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07화 (107/139)

107. 의심

“크. 좋다.”

한밤의 금천온천 안에 기분 좋은 탄성이 울려 퍼졌다. 탕에 몸을 담군 드워프 삼 형제가 저마다의 감탄을 뱉는 중이었다.

“트레스. 정말 대단하지 않나? 몸을 담근 것만으로 피로가 싹 가시는군. 이것도 연구해서 벨리르 대륙에 가져가야 하지 않겠어?”

“우노, 이건 신농만이 자연에 허락받아 얻은 보고야. 연구로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런가? 아쉽군. 이렇게 물 안에만 있어도 근육이 불끈불끈하고 단단해지는 경험은 귀한데.”

“온천욕으로 피로와 건강, 거기에 육체까지 잡을 수 있는 온천은 유일무이하긴 하지. 클클.”

“신농 만난 덕에 호사를 잔뜩 부리네. 클클.”

드워프들은 탕에 들어올 때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운동만큼이나 온천을 가까이하는 드워프들은 이 온천의 진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좋다움···.”

“맞고-블.”

“멍!”

물론 온천욕에 그렇게 진심이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김서준의 온천은 만족도가 높았다.

비단 이들뿐 아니라, 헌터들마저 능력에 상관없이 온천욕을 더 즐기고 싶어 요청할 정도였다.

“..후.”

김서준은 모두가 즐거워하는 탕 가운데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

물 안에서의 명상. 이건 그 나름에 특색이 있었다. 단순히 정신을 맑게 하는 걸 넘어 새로운 공간으로 자신을 넣어버리는 듯한 기분. 거기에 증기에 섞인 박하 향은 머릿속을 청명하게 만들었다.

세계수나 도리와의 명상이 마음을 고요히 만든다면, 물 안에서의 명상은 그보다는 가볍게 여행을 다녀온 후의 마음 상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김서준이 오늘 명상한 이유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몸 안에 묘한 감각이 느껴졌지.’

물 튀기는 소리.

귀여운 녀석들이 노는 소리.

드워프 삼 형제의 호탕한 웃음소리.

온천수가 피부에 닿는 감각.

밖에서 나는 풀벌레 소리.

박하 향 사이 묻어나는 자연의 냄새.

그 모든 감각이 열렸다가 서서히 멀어지고 몸 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일전에 김서준은 몸 안에 꿈틀거리는 마나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평소의 실낱같은 마나보다도 훨씬 더 선명하게.’

김서준은 그 감각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후.

-클클클.

-첨벙첨벙.

-쉬익.

주변의 소리가 아득히 멀게 느껴질 때 다시 한번 몸 안에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집중하자.’

김서준은 그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미세한 꿈틀거림이 좀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실처럼 가늘고 긴 마나의 움직임이 평소라면, 이건 묵직한 기운이 단전 아래서 꿈틀거리는 기분.

‘이게 도리가 말한 내 마나인가?’

김서준은 그걸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 힘은 반응하지 않는다.

-착.

그 순간 누군가 김서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김서준은 고개를 돌리고 서서히 눈을 떴다. 자신을 바라보는 도리의 모습이 보였다.

도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훌륭합니다만, 아직은 오래 유지하기 힘든 단계입니다. 천천히 하세요.]

“오래?”

김서준이 탕 옆에 둔 휴대폰을 바라봤다. 검은 화면 위로 떠 있는 시간이 벌써 30분이 지나있었다.

[심상 수련은 시간 감각마저 무디게 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길어지면 자칫 주화입마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도리의 당부에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클클. 이제 끝났나 보군.”

김서준이 눈을 뜬 걸 본 우노가 말했다. 그러자 도스와 트레스도 김서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의 이야기 주제는 술이었다.

“완성했소. 우리가 만든 사과 사이다(Cider) 중 최고의 걸작이오. 워낙 바쁜 듯하여 집에다 가져다 두었소.”

“감사합니다.”

“엘린 공이 먼저 다 마실지 모르니 조심하시오. 클클.”

우노의 말에 드워프들이 웃었다. 아무래도 드워프들의 개그 코드인 듯했다.

“이제 가온 길에도 새 제품으로 납품해야겠네요.”

가온 길에는 처음에 만들었던 가벼운 사과 사이다가 납품 중이었다. 알코올과 무 알코올 버전 모두 인기가 많았지만, 드워프들은 대충 만든 버전이라며 파는 게 부끄럽다고 했었다.

‘나와 셰프들의 요청 때문에 억지로 팔던 거였지.’

그때와 달리 트레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서둘러 온 세상이 이 맛을 봤으면 좋겠군. 클클클.”

“맞소. 우리도 매일 아침 한잔하는데 아주 기가 막히오. 닭가슴살에 사이다 한 잔이면 아침 식사로는 이만한 게 없소. 클클.”

아침마다 술을 마신다는 것도 놀랍지만, 닭가슴살의 술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조합일까.

‘아니 애초에 술은 운동의 적이 아니었나?’

김서준의 미심쩍은 눈초리에 우노가 말했다.

“서준, 걱정하지 마시오. 운동을 더 빡세게 하면 되오! 클클클!!”

“클클클!”

드워프들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 네. 하하···.”

그들다운 생각에 김서준은 멋쩍은 미소로 화답했다.

“아, 그나저나 대련 훈련은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김서준의 말에 우노가 물에 젖은 수염을 매만졌다.

“괜찮았소. 괜찮았는데 걸리는 점이 있었소.”

“걸리는 점이요?”

“강백호라는 남자. 그 남자는 뭔가 숨기는 있는 거 같소.”

김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숨겨요?”

“훈련 장소로 가는 방법부터 심상치 않았소. 그의 발밑에 있던 그림자가 사방으로 뻗더니 모두를 빨아드렸지.”

“그림자요···?”

그림자라는 말에 김서준의 눈썹이 들썩였다. 일전에 봤던 그 날의 장면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렇소. 그림자라는 수단이 이상한 거 아니오. 다만 그는 그게 자신이 가진 스킬이라고 했소. 엘린의 공방처럼 자신만의 공간으로 가는 스킬.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았소. 그건 고유 결계였소.”

“고유 결계요?”

김서준은 고유 결계라는 표현이 생소했다. 사실 헌터들은 쓰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러자 트레스가 설명했다.

“자신의 힘을 200% 이상 발휘할 수 있는 공간. 그걸 고유 결계라 하오.”

“이상하네요. 권왕님은 전형적인 무투파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이상하게 본 것도 그 점이었소. 그 스킬 말고는 전부 몸을 강화하는 스킬뿐이었소. 더군다나 사용하는 힘의 성질도 달랐고. 도리, 안 그렇소?”

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긍정의 의미.

[제가 보기에는 그 힘을 숨기고 싸우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운. 묘하게 기분 나쁜 힘이었습니다.]

도리가 덧붙였다. 그러자 우노도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하긴 그런 느낌도 있었지. 똑같지는 않지만, 마족의 마나와 질이 비슷한 느낌도 있었다.”

“흠···.”

헌터에게 힘은 능력이지만, 무기이기도 했다.

‘지금의 동료가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게 이 판이다 보니, 무기를 숨기는 게 흔하지 않은 건 아니긴 해.’

하지만, 강백호지 않는가. 1세대 헌터인 강백호에 대해서는 전부 다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숨겨 놓은 무기가 있었다?’

더군다나 꺼림칙한 성질의 마나로. 둘의 말대로 뭔가 찝찝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둘이 지속적으로 참가하면서 봐주세요. 가진 힘이 어떤 힘인지. 정말 힘을 숨기는지.”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

헌터들의 훈련을 돕는 건, 천산군을 헌터의 성지이자 관광도시로 만들고 전체 헌터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었다.

‘이제는 사비오 열매를 위해서도 더 중요해졌지.’

하지만, 그만큼이나 김서준에게 중요한 일이 있었다.

금호 영농조합을 운영하는 일도 중요했다. 많은 사람의 생계가 달린 일인 만큼 영농조합 운영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마을 운영 사업에는 이상이 없고-블.”

그래서 김서준은 일주일에 최소 3번은 고블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토종작물은 시장 반응이 좋아서 점점 주문량이 늘고 있고-블. 박보현 팀장이 교육한 젊은 농부들도 슬슬 농사를 시작하기로 했고-블.”

“잘했네. 나한테 필요한 건 없데?”

“토종 쌀 문제에 대한 농림부의 요청이 있었고-블. 임종철 어르신이 일단 보류해놨고-블.”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이 사업의 수완을 발휘했다면 임종철은 농사 관련된 일을 전반적으로 담당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일도 하고 사람도 부리니 재밌다고 하셨지.’

김서준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임종철이 나와 일을 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월급조차 받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돈을 쥐여 드려야 할 정도였다.

‘참 고마운 분이야.’

어쨌든 임종철이 저렇게 판단했다면 아직 다른 작물 관리도 부족하다고 판단한 건가. 김서준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고블이 말했다.

“토종작물도 그렇지만, 어르신께서는 신농님이 먼저 재배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고 하셨고-블.”

“아, 그러셨나.”

하긴, 얼마 전에 무리하지 말라며 문자도 하시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걱정을 끼친 듯했다.

“어르신께는 난 괜찮으니까 여건만 되면 바로 협의 준비해달라고 말씀드려.”

농림부의 제안이자 대상 작물이 우리와 가장 친숙한 쌀이 아니던가.

‘잘만하면 순식간에 농촌 대부분을 터전으로 만들 수 있겠네.’

그렇게만 되면 적어도 대한민국의 20% 이상은 게이트로부터 청정지역이 되리라.

“알겠고-블. 다음은 관광인 고-블! 최근에 노움이 바쁘다 보니 아쉬워하는 고객들이 있고-블! 하지만 엘린 공의 너튜브와 SNS가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이 많아지고 있고-블!”

한번 인터넷에 이름을 알린 엘린은 걷잡을 수 없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회사 광고는 물론 방송사에서 방송 섭외 요청이 들어올 정도였다.

‘엘린이 대외활동을 거절해서 다행이지. 만약 다 나갔으면 아마 농부가 아니라 매니저가 됐을 거야.’

김서준은 매니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 웃었다. 고블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더니 하던 말을 이어갔다.

“이런 호황을 이어가려면 노움을 대신할 게 필요한 고-블. 그래서 농사 쇼를 일찍 런칭할 것을 제안하는 고-블!”

일리가 있었다. 드론과 도리는 몰라도 목장에서 하는 농사 쇼는 일호 가족과 반달이면 충분히 가능했다.

‘리노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겠지?’

리노에게 말한다면 좀 더 서둘러 준비를 완료할 수 있을 듯했다.

“그래. 슬슬 준비하자.”

고블은 피드백과 결제받은 사항에 대해 꼼꼼히 메모했다.

“다음은 주류에 대한 문제인 고-블.”

그리고는 서류철을 바꿔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갔다. 과연 수완 좋은 고블답게 어디 하나 빈틈없이 꼼꼼한 보고였다.

김서준과 고블의 브리핑은 장장 2시간에 걸쳐 마지막 안건에 도착했다. 오늘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조사 결과가 어때?”

김서준은 장인섭 사단을 다시 모을 생각이었다. 장인섭이 안타까운 병을 얻고, 청룡 길드마저 출렁이자 장인섭 사단은 박살이 났다.

팀은 모두 흩어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김서준은 그들을 다시 모을 셈이었다.

‘장인님이 돌아오면 그들과 일하는 게 가장 편할 테니까.’

김서준의 물음을 들은 고블이 오늘 처음으로 난색을 보였다.

“...위치는 전부 찾았습니다.”

“근데?”

“근데, 모두 우리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뭐?”

김서준이 화들짝 놀랐다.

장인섭이 돌아오면 다시 함께하지 않겠냐는 제안. 김서준은 당연히 받아줄 줄 알았다. 그러나 모두가 거절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추측되는 일은 있습니다.”

“그게 뭔데?”

“그들 모두가 한 회사와 계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 측에서 막은 거 같습니다.”

한 회사에 모두 갔다는 건 신기했지만 그럴 수 있었다. 하나하나 대단한 일력들이었고 본래 한팀이었던 장인들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다들 대단한 실력을 갖췄으니 사측에서 막은 것도 이해가 되고.’

하지만.

“하나도 안 나왔다고? 장인님의 이름을 듣고도?”

“네.”

“얼마나 좋은 회사길래. 어디랑 계약한 거야?”

“MP사입니다.”

고블의 말에 김서준의 눈썹이 꿈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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