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09화 (109/139)

109. 서프라이즈 파티

영계.

이제 조금 큰 병아리라 볼 수 있는 작은 닭의 배로 과감히 식칼을 집어넣는다. 야들야들한 살과 연한 뼈를 파고든 식칼로 과감하게 영계를 반으로 갈랐다.

‘닭 좋네.’

부드럽게 갈리는 감각을 느끼며 김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재료가 잘 수 있도록 김서준은 손가락을 내장을 싹싹 긁어냈다.

날개 끝, 꼬리, 그리고 누렇게 달린 기름도 잘 제거한 후 김서준이 옆에 있는 강하진의 테이블로 넘겼다.

그러자 반대편 테이블에 있던 신동원이 고개를 쭉 빼곤 결과물을 바라봤다.

“역시 우리 이사님! 셰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스승님이 왜 그렇게 아쉬워했는지 알겠네요.”

강하진 역시 너무나 깔끔하게 손질한 닭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극찬하시면 옆에 제가 레스토랑 차릴지도 모릅니다.”

“아 그건 곤란하죠. 쟁쟁한 경쟁은 사절입니다.”

신동원의 말에 김하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재료 손질이 빠르게 이어졌다. 김서준과 신동원이 재료를 손질하면 강하진이 상태를 확인하곤 적당히 속을 채워 솥에 옮겨 닮았다.

‘다들 진짜 대단하네.’

프로는 프로일까. 웃고 떠들면서도 그들의 손은 쉬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짐에도 꾸준한 속도를 자랑했다.

‘방해될 순 없지.’

김서준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최대한 집중해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김서준은 몰랐다.

‘진짜 어디서 요리 배운 거 아냐?’

‘저 정도면 취미로라도 요리를 가르쳐 드려야 하나.’

두 프로가 실은 김서준보다 더 놀라고 있다는 것을.

큰 가마솥이 속이 꽉 찬 영계로 가득 찼다. 연분홍의 닭살을 들어낸 영계들은 벌써 먹음직 서러워 보였다.

“갑니다.”

그 위로 두 셰프가 미리 준비한 육수가 부어졌다. 마치 온천욕을 하듯 육수에 잠기는 영계들. 이제 이 영계를 한 번 더 푹 끓여내면 요리는 백숙은 완성이었다.

“고생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두 셰프가 보람찬 얼굴로 인사했다. 그리곤 가마솥의 뚜껑을 닫으려는 순간.

“잠깐만요.”

김서준이 기다렸다는 듯 씩 웃었다.

“제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

말과 함께 손을 들었다. 그러자 허공에 검은색 아공간 입구가 나타났다.

-척. 척. 척. 척.

입구에서부터 나타난 하얀 스티로폼 상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셰프들은 의아한 얼굴로 상자를 바라봤다.

“이게 뭡니까?”

신동원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열어보시죠.”

김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동원이 상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신동원은 점점 더 궁금증이 커지는 걸 느끼며 테이블로 상자를 가져갔다.

그리곤 조심스레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온 사방으로 솔향이 솔솔 퍼지기 시작했다.

“와···.”

신동원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뒤에서 강하진 셰프가 탄성을 토한 것 역시 당연했다.

“이게 그 축복받은 송이버섯이에요?”

신동현이 물었다. 김서준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게 중얼거린 신동현이 다시 한번 감탄했다.

“엄청나네요. 생긴 모양이나 크기도 엄청나지만 이렇게 진한 향이 나는 송이버섯이라니.”

어느새 신동현의 옆으로 선 강하진 역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많은 송이버섯을 봤지만 이만큼 좋은 송이버섯은 처음입니다. 과연 스승님이 그렇게 난리를 치셨던 게 이해가 되네요.”

“그러니까요. 벌써 입안에 침이 고이네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김서준이 황당해했다.

“...엄민호 셰프님이 난리를 쳐요?”

“말도 마세요. 이 버섯으로 전골 해 드시고 온 날, 뭔 버섯에 ‘버’자만 나오면 아주 난리 셨다니까요.”

“그랬죠. 다른 송이버섯으로는 그 맛이 안 난다며 아쉬워하기도 하시고. 얼마나 맛있나 기대했는데 드디어 맛보는군요.”

놀라운 이야기였다. 맛있긴 했지만 설마 그 명인이 그렇게까지 극찬하셨을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한껏 기대를 품을 눈을 한두 사람도 그랬다.

“궁금하면 말씀하시지.”

“아닙니다. 이렇게 좋은 장소와 조건으로 장사하게 해주시는 것도 감사한 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송이버섯까지 달라고 할 만큼 염치가 없진 않습니다.”

“맞습니다. 열심히 벌어서 사 먹으려 했죠. 근데 운이 좋았네요. 하하”

신동원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긴, 김서준에게야 2주에 한 번씩 자라는 버섯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최고급 식재료.

‘내가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앞으로 잘 챙기자.’

쓴웃음을 짓는 김서준에게 신동원이 물었다.

“근데 한두 명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분께 이거 전부 다 대접해도 되는 겁니까? 이거 비용이 엄청날 텐데.”

“맞습니다. 이 버섯만큼은 아니지만, 맛을 낼 방법은 많지 않습니까?”

“네. 단순히 맛만이라면 그렇죠.”

지금 사용하기로 한 버섯의 수량은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1억에 가까웠다.

‘헌터들의 맛과 보양만을 위해서 쓰기는 아까운 돈이지.’

하지만 김서준은 주저하지 않고 송이버섯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하나.

“...애써 키운 헌터들의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이정도는 싸게 먹히는 겁니다.”

****

“와, 여기 진짜 대박이다!”

“SNS에서 본 거보다 더 대박인데?”

“온천도 진짜 좋았는데 여긴 또 다르네.”

농장에 오르는 헌터들 사이에서 한걸음이 멀다 하고 연이어 감탄이 터져 나왔다. 흡사 수학여행을 나온 고등학생들처럼 헌터들은 눈을 반짝이며 농장을 즐겼다.

‘하긴 이 중에 태반은 게이트, 던전, 훈련, 집만 반복했을 테니까. 이런 휴식이 꽤 신선하겠지.’

김서준은 헌터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괜히 뿌듯한 기분이었다.

“일전에 왔을 때보다도 더 좋아졌군요. 공을 얼마나 들였는지 느껴지네요.”

“그러니까요. 진짜 이렇게 잘 만들어 놓고 초대도 안 해주고. 이게 무슨 친구라고···.”

전소민이 농담 섞인 핀잔을 늘어놓았다. 김서준이 능글맞게 웃었다.

“이렇게 만들다 보니 정신이 없었네. 미안.”

“하여간 말은.”

전소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뒤에서 걷고 있던 강백호가 말했다.

“산 안의 온도가 좀 더 쾌적한 거 같군. 이거도 자네 능력인가?”

“비슷합니다.”

“보면 볼수록 자네 능력은 생각 이상이군.”

평범한 칭찬의 말.

‘뭐지?’

그런데 강백호의 그 말이 미묘하게 께름칙하게 들렸다. 김서준은 애써 모른척하며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녹림이 우거진 길을 통과하는 기분 좋은 산행을 마친 헌터들은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양이 있네.”

“곰도 있는데요? 무슨 동물원 같네. 저기 리노도 있어!”

“여기 경치 너무 예쁘다.”

헌터들이 여기저기를 둘러다 보며 저마다의 감탄을 토해냈다.

“서준 씨. 아무래도 잠깐 이 볼거리를 즐길 시간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그러게. 다들 너무 신난 거 같은데?”

전소민과 정현민의 요청에 김서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김서준이 훈련을 이끌고 있었지만, 사실 훈련 일정 조율은 길드 장의 권한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길드 장들의 허가를 받은 헌터들은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와, 진짜. 이 나무 위로 쭉쭉 뻗은 거 봐. 농부 능력으로 이런 성장도 조절할 수 있나?”

“양이랑 야생 동물들 같이 노는 거 봐. 저것도 스킬로 길들인 거겠지?”

“진짜, 꿀이다. 다른 비전투 직 헌터는 부러운 적이 없었는데, 농부는 진짜 부럽네.”

“그러니까. 이러니 게이트나 던전을 다닐 필요가 없지. 왜 은퇴를 그렇게 일찍 했는지 알겠다.”

헌터들은 부러움과 감탄을 반복하며 금산 농장에서의 휴식을 즐겼다. 강백호와 정현민도 경치를 보겠다며 시야가 탁 트인 간이 전망대로 향했다.

“준비할 거지? 같이 가자.”

전소민은 김서준을 돕겠다며 따라왔다. 김서준은 그런 그녀를 마다했지만, 고집을 이길 순 없었다.

자유시간을 마친 헌터들이 거대한 돌 식탁을 둘러앉았다. 식탁에 한가운데는 푹 익은 영계가 담긴 냄비가 척척 들어앉았다.

-꿀꺽.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투명한 뚜껑 안으로 보이는 뽀얀 자태를 드러낸 닭과 각종의 약재, 그리고 송이버섯은 모두의 시선을 완벽히 사로잡았다.

마지막 냄비를 내려놓은 두 셰프가 김서준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모두의 이목이 김서준에게 쏠렸다.

‘먹고 싶다. 빨리 먹자.’

눈빛 속에 그런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은 아니었다.

“다들 죄송하지만, 아직 하나가 남았습니다.”

“당연하지!!!”

김서준의 말과 함께 저 멀리서 쩌렁쩌렁한 우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노는 양어깨에 거대한 술통 두 개를 들고 있었다. 뒤로 도스와 트레스도 술통을 걸치고 걸어왔다. 그 뒤로는 잔을 탑처럼 쌓아 가지고 오는 전소민이 보였다.

청룡 길드원 몇몇이 일어나 전소민을 도우려 했으나 전소민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날 술이 빠지면 쓰나! 클클클!”

술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우노가 호탕하게 소리쳤다. 잦은 훈련으로 우노와 일면식이 생긴 헌터들이 맞장구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맥주잔이 옆으로 척척 전달되어 모두의 앞에 하나씩 놓였다.

“다들 잔에서 손 떼시오!”

트레스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술통 하나를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 순간 술통에서 여러 줄기로 갈라진 술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포물선을 그린 투명한 황금색 액체는 잔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이게 무슨···.”

“대단하군!”

“이건 마법인가?”

헌터들이 그 놀라운 쇼(?)에 감탄을 터뜨렸다. 술통이 한번 울컥할 때마다 술 줄기가 뿜어졌고, 한 번에 한 테이블의 잔을 채웠다.

“저게 대체 뭔가?”

맞은 편에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던 강백호조차 놀랍다는 듯 김서준에게 물었다.

“아, 저분들이 직접 만든 마법 술통입니다. 워낙 술에 진심이신 분들이라.”

사실 김서준도 처음 보는 모습에 억지로 탄성을 참고 있었다.

‘뭐 최고의 술을 만들기 위해 여기까지 온 드워프들이니 거짓말은 아니지. 그나저나 향이 끝내주네.’

공중을 가르는 액체들은 동시에 향수처럼 사방으로 사과 향을 뿌렸다. 김서준과 함께 키운 최고의 감홍이 가진, 달큰 하면서도 상큼한 사과 향이 퍼지자 사람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잔을 만지작거렸다.

마침내 술 배급이 끝나고 술통이 멈췄다. 그러자 드워프 삼 형제도 자리에 앉았다.

“이제 시작하시오! 클클클!”

우노가 소리쳤다.

그 즉시, 김서준이 강백호를 바라봤다. 강백호가 잔을 들었다.

“모두 고생했다.”

강백호는 짧게 건배사를 한 후 술을 들이켰다. 모두가 따라 기다렸다는 듯 술을 들이켰다.

“대박!”

“이 술 뭐야?”

“사과 향 나길래 뭔가 했는데, 살짝 쌉싸름한 게 과일 맥주 같기도 하고.”

“잔향도 엄청 좋은데?”

다들 놀랍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정현민과 전소민, 강백호 역시 눈을 크게 떴다.

“놀랍네요. 이렇게 맛있는 사과주는 처음이에요.”

“와인은 아니고 맥주인 거 같은데···. 대박이에요! 이걸 직접 만든 거예요?”

전소민의 말에 우노가 대답했다.

“물론이오! 신, 아니 서준이가 키운 최고의 사과에 우리가 가진 최고의 주조(酒槽)기술이 합쳐진 최고의 사과 사이다요! 클클클!”

우노의 말에 트레스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사실 사과가 좋은 게 7이고 우리 실력은 3이긴 하지만 말이오. 아마 길드 시각장애인이 만들어도 서준의 사과라면 70% 정도는 흉내 낼 수 있을 거요.”

“그러다 믿으면 큰일 납니다. 가뜩이나 소민이 요리도 못하는데.”

“뭐?”

“클클클!!”

“하하하!!”

모두가 웃는 데 심각한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온 길의 두 셰프. 두 사람은 입을 이미 술을 전부 넘긴 후에도 입을 쩝쩝거렸다.

“이, 이런 술이라니···.”

“이전에도 맛있었는데, 이건 비교가 불가해요.”

“정말 대단하군요. 설마 사과로 이런 퀄리티의 술이 나올 줄이야.”

미식의 대가인 둘은 아무래도 놀라움을 넘어 충격에 빠진 듯했다. 두 사람이 김서준을 보며 말했다.

“이건 서둘러 팔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걸 안 파는 건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거예요!”

너무나도 진지한 두 사람의 말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서둘러 판매 준비할게요. 자, 그림 이제 본격적으로 식사 시작할까요?”

그렇게 말하며 김서준이 처음으로 백숙의 뚜껑을 열었다. 다른 테이블도 함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사과 향이 이번에는 솔향으로 전부 덧씌워지며 새로운 정취를 선사했다.

“무슨 아로마를 하는 거 같아요.”

“음식 뚜껑을 연 것뿐인데 장소가 바뀐 거 같네. 대박이다.”

그때 우노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이 냄새! 설마 서준! 송이버섯을 넣은 것이오?!!”

우노가 잔뜩 격양되어 물었다. 김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송이버섯은 각자 하나씩만 드셔야 합니다. 수량이 부족해서요.”

사람들은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식사가 시작된 후, 모두가 단번에 그 말을 이해했다.

솔향과 약재 향이 가득 베인 녹진하고 따뜻한 국물에 푹 익어 부드럽게 찢어지는 영계. 그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특별한 맛의 향연이 입안에서 펼쳐졌다.

하지만 더욱 놀라고 온 건 송이버섯이었다. 강백호가 말했다.

“놀랍군. 이렇게 좋은 송이라니.”

“그러니까요. 식감도 뛰어나고 버섯 육즙과 국물이 잘 배서 조화가 엄청나요.”

산해진미는 다 먹어봤다 자부하는 정현민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하나씩만 먹으라고 했는지, 왜 드워프들이 송이버섯을 조금이라도 더 큰 걸 먹기 위해 싸우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술도 신기하네요. 묘하게 잘 어울려요.”

“워낙 좋은 술이라 안주를 안 타는 거지. 대단하군.”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김서준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러나 김서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는 마지막에 있지.’

김서준은 모두가 놀랄 그때를 기대하며 천천히 식사를 음미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식사가 이어졌을 때.

“어? 이게 뭐야? 메시지 창?”

“너도? 나도 메시지 창이···.”

마침내 김서준의 서프라이즈 선물이 모두에게 도착했다.

“본격적인 훈련 직전, 대규모 전투에 앞서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헌터들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는 모두 같았다.

[신농이 요리한 축복받은 송이버섯 요리를 먹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습니다. (1회) - 힘 20%, 체력 20%, 마력 20% 영구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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