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굴복
[농작물이 포션이 된다? 미트루트 포션 대박!]
[헌터 계 혁명의 바람이 분다! 김서준 헌터 또다시 획기적인 기술 선보여!]
[이게 농부야? 과학자야? 작물로 만든 포션을 만든 김서준 헌터!]
새벽부터 세상이 술렁거리는 기사에 MP사 임원이 모두 모였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이게 가능한 겁니까?”
서 이사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젊은 이사의 말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임원은 없었다. 당연했다.
‘모두 처음 봤겠지.’
미르투트라는 작물 자체가 세상에 나타난 게 처음이 아니던가. 아마도 농부라는 직업의 스킬로 만든 특수한 작물이라고 예상할 뿐이었다.
“기존 포션과 차이가 얼마나 나는 겁니까?”
그러자 포션 및 연금술을 담당하는 임원이 차트를 보며 말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트롤의 포션이 가진 외상치료 효과에 몸의 컨디션을 정상화하는 체력 회복 효과까지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마셨을 때 단시간이지만, 가진 능력의 50% 이상 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작물로 생산하다 보니 생산비도 훨씬 적고 생산도 수비다고 합니다.”
“대단하네. 어떻게 저런 작물을 얻은 거지?”
“기존 포션은 상대도 안 되겠군.”
“저러면 가격 경쟁력까지···.”
임원진들이 술렁였다. 포션 하나가 3개 포션의 효과를 가졌다. 거기다 비용까지 절감하니 그야말로 이상적인 모습. 임원들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그만!”
하나 서 이사는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누가 그놈 찬양하래요? 그래서 얼마나 사업적 가치가 있냐고요. 핵심을 말해봐요. 핵심.”
“그 결론을 말해보면···.”
임원이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뗐다.
“지금 저희뿐 아니라 모든 회사의 회복 포션 사업체가 경쟁력을 잃었다고 봅니다. 서둘러 그 쪽에 협력이나 기술이전을 요청하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허···.”
서 이사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를 물려받고 그는 전투적으로 회사를 불려 갔다. 갑의 위치와 내란을 이용한 전투적인 인수합병은 물론, 벤처고 경쟁사고 가리지 않고 기술을 빼 오기도 했다.
‘윤리보단 이득이었지.’
그 결과 회사는 가파르게 성장세를 탔다. 서 이사가 인간적인 면은 최악이지만, 사내 임원들만은 좋게 평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평가가 모두 뒤집힐 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헌터계는 일종의 블루오션. 앞으로도 먹거리가 가득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헌터 길드 인수뿐 아니라, 헌터 장비와 포션 제조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다.
“...그 모든 게 다 망하기 직전이라는 거지···?”
서 이사가 망연자실한 듯 중얼거렸다. 서 이사는 임원들을 바라봤다. 지금은 머리를 조아리는 척하는 임원들의 눈이 싸늘해졌다. 이제 회의장을 나가는 순간, 이 일을 핑계로 그들은 자신을 내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러겠지. 호시탐탐 위를 노리는 새끼들이니까.’
그뿐일까.
자신이 저질러온 길을 생각하면, 퇴직 후 삶도 안심할 수 없었다. 갈 때는 리더로 치켜 받들던 숭배자들이 너무나 쉽게 배신자로 변하는 게 이 바닥이었으니까.
[MP사 체질 개선? 이사 교체와 함께 다시 시작한다.]
이런 헤드라인을 달고 나올 기사들이 벌써 머리를 스쳤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금호, 아니 김서준 헌터와 접선해서 어떤 수단을 취해야 합니다. 계약이든 투자든.”
차트를 보던 임원이 말했다. 다른 임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장인들을 다 내주는 건데!’
단순한 감정만은 아니었다. 이미 기술격차가 있는 상황에 인력까지 내주면 사태는 겉잡을 순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협력을 하는 건 더 불가능했지.’
여태 해온 게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김서준이 맘에 안 들었다. 아등바등 발악하는 벌레는 서 이사가 딱 싫어하는 타입이었으니까. 길드에서 내쫓은 이유도 청룡 길드를 휘두르기 위함도 있었지만, 꼴 보기 싫기도 했다.
그렇게 처절하게 무시하고 밟았던 벌레와 이제 와 손을 잡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하찮은 녀석과 동등한 위치에 서는 짜증 나는 일은 백번 양보하더라도 말이다.
‘뒤에서 칼이라도 안 맞으면 다행이지.’
물론 그 칼을 피하려다 이렇게 궁지에 몰릴지 알았다면 감수했겠지만···.
이제와서 후회해봐야 다 늦은 이야기였다.
“후······.”
낮게 신음하는 서 이사에게로 이목이 몰렸다. 저 눈빛이 자신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보였다.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방법 말고는.
“알겠습니다. 다들 좋은 방법 있으면 말해주세요. 일단 저도 대책을 세워 움직여 볼 테니까요. 회의는 이만하죠.”
임원들은 승냥이 떼처럼 엄습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회의실을 나갔다. 비서와 단둘이 남은 서 이사는 참고 참았던 한 단어를 토해냈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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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농사의 핵심은 소였다. 소가 끄는 각종 농기구로 땅을 개간하고 수확하고 정비했으니까. 그런 기능은 고스란히 트랙터에 이전되었다.
하지만 트랙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리노공은 손이 없어서 운전할 수가 없다움···.”
동물은 운전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포기를 모르는 리노는 오늘도 운전하고 싶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리노. 노움 말이 맞아. 아무리 특별한 트랙터를 만들 수 있다지만 네가 운전하는 건 좀···.”
“멍···.”
리노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떨군다.
‘큰일이네.’
김서준은 그런 리노가 안쓰러웠다. 리노는 일반적인 애완견과는 달랐다. 아주 귀여운 외모와 달리 늑대라는 반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리노는 애정보다 충성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
자신이 얼마나 충성하고 있으며, 그걸 어떻게든 김서준에게 표현하는 걸 꽤 중요하게 여겼다.
‘예전부터 그랬지.’
두더지를 잡고, 동물들을 지휘하고, 농사 쇼를 훈련시키고 각종 전투에 참여하는 등등. 리노는 언제나 하나씩 역할을 도맡아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지금 리노는 조바심이 난 게 분명했다.
‘최근에는 리노가 할 일이 없었으니까.’
장비 공방을 만들 부지를 다듬고 시공하고.
미트루트를 개간하기 위한 땅을 넓히고.
소소하게는 잡초를 제거하거나 열매를 수확하는 등.
대부분이 농기구로 작업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랙터를 몰고 싶은 건 핑계고 사실은 안달이 난 거겠지. 뭐라도 하고 싶어서.’
그 마음이 안쓰럽고 또 귀여웠다. 하지만 제아무리 김서준이 그렇게 생각하고, 또 말해줘도 리노의 마음이 채워질 리 만무했다.
“흠···. 어쩔 수 없지. 그럼 이렇게 해보자.”
김서준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이야기하자 리노가 눈을 반짝였다.
홍성필은 주변에 나라가 소유했던 땅을 김서준에게 양도했다. 개발 금지가 되어 있던 땅도 농사 한정 가능으로 제도를 바꿔가며 김서준을 지원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줄은 몰랐네.’
공방에 대한 오해는 미트루트 기사를 홍성필의 마음에 불을 지른 듯했다.
‘뭐 미트루트에 대해서는 오해가 아니긴 하지.’
미트루트는 그 등급이나 상태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잘 키워 작물을 맺기만 하면 포션을 만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른 상품형 작물과는 완전히 다르지.’
덕분에 방법만 안다면 일반인이든 헌터들이든, 누구든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김서준은 일부는 헌터들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밭으로, 나머지는 속속들이 귀농하는 초보 농부들에게 맡길 계획이었다.
‘이렇게 기존에 있던 농부들과 갈라놓으면 텃세 때문에 고생할 일도 없을 거고.’
물론 이런 귀농의 관리는 박보현이 주로 할 계획이었다. 박보현은 최근 들어 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매일 농사부터 사업까지 바쁜 하루를 보내는 김서준만큼이나.
장인섭 때문이었다.
“치매를 치료했다면 저희 부모님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기대 덕이었다. 사실 마나 부적응증과 치매는 완전히 다른 병이니 맞지 않는 말이지만, 둘 다 불치병이라는 점에서 일말의 기대를 품은 듯했다.
‘그리고 아예 타당하지 않은 이야기도 아니야.’
사비오 열매는 마나를 느끼는 감을 키워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게 일반인에게는 마나에 대한 적응도를 키워주지 않을까 하는 게 김서준의 생각이었다.
‘엘린과 도스가 연구에 들어갔으니까 곧 결과가 나오겠지.’
김서준의 계획을 들은 박보현은 그 날부터 정말 몸이 부서지라 일하고 있었다.
“탈 나기 전에 송이버섯이라도 좀 챙겨줘야지.”
“송이버섯? 저희 또 먹는 겁니까움?”
“멍?”
김서준의 혼잣말에 군침을 흘리는 녀석들. 김서준은 그 귀여운 얼굴을 토닥였다.
“하하. 또 먹고 싶어? 얼마 전에 먹었잖아.”
“먹어도 먹어도 맛 있습니다움!”
“멍!!”
“알겠어. 일 열심히 하면 맛있는 거로 또 준비할게.”
두 녀석의 얼굴이 환해진다. 너무 환해서 빛날 정도. 역시나 이 천진난만한 게 노움과 리노의 매력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김서준은 트랙터를 소환했다. 노움과 움들 전용 트랙터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쾅. 쾅. 쾅. 쾅.
공터에 울려 퍼지는 굉음. 그러나 익숙해진 둘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김서준은 한 줄로 늘어선 트랙터 5대를 바라봤다.
‘진짜 이렇게 보면 좀 큰 장난감 같네.’
황금색 트랙터인 건 여전하지만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모자도 있고 눈도 달려 있었다. 귀여운 미소가 지어진 스티커 장식이 붙은 트랙터도 보였다.
‘헬로 카 로봇에서 바로 튀어나온 거 같은 비주얼이네.’
아침에 채널 돌리다 티비에 이 녀석들이 나와도 전혀 위화감이 없으리라.
“멍!”
리노가 김서준을 보챘다. 김서준은 그런 리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케레스의 농기구를 사용했다.
-지잉.
황금빛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빛은 서서히 형태를 갖춰갔지만, 리노는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
그때 노움이 소리쳤다.
“저건? 쟁기 아닙니까움?”
“노움은 알아보는구나. 정확히는 호리라고 부르지.”
소 한 마리가 끄는 쟁기를 호리라고 부른다. 동물이 끄는 트랙터는 없다. 그래서 김서준은 리노를 위해 다시 구시대의 유물을 불러왔다.
“그건 소가 끄는 쟁기 아닙니까움?”
“맞아.”
“꿍···.”
노움과의 대화를 들은 리노가 꼬리를 축 내렸다. 아무래도 리노는 구시대의 유물이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
이 정도는 예상했다.
“걱정하지 마. 맘에 들 거야.”
리노의 취향은 익히 알던 바니까.
김서준의 말과 동시에 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 대박이다움!”
호리를 구성한 부품부터 아래 달린 쟁기까지 전부 황금인 호리는 휘황찬란했다. 하지만 진짜는 리노의 몸에 연결될 부분. 그 부분이 흡사 왕의 갑옷과도 같았다.
“멍···!”
리노의 꼬리가 다시 격렬하게 진자운동을 시작했다.
‘우리 리노는 이런 거 좋아하지.’
왕, 황금, 기사.
리노가 트랙터보다 더 좋아하는 카테고리였다. 오죽하면 엘린이 보는 왕좌의 전쟁도 옆에 앉아 다 봤던 리노였다.
아니, 애초에 이름부터 왕의 느낌이 줄줄 흐르는 리노 쥴리어스 3세로 정하지 않았는가.
김서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노, 원래 모습으로 변해봐.”
리노가 온몸에 빛을 발하며 몸을 키웠다. 김서준이 손을 흔들자 황금색 호리가 공중을 날아 리노의 몸에 알맞은 자리에 달라붙었다.
“컹!”
리노가 하울링 했다. 어깨와 다리에 붙은 황금빛 갑주. 뒤로 이어진 호리까지 멋들어진 자태를 뽐냈다.
‘호리가 농기구 아니라 무슨 무기 같네.’
김서준이 오랜만에 리노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으로 자신의 모습을 본 리노는 더욱 흡족해하며 김서준의 얼굴을 핥았다.
“맘에 들어서 다행이다.”
“컹! 컹!”
“리노공, 너무 멋지다움! 부럽다움!”
“컹!”
“맞다움! 트랙터도 멋지긴 하다움!”
노움 역시 정말로 부러운지 리노의 장비를 면밀하게 살피고 만졌다. 한참을 그렇게 논 후 김서준이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할까?”
5대의 트랙터의 가운데. 호리를 단 리노가 움직였다. 굳은 땅이 갈아엎어지고 깊숙이 잠자고 있던 진한 갈색 흙이 표면으로 올라왔다.
“그래. 리노 너무 빨리하면 쟁기가 튕겨 나가니까 천천히 해.”
“컹!”
김서준은 트랙터 대신 리노의 등에 탔다. 황금으로 만든 등받이의 승차감은 훌륭했다.
“컹!”
김서준의 감독하에 리노는 훌륭하게 땅을 개간해나갔다. 한참 작업을 이어가던 그때.
[주인님! 청룡 길드의 이사가 또 연락이 왔고-블!]
[아직도 바쁘다고 해.]
김서준은 리노의 등에 탄 채 일말의 고민 없이 대답했다.
[중요한 이야기라고 하는 고-블. 직접 만나면 좋고 정 안되면 화상통화든 그냥 통화든 부탁한다고 사정하는 고-블.]
‘사정이라. 이제 조금 이야기를 나눠볼 상태가 된 건가.’
김서준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시간 후에 통화하자고 해.”
그리고 이틀 후.
[MP사의 마이다스의 손에서 마이너스의 손으로. 서재명 이사 전격 퇴사.]
서 이사는 약속을 빠르게 이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