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10화 (110/139)

110. 토벌(1)

파티가 있기 며칠 전.

김서준과 헌터는 투자의 관계였다.

헌터들은 하나하나 김서준의 홍보수단이었으며, 나아가 닥쳐올 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서준이 단순히 대의를 위한 투자만 한 건 아니었다.

‘이번 던전 활동의 20%를 받기로 했지.’

헌터들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전혀 없었다. 지금 김서준이 누리게 해주는 특권은 이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저는 그 모든 비용 대신 골렘의 마정석과 부산물의 전권을 가지고 싶습니다.”

김서준은 길드 장이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그러자 사정을 알고 있는 전소민을 제외한 두 사람이 정색했다.

특히, 강백호의 표정은 차갑다 못해 싸늘했다.

“자네가 우리에게 해준 바는 인정하네. 원한다면 수익을 더 줄 수도 있지. 분명 모든 게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골렘의 전리품에 대한 전권은 동의하기 어렵군.”

“서준 씨도 알 겁니다. 사실 쉽게 대답해드릴 수는 없는 일이란 걸.”

정현민의 말대로였다. S급 몬스터의 마정석은 그 가격을 예측할 수 없다. 워낙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잡은 S급 켄타우로스의 마정석은 100억이 넘게 팔렸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가격이 책정되는 이유는 S급부터는 경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경매에는 정말 필요해서 사는 장인부터, 길드, 나아가 수집욕 그득한 부자까지. 워낙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참여했고 오고 가는 자본 역시 막대했다.

가격만 천차만별인 게 아니었다. 그 효과 역시 종잡을 수 없었다. 어떤 건 마나의 밀도가 말도 안 되게 높기도 하고, 어떤 건 마나의 전도율이 100%에 다다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켄타우로스의 마정석은 자성을 띄는 특징을 지녔었다.

‘이번 골렘은 또 어떤 마정석을 토해낼지 모르지. 그러니 저렇게 반응하는 거고.’

이들은 길드의 장. 지금 전권을 줬는데, 만약 이런 특별한 마정석을 골렘이 남긴다면? 그리고 그 마정석을 전부 김서준이 가져가 그들은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한다면?

‘난리가 나겠지.’

본래 득실을 확실하게 하는 강백호뿐 아니라, 언제나 호의적이던 정현민조차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문인 게 확실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무리 돈을 더 줘도 의미 없는 협상이네. 차라리 토벌이 끝나고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떤가.”

그럴 순 없었다.

정말 대단한 마정석이 나오면 차라리 확률이 있겠다만, 만약 저들이 마정석에 눈이 돌아간다면? 그래서 협상에 난항을 겪거나 김서준의 능력을 벗어나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강백호가 심상치 않아.’

고블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강백호의 황룡 길드가 최근 S급 마정석을 싹쓸이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더더욱 위험하지.’

김서준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저희 관계는 여기서 마무리해야 합니다.”

김서준의 대답에 두 사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소민과 정현민 역시 놀란 기색이었다.

“서준 씨 그건···.”

“투자하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그만두겠다는 건가? 생각보다 제멋대로군.”

강백호가 기가 찬다는 듯 대답했다.

“협박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만큼 제가 절실하다는 거죠.”

김서준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이런 제안은 어떻습니까. 제가 지금 여기 계시는 길드원 모두의 생존율과 전투력을 끌어올릴 영약을 제공하겠습니다.”

“영약?”

“그렇습니다. 다들 훈련을 하는 이유를 잊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은 북한입니다.”

북한.

잠시 평화에 젖어 있던 헌터들이 그 두 단어에 사뭇 진지해졌다.

“그리고 단순히 북한 토벌뿐 아니라 살아오는 일도 중요하겠죠. 그러려면 지금으로써는 위태로울 겁니다.”

김서준의 말에 정현민과 전소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백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심 동의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아무리 스텟을 키우고 훈련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할 테지. 북한에 어떤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지는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으니까.’

게다가 여기 있는 헌터들은 대부분 각 길드의 핵심전력이었다. 토벌이 끝났을 때, 성공만큼이나 중요한 게 생존율이었다. 그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키우려는 방법은 하나.

‘강해지는 일.’

그리고 김서준은 단기간에 그들에게 강해질 방법을 거래 조건으로 던지고 있었다.

“영약이라면 우리가 밖에서 살 수도 있네.”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줄 영약이 지금 시중에 있나요? 그리고 제가 드리는 것보다는 못 할 겁니다.”

김서준은 자신만만하게 협상에 임했다.

그리고 전소민과 정현민의 지원 끝에 강백호는 결국, 김서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단, 영약 효과가 미진하다면 바로 이 거래에 대해 다시 협상하겠네.”

위험한 단서를 달면서 말이다. 하지만, 김서준은 그 제안을 받았다.

‘강백호는 사기를 치거나 비양심적인 사람은 아니야. 효과를 본다면 협상을 뒤집을 리가 없어.’

그리고 다시 오늘.

메시지를 본 강백호가 말했다.

“이 버섯이 그 영약이었나···. 계약은 성사되었군.”

“감사합니다.”

김서준은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와, 근데 진짜 대단하네요. 설마 이것도 스킬인가요?”

놀라움을 잠시 말을 잃었던 정현민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일종의 스킬이긴 합니다. 한 번뿐이라는 게 아쉽지만.”

“진짜 대단하네요. 다음 길드원 모집 때는 농부부터 찾아야겠어요. 청룡 길드가 완전 바보였네요. 이렇게 대단한 헌터를 내보내다니.”

정현민이 농담 삼아 말하며 전소민을 바라봤다. 전소민은 술 때문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일생일대의 실수였죠. 지금도 후회한다니까요. 다시 오라고 해도 오지도 않는다고 하고···.”

“정말요? 전 다시 청룡 길드 가실 생각인 줄 알았는데. 그럼 서준 씨 저희 에픽 길드는 어떻습니까? 저희가 업계 최고 대우로 모시겠습니다!”

조용히 국물을 음미하던 강백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흠흠. 우리 황룡 길드도 언제나 좋은 인재 영입에 힘쓰고 있네만···.”

반쯤 농담이었지만, 한국 최고의 길드들의 스카우트라니. 언젠가 꿈꿨던 그 장면이 백숙을 먹는 자리에서 현실화되었다는 생각에 김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나중에 고민해보죠.”

맛있는 백숙과 술, 그리고 행복한 대화 속에 해가 누울수록 자리는 무르익었다.

“근데 송이버섯 때문인가. 이거 자꾸 힘이 솟는데.”

“그러게요. 체력이 넘치는 거 같기도 하고.”

“술 때문인가. 흥이 자꾸 오르네요.”

재밌게 놀던 헌터들이 약효를 체감하는 듯했다. 사실 김서준 역시 그랬다. 축복받은 송이버섯의 사실 최고의 효과가 뒤늦게 터진 듯했다.

정현민 역시 그걸 느꼈는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 내일 다들 토벌 나가시는 거 아시죠? 끝나고 다들 어디 세지 말고 바로 주어진 방으로 가세요. 남자, 여자 정, 해, 진 숙소로요.”

정현민의 말에 몇몇 헌터들이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최근에 분위기가 좋았던 몇몇 헌터들이었다.

그렇게 선언한 정현민이 자리에 앉아 김서준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이 송이버섯 영약 효과는 한 번뿐인 거죠?”

“네. 제가 요리를 해드려야 하고요.”

김서준의 대답을 들은 정현민이 조용히 물었다.

“어, 그럼 사는 건 좀 싸게 살 수 있는 건가요?”

정현민과 김서준은 몰랐다.

그때 사실은 많은 남자 헌터들이 그 대답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는 걸.

****

산 중턱의 붉은 색 포털 앞.

다들 어제의 파티와는 완전히 다른 진지한 얼굴을 한 헌터들이 모여 작전을 검토하고 있었다.

“우리 조는 외곽을 맞는다.”

“우리는 길드장님의 오른편을 도와서···.”

각 조의 팀장은 완벽한 작전을 위해 열심히 작전을 하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가운데, 이 연합의 핵심전력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파워 업을 고려해도 20분 정도일세. 지금 전력 그대로 말이지.”

몇 번의 정찰로 숲 전체 광분한 몬스터들은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모여든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20%씩 강해진 셈인데 시간이 얼마 늘지 않았어.’

아마도 모두의 무사 귀환을 고려한 계산일터였다. 합리적이었다. 이번 골렘 토벌은 원활한 훈련장을 얻기 위한 일. 여기서 죽는 헌터가 나오는 건 비합리적인 희생이었다.

‘그래도 한 명도 안 보내겠다고 하실 줄은 몰랐는데.’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할 수 없으니 전략은 큰 틀에서 바꿀 건 없겠네요.”

도리와 리노를 탄 김서준과 엘린이 관심을 끌고 그사이 다른 헌터들이 식물부터 각개격파한다. 기본적인 전략을 다시 상기한 후 회의는 빠르게 마무리됐다.

각 길드장은 길드원들에게 최후의 당부를 마친 후 전열을 갖췄다. 김서준은 모두의 완료 신호와 동시에 포털을 다시 열었다.

포털 안의 광경은 달라졌다. 일전에는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우거진 숲이었다. 지금은 큰 나무들이 대부분 제거되어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없었다.

“계획대로 원부터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잘 부탁하지. 모두 진을 펼쳐라!”

김서준의 말에 강백호가 헌터들을 지휘했다. 헌터들은 큰 원을 만들어 골렘과 헌터들이 작전을 수행할 장소를 형성했다.

-쿠르르.

멀리서 돌들이 뭉치며 골렘이 다시 일어났다.

‘더 빨라졌어.’

예전에는 다가가야 움직였던 골렘이 이제는 들어오자마자 반응한다. 아무래도 계속 포털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같았다.

헌터들이 뛰어가며 전선을 형성하는 사이. 10명의 헌터와 정현민, 전소민, 우노는 곧장 골렘에게 향했다.

“이야기했던 대로 빠르게 처리합니다. 변수가 없도록!”

“네!”

“알겠어!”

헌터들과 전소민의 대답이 들렸다. 김서준은 먼저 도리를 바라봤다.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채 허공답보(虛空踏步)로 달리던 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컹!”

도리의 기운을 받은 리노가 울부짖으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리노 역시 허공을 밟고 빠르게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뒤에 탄 엘린이 강하게 허리를 껴안는 게 느껴졌다. 김서준은 그 감촉을 무시하고 말했다.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김서준과 도리에 기척을 눈치챈 골렘이 움직였다.

-구르르.

돌이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거대한 골렘의 몸이 움직였다. 파란색 마석이 박힌 머리가 김서준과 도리를 바라본다.

-팟!

동시에 레이저가 날아든다. 도리와 리노는 전력으로 몸을 움직여 레이저를 피했다.

“반격 안 해도 되니까 피하는 데 집중해! 절대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고.”

[알겠습니다.]

“컹!”

대답을 들은 김서준이 아래에서 골렘에게 다가가는 일행들을 바라봤다.

“엘린.”

“네. 저도 준비할게요.”

작전을 세울 때, 김서준은 헌터들에게 말했다.

“가장 완벽하게 빈틈이 생기는 타이밍을 만들겠습니다.”

“그런 타이밍이 있겠습니까?”

“한 번이라면 가능합니다.”

모든 헌터들이 공격 준비를 마치곤 머리 위로 사인을 보내왔다. 바로 지금이 그 한 번의 타이밍을 만들 시간.

김서준은 엘린에게 말했다.

“지금이요!”

“네!”

엘린이 소리치며 거대한 쉴드를 만들었다. 이내 거대한 목표를 찾은 식물들의 레이저가 한점으로 모였다.

“도리!”

김서준이 도리를 불러 쉴드에 힘을 더한다. 김서준은 도리를 바라보며 모든 기운을 보낸다고 상상했다.

[정령에게 마나를 전송합니다.]

김서준의 마나가 빠르게 소모되며 도리가 만든 방진이 선명해진다. 방진은 엘린의 쉴드를 덮어씌운 채 함께 레이저와 맞섰다.

‘됐다!’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레이저는 무방비 상태. 그리고.

-촥!

마침내 첫 번째 식물의 줄기를 정현민의 검이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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