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다짐
바닥을 덮은 그림자는 늪처럼 변하더니 헌터들을 집어삼켰다. 이미 공지를 들은 헌터들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현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신기한 스킬이군.”
우노와 도리만이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다른 사람들을 따라 얌전히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여긴, 도장···?”
그림자를 통과하자마자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정현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렁물렁한 바닥은 도장을 연상시켰다. 그런데 공간이 넓다. 90명이 넘는 인원이 서 있는데도 여유가 넘쳤다.
위로는 관중석도 보였다. 정현민은 어릴 적 추억 속에서 이 장소를 기억해냈다.
“...국기원인가?”
어렸을 때, 품 띠를 따기 위해 왔던 국기원. 그곳이 여기와 같은 형태였다.
“공간 이동이라니. 이런 스킬도 쓰실 수 있는 겁니까?”
정현민이 놀라운 듯 물렀다. 권왕이라 불리는 강백호는 무투파의 대명사였다. 그런 강백호가 공간 이동이라니.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어쩌면 여태 힘을 숨긴 것뿐 아니라 능력도 숨기신 건가?’
공식 랭킹은 6위지만, 그건 강백호가 현장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었다. 실적이 없어 책정된 순위. 실제로는 아예 차원이 달랐던 1위와 2위를 제외하면 최강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힘뿐 아니라 능력까지 포함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어쩌면 사라진 1위, 2위만큼의 힘을 가졌을지도···.’
정현민을 본 강백호가 고개를 저었다.
“공간 이동이라고 오해 했나 보군.”
“네?”
“이건 공간 이동 스킬이 아니야. 내 전용 스킬은 ‘수련의 장’일세.”
“수련의 장이요?”
“나만의 수련을 위한 장소로 이동하는 스킬이지. 언제 어디에 있든 여기서 수련할 수 있는 스킬이지.”
“아···.”
정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시는 거 같지는 않네. 그러고 보니 저 창밖으로 공간이 전부 어둡네.’
대낮에 저런 어둠이 드리웠는데, 내부는 빛 하나 없이 밝다. 강백호의 말이 맞는 듯했다.
‘근데 뭔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지?’
정현민 특유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냐. 어차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적은 강백호가 아니다. 강백호에 대해 의심하고 조사해야 뭐가 남겠는가. 정현민은 의심을 뒤로 미루고 당장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럼 바로 훈련 시작하겠습니다.”
“그러게.”
정현민은 강백호의 허락을 받은 후, 소리쳤다.
“사전에 짜드린 데로 5:5 전투 먼저 연습 먼저 시작합니다!”
정현민이 소리치자 헌터들은 조를 찾고 대련을 준비했다. 다들 수준이 높은 데다 생사의 결계를 숱하게 넘어 훈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훈련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현민은 주변을 돌며 조금씩 조언을 하면 되는 정도였다.
“이거 진짜 내 몸 맞아?”
“모의 전투를 해 보니까 더 확 체감되는데?”
“몸이 가벼워지고 강해졌어. 이러다 S급까지 강해지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 하하하.”
헌터들은 농사와 온천으로 강해진 능력에 감탄했다. 메시지창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건 완전히 달랐다.
“진짜 긴가민가했는데, 김서준 헌터의 말이 맞았어.”
“이제 한 달 되어가는 데 이정도라니. 김서준 헌터는 이렇게 꿀 빨면서 강해지고 있었던 건가?”
“한 1년은 금호 영농조합의 농부로 들어가는 것도 좋겠어.”
헌터들 사이에 농담 섞인 칭찬이 흘러나왔다.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몸이 근질거렸다. 얼른 강해진 능력을 실제로 사용해보고 싶었다.
“자, 그럼 우리도 한번 시작해보는 게 어떻소.”
마치 정현민의 말을 읽은 듯, 망치를 든 거한이 다가와 정현민에게 말했다.
“그럴까요?”
정현민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러나 우노의 시선은 그 눈으로 향하지 않았다. 정현민의 옆,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이쪽에 흥미가 좀 있소만. 어떻게 한번 무기를 섞어 보시겠소?”
강백호가 매서운 눈초리로 우노를 쏘아보았다. 우노는 넉살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정현민과 도리는 느낄 수 있었다.
둘 사이 벌써 엄청난 기 싸움이 시작됐다는 걸.
****
전소민은 훈련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김서준과 함께 장인섭이 머무는 요양원을 찾았다.
‘괜찮겠지?’
전소민은 김서준을 바라봤다. 꽤 덤덤한 얼굴.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난히 말이 없는 게 속이 많이 복잡한 듯했다.
전소민은 애써 말을 걸지 않고, 바로 정인섭의 방으로 김서준을 데려갔다. 한참 복도를 지나 마주한 문 앞.
전소민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여기야.”
“들어가자.”
김서준은 덤덤하게 말했다.
-똑똑.
전소민이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오세요.’하고 말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문이 옆으로 열렸다. 깔끔한 방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병실과 호텔 그 사이 어딘가의 느낌이 나는 병실 끝, 커다란 창으로 햇볕이 들어왔다.
“아···.”
김서준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그 환한 햇볕 아래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늙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기에.
“...”
“오셨어요?”
김서준이 무어라 말하기 전, 옆에 있던 요양사가 먼저 전소민을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옆에는···.”
“김서준입니다.”
김서준이 인사하자 요양사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티비에서 봤어요. 직접 보니까 더 잘생기셨네요.”
요양사는 옆에 미동도 하지 않는 어르신과 달리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김서준은 그런 요양사가 맘에 들었다.
“자, 여기 앉으세요.”
“그 전에···.”
“아, 그래요. 이리 오세요.”
김서준과 전소민은 요양사의 말을 따라 장인섭에게 다가갔다. 요양사는 장인섭에 귀에 조용히 말했다.
“어르신, 손님 찾아왔어요. 누가 왔는지 좀 봐봐요.”
장인섭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
얼굴을 마주한 순간,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과거 장인섭의 얼굴에는 고집과 신념이 가득했다. 그런데 지금의 얼굴은 어떤가. 초점 없는 눈 아래, 주름이 깊은 얼굴에서는 아무런 고집도 신념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모든 혼이 빠져버린 듯한 멍한 모습에 가슴 한편이 쓰릴 정도.
“아저씨.”
김서준이 어렵게 입을 뗐다.
장인섭은 대답이 없었다. 잠시 김서준을 그 탁한 눈동자로 바라볼 뿐이었다. 김서준은 저도 모르게 장인섭의 손을 잡았다. 장인섭은 그마저도 반응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어떻게 된 거예요?”
김서준이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러자 전소민이 낮게 말했다.
“요양사님···.”
“네. 우리 나가서 이야기해요.”
장인섭은 평생을 장인으로 살았다. 각성 전에도 대장간을 운영했고, 대장장이로 각성했다. 쇠를 다루는 일은 그에게 직(職)을 넘어 업(業)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매일 아침 실랑이를 벌여야 했어요. 매번 대장간으로 돌아가신다고 난리를 피우셨거든.”
장인섭의 치매 초기 증상은 기억 회기였다고 했다. 평생을 저리 살아온 장인섭이 아침마다 대장간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아니, 오히려 더 맹렬히 대장간으로 돌아가길 원하셨겠지. 젊었을 땐 지금보다 더 지독하셨다고 하니까.’
요양사는 그때를 떠올리듯 살짝 위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막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각성하셨다 보니..”
직업을 불문하고 각성자의 육체는 일반인보다 더 뛰어나다. 설령 그게 대장장이더라도.
‘ 어르신은 그중에서도 더 몸이 튼튼한 편이셨지.’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꾀를 낸 게 가짜 깁스였어요.”
“가짜 깁스요···?”
김서준의 물음에 옆에 있던 전소민이 설명을 덧붙였다.
“매번 대장간 이야기를 할 때마다 팔이 부러져 쉬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래야 피차 어려움 없이 아저씨를 막을 수 있었으니까.”
“맞아요. 팔에 쌓인 깁스를 단단하게 고정해서 팔이 부러져 치료받는 척을 한 거죠.”
치매는 결국 뇌 기능의 저하. 기억력, 언어능력, 판단력 뿐만 아니라 인지력까지. 모든 게 일반인의 밑으로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장인섭은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았다고 했다.
“근데 원래 저 정도는 아니시지 않으셨어요? 아예 말도 안 하시고 어딘가 혼이 빠진 거처럼 보이던데···.”
전소민이 의아하다는 듯 요양사에게 물었다.
“맞아요. 원래 그렇지는 않았죠. 근데 이번 달 들어서 그러시더라고요. 그냥 아무 말도 하질 않으세요. 지금은 깁스도 이제 풀었어요.”
“...의사는 뭐라고 합니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치매가 워낙 증상이 다양하다 보니 일어날 수 있는 증상 중 하나라고 하더라고요.”
김서준은 탁자 아래 주먹을 꾹 쥐었다.
장인의 삶에서 일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저 반복되는 거짓말이 서서히 안에 있는 혼까지 말려 죽인 걸 아닐까.
‘젠장!’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치매는 그런 방식의 병이 아니니까. 하지만, 김서준은 괜히 그런 생각에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그건 요양사들에 대한 화가 아니었다.
‘왜 아저씨에게 이런 일이!’
좋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하늘의 야속함, 그리고 너무 늦게 알아버린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제가 더 잘 보필 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녜요. 요양사님은 항상 열심히 해주시고 계세요.”
요양사가 고개를 숙이자 전소민이 황급히 달랬다.
장인섭은 가족이 없었다. 정확히는 모두 떠났다. 독불장군에 일이 최우선이던 그의 성격을 가족들은 견디지 못했다. 치매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상황은 같았다.
‘그걸 소민이가 챙긴 거라고 했지. 그때 요양사님도 직접 뽑았다고 했고.’
전소민 역시 김서준처럼 장인섭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존중했다. 그랬기에 분명 심사숙고해서 요양사를 뽑았을 터.
거기에 오늘 보여준 정중한 태도와 말투만 봐도 얼마나 요양사가 장인섭을 잘 돌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요양사님의 탓을 할 순 없어.’
그보다는 빠른 해결책이 필요했다.
김서준은 굳은 표정을 겨우 풀었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민이 말이 맞아요. 요양사님의 잘못도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지금처럼만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서준은 그렇게 말한 후, 남은 커피를 전부 들이켰다. 그리곤 인사와 함께 자리를 일어났다.
“...정말 벌써 가려고?”
함께 인사를 마치고 나온 전소민이 김서준에게 물었다. 김서준의 일말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응.”
“오랜만에 뵈는 건데, 그래도 더 보고 가지.”
“아냐. 이정도면 충분해. 어떤 상황인지 봤으니까. 그리고···.”
주먹을 움켜쥔 김서준이 입술을 깨물곤 말했다.
“저건 내가 보고 싶은 아저씨의 모습이 아니니까. 아저씨도 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거고. 너도 기억하지? 아저씨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물론이지. 그날을 어떻게 잊겠어.”
모두가 겁에 질려 도망간 현장.
정의감으로 겨우 두려움을 누리고 검을 들었던 그 날. 정인섭은 두 사람에게 무기를 주며 말했다.
“여기서 죽기는 아까운 녀석들이니 빌려주마. 대신 내가 끝까지 감시해주지. 너희가 1세대의 그들만큼 정말로 영웅으로 살아가는지.”
그 말을 했던 정인섭의 눈을 김서준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아저씨의 무기가 우리를 구했듯 이번에는 우리가 아저씨를 구해드릴 차례야.”
김서준은 결의를 다지며 덧붙였다.
“그리고 보여드리자. 그들만큼 영웅의 길을 걷는 우리 모습을.”
전소민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