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00화 (100/139)

100. 구출(2)

“해제?”

김서준이 중얼거렸다. 해제라니. 물론 김서준이 최근 마법학과 결계에 대해 공부를 하는 중이긴 했다.

‘엘린에게 심심풀이 삼아 배우고 있었지.’

하지만 딱 지식을 습득하는 정도. 실제로 마법을 사용하거나 결계를 사용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현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해제할 수 있는 건가?’

옆에서 바라보던 엘린이 물었다.

“왜 그래요?”

“이거 해제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이 포탈 위에 씌어 진 결계를요?”

“서준, 그게 진짜요? 이건 보통 복합적인 구조가 아니오. 나 역시 어디서부터 손에 대야 할지 모를 정도요!”

“맞아요.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게, 잘못 건드리면 영영 포털을 열 수 없게 될 거예요!”

트레스와 엘린이 나서서 소리쳤다. 두 사람은 마법학, 마법 공학, 결계 술을 익히고 사용할 뿐 아니라 마나 구조를 볼 수 있었다.

‘마나 구조가 저 학문의 근간이라고 했지.’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하듯 마나 구조를 잘 만들고 그에 해당하는 수식을 입력하는 게, 마법의 원리였다.

두 사람은 그중에서도 최고의 프로그래머인 셈. 그런 줄 모두가 이해하기 힘든 소스코드를 한낱 초짜 프로그래머인 김서준이 풀 수 있다 하니 기겁할 수밖에.

‘하지만···.’

김서준은 다시 한번 구체를 바라봤다.

“제게는 그런 마나 구조가 보이는 건 아니에요. 단지···.”

그리고 다시 한번 구체로 다가섰다.

[결계를 해체하시겠습니까?]

한 번 더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오른다.

“이상한 구체가 보여요. 그리고 해체할 수 있는 건 확실해요.”

김서준이 둘을 보고 말했다.

“만약 해체하면 우리가 소민이를 구하러 들어갈 수 있는 거 맞죠?”

“이론상은 그렇소.”

“맞아요. 그냥 문을 벽으로 막아둔 것과 같은 방식이니까 다시 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예요. 하지만, 정말 위험해요. 이 결계는···.”

트레스가 도무지 못 참겠다는 듯 김서준에게 물었다.

“서준,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체하겠다는 거요?”

“저번에 말씀드렸죠. 인간은 상태창을 볼 수 있다고.”

“그렇소. 우리도 서준이 영지를 확장할 때 보았었지. 그런 걸 다양한 현상에서 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지금 그 상태창이 말해주고 있어요. 제가 열 수 있다고.”

“!!!”

엘린과 트레스가 놀랐다. 지구에서 상태창은 절대적 신뢰도를 자랑했다. 연구, 그리고 김서준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그렇다면 정말 서준 씨는 저 결계를 해체할 수 있다는 건가?’

‘대단하군. 과연 신농의 힘인가.’

두 사람의 머릿속이 모두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그것도 잠시. 엘린이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어요. 지금 결계는 복잡하지만, 동시에 자상해요.”

“자상하다고요?”

“보통 결계는 단순히 상대를 막는 걸 넘어 함정의 역할을 하죠. 하지만 이 결계는 이렇게 최상위급 마나 구조를 가지고도 오직 차단의 역할만 하고 있어요.”

그러자 트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고작 차단만을 위해 이렇게 복잡한 구조나 수식을 쓸 필요는 없었겠지.”

“거기다, 이쪽에서 들어가는 건 물론 안쪽에서 나오는 것도 완전히 막아 놨어요. 보통 이런 경우는 하나죠.”

엘린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지금 여기 있는 저희를 이 안에 있는 무언가로부터 지키는 거예요.”

그 말에 노을이 눈을 크게 떴다. 던전 변형 현상은 헌터들의 사망률을 높이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

‘보통 안에서 강한 몬스터가 나타날 때 발생하니까.’

그리고 그 안으로 구조를 위해 들어가서 죽었던 헌터도 수두룩했다. 특히 관리국 요원이.

‘그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해가 됐다. 일리가 있다. 그런 걸 넘어 놀라우면서도 두려웠다.

“그 말은 의도가 담긴 거라는 거잖아요? 누군가 일부러···.”

엘린과 트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누가? 설마 그 사람은 이 세상이 이렇게 변한 이유를 알고 있을까요?”

그때 김서준이 노을의 말을 끊고 나섰다.

“그런 이야기는 일단 사태를 마무리하고 나서 하시죠. 그리고 엘린. 엘린의 말은 알겠어요. 무엇을 걱정하는지도 알겠고요.”

김서준은 단호한 의지로 말했다.

“하지만 저 안에 소민이가 있고, 사람이 있어요. 그렇다면 들어가야 해요. 그리고 제 생각이 맞다면 방법이 있어요.”

“방법이요? 무슨 방법이요?

”모두를 구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을 방법이요. 아주 간단한 방법이.“

김서준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모여들었다.

****

“큭···.”

“여기도 포션 좀 줘.”

“나도 이게 마지막이야. 아껴 써.”

부상을 입은 헌터들이 가진 포션을 털어가며 서로를 치료했다. 상태가 좋은 헌터들도 우거진 나무아래 만든 음지에 자리를 잡고 쉬기 바빴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 할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은 전소민이 말했다.

“점점 부상자가 늘고 있어요. 거기다 식량도 한계라서 이제는 몬스터 고기라도 먹어야 할 판이예요.”

정현민이 덧붙였다. 헌터계의 신사라 불리는 정현민의 헌터 슈트는 관리국 요원과 같은 정장의 형태. 그러나, 수차례 전투 끝에 헤진 정장을 정현민은 이미 벗어던지고 반팔만을 걸치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군. 여태 이상 없던 던전이 변화한 것도 모자라 이런 스케일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군.”

권왕 강백호도 지저분해진 수염을 쓰다듬으며 혀를 끌끌 찼다.

‘맞아. 이상해.’

전소민 역시 그의 말에 크게 동의했다. 던전 변형이 이뤄나면 스케일이 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2주 동안 계속 전진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야. 이건 말이 안 돼.’

그뿐일까. 몬스터도 던전답지 않게 다양했다. 보통의 던전은 한 종류의 몬스터로 구성되는 반면, 지금 이 숲에는 각양각색의 몬스터가 존재했다.

‘아침에는 슬라임을 사냥했는데, 방금 죽인 녀석은 적호(赤虎)였어. 등급도 종류도 완전히 다른 형태였지.’

그뿐 일까.

몬스터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원숭이처럼 생긴 몬스터는 그들을 보고 도망치기도 했다.

‘일반적인 던전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야.’

게다가 완전히 처음 보는 몬스터도 보였다. 정말로 이 세계에 있는 숲에 온 기분이었다.

“이러다간 모두 지쳐 죽을 거야. 대책이 필요해. 킁···.”

강백호가 낮게 신음했다. 정현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방법은 빨리 보스를 찾고 처리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데, 도대체 보스가 어디로 숨은 건지···.”

던전 변형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던전의 핵심인 보스를 잡는 것. 그래서 2주를 넘는 동안 계속 전진해오지 않았나.

그런데,

“흔적도 안 보이네요. 계속 다른 잡몹만 나타나고.”

“네 그 비행능력으로 하늘에서 바라보는 건 어때?”

“해봤는데, 위에서는 숲이 너무 울창해서 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

강백호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미치겠군.”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게 정답이네요.”

“맞아요. 어쨌든 던전은 결국 던전. 끝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전소민이 헌터들을 둘러봤다.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날카로워진 헌터들 사이 언쟁이 생기기도 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겠네요.”

정비를 마친 일행들은 다시 한번 전진을 시작했다. 헌터들은 대형을 세 개 조로 나눴다. 앞쪽에 길을 내고 정찰을 하는 척후조. 가운데에 본대.

그리고 후반에서 오는 적을 막는 경비 조. 각각의 S급들은 한 개씩 조를 맡아 기동을 이어갔다.

“천천히 전진해요. 주변 잘 살피시고요.”

전소민은 척후 조를 맡아 길을 내는 역할이었다. 숲은 울창하다 못해, 거동이 불편할 정도였다. 전소민은 바람의 칼날로 눈앞에 나무와 덤불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기에 척후 조를 담당했다.

“경계는 제가 할 테니까 쉬엄쉬엄 움직이셔도 돼요.”

전소민에게 바람은 팔다리를 움직이는 일과 비슷한 일. 게다가 아무리 억세다 한들, 한낱 식물이지 않던가. 가벼운 운용만으로도 길을 내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만 그것도 점점 한계였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예상 못 했어.’

그러나 전소민은 애써 길드원들을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서준이었으면 이렇게 했을 테니까.’

팀웍이 중요할 땐, 팀의 사기도 중요한 법. 누군가 솔선수범해주면 사기관리에 탁월하다는 건 김서준이 자주 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효과도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다들 너무 지친 탓이었다.

‘너라면 이때는 어떤 답을 냈을까? 나처럼 어쩔 줄 몰라서 쩔쩔매지는 않았겠지.’

역시 자신은 길드장의 깜이 아닐 건가 하고 고민하던 전소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약한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됐다. 지금 길드원들을 이끄는 건 자신이 아니던가.

‘그래, 서준이라면 답답한 소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했을 거야.’

전소민은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더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나아가길 몇 시간.

“저기 뭔가 있습니다.”

앞에서 들어온 보고에 전소민이 주먹을 위로 들었다. 뒤에 오던 헌터들에게로 수신호가 이어지며 모든 대열이 동작을 멈추고 자세를 낮췄다.

전소민은 조심스레 걸어 앞으로 나갔다.

“..저기.”

대원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줄기가 길고 노란 꽃 같은 대가리를 달고 있는 식물형 몬스터가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디지몬스터의 우츠우츠같아.’

어릴 적 본 만화 속 몬스터가 튀어나온 느낌. 그러나 만화와는 달리 귀엽다기보단 징그러웠다. 그 징그러운 녀석들이 4개 정도가 모여있으니 더 징그러웠다.

그 주변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꾸익!”

반대쪽 풀숲에서 돼지 울음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수풀을 해치고 거대한 멧돼지가 엄니를 새운 채 뛰쳐나왔다.

“갈퀴에 붙은 불을 보면, 파이어 보어인가 보네요.”

“잠깐 지켜보죠.”

그들은 숨죽이고 현장을 바라봤다. 파이어 보어는 B급 몬스터. 정체불명의 식물형 몬스터는 금세 짓밟아 버리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꾸익!!!”

달려오던 파이어 보어는 바닥에서 솟아난 넝쿨에 온몸이 휘감겨 버렸다. 동시에 노란 대가리가 전부 파이어보어를 향했다.

“저건···?”

노란 대가리에 환한 빛이 맺혔다. 이내 대가리서부터 광선이 발사되었다.

“꾸익!”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파이어 보어는 숯검댕이가 되었다. 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체를 넝쿨은 성의 없이 집어 던졌다.

“안 봤으면 큰일 났겠군요. 저건 위험해요.”

저 덩굴도, 저 광선도, 그리고 B급은 단숨에 제압하는 저 힘도 모든 게 너무나도 위험한 불안요소. 이대로 부딪히는 건 바보 같은 짓처럼 보였다.

“길드장님, 저기 뭔가 있습니다.”

꽃들 사이 있는 거대한 바위 한가운데 반짝이는 보석이 보였다. 푸른빛의 보석은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저 보석이 이 결계에서 나갈 수 있는 어떤 단서가 아닐까요?”

“그런 거 같아요. 그러려면 저 괴물을 공략해야 할 거 같네요.”

전소민은 뒤로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일단은 공략법을 마련하는 게 우선. 뒤에서 회의부터 할 셈이었다.

-구구구구.

그 순간, 지반이 진동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헌터들은 모두 A급인 만큼 모두 자리를 지킨 채 사태를 관망했다.

“길드장님, 보석이 빛납니다!”

그때 옆에 있던 헌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식물의 가운데 있던 보석이 파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동시에 보석이 박힌 바위가 위로 솟구쳤다.

“설마···?”

주변에 있던 바위들이 보석이 박힌 바위로 하나씩 달라붙기 시작했다. 헌터라면 모두 아는 현상.

“골렘!”

설마 저 보석이 골렘의 핵이었을 줄이야. 더군다나 마력도 규모도 엄청난 형태였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S급.

‘그런데 여기 있던 식물도 골렘에 함께 결합한 건가?’

이건 위험했다. 골램만으로도 까다로운데, 거기에 정체불명의 광선까지 장착한다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이쪽에 S급이 3명이라지만, 얼마나 많은 헌터가 죽어야 할지 몰라.’

전소민은 소리쳤다.

“도망쳐요!”

모두 예상했다는 듯,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몸을 완전히 구성한 골렘은 일행 쪽으로 손을 뻗었다.

“피해요!”

손바닥에 달려 있던 식물이 곧장 광선을 뿜어냈다.

“끄악!”

미처 피하지 못한 헌터 하나가 비명과 함께 재가 되었다.

“그냥 공략하는 게 나아! 이쪽은 S급 3명에 나머지도 전부 A급이야, 이길 수 있어!”

강백호가 소리쳤다.

“이렇게 공략하면 피해가 너무 커요! 일단 도망쳐서 전략을 세우고 와요!”

“맞아요!”

그런 강백호를 겨우 말려 헌터들은 퇴각하려 했다. 그러나 골렘은 보내주지 않겠다는 듯 광선을 쏘아댔다. 양손과 어깨에서 4줄기의 빛이 뿜어졌다.

“아, 안 돼!”

또 한 명의 동료가 눈앞에서 재가 되려는 순간.

“컹!”

하얀 털을 가진 거대한 늑대가 광선을 가로막았다. 광선은 무형의 막에 차단되었다. 전소민이 놀라 늑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늑대 위에 탄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울컥했다.

“전소민! 괜찮아?!”

다급하게 소리치는 남자. 그는 여기 와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사람, 김서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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