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토벌(2)
“크아아!”
앙상하게 마른 몸에 팔이 유난히 긴 정체불명의 괴물이 입을 쩍 벌린 채 강백호 쪽으로 달려왔다.
“후···.”
크게 숨을 내쉰 강백호가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퍽!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오던 징그러운 괴물의 대가리가 그 자리에서 터져나갔다. 전신에 화상이라도 입은 듯 거뭇한 자국과 핏자국이 즐비해 있던 괴물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쿠헝!”
그 뒤로 이번에는 고릴라를 연상시키는 괴물이 뛰쳐나왔다.
-촉. 촉. 촉.
옆에서 날아든 화살이 그 고릴라의 가슴팍에 꽂혔다. 그리고 잠시 후.
-펑!
고릴라의 몸이 그대로 폭사했다. 동시에 헌터들 사이 짜릿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번보다 스킬이 강해졌어.”
“몸보신하고 온 효과가 있네.”
“이정도면 거의 S급 아닌가?”
“야, 허세부리다 뒤지지 말고 목 간수나 잘해.”
농담을 주고받던 헌터들은 뒤이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향해 다시 무기를 휘둘렀다.
‘대단해.’
괴물의 피로 더러워진 손을 닦던 강백호는 달라진 헌터들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치로만 본 것과 현장은 역시나 완전히 달랐다. 단순히 강해진 것 이상으로 헌터들의 기세가 등등했다.
‘20분이라. 너무 낮게 봤군.’
김서준의 온천과 영약 뺨치는 삼계탕의 효능이 육체뿐 아니라 심리적 요인까지 개선한 덕이었다. 불안보다는 자신감이, 전장의 스트레스가 아닌 적당한 긴장으로 헌터들은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적이 몰려옵니다!”
바쁜 전황 속에 탐지 계열 헌터가 소리쳤다. 강백호가 지시하기 전에도 헌터들이 먼저 소리쳤다.
“우리가 지원하겠습니다!”
“우리도 지원한다! 제대로 한번 놀아보자고!”
“가라.”
강백호는 담백한 말투로 허가를 내렸다.
강해진 힘을 마음껏 쏟아낼 기회를 얻은 헌터들은 소극적인 예전과 다르게 먼저 나서서 도움을 줄 기회를 찾았다.
이 역시 놀라운 변화였다.
‘계산을 다시 해봐야 하나.’
강백호와 황룡 길드가 북한 토벌에 참여한 건 사실 엄청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강백호는 본래 확신했다.
‘북한 토벌은 실패할 거야.’
대한민국과 중국의 인재 폴은 차이가 크다. 당장 S급 헌터의 숫자도 5배나 차이가 나지 않는가.
그뿐인가?
3개의 길드가 모여서 각자의 이득을 추구한다? 그런 작전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 않은가?
‘각자의 이득을 챙겨야 하니까.’
강백호가 보기에 이번 토벌의 결말은 뻔했다.
‘중국의 속도 맞춰 적당히 진행하다 결국 외교 협상하고 다시 소강상태로 갈 게 뻔하지.’
물론 북한 땅은 다시 주인 없는 적당한 중립지대로 돌아가고 말이다.
그렇게 사태가 끝나면 황룡 길드는 적당히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 길드의 이미지를 챙길 셈이었다.
‘이번 바이올렛 호퍼 사태처럼.’
그런데 지금 그 계산이 틀어지고 있었다. 함께 농사도 짓고 밥도 먹고 몸을 부대끼면서 한팀처럼 친해졌다.
거기에 사기가 등천하고 모두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김서준이 만든 강해질 기회가 주는 효능감에 취한 덕에 말이다.
‘멘탈적인 보살핌도 영향을 끼친 거 같고.’
농사는 물론 온천욕이나 특별한 만찬 등으로 멘탈이 관리되니 헌터들에 투지가 더 활활 타오르는 건 당연했다.
‘이거 정말 성공을 상정하고 다시 계획을 짜야 하는 건가. 대단하군.’
강백호는 김서준에 대해 이미 알아보고 있었다. 김서준이란 능력자에게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의 능력이 탐이 났다.
그리고 오늘. 강백호는 결정했다.
‘저 능력. 가져와야 한다.’
그렇게 말한 강백호가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 그가 탐내는 능력을 지닌 남자가 고군분투하는 게 보였다.
****
골렘은 보기엔 둔하고 멍청한 몬스터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눈앞에 이 특이한 녀석은 그랬다.
-구르르.
어차피 뚫지도 못하는 쉴드와 힘겨루기는 첫 꽃이 베이는 순간 포기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다른 대상을 노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안 되지.’
김서준이 소리쳤다.
“노움!!!”
허공에서 나타나는 노움. 그리고 그 뒤로 작은 황금빛 수십 개가 나타났다. 빛은 곳 김서준이 농작물에 물을 줄 때 사용하는 드론으로 변했다.
“부탁해.”
“알겠습니다움!”
김서준은 노움에게 드론의 통제권을 넘겼다. 노움은 드론들을 조종해 노움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드론에 공격능력은 없었지만, 골렘은 위협적으로 자신의 핵으로 날아드는 드론을 무시하지 못했다.
“도리.”
도리는 그 드론 사이로 일격을 쏘아댔다. 이러자 골렘의 관심이 다시 공중으로 향했다.
“나이스, 서준 씨!”
“지금이에요! 빨리 처리해요!”
잠시 자신들을 향한 레이저에 주춤하던 헌터들을 전소민과 정현민이 부추겼다. 그러자 헌터들은 다시 자세를 잡고 레이저를 쏘느라 발광(發光)하는 식물의 봉우리를 노렸다.
-촥!
줄기는 헌터들의 장병기가 닿는 순간, 무기력하게 잘려나갔다.
‘다행이야.’
공중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드론, 힘내라움!”
뒤에서 드론을 조정하던 노움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야기할 정도로 빠르게 드론의 숫자가 줄어가고 있었다. 더 소환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파괴된 농기구가 회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안내 메시지만 떠오를 뿐이었다.
힘겨루기로 마나를 많이 소모한 엘린은 김서준의 등에 기대있는 게 고작이었다. 엄청난 체력을 자랑하는 도리와 리노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레이저는 한방이면 목숨을 앗아갈 위력이었기에 전력을 다해 기동한 탓이었다.
‘정체불명의 식물이 방어력은 약해서 다행이야. 아니었다면 토벌은 실패했겠지.’
김서준은 이제 2개밖에 남지 않은 식물을 보며 소리쳤다.
“조금만 힘내. 밑에 거의 다 끝났어.”
도리와 리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움 역시 결의에 찬 표정으로 다시 한번 드론을 움직였다.
골렘의 핵이 위협을 받자 아래서 난리 치던 레이저가 다시 위를 향했다. 전투에 집중한 헌터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전소민의 바람과 정현민의 칼이 다시 한번 남은 식물을 잘라냈다. 이로써 골렘의 몸을 지키던 레이저는 전부 제거됐다.
“모두 잠시 뒤로 빠져요!”
골렘은 물러나는 헌터들을 노리며 손을 휘둘렀다. 그리나, 아무리 빠르다 한들, 거대한 몸체는 강한 공기 저항을 받기 마련.
-붕!
거친 파공성을 만들 뿐 헌터들이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확실히 레이저를 제거하니 조금 크고 강한 골렘의 불과했다.
“이제 두 번째 작전을 시작하죠.”
공략의 두 번째 단계는 단순했다.
골렘에게 남은 건 단단한 육체. 가까이서 부딪혀줄 이유가 없었다. 도리어 간격의 차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우노!”
“망치 나가신다!”
우노가 뒤에서 크게 약진해 땅에 내려앉았다.
-쾅!!!
망치와 골렘의 주먹이 부딪히며 엄청난 충격파가 만들어졌다.
“큭! 힘 하나는 대단하군!”
우노의 망치에도 골렘의 주먹은 멀쩡했다. 우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우노는 말과 달리 유연한 전투 운용으로 시간을 벌기 시작했다. 그 사이 헌터들이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휘이잉.
전소민의 부채로 바람이 모여들었다. 정현민도 검기를 한점으로 모았다. 도리와 리노도 마나를 끌어 올렸다
대열을 갖춘 원거리 포격.
이 한방으로 공략을 끝낼 셈이었다.
“우노!”
“알겠네!”
우노는 틈을 만들어 바닥을 내려쳤다. 그 순간 골렘이 밟고 있던 땅이 무너져 내렸다.
‘예상대로야.’
골렘은 이런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완벽하게 균형을 잃었다.
-쿵!
겨우 무릎을 꿇고 손으로 땅을 짚으며 버티는 골렘. 그 순간 머리의 파란 핵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지금!”
일제히 뻗어 나간 공격이 모두 핵을 향했다.
-콰광!
굉음이 울려 퍼졌다. 사방에 흙먼지가 흩날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소리만이 그들의 공격이 적중했음을 알리는 듯했다.
‘끝인가?’
김서준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먼지 사이 흐릿하게 골렘의 모습이 보였다. 핵이 부서진 걸까, 머리에 푸른 빛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 저게 뭐야?’
그 대신 거대한 바위가 그 자리를 대체한 거처럼 보였다.
“저, 저건···.”
“...막은 건가?”
눈이 좋은 몇몇 헌터가 먼저 소리쳤다. 잠시 후 김서준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골렘의 몸을 구성하던 바위 몇 개가 떨어져 나가 골렘의 머리를 감추고 있었다.
‘저런 게 가능했던 건가.’
몸체를 이루던 돌을 옮겨 투구처럼 사용하다니. 저런 능력을 사용하는 건 수없이 많은 몬스터 연구를 본 김서준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젠장.’
화도 잠시. 빨리 대안을 생각해야 했다.
“2차 공격을 해야 할까요?”
“소용없을 겁니다. 저 위에 포격해봤자 의미 없을 겁니다.”
“서준, 내가 가서 저걸 부수겠네!”
“아니면 제가···.”
헌터들이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다. 다들 조급함에 던지는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 김서준은 좀 더 차분히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확실한 대안을 주고 싶었다.
“저, 저기···. 식물이 다시 자라나고 있어요!”
그때 헌터 하나가 소리쳤다. 그 말대로였다. 잘라낸 식물이 다시 자라는 것도 모자라 골렘의 몸 여기저기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돌 틈 사이 여기저기서 촉수처럼 줄기를 뻗고 봉우리를 틔우는 식물은 족히 50송이는 넘어 보였다.
“저, 저게 다 자라면···.”
“지금 퇴각해야 합니다. 아직 자라는 지금이라면 도망칠 수 있어요.”
그 위력을 익히 아는 헌터들의 두려움에 빠졌다. 정현민과 전소민의 얼굴 역시 경악에 물들었다.
“실패입니다. 이건···.”
정현민이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가 동조하는 분위기.
“아니요. 제 생각이 맞다면···. 수가 있어요.”
그 순간 김서준은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위에 식물이 자라면서 골렘의 몸 안쪽에서도 줄기가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설마, 본체가 골렘이 아닌 건가?’
저 돌덩이 아래 식물이 자라고 있는 건가. 우리가 생김새에 속고 있는 건 아닌가.
‘그게 맞다면 오히려 상황은 쉬워.’
저 두꺼운 돌 갑옷만 벗기면 그 안은 연하디연한 식물 줄기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까.
‘저 돌 갑옷을 어떻게 벗길 건데?’
스스로 물어본다. 바로 즉답이 나왔다.
‘정말 내부가 식물이라면 스스로 벗게 만들 수 있어.’
답이 나왔지만, 확률은 미지수다. 추측이 틀린 순간 시도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물이 새로 자라는 지금만 한 기회가 또 있을까.
‘이미 다 자란 다음에는 접근도 힘들 꺼야. 같은 패턴이 먹힌다는 보장도 없고.’
김서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준 씨. 어떻게···.”
“서준 씨.”
모두가 자신의 지시를 기다린다. 퇴각을 기다리는 모습. 이들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할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나 혼자도 충분히 가능해.’
결심을 마친 김서준은 마음으로 리노에게 말했다.
[리노 달려.]
“컹!”
명령과 즉시에 리노가 땅을 박찼다. 리노가 김서준의 말을 따라 내달렸다. 헌터들이 돌발행동에 놀라 무어라 소리쳤지만, 김서준은 무시했다.
-휘릭!
아직 봉우리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는지, 골렘은 급한 대로 줄기를 휘둘렀다.
[도리!]
도리가 김서준의 옆으로 다가와 줄기를 쳐냈다.
“이 몸도 빠질 수 없지! 클클!”
우노가 땅을 내려치자 벽이 솟아올랐다. 새롭게 골렘의 등에서 돋아난 줄기들이 마법의 시전자인 우노를 향해 날아갔다.
“뭘 어쩌려는 지 모르겠지만, 믿겠소. 가시오!”
우노의 말에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곤 박차를 가했다. 리노는 순식간에 골렘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어쩌려고요!”
뒤에 있던 엘린이 소리쳤다. 김서준은 대답 대신 골렘을 향해 손을 뻗고 소리쳤다.
“커져라!”
김서준의 손에서 초록빛이 뻗어났다.
골렘의 몸 안에 있던 줄기가 엄청난 속도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쩍!
그리고 줄기의 두께를 못 이긴 골렘의 몸체에 균열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