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23화 (123/139)

123. 결국

밝게 인사하는 여자. 강백호는 그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다.

‘15살에 이미 A급을 달성한 천재 소녀. 헌터관리국의 보물이자 충남지부 총괄팀장. 노을.’

황룡 길드에서도 몇 번이나 영입 추진을 했지만, 놓친 인재였다. 돈 말고도 업무 자유도, 지휘와 대우 등 워낙 조건이 까다로운 탓이었다.

‘특히 받는 대우에 비해 워낙 일을 안 하려고 했었지. 아주 기본적인 몬스터 토벌도 싫어했으니까. 어떻게 그런 여자를 영입한 거지?’

과연 수완 좋은 사업가라는 건가. 노을과 김서준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하하.”

“와 두 분도 오셨네요. 오랜만이에요. 바이올렛 호퍼 사건 이후로 처음이네요!”

“오랜만입니다.”

“노을 씨. 오랜만이에요!”

강백호는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김서준을 바라봤다. 저 젊은 청년은 역시 대단하다.

‘항상 예상을 뛰어넘어. 역시 대충은 안 되겠어.’

강백호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살폈다. 실내 운동장과 같은 장소에 막대와 방패를 든 주민들.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게 역시나 아까 본 건 무언가의 훈련이었나 싶었다.

“이사님.”

“아 보현 씨. 훈련은 잘 돼 가죠?”

주민들에게서 빠져나와 노을의 옆으로 서는 남자. 강백호는 남자를 기억했다. 식물 술사라는 그는 헌터들과 강백호가 농사를 배울 때 김서준과 함께 오던 청년이었다.

‘이름이 박보현이라고 했지.’

“물론입니다. 사실 훈련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죠. 워낙 간단해서요. 노을 씨도 잘 봐주시고.”

“잘 봐주긴. 저는 거의 노는데요. 보현 씨가 잘하는 거죠.”

김서준은 살짝 얼굴을 붉히는 박보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김서준이 강백호와 일행들을 보고 노을과 박보현을 소개했다.

강백호처럼 노을을 알고 있던 전소민과 정현민 역시 ‘믿음직한 헌터’라는 김서준의 말에 여지없이 동의했다.

“...하지만 헌터 혼자 모두를 지킬 수 없지 않을까요?”

“맞네. A급 헌터 혼자 모두를 지킬 수 있겠나? 무려 북한인데.”

강백호가 덧붙였다.

‘그래. 이 정도로는 부족해.’

더 많은 헌터가 호위를 나가는 게 강백호 자신에게도 마음이 편했다.

“맞습니다. 저도 노을 씨와 보현 씨 둘이 모든 걸 막는 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뭔가 꿍꿍이가 담긴 미소를 지은 김서준은 주민들을 바라봤다.

“보현 씨. 한번 부탁드려요.”

“네! 이사님!”

“첫 번째는 팔랑크스 형으로! 진을 펼치세요!”

박보현이 소리쳤다. 강백호는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민들이 너무나도 유기적으로 빠르게 지휘를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흡사 군대 같군. 아니 이미 민병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어.’

그들의 손에는 막대나 방패와 같은 게 들려 있었다. 무기를 든 농부니 그야말로 딱 민병대가 아니던가.

‘더군다나 군기도 엄청나.’

박보현의 지휘에 누구 하나 설렁거리는 이 없이 움직였다. 오고 가며 인사하던 주민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진지한 모습이었다.

“개진(開陣)!”

“개진(開陣)!”

구호를 외치는 주민들의 손에는 익숙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저게 자네가 말한 마공학을 담은 장치들인가?”

30여 명의 주민 중 반은 방패를 나머지 반은 막대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공격과 수비로 역할을 나눠 전투를 치르는 형태로 보였다.

“맞습니다. 일단 주민들 것 먼저 만들었습니다.”

김서준이 대답하자, 정현민과 전소민이 감탄했다.

“진짜 대단해요.”

“서준 씨는 정말 역사를 쓰고 계시는군요.”

아니, 극찬을 늘어놓는다. 강백호는 내심 혀를 찼다. 저 청년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전혀 경각심이 없어 보였다.

‘정말 일반인도 헌터처럼 싸울 수 있게 된다는 건가.’

강백호는 일말의 실패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 보았다.

그 사이 주민들은 두 번째 진으로 형태를 바꾼다.

“사격 진으로!”

막대를 든 이들이 5명씩 조를 이루고 모여 한 지점을 가리키고, 이를 방패를 든 사람들이 다시 호위한다.

“궁금하시죠? 저 무기 위력이 얼마나 될지?”

김서준이 물었다. 뭐라 하기도 전에 젊은 두 랭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서준이 손을 뻗었다. 황금빛 트랙터. 익히 보던 그것이었다.

“잘 보세요. 보현 씨 포격 한 번 해보세요! 출력은 반만!”

“네, 알겠습니다. 이사님! 출력 50%로 전방 목표물 포격 실시!”

“실시!”

주민들은 정신을 집중하듯 트랙터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다섯 개의 막대의 끝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강백호는 이내 참지 못하고 육성을 터뜨렸다.

“진짜 저게 가능한 거였군요!”

“대단해! 서준아 너 정말···.”

두 헌터 역시 감탄을 터뜨렸다. 당연했다. A급 이상의 헌터라면 막대의 끝에 맺히는 파란 빛이 무엇인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기에.

‘정말로 일반인이 스킬을 사용하다니!’

김서준은 씩 웃으며 말했다.

“놀라긴 일러.”

어느새 파란 빛은 지구본 정도 크기의 구체를 이뤘다. 3개 조의 상태를 확인한 박보현이 소리쳤다.

“발사!”

파란 빛줄기는 직선으로 뻗어 트랙터로 향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폭발과 함께 뿌연 연기가 트랙터를 가렸다.

-휘잉!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연기를 흩뿌렸다. 아마도 전소민의 능력. 덕분에 빠르게 트랙터의 상태를 볼 수 있었다.

“대단해요! 일반인이 사용한 것도 모자라 이런 위력이라니!”

“엄청나!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야?”

“흠···.”

강백호 역시 낮게 탄성을 뱉었다. 위력도 출력도 나무랄 데 없었다. 잘 쳐주면 B급도 가능할 수준.

‘이게 50%라면 풀 출력은 B급 헌터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겠어.’

이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건가. 강백호는 긴 헌터의 역사를 함께 했지만, 일반인이 이런 스킬을 사용하는 모습은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마공학을 이용해 활성화한 마정석으로 주변 대기의 마나를 끌어모은 거야. 사람들은 그 마나가 좀 더 잘 끌어올 수 있도록 매개체가 된 거고.”

“그게 가능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마공학인 거고 우노 도스 트레스의 기술이야. 참 대단한 분들이지.”

김서준의 말에 전소민과 정현민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방패끼리 겹치고 막대로 방패를 보조하면 거대한 방어막을 만들 수도 있었다.

막대와 방패를 연결해 울타리처럼 만들면 거대한 벽을 형성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조립하나에 따라 효과도 위력도 달라지는 건가.’

하나하나의 모자란 위력을 조립과 합동으로 해결한 듯 보였다.

“서준 씨 정말 다 계획을 해두셨군요. 볼수록 놀랍네요.”

“진짜 이런 게 있으면 언질이라도 해두지!”

전소민과 정현민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놀라기 바빴다. 모든 시연을 마친 후, 김서준이 말했다.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직접 마을을 방어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려고요. 제 터전화와 노을님, 거기에 이 장치들까지 사용하면 마을을 만들고 지키는 데 무리가 없을 거예요.”

김서준의 말대로였다.

이 정도라면 적어도 위험 신호를 보내고 주변 헌터들을 마을로 불러오는 시간을 벌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낮은 등급의 몬스터는 주민들끼리 해결할 수 있어 보였다.

‘역시 이건 위험하다.’

다행이었다. 이렇게 일찍 김서준을 만날 수 있어서. 아직 김서준의 능력이 덜 사용되어서. 아직 김서준의 기술이 덜 알려져서.

‘그리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게 김서준 혼자뿐이라서.’

강백호는 모두가 보지 않는 사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완벽한 게이트 청정구역? 김서준 헌터 정말로 영웅이 되는가?]

[사기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김서준의 능력 북한에서 시험한다.]

아침 뉴스를 본 김서준은 온통 같은 소리에 휴대폰을 껐다.

“정말 오늘 발표했네.”

북한 토벌 출범 당일. 허철영 대통령은 김서준이 게이트를 막는 능력이 있으며 이에 대해 북한 토벌 기간, 테스트 중이라고 공표했다.

‘능력 검증이 완료되면 전 국토 토종 종자 심기 사업을 한다고 했지.’

갑작스러운 발표.

세 길드 연합이 토벌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공표한 이유는 단순했다.

‘중국에 대한 압박용이라고 했지.’

북한 토벌은 엄연한 영토 분쟁이었다.

다만 전쟁이 아닌, 땅따먹기 형태일 뿐.

하지만 헌터라는 고급 전력을 잃을 수 있는 리스크를 지고 있기에 정부는 여전히 원치 않는 영토 분쟁이었다.

‘물밑에서는 양쪽 모두 합의하고 철수하자는 협상 중이라고 했지.’

하지만 국장의 말에 따르면 중국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협상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역시 쥐고 있던 가장 큰 카드를 보여 압박한다. 그런 전략이라고 했지.’

괜히 어설프게 손대지 마라.

그런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랄까.

사실 김서준은 이런 국제 정세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발표가 가져올 파급효과와 혜택은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였지. 대통령 이름으로 더 많은 혜택도 보장받았고. 난리가 나기도 했으니까.’

가뜩이나 잘 나가던 토종작물 사업에 토종 종자 사업까지. 이제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몸이 바빠진 것만 빼면 나쁠 게 전혀 없어.’

김서준은 어제도 늦게 자 찌뿌둥한 몸으로 기지개를 켰다. 계단을 내려가자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일어났어요?”

“좋은 아침이에요. 엘린.”

김서준은 엘린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엘린은 김서준과 가온 길에서 짬짬이 요리를 배웠다. 원래도 손재주가 좋은 엘린은 금방 실력이 늘어서 이제는 김서준 대신 아침을 차릴 정도였다.

“오늘은 삼동파 숙회 해봤어요. 서준 씨가 처음에 해준 쪽파 숙회가 갑자기 생각나서요.”

엘린이 배시시 웃으며 접시를 내밀었다. 예쁘게 매듭지어진 삼동파는 초록색에 물기로 반들반들한 게 먹음직스러웠다.

‘벌써 1년이 넘었네.’

새삼 엘린의 말에 그날이 떠올랐다. 엘프라니. 그 생소하고도 신비로운 존재를 실제로 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는데. 지금은 이렇게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김서준의 입가에 떠올랐다.

“잘 만들었네요. 진짜 맛있겠는데요?”

“서준 씨가 해준 것만 못하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세요.”

엘린이 앞치마를 벗고 맞은 편에 앉았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레깅스에 탑을 입은 엘린의 몸은 1년이 지났는데도 똑바로 보기 민망하다.

엘프의 외모는 실로 익숙해지기 어려울 만큼 대단했다.

‘후···.’

그래도 아닌 척 태연한 모습으로 김서준은 젓가락을 들었다. 잘 말아둔 숙회 하나를 집어 초고추장을 살짝 찍었다. 그리곤 입안으로.

“음···.”

절로 탄성이 튀어나왔다.

삼동파 특유의 양파 같은 진한 단맛과 파 맛이 어우러져 아주 진한 맛을 뿜어냈다. 식감도 아삭아삭한 게 적당히 잘 삶아 최고였다.

‘초고추장이랑도 엄청 잘 어울리네. 쪽파 숙회보다 훨씬 나은데?’

어지간한 오징어 숙회나 문어 숙회 같은 건 여기 대지도 못하리라. 김서준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진짜 대단한데요? 엘린 정말 요리실력이 나날이 느네요”

“정말요? 다행이다!”

칭찬을 받자 엘린이 좋아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자기가 먹어도 맛있는지 한입 먹은 엘린의 얼굴에 황홀한 표정이 떠올랐다.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대화로 활기차게 시작한 아침. 김서준은 리노와 노움을 불렀다. 가벼운 아침 산책은 바쁜 와중에도 여전히 김서준의 첫 일과였다.

“갈까?”

“멍!”

“좋습니다움!”

노움과 리노는 언제나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즐겁게 발걸음을 떼려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노을 씨..? 설마?”

진동마저 묘하게 불안하게 들리는 전화. 설마 하는 마음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서준 씨, 서준 씨 말이 맞았어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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