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15화 (115/139)

115. 스승과 제자

햇살이 드는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햇빛이 너무 강하군. 쯧.”

남자는 혀를 끌끌 차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 제가 할게요.”

옆에 있던 소파에 앉아 사과를 깎던 전소민이 놀라 말했다.

“됐어. 팔다리 멀쩡한데 왜 네가 해? 이 침대도 사치야. 이거.”

장인섭은 그렇게 말하며 창가로 가서 커튼을 확 쳐버렸다. 창가에 마련해둔 흔들의자도 한쪽으로 밀어두곤 소파로 돌아와 전소민 옆에 앉았다.

그리곤 전소민이 깎아둔 사과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이게 녀석이 키운 사과라고?”

“네. 드셔보세요. 엄청 맛있어요.”

장인섭은 일반 사과보다 더 큼직한 사과 한 쪽을 입안에 넣었다. 과즙이 팍 터지면서 새콤하기보단 달콤한 사과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허. 대단하네. 이렇게 맛있는 사과는 처음이군.”

“그렇죠? 저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사과를 다 깎은 전소민은 과도를 내려놓고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사과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전소민의 입에도 미소가 번졌다.

“김서준 녀석. 사과 하나를 키워도 제대로 키운다니까. 하여간 녀석도 참, 뭐하나 대충하는 법이 없군.”

“그러니까요. 근데 어르신 그거 아세요?”

전소민이 휴대폰을 들며 말했다.

“지금 서준이가 그냥 농부가 아니거든요. 이거···.”

“됐다. 나도 다 봤다.”

장인섭은 병실에서 읽었던 기사를 떠올리며 말했다.

각종 계약 성사뉴스와 농사 신문에 실린 건 물론, 바이올렛 호퍼 사건이나 토종 작물 캠페인 등등.

‘처음에는 동명이인인 줄 알았지.’

그 잘생긴 얼굴이 뉴스에 떡하니 박혀있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것이다.

“녀석 아주 살판났더라. 길드 있을 때보다 더 잘사는 거 같아.”

“그러니까요. 그래서 다행이죠.”

전소민이 못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과욕을 부린 전소민과 MP사의 청룡 길드 잠식. 장인섭이 은퇴하기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을 알고 있었기에 정인섭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면 됐다. 앞으로 잘 해.”

“네, 어르신.”

전소민이 표정을 휙 바꾸며 대답했다.

“뭐 나도 잘 해야겠지. 녀석 덕분에 이렇게 멀쩡해졌으니 말이다.”

장인섭은 멀쩡하게 움직이는 손발을 보며 말했다.

치매.

정신적인 증상이지만 장인섭의 기억에 그 시간은 사지가 마비된 것과 다른 바가 없었다.

‘망치를 잡을 수 없었으니까.’

기억이 자꾸만 사라지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거기에 때론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주변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모든 게 내가 아닌 모습이었지만, 그런 건 병마와 싸운 흔적쯤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망치질을 못 한 건 다르지.’

이 병으로 살아남은 시간 동안 더는 망치를 쥐지 못 할 뻔했다. 그건 장인섭에게 죽어있었던 시간이나 다른 것이 없었다.

김서준은 그런 자신을 다시 살려낸 셈. 전소민 이상으로 김서준에게 빚을 졌다.

‘그 얼간이가 커서 이렇게 될 줄이야. 그녀가 보면 좋아하겠군.’

장인섭은 김서준과 전소민에게 무기를 만들어주라고 말했던 그녀를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근데 녀석은 대체 그런 신기한 약초를 어디서 구한 거냐?”

“그거 구한 게 아니고 서준이가 키운 거예요.”

“키웠다고?”

“네. 서준이의 능력 중에는 다른 세계의 작물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데요. 얼마 전에는 그걸로 포션을 만들었는데 대박이에요.”

전소민은 한껏 신나서 미트루트 포션에 관해 설명했다. 체력과 상처가 모두 치료되는 걸 넘어,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강하게 만든다나.

더군다나 김서준이 준 차에는 기억력과 집중력이 대폭 상승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러다 녀석이 키운 작물로 탈모도 치료한다고 하겠군.”

“그러니까요. 하하···.”

“웃는 게 수상한데. 소민아 너 혹시 탈모 있니?”

“아, 아니에요!”

“스트레스성 탈모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니까 조심해야 한다. 서준이도 대머리인 여자는 감당하기 힘들 걸?”

“아니, 정말 아니에요!”

전소민은 머리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말했다. 장인섭은 농담에 격하게 반응하는 전소민을 보며 박장대소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장인섭이 말했다.

“그나저나 서준이 녀석은 뭘 가지고 오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글쎄요.”

-드륵.

장인섭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병실 문이 옆으로 열렸다.

“양반은 못 되는군.”

“네?”

“아니다. 들어와라.”

김서준이 얼떨결 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전소민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뭘 보여줘야 한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떤 게냐? 어디 좀 보자.”

장인섭의 상태를 확인한 김서준은 곧장 선물을 가져오겠다며 뛰쳐나갔다. 전소민 역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무슨 선물인지 궁금해했다.

“사람들이 보면 오해할까 봐 아공간에 가져왔어요. 잠시···.”

김서준은 두 사람에게서 살짝 떨어져 옆으로 손을 뻗었다. 잠시 후, 공간이 일그러지며 가느다란 손잡이가 나타났다. 김서준은 그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건···?”

“오호···.”

아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트레스가 쓰는 것과 비슷한 한 손 망치였다. 김서준은 그걸 장인섭에게 들이밀었다.

“선물입니다. 어르신. 건강해지신 거 축하드립니다.”

“이건···.”

장인섭은 눈앞의 망치를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그 얼마나 쥐고 싶었던 망치였던가. 순간 김서준에게 고마움의 인사도 잊고 장인섭은 망치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고, 고맙구나.”

“하하. 좋아하셔서 다행이네요.”

김서준의 인사를 한 귀로 흘리며 장인섭은 망치를 살폈다.

‘대단해. 누가 만든 거지?’

막대에 새겨진 장식은 기계로 새긴 것처럼 정교했다. 어디 하나 작은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지만, 화려했다.

반면 머리는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이었다. 면마다 평평하게 잘 세공되어 있었다.

‘사용된 금속은 뭐지?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단순한 쇠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웠다. 이 정도 크기라면 좀 더 묵직해야 했다.

‘동시에 단단해 보이는군. 밀도도 높아 보이고. 뭐지?’

장인섭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김서준이 말했다.

“감정해보세요. 어르신. 놀라실 겁니다.”

“알겠네.”

장인섭의 눈이 푸르게 물들었다. 그러자 망치의 정보가 장인섭의 눈에 하나씩 나타났다.

“허. 이게 쇠로 만든 망치라고?”

예상이 빗나갔다. 쇠로 만든 도구에 마법이 걸린 형태였다. 감정 스킬에 따르면 막대 끝에 새겨진 문양은 장식이 아닌 마법진이었다.

‘경량화를 이렇게 걸었다는 건가. 이게 가능한 건가?’

일반적으로 경량화는 경량화가 걸린 보석, 금속 등을 활용한다. 아니면 경량화 스킬을 가진 헌터가 반복적으로 경량화를 걸던가.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건 놀랍군.’

그뿐만이 아니었다.

“특수 기능이 있다고···?”

무기의 경우 스킬이 걸려 있는 경우가 있었다. 번개가 일어난다 던 지, 사용자의 스킬이 강해지는 식으로 말이다.

‘장인이 만드는 방식이나 일정 확률의 운으로 그런 효과가 붙지.’

하지만 이런 능력은 ‘효과’라는 이름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은 효과가 아닌, 특수 기능이라고 적혀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뭔가?”

장인섭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김서준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어르신, 망치가 원하는 크기로 변하길 생각하면서 손잡이를 돌려보실래요?”

장인섭은 김서준의 말을 따라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동시의 막대가 좀 더 길어졌다.

“이, 이럴 수가!”

“망치 머리도 조종할 수 있으세요. 한번 해보실래요?”

장인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이렇게 저렇게 형태를 바꿔보며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 받은 듯한 눈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던 김서준이 말했다.

“어떠세요?”

“이건 아티펙트 인 건가?”

“그럴 리가요. 어르신 눈에도 보이지 않으세요? 누가 만들었는지.”

장인섭도 알고 있었다. 제작자가 자신의 시그니처를 장비에 새겨넣을 경우, 감정 스킬은 시그니처의 주인을 알려준다.

‘트레스···.’

장인섭은 처음 보는 장인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군. 이런 게 사람이 만든 거라니. 내가 모르는 사이 이렇게 세상이 발전한 건가?”

“그럴 리가요. 이 분이 특별하신 거죠.”

이 분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라는 뒷말을 겨우 참으며 김서준이 말을 이었다.

“역시 어르신이 보기도 신기한가 보네요.”

“물론이지. 이런 기술은 처음 보는군. 특수 기능에 마법진이라. 장비 만드는 재미가 있겠어.”

“어르신, 그 기술 배울 수 있게 도와드리려는 데 어떠세요?”

“!!!!”

장인섭의 눈썹이 들썩였다.

“이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는 건가?”

장인 간의 지식 공유는 한정적이었다. 장인의 시술도 결국 스킬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내구도, 철의 성분 등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만드는 방식에 따라 같은 등급의 스킬로도 더 뛰어난 장비를 만들 수 있긴 하지.’

행동 패턴, 횟수, 시간 등이 그러한 영역. 하나 이런 건 장인만의 비법이었기에 공유되기 힘들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마법진과 특수 기술은 비법의 영역.

‘그걸 배울 수 있다고?’

장인섭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치매에서 깨어나지 못해 결국, 죽어 천국으로 왔나 보군.”

김서준과 전소민은 너무나 장인섭다운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

천산군이 관광지를 넘어 헌터들의 기본적인 능력을 키우고 훈련을 시켜주기 위한 성지의 역할이라면, 장인섭은 그 헌터를 보조할 길드의 중심이었다.

‘장인 길드로 최강의 장비를 지원하는 거지.’

나아가 지구 전반 헌터들의 장비 수준이 높아진다면 더더욱 좋다.

우노, 도스, 트레스 세 사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니, 애초에 세 사람의 목적은 특별한 술을 만드는 일이지, 장비를 만드는 게 아니다.

‘내 부하도 아니고. 억지로 시킬 순 없지.’

그래서 김서준은 장인섭을 통해 만든 장인 길드로 이 점을 해소하려 했다.

“이런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면 뭐든 하겠네.”

장인섭은 완벽한 오픈 마인드로 김서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벨리르 대륙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얘기지.”

“하지만 다른 대륙인데 괜찮지 않겠소? 클클.”

“더군다나 서준의 부탁이잖소. 당연히 받아야지. 클클.”

우노, 도스, 트레스 역시 재밌겠다며 장인섭을 제자로 거두는 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장인과 드워프의 사제관계는 일사천리로 완성됐다.

“오셨습니까.”

장인섭은 퇴원 직후, 바로 금천면으로 왔다. 하루라도 빨리 망치를 들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이유였다.

“안 쉬고 바로 하셔도 괜찮겠습니까?”

“물론 일세.”

김서준과 드워프들이 지어놓은 집에 대충 짐만 옮겨놓은 장인섭은 말했다.

“스승님들은 어디에 계시나?”

****

장인섭이 망치를 쥔 건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이었다. 기억하는 그 시간부터 장인섭은 망치를 쥐고 있었다.

“몇 안 남은 가업이니 잘 이어가야 한다.”

무형 문화재였던 아버지는 전통 방식의 야금술을 아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했다. 다행히도 쇠와 불을 다루는 일이 즐거웠던 장인섭은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망치를 갈고 닦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뛰어넘어 혼자 수련한지 어언 40년.

오랜만에 스승을 모신다는 생각에 장인섭은 생소하면서도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게 맞는 건가?’

양어깨로 바벨을 진 장인섭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체력이 기술의 근본이라는 건가?’

장인섭은 본래 뒷세계 사람으로 오해받을 정도의 우락부락한 몸을 자랑했다. 그러나 치매의 여파 덕에 온몸에 근육이란 근육이 전부 빠져 버렸다.

하지만 장인섭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장인섭의 근육은 어릴 적부터 망치질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근육이지, 애써 만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섭! 양팔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하오!”

“팔 각도 집중하시오!”

“허리! 허리 아치 유지해야 하오!”

하나, 지금 장인섭의 자세를 코치하는 세 사람은 달랐다.

“장인 정신은 근육에서 나오는 거요! 근력이 없으면 망치는 제힘을 발휘할 수 없소!”

“기술력은 근본은 근력에 있소!”

그렇게 주장하며 일주일 째, 장인섭을 하드 트레이닝하고 있었다.

‘정신력을 보기 위한 테스트인가?’

장인들이 제자를 거르는 고전적인 방식 중 하나. 장인섭 역시 그렇게 문하생들을 걸러내곤 했으니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묘하게, 그런 테스트치곤 너무 진심이었다.

‘일단은 한다! 무조건 배워야 해!’

장인섭은 이를 악물고 바벨을 들어 올렸다. 물론 그 옆에는 김서준이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바벨을 들고 있었다.

“이제 좀 볼만하군.”

“역시 근육이 있어야 대장장이지.”

“망치도 이 정도면 인정하겠어.”

김서준이 제공한 미트루트 포션을 도핑하며 진행한 운동 덕에 장인섭의 근육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각성자라는 점도 영향을 주는 거 같네.’

김서준은 장인섭의 몸을 보며 내심 놀랐다. 장인섭은 일전에 본 적 없는 겸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자 우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늘부터 슬슬 다시 망치를 쥐면 좋겠소만. 어떤가, 트레스.”

“클클. 그게 좋겠군.”

장인섭이 반색했다. 김서준이 본 노인 중 저것처럼 행복한 얼굴을 한 사람은 처음일 정도였다.

“저, 정말입니까!”

“물론이오! 앞으로 잘 부탁하오.”

트레스가 손을 내밀었다. 장인섭이 그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그렇게 헌터 장비 제작 기술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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