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01화 (101/139)

101. 미트루트 포션

“숲?”

포털에 처음 들어왔을 때.

김서준과 노을, 그리고 일행들을 맞이한 건 거대한 규모의 숲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숲을 마주한 일행들이 놀람도 잠시.

“지진?”

“아니에요. 이 마나는.. 골렘이에요!”

엘린이 소리쳤다. 동시에 저 멀리서 노란 빛이 하늘을 향해 뿜어졌다. 무시무시한 위세를 떨치는 광선을 본 김서준은 소리쳤다.

“리노!”

“컹!”

리노는 본 모습으로 변하자마자 김서준을 위에 태웠다. 노을이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저도요!”

엘린이 부유 마법을 이용해 김서준의 뒤에 올라탔다.

“먼저 갈게요! 리노 전속력으로 달려!”

김서준의 명령에 리노는 마치 바람이 된 것처럼 빠르게 숲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진동은 점점 커졌다.

울창한 숲 위로는 골렘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거대한 크기. 머리 한가운데 푸른 보석은 이정표가 되었다.

“도망쳐!”

“피해!”

“으악!”

진원지에 다가설수록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김서준은 조급해졌다.

“컹!”

리노가 울부짖었다. 냄새로 전소민을 먼저 찾은 것.

“거기로 가자!”

김서준은 지체 없이 리노를 그리로 몰았다. 엘린은 그사이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

-지잉!

레이저가 리노의 옆을 스쳤다. 옆에 있는 식물은 모두 까만 재가 되어 바스라져 내렸다. 리노는 퍼붓는 레이저를 요리조리 피해 달렸다.

“저기!”

엘린이 소리쳤다. 전소민이 보였다. 그런데 그 옆에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위로 레이저가 쏟아졌다.

“리노!”

리노가 땅을 박찼다. 동시에 엘린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쉴드!”

쏟아지던 레이저가 허공에서 가로막혔다. 모두가 무사한 걸 확인한 김서준은 옆에 서있는 전소민에게 소리쳤다.

“전소민! 괜찮아?!”

눈시울을 붉힌 채 입술을 달싹거리던 전소민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래도 긴장이 풀린 모양.

“서, 서준아 네가 어떻게...”

“정신 차리고 일어나! 자세한 이야기는 나가서 하고 일단 모두 데리고 도망쳐!”

김서준이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전소민이 몸을 일으켰다. 거친 바람이 일더니 이내 직선으로 길이 열렸다.

“너는?”

“우리도 도망칠 거야.”

“알겠어! 모두 서둘러요!”

전소민이 만들 길로 헌터들이 달렸다. 전소민 역시 그들의 앞에서 길을 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서준이 엘린을 바라봤다. 엘린은 고개를 저었다. 처리가 불가능하단 이야기.

“드워프들이 오더라도 쉽지 않아요. 그냥 도망치는 게 좋겠어요.”

예상했던 바다. 결계를 마주했을 때부터 최소 S급 몬스터가 안에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김서준이 마련한 대책은 아주 단순했다.

‘도망치고 다시 결계를 닫는다.’

안내 메시지를 본 순간 김서준은 직감했다.

‘열 수 있는 만큼 닫는 것도 가능해.’

그리고 그 직감은 들어맞았다. 이미 밖에서 한 차례 결계를 열고 닫기를 해보고 왔다.

“말도 안 돼요. 어떻게 남의 결계를 이렇게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는 거죠?”

“신기하오. 이런건 처음보는 군.”

트레스와 엘린은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며 놀랬다. 그리고 김서준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이미 계획을 알고 있던 엘린이 말했다.

“저희도 얼른 도망쳐요.”

김서준은 고민했다. 저 광선이 문제였다. 원래 사상자는 등을 돌릴 떄 가장 많이 생기는 법. 이대로면 저 광선에 많은 사상자가 나올 듯했다.

‘어쩔 수 없어.’

김서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리.”

김서준의 부름에 하얀색과 검정색, 음양을 상징하는 문양의 도포를 입은 은발의 남자가 나타났다.

노움이 농사가 전공이라면 도리는 본래 전.

‘내 능력이 부족해서 아직 제약이 걸려있다고 했지만 시간은 벌 수 있겠지.’

물론 친구와도 같은 정령들에게 전투를 시킨다는 게 맘이 쓰였지만, 지금으로써는 어쩔 수 없었다.

“도리, 할 수 있겠지?”

[걱정 마십시오. 신농이시여.]

“절대 무리하지 말고 안 다칠 정도로만 조절해.”

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곧장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거대한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콰과광!

거친 바람이 골렘을 휘몰아쳤다. 소리에 비해 골렘은 멀쩡한 모습. 하지만 의도대로 골렘의 온 신경이 도리에게 향했다. 노란 광선 역시 공중으로 쏘아졌다.

“이 사이에 얼른 대피하죠.”

김서준과 엘린은 리노를 타고 주변을 한번 둘러 모두 대피한 걸 확인했다. 가볍게 확인을 마친 후 대피하자 곧 우노를 볼 수 있었다.

“망치의 힘이여!”

우노가 땅을 내려치자 두꺼운 벽이 생성됐다.

-쾅!

바닥으로 향한 광선 하나를 두꺼운 벽이 막아냈다.

“서둘러 피하시오!”

우노가 소리치면서 골렘을 바라봤다. 김서준이 지시해놓은 데로 드워프들과 노을, 그리고 함께 들어온 에픽과 황룡의 길드원은 전력으로 대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맘 같아선 저 돌대가리에게 망치 맛을 먹여주고 싶군!”

“우노, 일단은 구조가 먼저야. 전투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잖아.”

“우노, 맞아. 지금은 서준의 지시대로 하자고.”

다행히도 도스와 트레스가 우노를 잘 타이르고 있었다. 김서준은 드워프와 일행들에게도 철수 명령을 내렸다.

****

“헉헉...”

“살았군!”

“다들 괜찮으십니까!”

“길드장님!”

겨우 포털을 빠져나온 길드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룡과 에픽의 길드원들도 길드장과의 재회에 열렬히 환호했다.

[결계를 봉인합니다.]

모두가 나온 걸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나온 김서준은 다시 결계를 닫았다. 포털은 다시 붉은색으로 돌아갔다.

“고맙군.”

“덕분에 살았습니다.”

강백호와 정현민이 김서준을 찾아와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뒤로는 함께 온 길드원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모두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너 아니었으면 모두 큰일 났을 거야. 정말 고마워.”

“맞아요. 서준 씨. 정말 고생하셨어요.”

전소민과 노을도 나서서 김서준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도대체 저걸 어떻게 연거요?”

황룡 길드의 장이자 권왕, 강백호가 하얗게 샌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내가 헌터 질을 벌써 수십 년 했지만 닫힌 포털을 열고 들어오는 능력은 미국이 가진 아티펙트 말고는 본적이 없는데, 그게 본인 능력이오?”

강백호가 그렇게 말하며 김서준의 일행을 바라봤다. 망치를 든 남자들, 금발의 미녀까지. 하나하나 가늠이 되지 않는 강자들이었다.

‘거기에 포털을 여는 능력까지. 바이올렛 호퍼를 막을 때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뭔가 이상해.’

강백호에 말에 정현민이 덧붙혔다.

“맞아요. 저는 서준 씨가 정령 소환하는 정도의 능력만 있는 줄 알았는데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몰라요?”

“결계에 다가가니 결계를 해제하겠다는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습니다.”

“그럼 닫은 것도...”

“네. 그런 메시지가 나타났습니다.”

정현민뿐 아니라 전소민을 비롯한 모든 허터들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신기하네요.”

“그러게.”

그 순간 강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을 알려줄 순 없다는 건가. 뭐 좋네. 목숨을 구호 받은 처지에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지. 여하튼 이번 일은 고마웠네.”

“어르신, 그게 아니라...”

“아냐. 괜찮아.”

김서준의 말을 끊은 강백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수 있지. 능력은 곧 무기인데 쉽게 말할 수 없는 법이지. 이번 일에 대한 감사와 보상은 따로 보내겠네. 난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군. 2주간 제대로 먹은 게 없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말이야. 마무리는 여기 이 친구랑 하게.”

강백호는 차가운 인상의 남자를 대리인으로 두고 자리를 벗어났다. 김서준은 무어라 말하려다 말기로 했다.

“저는 서준 씨의 말을 믿습니다. 저희가 정말 운이 좋았네요.”

순간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고 정현민이 말했다.

“맞아. 이유야 나중에 알아보면 되지. 어르신이 지금은 피곤하셔서 그럴꺼야.”

“아냐. 괜찮아.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야?”

전소민과 정현민은 안에서 2주 동안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크게 특별할 건 없었다.

‘보스 룸에 들어갔고 던전이 변형됐다. 딱 생각한 그대로네.’

단지 변형된 지형의 특성은 이상했다.

“몬스터 종류도 다양하고 보스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숲은 끝을 모를 정도로 컸다라. 진짜 이상한 일이긴 하네요.”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어요. 어떻게 된 건지.”

“그래도 훈련은 많이 됐죠. 다양하고 특이한 몬스터를 많이 만나서...”

전소민이 말끝을 흐렸다.

‘이상하긴 하네.’

그때 노을이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조사할 때 이야기하고 일단 길드원들부터 챙기세요. 구급차도 불러놨으니까 필요하면 요청하시고요.”

노을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가려는 찰나, 김서준이 둘을 불렀다.

“잠시만요. 제가 드릴 게 있어요.”

김서준은 아공간에서 상자를 꺼냈다. 상자안에는 붉은 액체가 든 약병이 가득했다.

“포션이라면 우린 괜찮아. 아직 챙겨온 포션이 있어.”

“저희도 챙겨온 게 좀 있습니다. 벌써 많은 신세를 졌는데 더 질 순 없죠. 그리고...”

정현민이 길드원들을 보며 말했다.

“부상자도 있지만, 실은 탈진한 사람이 더 많거든요. 아마 포션보다는 포도당 수액 한 팩 맞고 쉬는 게 더 효과가 클 겁니다.”

정현민과 전소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겁니다. 저희가 직접 만든 특제 포션입니다.”

“특제 포션이요?”

“저희 마을에서 나는 미트루트라는 식물로 만든 포션입니다. 상처 회복뿐 아니라 원기 회복에도 효과가 좋습니다. 걱정되시면 감정 스킬을 사용해보셔도 됩니다.”

김서준의 말에 두 사람이 잠시 넋이 나간 모습. 김서준은 그사이 웃으며 상자 하나를 더 꺼냈다.

“양은 충분하니 아낌없이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온몸 여기저기 헌터슈트가 찢기고 상처를 드러낸 남자는 축 늘어져 쓰러져 있었다. 남자의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하...”

“좀 괜찮아?”

긴장이 풀리고 온몸에 힘이 풀린 남자는 동료의 말에 ‘어...’하는 신음소리 비슷한 대답만 할 뿐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남자에게 동료가 약병을 입에 가져갔다.

“으....”

신음과 함께 남자의 입으로 붉은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채소 주스 같은 맛이 입안에 퍼진다. 맘 같아선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지만, 힘이 빠진 육체는 입술부터 흘러들어오는 액체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옆으로 질질 흘려버렸다.

“어때?”

동료는 액체를 입안에 흘려보내는 걸 멈추고 남자에게 물었다. 그때였다. 몸에서 은은한 초록빛이 일더니 남자의 몸 안에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이럴 수가..”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여기저기 눈에 보이던 상처들이 아물었다. 몸 어딘가에서부터 힘이 솟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 포션 뭐야?”

“김서준 헌터가 직접 만든 포션이라는 데.”

남자는 들고 있던 포션을 받아 들었다. 그리곤 남은 붉은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

남자의 눈이 휘동그래졌다. 완전히 풀려버렸던 근육이 다시 단단해지고 몸 안에 활력이 넘쳤다. 여기저기 쑤시던 통증도 단숨에 날아갔다.

건강한 맛만큼이나 건강해진 기분이었다.

“대단해! 이게 정말 포션이야? 상처도 사라졌지만, 밥도 안 먹었는데 허기도 사라지고 몸에 힘도 넘치는데? 아니, 잠깐만.”

남자가 몸을 살짝 움직여보더니 말했다.

“뭔가 몸이 더 가벼워진 거 같은데...”

그 순간 남자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영약의 효과로 신체 능력이 30분간 증가합니다.]

“말도 안 돼. 체력회복과 치유효과에 강해지기까지 한다고?”

남자의 말에 주변에 보고 있던 동료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직접 듣고도 믿을 수 없는 현상.

그러나, 이게 시작이었다.

마치 좀비처럼 쓰러져있던 헌터들이 하나하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모두가 한결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대단해! 미쳤는데 이거?”

“김서준 헌터,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이런 것도 만든다고?”

“농부가 직업이라더니 작물로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건가?”

사방에서 놀라움과 감탄이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보며 정현민에게 포션 한 개를 받아 마신 강백호는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김서준 헌터랑 자리를 잡아봐. 좀 깊게 이야기를 한번 나눠봐야겠어.”

옆에 있던 차가운 표정의 얼굴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백호는 빈 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포션이라니. 이게 세상에 알려지면 헌터 계가 뒤집히겠군. 그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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