가져올 축복의 신목을 스스로 뽑아내겠다는 건가!”
“평화와 축복?”
강백호는 뒤집어쓰고 있던 복면을 벗었다.
“평화와 풍요가 축복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뭐?”
“자네가 가진 힘. 내가 가진 힘. 평화 속에 이 힘은 어떤 의미가 있지? 어떤 가치가 있나?”
전쟁이 있는 세계에서 핵은 최고의 방어 기제자 무기다. 그러나 전쟁이 없는 세계가 도래한다면 핵은 어떻게 되는가?
‘세계에 위기를 가져올 위험물에 불가하지.’
각성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화가 없든 시기. 우리는 괴물이었다. 세상은 우리를 무서워했고 억압하고 토벌했지. 마치 괴물처럼. 그런데 지금은 어떻지? 세상의 정점에 서서 모든 걸 누릴 수 있게 되었어. 자네와 나뿐만이 아니야. 세상에 많은 헌터들이 그렇지. 그런 이들을 전부 괴물로 만들고 사회악으로 만들 셈인가?”
“과연 인간은 욕심으로 가득 찼군. 이런 궤변을 늘어놓을 정도로.”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정말 이 간단한 이상을 알지 못한다는 건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자신이 단순한 욕심이 아닌 세상의 대의를 지키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가.
“우노여. 정말 그런가? 거기 당신들을 이끄는 김서준을 봐. 그는 얼마 전까지 길드에서 쫓겨난 쓰레기였지. 그런데 지금은 어떻지? 바이올렛 호퍼를 퇴치했다고 전 국민의 영웅이 됐어. 아닌가?”
“그래서···. 그래서 죽였습니까?”
우노를 제치고 앞으로 나오며 말하는 김서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마을을 불태우고 아버지. 아버지를 죽였습니까?”
“어쩔 수 없었어. 그건 필요한 희생이었다.”
“개소리.”
김서준은 낮게 읊조렸다.
“그걸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정하지?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건데?”
“그래. 내게는 그럴 권한이 없지. 그래서 난 스스로 필요악이 되기로 했다. 나 하나가 죄인이 되어 세상을 유지하기로 했지.”
“욕심을 포장하는 사이비가 된 거겠죠.”
주먹을 부들거리는 젊은 청년.
그 역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확실했다.
‘아아. 역시 내가 다시 한번 악이 되어 손에 피를 묻혀야겠군.’
역시나 세상은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으니 말이다.
“하나만 마지막으로 부탁하죠. 아버지는 신농이 아니었습니다. 나무는 세계수가 아니었죠. 알고 계셨습니까?”
“너무 늦게 알았지. 그건 미안하게 됐네. 하지만 세상을 유지하는 일에는 시행착오가 있는 법이지. 그렇지 않나?”
그 순간이었다.
-팟!
일순간 사라진 김서준의 신형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무언가 번쩍한 순간 오른쪽 얼굴의 얼얼함과 함께 강백호의 몸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강백호가 숨겨두었던 힘이 꿈틀거렸다.
“저 정도였나?”
“최근 기량이 올랐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맞아. 저 속도면 우리랑도 비등하겠군.”
김서준은 무차별로 강백호를 두들겼다. 그 모습에 드워프 삼 형제뿐 아니라 모두가 입이 떡 벌어졌다.
“서, 서준 씨···.”
“신농님···.”
“그르르···.”
하지만 이내 놀라움은 걱정으로 바뀌었다. 분노에 가득 찬 김서준의 모습은 보고 있는 사람이 소름이 돋을 정도.
그것은 김서준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를 반증하는 동시에, 우리가 알던 김서준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에 대한 걱정을 피어오르게 했다.
‘힘에 취해 인간성을 잃어버린 인간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엘린은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지팡이를 들었다. 마력을 모아 김서준을 막으려는 찰나였다.
-쾅!
검은 기운이 폭발하듯 강백호의 몸에서 터져 나오며 김서준을 밀어냈다.
“크아아아아!!!”
강백호의 비명과 함께 기운은 끝을 모르고 터져 나왔다.
“저, 저건···.”
일전에 잠시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짙은 마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엘린은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를 꾹 쥐었다.
‘이정도면 흡사 마왕···!’
“그르르···.”
“엘린 공! 저게 뭐요!”
낮게 그르렁거리며 경계하는 리노. 그 뒤로 불안한 기운을 느낀 드워프들이 경계하며 물었다. 엘린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촤악!
하늘에서 떨어진 빛줄기가 검은 마기를 베어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