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22화 (122/139)

122. 믿음직한 사람

“이게 가능한 건가?”

허철영은 올라온 보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 누구도 이 보고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으리라.

“농사를 지으면 게이트를 막을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보고서를 직접 가져온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산마을과 금천면, 그리고 천산군에는 게이트가 근래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금산마을은 잦은 게이트로 고생하던 지역이었건만, 6개월 넘게 게이트 발견 사례가 없습니다.”

“허···.”

“또한, 헌터가 천산군으로 발을 들이면, 이 지역에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볼 수 있습니다.”

“시스템 창마저 인증한다는 건 확실하다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다시 한번 감탄을 터뜨렸다. 김서준의 능력이 사실이라면, 헌터 시대에 종결의 실마리를 한국이 쥐는 셈이었다.

“김서준 헌터는 이번 북한 토벌에서 자신의 능력을 더 시험해보길 원합니다. 더불어 이미 천산군을 넘어 충청남도와도 터전 화를 위한 농사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씩 검증해가면서 영역을 넓히겠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북한 토벌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그 안에 이미 너무 몬스터가 많다는 점.

사실 이게 처음에는 북한 토벌에 가장 큰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헌터들이 점점 강해지고 주변국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두 번째 문제가 발목을 다시 걸었다.

‘무한한 게이트 발발 현상이지.’

몬스터를 토벌하고 좀 정착해보려고 하면 또다시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지는 악순환이었다.

이러면 결국 토벌에 성공해도 사람이 살 수 없고, 기반 시설이 들어올 수 없으니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중국이 움직인 게 놀라웠던 거지.’

국가 정보력을 총동원해도 중국이 감춰둔 비책은 발견되지 않았다. 혹자는 중국이 인해전술로 그냥 밀어붙이려고 한다고 예상했지만, 허철영은 동의하지 않았다.

‘분명 어떤 수가 있을 거야. 우리가 모르는.’

하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북한 땅을 전부 내어줄 순 없는가? 그래서 준비한 게 청룡 길드, 에픽 길드, 황룡 길드가 함께한 토벌군이었다.

‘일단 움직이고 최소한의 땅이라도 획득하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김서준의 능력은 이 구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한국에도 무기가 생겼고 중국과 완벽한 땅따먹기를 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위험한 도박이야.’

만약 김서준의 능력이 일시적이라면?

혹은 다른 문제가 있다면?

무방비로 있던 정착민이나 헌터 등에 대규모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지. 만약 김서준 헌터의 능력이 단순한 현상이 아닌 조종이 가능한 결계에 가깝다면···?’

그럼 어렵사리 얻은 땅에 대한 주도권이 김서준에게 넘어갈 터였다.

‘물론 지금까지 보여준 심성으로 보아 마구잡이로 협박을 하진 않겠지만, 김서준 역시 사업가지. 마냥 믿을 수는 없어.’

허철영은 고민했다. 그러나, 머릿속 저울은 여지없이 한쪽의 편을 들었다. 그가 보여준 행적과 믿음, 그리고 희망이 가리키는 지표는 확실했다.

“국장.”

그리고 허철영은 단호하게 내린 결단을 국장에게 통보했다.

****

“농사를 지어서 몬스터의 추가 범람을 막는 다라. 좋은 생각인데요?”

“이렇게 하면 훨씬 여유롭게 토벌할 수 있겠어요.”

기존에 세운 토벌 전략은 속전속결이었다. 빠르게 몰아치고 빠진 후, 토벌한 당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전략이었다.

‘토벌 중 후방이 차단되거나, 애써 토벌한 땅이 다시 몬스터로 가득 차는 걸 막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김서준의 능력을 사용한다면?

정말로 전쟁을 하듯 차근차근 거점과 보급로를 만들며 밀고 들어갈 수 있었다. 농사로 안전지대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기존의 지배종도 없으니 터전화도 빨리 이뤄지겠지.’

단순히 헌터들의 토벌이 편해지기만 하는 일도 아니었다.

언론에 주목을 받아 김서준의 능력을 자연스레 홍보하는 효과가 있을 건 당연했다.

‘자연스레 홍보는 토종작물, 종자 사업의 이득으로 이어지겠지.’

게다가 농사를 지은 토지에 대해서도 금호 영농조합의 이름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터.

‘값싸게 좋은 땅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여기에 개인적으로 터전화를 통해 강해지는 건 물론, 김서준 자신의 이상인 터전화를 통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터.

‘정부, 단체, 사업, 그리고 나까지 모두가 이득을 볼 최적의 형태가 되겠지.’

더불어 돈, 이상, 신념 모든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사업이기도 했다.

“나라에 허가는 받은 건가?”

묵묵히 듣고 있던 강백호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낮고 중후한 목소리는 무언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기분 탓인가?’

김서준은 애써 그 찝찝한 기분을 무시하며 대답했다.

“네. 미리 헌터관리국에 제 능력에 대해 고지하고 계획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어제부로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승인이 떨어졌다라. 그건 대통령도 동의했다는 거로군.”

“네. 무리하지 않고, 토벌에 방해되지 않을 선으로 헌터들과 조정 후 진행하기로 허가받았습니다.”

강백호는 ‘그런가···.’ 하며 숨을 내쉬더니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곤 나지막이 김서준에게 물었다.

“정부 역시 자네 능력이 진짜라고 판단했다는 말이 되겠군.”

“정부는 이번 토벌을 기회 삼아 제 능력의 최종 검증을 해보려는 거 같습니다.”

강백호는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이내 김서준을 바라봤다.

“좋아. 그럼 협력도 해야 하니, 몇 가지 물어보지. 터전화라고 했나. 그 능력은 식물을 심는 순간 발현되는 건가?”

“어느 정도는 농사가 진행되어야 발현됩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그런가. 혹시 통제할 수 있는가?”

“통제라 하면···.”

“껐다 켰다 할 수 있냐는 걸세.”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게이트를 차단하는 기능을 꺼야 한다니.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시도해보면···. 역시 안되나.’

머릿속으로 몇 가지 명령을 던져 본 김서준이 대답했다.

“그건 안되는 거 같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능력이 강해지면 통제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만, 제 생각입니다.”

대답을 마치며 강백호를 바라봤다.

사실, 강백호에 대한 의심은 많이 풀려있었다. 그는 정말로 힘을 추구하는 무인의 자세로 훈련에 임했다. 길드장으로서 노장으로 솔선수범했다. 위엄있고 과묵한 성격일 뿐, 도리의 의심처럼 몬스터와 어떤 관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런 의심스러운 모습이라고?’

아니, 정말로 능력의 한계와 정도를 알기 위한 질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김서준은 이 질문이 그렇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심문을 받는 느낌이랄까.

“마지막으로 묻네. 자네가 죽으면 그 능력은 사라지나?”

“어르신.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질문은···.”

죽는다는 이야기에 전소민이 끼어들었다.

“아니, 이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일세. 만약 그렇다면 이번 토벌에 자네는 데려갈 수 없을 테니까.”

강백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네가 죽으면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될 테니 말일세.”

소민이의 마음을 알지만, 과한 반응이었다. 어르신의 말대로 김서준의 죽음과 능력의 연동 역시 확실히 해야 하는 사실 중 하나였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애초에 갈 생각이 없으니까요.”

정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농작물을 키우기만 하면 되지. 직접 갈 필요는 없겠네요. 그럼 농사는 저희 헌터들이 지을까요?”

정현민이 던진 의외의 의견에 놀랐다.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당연히 농부들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강해지기 위해 한참 미트루트 농사를 지었던 헌터들이지 않던가. 게다가 위치는 몬스터로 지옥이 되었다는 북한. 당연히 자신들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니요. 미트루트 농사를 짓기만 해도 강해질 작물이 더 있다면 몰라도 바쁜 헌터들이 농사까지 지을 수는 없으니까요.”

“아쉽네요. 비슷한 효과를 준다면 모두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농사를 지었을 텐데요.”

“근데 그러면 누가 농사를 짓게? 아무리 그래도 북한인데. 직접 갈 거야?”

마음 같아선 그랬지만 그럴 수 없었다.

IW 그룹과의 종자 사업, 토종작물 사업, 관광단지 조성, 금산농장 관리, 주류사업까지.

‘고블이 몸을 10개로 늘렸어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지.’

온천으로 겨우겨우 체력 회복해가며 밤낮없이 일해도 몸이 모자랄 판이었다. 이 상황에서 직접 북한을 가는 건 안전은 둘째치고 사업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나 대신 믿을만한 사람을 보낼 거야. 이래 봬도 그 사람 역시 헌터거든.”

“헌터? 그럼 우노나 도리를 보내는 건가? 하긴 그들이라면 농부들을 지킬 수 있겠지. 필요하면 토벌팀에 합류해도 좋고.”

강백호가 둘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답이었다.

“우노 님은 안 됩니다. 술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도리도 그렇고요. 그래 보여도 정령이라 저랑 그렇게 멀리 떨어지긴 힘들거든요.”

“아쉽군.”

“그럼 누구를 보내게? 금산마을에 그분들 말고 헌터가 있나?”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는 이들에게 김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있어요. 정말 믿음직한 사람이. 아마 보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그리고···.”

김서준은 옆에 세워두었던 막대를 집어 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들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게 아니라 직접 자기 몸을 지키실 거거든요.”

세 사람은 단번에 그 막대를 알아봤다.

은색의 진압봉을 연상시키는 얇은 막대. 얼마 전 뉴스에 실린 박람회에서 세상을 뒤집을 발명을 했다며 조명을 받았던 그 막대였다.

****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다.’

언제나 그 일념 하나로 공무원직을 버텼다. 그런데 서서히 한계가 찾아왔다.

직급은 오르지,

부하는 많아지지.

충청남도답지 않게 사건도 많아지고.

‘이럴 거면 공무원 안 했지. 충청남도도 안 오고!’

슬슬 이직 준비를 해야 할까. 사설 길드 중에 얼굴마담이 필요한 곳 없나. 이 정도 외모면 얼굴마담도 괜찮은데.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더미를 제쳐두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런 쓰잘머리 없는 망상으로 시간을 축내던 어느 날이었다.

‘아주 쉬운 경호 업무 수행하시면 지금 연봉 2배 드릴게요. 출장 업무까지 맡아주시면 지금 연봉 20배 받고 은퇴해서 평생 놀고먹고 살 수 있게 해드릴게요!’

갑자기 날아든 연락에 눈이 번쩍했다.

물론 모르는 번호나 070으로 이런 연락이 왔다면 가볍게 무시했을 것이다. 헤드헌팅 회사나 길드였다면 더더욱 무시했을 것이다.

‘돈 버는 방법 대공개!’

‘누구보다 쉽게 돈 버는 법!’

‘아무것도 안 해도 월 500은 기본!’

이런 건 전부 다단계나 사기꾼들의 낚시질일 테니까. 아니면 불법적인 일이던가.

하지만, 발신자를 본 순간 모든 의심은 싹 날아갔다. 아니, 곧장 사표를 준비했다.

‘서준 씨라면 신뢰도 100%지. 거기다 서준 씨랑 옆에 붙어 있으면 좋잖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면···.’

머릿속 희망 회로를 돌리며 그렇게 퇴사 한 길. 그리고 역시 김서준은 사기꾼이 아니었다.

“일이 참 쉽긴 해. 보면서 간간이 조언만 하면 되니까.”

막대를 들고 훈련하는 사람들의 대열이나 박자, 타이밍 등에 대한 조언이었다. 이마저도 하루에 길어야 3시간 정도니 힘들 게 없었다.

‘경호도 마찬가지야.’

아니 애초에 이걸 경호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경호하는 대상이 자신을 위해 커피부터 담요까지 모든 걸 준비하고 극진히 모시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틈만 나면 쉬라고 하니 그야말로 꿀이지.’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 아니 아주 큰 단점이 있었다.

“서준 씨는 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처음 계약 이후로 김서준과는 단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정말 금산마을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김서준의 정체는 유니콘이었나.

별별 생각을 다 하던 그때였다.

“어? 환각인가?”

누군가 저 멀리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모습이 마치 꼭 김서준 같은 느낌?

“노을 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노을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서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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