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12화 (112/139)

112. 메시지

작은 균열은 금세 골렘의 몸체 전체로 퍼져나갔다. 잠시 후 줄기의 부피를 버티지 못한 돌 덩이가 부서져 내렸다.

“저게 뭐야?”

“골렘이 아니었어?”

거인의 형상으로 얽혀있는 초록 줄기가 드러났다.

“리노!”

김서준의 명령을 들은 리노가 곧장 하늘로 솟구쳤다. 즉시 촉수처럼 뻗은 줄기들이 김서준에게로 득달같이 달려 들었다.

그러나 정작 위험한 레이저는 없었다. 과성장으로 봉우리가 활짝 피다 못해 다시 시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효과가 좋았어.’

김서준은 엘린에게 말했다.

“엘린 저 플라이(Fly) 좀 걸어주세요!”

“플라이는 느려요!”

“괜찮아요!”

엘린은 입술을 깨물며 김서준의 말을 따랐다.

“감사해요!”

리노는 어느새 위로 솟구쳐 거대한 줄기 거인이 된 골렘의 목 부근까지 와있었다.

“리노 엘린을 부탁해!”

김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리노의 등에서 뛰쳐 내렸다. 동시에 소리쳤다.

“케레스의 농기구! 제초기!”

등에는 백팩(Backpack)만 한 엔진이 손에는 기다란 대 끝에 황금 칼날을 단 제초기가 쥐어졌다.

-위이이이이잉!!!

엔진 소리와 함께 맹렬히 돌아가는 황금 칼날은 골렘의 몸을 구성한 줄기를 갈갈이 찢기 시작했다.

“저, 저럴수가..”

“대박...”

단신의 제초기가 거대한 덩굴 거인을 난도질하는 광경. 사람들은 아니, 정령과 요정, 드워프까지 모두가 그 기가 막힌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았다.

****

오랜 기간 준비한 토벌이 끝났다. 목표물을 제거하고 원하는 걸 얻었다. 모두가 무사히 귀환했다.

그렇다면 해야 할 게 뭘까?

“역시 먹는 게 남는 거지!”

단연 파티가 아니겠는가. 김서준은 한국인이라면 거절할 수 없는 메뉴로 파티를 준비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각 테이블 위,

쫄깃한 껍질 아래 지방, 살코기가 적절이 붙어있는 오겹살이 올라갔다. 가온 길의 셰프들이 미세한 칼집을 내고 소금과 후추로 철저히 밑간을 마친 오겹살의 자태는 가히 아름다웠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지.’

옆에 같이 구울 김치와 마늘. 그리고 양파와 현존하는 최고의 감자라 불리는 김서준의 감자가 불판 위를 더욱 다채롭게 꾸몄다.

“참아.”

“어? 응.”

누군가는 홀린 듯 익지도 않은 음식을 집을 기세였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아직 파티 음식은 완성이 아니었다.

-쿵!

거대한 술통이 멀리서 날아와 척척 쌓였다. 마치 피라미드처럼 쌓이는 술통을 보는 헌터들은 입을 타고 흐르는 침을 겨우 참는 듯 보였다.

“술은 얼마든지 있으니 마시고 죽어보자고! 클클!”

우노는 그렇게 말하며 술통 하나를 두들겼다. 술 분수가 펑펑 터지며 헌터들의 잔을 채우고 승리의 파티는 그렇게 시작됐다.

“와, 진짜 맛있네.”

“기가 막힌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 먹네.”

음식의 맛은 재료만큼이나 분위기도 중요하다. 특히 굽는 고기는 더더욱 그렇다.

‘산 정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바위로 만든 돌판에 굽는 오겹살?’

마을 주민들이 그랬듯 역시나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게다가 오늘 함께 술과 고리를 먹는 이들이 누군가.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오랜만에 몬스터 잡으니 흥분되고 좋던데.”

생사를 넘긴 전우이자,

“크, 역시 일 끝나면 맥주를 마셔줘야지!”

“이 모지리야. 이거 사이다라니까?”

“아, 그게 그거 아냐? 여튼 죽이네!”

두 달여를 동거동락(同居同樂)한 친우가 아니던가. 헌터들은 정말 먹고 죽을 기세로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좋네.’

김서준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기 한 점을 상추 위에 올렸다. 어느새 잘 익은 마늘과 김치, 살짝 쪼갠 감자도 올리고 젓가락으로 살짝 뜬 쌈장도 위에 얹었다.

그리고 입안에 집어넣었다.

“으흠···.”

역시나 맛있다.

쌈장과 김치, 아린 맛이 빠진 마늘이 먼저 씹히며 입맛을 살살 돋우더니, 주인공인 오겹살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렇게 화려하게 등장한 오겹살이 살짝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껍질의 식감 아래, 진한 육즙과 기름의 고소한 맛을 함께 선사하니 가히 작은 쌈 안에 한 끼 코스요리가 담긴 기분이었다.

‘내가 구웠지만 맛있네.’

마지막 입가심은 잘 만든 애플 사이다. 탄산은 살짝 느끼한 맛을 개운하게 날려주고 은은한 사과 향이 담긴 단맛을 선사했다. 이로써 입안이 다음 고기를 받아들이기 딱 적당한 상태로 만든 후 액체는 시원하게 목을 넘어갔다.

“크···.”

김서준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앞에 앉은 사람부터 옆에 쭉 늘어선 헌터까지. 모두 자신과 같은 맛을 느꼈는지 황홀한 표정이었다.

“역시 맛있다움!”

“멍멍!”

“많이 드세요.”

김서준의 시선은 자연스레 술이 없는 테이블에서 식사를 즐기는 엘린과 리노, 노움에게로 향했다.

‘아쉽네. 우노가 만든 애플 사이다 진짜 잘 어울리는데.’

귀여운 두 녀석은 어쩔 수 없다지만, 엘린이 술을 안 마신 건 의외였다. 엘린은 이번에 잡은 식물 몬스터의 정체를 연구에 푹 빠져있었다.

‘오늘도 먹고 연구해야 해서 술은 안 마신다 했지.’

하루 쉬겠다는 도스와는 달리 엘린은 연구를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드라마도 하나 꽂히면 밤새서 완결까지 달리는 엘린다운 집념이긴 했다.

‘뭐 다음에 대접하지. 술은 계속 만들면 되니까. 그리고 딱히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맛있게 먹고 있기도 하고.’

김서준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띄웠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뒤풀이까지 준비해주셔서요.”

잔을 비운 정현민이 말했다.

“별말씀을요. 어차피 다 길드에 청구할 겁니다.”

“얼마든지요. 아니, 이렇게 좋은 식사를 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죠. 두배로 청구하세요. 하하.”

“괜찮으시겠어요? 저 술값 만만치 않을 텐데?”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껏 청구하시죠.”

흥이 오른 정현민은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후회하실 겁니다. 저 술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애플 사이다가 될 거거든요.’

김서준은 그 말 대신 고블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지? 수습한다고 제대로 이야기를 못 들었군.”

고상한 태도로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킨 강백호가 말했다.

“맞아요. 어떻게 잡긴 한 건데 저도 궁금했어요. 우리가 잡은 게 골렘은 맞죠?”

“맞아. 나도 궁금했어. 그리고 마지막에 그 거인의 몸을 해친 그건 뭐야?”

골렘을 잡고 마정석을 챙긴 후,

목적을 이룬 헌터들은 일단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승리의 쾌감도 잠시, 부상을 치료하고 장비를 수리하고 휴식을 취하는 등. 뒷수습에 최선을 기울였다.

‘당연한 일이었지. 하나하나가 귀한 전력이니까.’

골렘 토벌까지 숱하게 이뤄졌던 회의도 멈추고 모두 전력 재정비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늘의 파티가 3일 만에 이뤄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단 저희랑 싸웠던 건 엄밀히 골렘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김서준은 자신이 봤던 단서를 기반으로 상대가 식물 몬스터를 돌 갑옷이 둘러 쌓고 있다고 판단한 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그래서 갑자기 돌들이 다 부서진 거구나.”

“식물 성장시키는 스킬을 그렇게 사용하시다니. 기발하셨네요.”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을 터뜨리는 둘과 달리 강백호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 그게 제초기였군요!”

“네. 제 농기구는 식물 상대로는 가차 없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다 갈려나 간 거구나. 대박이네!”

마침내 황금 제초기의 무용담을 끝으로 김서준의 이야기가 끝났다.

술기운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흥분하며 감탄하는 둘과 달리, 정작 이야기를 시작했으면서도 그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야기와 함께 무르익었던 술자리는 음식과 함께 점차 식어갔다. 그런데 그때 모두의 눈앞에 새로운 상태창이 나타났다.

[영지 내 모든 위협요소가 제거되었습니다.]

[세계수의 가호가 완벽하게 적용됩니다.]

[이제 금천면에 더는 게이트가 열리지 않습니다.]

순간, 헌터들의 대화가 모두 잦아들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 한 줄의 메시지를 주목하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고?”

“시스템이 그렇게 선언한 지역이라니...”

“그럼 여긴 완벽한 안전지대가 된 거야?”

모두가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이 세상 그 어디도 시스템이 직접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고 공표한 곳은 없었다.

‘금산마을을 빼면 없었지.’

금천면으로 영지를 확장했을 때는 이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던전 때문이었나?’

살짝 늦었지만, 마지막 위협이라고 하면 그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메커니즘인가.’

한 가지 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됐다. 특히나 평화를 바라는 김서준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 아주 중요한 단서를 얻었다.

‘좋은 일이긴 한데...’

“이 메시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거 같군.”

타이밍이 아주 나빴다. 젠장.

김서준은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

“화끈하게 난리 쳐놨네.”

빛을 모두 빨아들인 듯한 흑발을 생머리로 늘어뜨린 여자가 숲을 해치고 나오며 말했다. 여자의 옆에는 여자만큼이나 긴 녹색머리를 가진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는 허리춤에 찬 칼을 꺼내 들었다.

“흠..”

그리곤 사방에 흩뿌려진 줄기 하나를 검으로 집어 들곤 말했다.

“베인 줄기도 있지만, 찢겨나간 줄기도 있습니다. 검상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렇겠지. 애초에 검을 사용했으면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지는 않았겠지.”

여자가 돌아보며 말했다. 고개를 어디로 돌리던 주변에 널브러진 줄기가 보였다. 플랜트 가디언을 검으로 이렇게 일일이 찢어발길 이유도 그럴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았다.

“특히 지구엔 그 정도의 실력자가 아직 없을 거야. 그들은 아직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하긴 그렇겠군요. 그들의 검술은 훈련보다도 스킬에 의존하는 편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뻔하지. 한 사람밖에 없잖아?”

“역시 그렇습니까?”

“느낌을 보니 역시 많이 큰 거 같은데. 잠깐만..”

여자는 그렇게 말한 후, 나무 하나로 다가가 손을 댔다. 그리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여자가 눈을 떴다. 여자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정말 많이 컸네.”

“그렇습니까.”

“그리고 고생도 좀 한 거 같고. 플랜트 가디언을 제압하느라. 역시 좀 더 공을 들여 만들었어야 했나? 인간은 공격하지 않게?”

그러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랬다간 늦었을 겁니다.”

남자의 말이 맞았다. 숲의 입구 부근. 또 다른 전투의 흔적이 있었다. 대량으로 죽어있는 괴물의 시체도 있었다.

‘플랜트 가디언이 조금만 늦었다면 그 괴물이 전부 저쪽으로 넘어갔겠지.’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잘 만들어서 넘겨줬으면, 나보다 더 잘 활용했을 거 같은데.”

“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이죠.”

남자의 말에 여자는 씽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마정석은 잘 챙겨갔나 보네.”

“그 정도의 마정석은 흔치 않으니까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둘러보며 말했다.

“나무의 기억을 확인해보니까, 여기를 이미 던전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여기도 어쩔 수 없이 던전화 해야겠어.”

“아쉽군요. 차원의 문을 다시 닫기 위해 애써 시간을 들여 준비를 마쳤는데···.”

“아니야. 어차피 경각심을 줄 메시지를 보낼 때가 됐는데, 지구랑 연결됐다니. 차라리 잘 됐어.”

여자가 씁쓸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여자는 검은색 마정석 몇 개를 꺼내 던졌다. 마정석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럼 시작해볼까.”

얇은 검신을 가진 검이 허리춤에서 뽑혀 나왔다. 연검(軟劍)처럼 가늘고 예리한 검신은 흑요석으로 만든 것처럼 검게 빛났다.

“차원 단절.”

여자가 검을 아래로 휘두르며 말했다. 그러자 여자가 검을 휘두른 곳으로부터 양옆으로 검은빛이 뻗어 나갔다.

끝을 모르고 나아간 빛이 이번에는 위로 뻗으며 검은 장벽을 이뤘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얀색으로 변한 검을 다시 허리에 꽂았다.

그 순간 여자의 몸이 휘청했다.

“역시 차원의 문을 닫고 힘을 아끼셨어야···.”

화들짝 놀란 남자가 다가와 쓰러지는 몸을 부축했다.

“괜찮아.”

그리곤 검은 장벽을 보며 말했다.

“서준이가 메시지를 잘 이해하려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