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08화 (108/139)

108. 최종 준비

금천면에서 약간 벗어난 야산의 중턱. 경찰통제선 뒤쪽 포털이 오랜만에 파란빛이 되었다.

“아직 인가?”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밖에서 대기하던 헌터들이 중얼거렸다.

“컹!”

헌터들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리노를 탄 김서준이 포털 밖으로 튀어나왔다. 뒤를 이어 우노, 도리, 정현민, 전소민과 각 길드의 엘리트 헌터들이 함께 빠져나왔다.

“끝입니다!”

마지막으로 뛰쳐나온 헌터가 소리쳤다. 김서준은 동시에 포털을 다시 봉인했다.

-파직.

스파크가 일어나며 포털은 붉을 색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만도 했다.

‘골렘에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처음 들어가자마자 골렘은 기다렸다는 듯 헌터들을 노렸다. 그 뒤로는 레이저 세례와 골렘의 거대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헌터들은 정찰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골렘의 공격을 피하는 데 신경을 써야만 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정현민이 말했다.

“모두 수고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전소민부터 헌터들도 수고한 서로를 챙겼다. 인사하는 사이 각 길드의 헌터들이 달려와 자기 길드 사람들을 챙겼다.

김서준은 미트루트 포션을 내어주며 상처를 치료할 수 있도록 배려하곤 무리를 빠져나왔다. 도리와 리노는 어느새 오리와 강아지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 뒤를 졸졸 따랐다.

“고생했어요.”

“클클. 강적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지.”

“어떤 거 같아요?”

김서준이 우노에게 물었다. 3번에 걸쳐 골렘을 자세히 관찰한 우노가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우리 삼 형제가 피해를 감수하면 이길 수 있었을 거요. 팔다리 한쪽 정도? 클클클.”

“그건 곤란한데요.”

“농담이오. 클클.”

우노가 호탕하게 웃었다.

“사실 골렘 자체는 평범하오. 자이언트 골렘인데 좀 강한 정도랄까. 문제는 옆에 붙은 정체불명의 꽃이오.”

김서준도 그렇게 생각했다. 10개의 꽃은 기계장치가 아닌 몬스터. 각자 판단하에 공격하다 보니, 10개의 무기와 10쌍의 눈이 있는 셈이었다.

“퇴치는 어렵지 않아 보였소. 망치 한 번이면 짓뭉개지겠지. 문제는 그 파괴력이오.”

엘린은 S급 수준의 쉴드 마법이 아니라면 막기 어려울 거라 장담했다. 마도구 중에 그만한 강도를 가진 방어구는 없다. 여기 있는 인원 중 엘린만 한 방어 스킬을 가진 이도 없었다.

‘엘린이 와도 해결이 안 돼. S급 마법은 쓰는 데도 오래 걸리고 사용한 채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까.’

다시 말하면 무려 10쌍의 눈을 피해 암습을 해야 하는 상황인 셈.

“인원이 늘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요. 피해는 감수해야만 할 거요.”

우노의 말에 도리도 리노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준은 헌터들을 바라봤다. 사정이 어떻든 저들은 모두 소중한 인력이자, 나라를 위해 헌신하러 온 인재들. 김서준은 그들 모두가 여기서 무사히 나가길 바랐다.

“흠···.”

“안은 어땠나?”

김서준이 고민하는 사이. 팔짱을 낀 강백호가 다가와 물었다.

“똑같습니다. 세 번째 보지만 지금은 딱히 대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김서준은 강백호를 바라봤다. 우노의 말에 따르면 강백호는 여전히 훈련 외에 다른 일에는 그 힘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우노가 몰아붙여 궁지까지 몰았을 때도 그랬다고 했지.’

강백호는 전력을 숨기지 않았다. 전소민과의 대련은 물론 정현민과의 모의 전투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6위가 3위를 상대로 압승이라니. 아무리 실적주의라지만, 역시 실력을 숨긴 거였어.’

그러나, 그 힘만은 사용하지 않았다. 하물며 망치의 종족 최강의 전사인 우노가 그를 궁지까지 몰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오해한 걸지도 모르겠소. 내가 본 그 남자는 지느니 그 힘을 썼을 법한 남자였거든.”

우노의 말대로였다. 결과적으로 그 전투에서 우노는 졌다.

우노의 포지션은 외국에서 잠적한 1세대 헌터 중 하나. 하지만 사라진 1위와 2위만큼 압도적인 무력의 사용자는 아니었다.

‘그럼 너무 큰 관심을 끌 테니까.’

그래서 져줬다. 하지만 강백호는 그 잠깐의 시간을 설욕하겠다는 듯 끊임없이 우노에게 대련을 요청했다.

‘우노가 덕분에 고생 중이지.’

김서준은 괜히 미안해 우노를 한번 봤다 다시 강백호를 바라봤다. 강백호가 낮게 신음했다.

“아쉽군. 골렘 같은 적에 나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아서 말이야.”

전소민은 바람으로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다. 정현민은 검기를 날릴 수 있다. 하지만, 무투파인 강백호는 원거리 공격이 전무 했다. 레이저 10개를 뚫고 다가가 주먹을 뻗는 건 너무 위험했다.

결국, 회의 끝에 강백호는 이번 전투에서 후방을 맡기로 했다.

‘어쩌면 그 힘을 드러내고 참여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건지. 아니면 정말 그 힘은 훈련만을 위한 힘인 건지 강백호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정석의 권리마저 포기하고.

‘차라리 다행이야.’

그림자의 힘을 쓴다는 사실은 자꾸만 강백호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확신을 주니 차라리 속이 편했다.

“아닙니다. 후방도 중요합니다. 오늘도 확인했습니다. 몬스터들은 지금 전부 광분해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더군요. 작전을 펼치려면 지원이 필수적일 겁니다.”

“흠. 알겠네.”

강백호가 아쉬워했다. 그러자 우노가 강백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잘 해보자고. 클클.”

강백호가 ‘자네나 잘 하게.’라며 중얼거렸다. 김서준은 그 모습을 보며 살짝 놀랐다.

‘남자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더니 저 나이에도 그런가.’

그리곤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

“수확이 제일 중요하다움! 여기서 잘못하면 농사 다 망하는 거다움!”

노움이 소리쳤다.

“알겠습니다움!”

“걱정하지 말라움!”

헌터들이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최근 노움의 말투는 헌터들 사이 유행이었다. 특히 젊고 어린 여자 헌터들이 노움의 말투를 좋아했다.

‘귀엽다고 했지.’

노움을 보고는 모태 애교니, 사랑 등이니 하는 별명도 붙였다. 물론 김서준은 그런 별명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따라 하지 말라움!”

노움이 소리쳤다. 그러자 여자 헌터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혀를 빼꼼 내민다. 그걸 본 몇몇 남자 헌터들이 얼굴을 붉힌다.

‘전쟁터에서도 연애는 한다더니.’

김서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어쨌든 나쁠 건 없었다. 큰일을 앞두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사기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손보다 큰 녀석들만 수확하세요. 움들 잘 체크 해드려!”

김서준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미트루트는 클수록 영양분이 풍부했다. 작은 미트루트는 포션의 순도와 효과를 낮출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움!”

모두가 대답하며 다시 한번 농사일을 시작했다.

“이제 끝이라니 아쉽네. 나름 재미가 붙었는데.”

“어쩔 수 없지. 이제 더는 강해질 수 없잖아.”

헌터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2달간의 농사 활동으로 이 넓은 대지에서 미트루트를 두 번 수확하는 동안, 헌터들은 강해졌다. 하지만 오늘로써 그것도 끝이었다.

[미트루트 작물의 효과를 최대로 받았습니다. 더 이상 능력이 오르지 않습니다.]

계속 능력이 오르는 김서준과 달리 헌터들은 이제 이런 메시지창이 나타났다고 했다.

“김서준 헌터 덕에 두 달 꿀 빨았으면 됐지.”

“맞아. 언제 이렇게 쉽고 빠르게 강해지겠냐. 이 정도만도 감사해.”

“그냥 아쉬워서 그러지. 뭔가 좋지 않았어? 묘하게 힐링도 되고.”

“맞아. 맨날 몬스터만 보다가 이렇게 평화롭게 보내니까, 뭔가 여유도 생기고 말이야.”

“난 이 기회에 정했다. 다음에 은퇴하면 무조건 귀농할 거다.”

헌터들이 아쉬워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김서준 역시 아쉬웠다.

‘미트루트 같은 다른 작물을 찾는다면 농가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고. 헌터들도 더 편하게 강해졌을 텐데.’

아니, 어쩌면 그런 걸 떠나서 알게 모르게 헌터들과 정도 든 거 같았다.

‘역시 떠나기 전에 만찬은 꼭 해드려야겠어. 안 해드리면 내가 아쉬울 거 같아.’

김서준은 준비해둔 메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금천면으로 오게?”

“금천면도 좋지만, 부모님 고향이었던···.”

“떠들지 말고 집중해라.”

한참 헌터들이 수다를 떨던 그때 무거운 목소리가 그들을 꾸짖었다.

“능력치가 오르지 않아도 수련이 될 수 있다.”

강백호는 그렇게 말하며 미트루트 한 뿌리를 통째로 들어 올렸다.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일 할 수 있도록 노력해라.”

-촥촥.

강백호의 손이 눈에 겨우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뿌리에서 떨어져 나온 미트 루트들이 휙휙 날아 순식간에 상자 안에 들어갔다.

“와···.”

헌터들 사이 감탄이 터져 나왔다.

‘진짜 수련을 하셨던 거구나. 매번 노움한테 혼나시더니.’

김서준이 놀라 노움을 바라봤다. 노움은 인정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발해라.”

그렇게 말한 강백호는 곧장 다음 미트루트로 향했다.

****

“멍멍!”

“구오!”

“음매~”

곰과 들개, 그리고 양보다 더 솜뭉치 같은 모습의 늑대와 양 떼가 뛰노는 특이한 목장 옆 공터.

우노와 도스, 그리고 트레스가 망치로 그 공터를 내려쳤다.

-쿵!

꽤 큰 소리와 진동에 양 떼가 놀란다. 삼 형제는 무시하고 작업을 이어갔다.

“다 됐군. 클클클.”

금세 금수산 정상에 또다시 돌로 된 탁자가 깔렸다. 옆으로는 바위로 만든 긴 의자도 설치됐다.

“돌판에 삼겹살 한 번 더 굽고 싶군. 클클클.”

“그것도 정말 맛있지.”

셋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오늘의 요리는 돌판 삼겹살이 아니었다.

“더 맛있게 잘 준비할게요. 세 분도 술 잘 준비 부탁드려요.”

김서준이 아쉬워하는 삼 형제에게 말했다. 그러자 세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도 심하군. 우리 사람에 가장 맛있는 애플 사이다를 완성했소. 분명 모두가 놀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맞소. 어쩌면 오늘은 요리보다 술이 더 잘 팔릴지도 모르겠소.”

삼 형제는 술에 대한 자부심을 마음껏 드러냈다. 역시 드워프는 든든했다. 김서준은 믿는다는 이야기를 남기며 가온 길로 들어왔다.

“이사님, 오셨군요!”

“오셨습니까.”

강하진 셰프와 신동원이 김서준을 반겼다. 가온 길은 김서준의 부탁으로 하루 휴점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픈형 주방에서 김서준을 맞이해야 했다.

김서준이 한 부탁 때문이었다.

“벌써 준비 시작하신 거예요?”

“물론입니다.”

“이사님 부탁인데 한시도 늦을 수 없죠.”

김서준이 주방으로 다가갔다. 주방에는 손질해야 할 생닭들이 산더미만큼 쌓여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많네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한식이 저희 전공인 게 맞는걸요. 저희가 하는 게 좋죠.”

“맞습니다. 그리고 취사병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서준은 헌터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하기로 했다. 이제 여름이기도 하고, 몸보신에는 역시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역시 거의 100인분을 준비하려니 양이 많네.’

일은 자신이 벌이고 다른 사람들만 고생하게 할 수는 없는 일. 게다가 매번 고맙다며 돈조차 받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김서준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말했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쉬셔도 되는데···.”

두 사람은 적당히 말리면서도 주방에 김서준이 들어오는 걸 막지는 않았다. 김서준의 요리 실력에 대해 이미 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닭 한번 제대로 잡아보시죠!”

김서준은 식칼을 쥐어 들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