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98화 (98/139)

98. 온천만들기(4)

“그 쪽 수평을 맞춰야 하오!”

“움움!”

“거기 골격 제대로 세워야 하오! 아주 약한 곳이오!”

“움!”

트레스는 설계도를 들고 돌아다니며 작업현장을 꼼꼼하게 감독했다. 작업모를 쓰고 돌아다니는 움들은 트레스의 지시를 따라 분주히 작업하고 있었다.

‘트레스 덕에 작업이 훨씬 순조롭네.’

설계자가 직접 관리 감독을 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양되는 점이 있었다.

‘움들이 더 대단해졌어.’

김서준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노움과 움들의 능력이 강해졌다. 수는 더더욱 많아졌고 조직력도 좋아졌다. 덕분에 작업을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었다.

“이제 거의 마무리오. 조금만 힘을 내시오!”

“알겠다움! 힘을 내자움!”

“움움!!”

트레스가 한 번 더 노움을 독려했다.

‘다들 잘하고 있으니 나도 내 일을 해볼까.’

김서준은 케레스의 농기구로 호미를 소환했다. 그리고 하나씩 돌면서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서준 씨. 이건 뭔가요?”

엘린은 금발 머리를 예쁘게 묶은 채 눈을 반짝이며 김서준을 바라봤다. 손에는 여지없이 셀카봉을 들고 있었다.

‘촬영 열심히 하네.’

김서준은 내심 그런 엘린을 기특해하며 말했다.

“민트, 그중에서도 토종인 박하입니다.”

“박하요? 그걸 왜 심는 거예요?”

“아무래도 온천이 노천 온천이다 보니 벌레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박하는 이런 온천에 천연 방충망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아. 근데 여기에 키우면 매일 관리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요?”

엘린은 티비 프로그램 속 VJ가 된 것처럼 자연스레 인터뷰를 이어갔다. 김서준은 내심 그녀의 진행에 놀라며 대답했다.

“토종 박하는 번식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이렇게 구역을 잘 만들어 놓지 않으면 이 주변을 전부 덮어버릴 정도로요. 오히려 이렇게 구역을 잘 나누고 너무 무분별하게 자라지 않게 관리해주는 게 더 중요할 겁니다.”

“그렇군요! 관리도 쉽고 벌레도 막고. 엄청 좋네요.”

“게다가 박하 향은 스트레스에 좋아서 온천욕을 하면서 마음마저 더 편안하게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김서준은 미리 대본을 짜고 외워놓았다. 홍보가 목적인 영상이기에 인터뷰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설명이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그렇군요! 온천욕이 더욱 기대되는데요?”

활짝 웃으며 본적 없는 텐션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엘린. 김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그 효과를 어설프게나마 체험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김서준은 빠르게 씨앗을 심었다. 엘린도 잠시 촬영을 멈추고 김서준을 도와 씨앗을 심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도울 게 있으면 도와야죠.”

엘린이 씽긋 웃으며 대답했다. 김서준도 미소로 감사를 전하며 함께 작업을 이어갔다.

화단에 박하 씨를 심는 걸 마무리한 김서준은 손바닥을 바닥으로 향하게 한 채 눈을 감았다.

[급속성장.]

명령어와 함께 김서준의 손에서 초록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화단 여기저기서 작은 새싹이 튀어 올라왔다.

“와···.”

엘린이 감탄을 뱉었다. 생명이 동시에 움트는 모습은 언제나 경이로웠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저 마나 컨트롤이야.’

일전의 급속성장은 대상을 무분별하게 과성장(過成長) 시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적절한 마나로 적절하게 성장을 자극했다.

‘스킬의 숙련도가 오른 건가 보네.’

김서준은 도리와 매일 아침 훈련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마나를 느끼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아주 뛰어난 마법사가 세밀하게 마나를 조정해 마법을 사용하는 모양새.

‘역시 이 세계의 인간은 신기하다니까.’

만약 저런 김서준이 끝내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되면 어떨까. 조종하게 되면 어떨까. 어쩌면 그때는 엄청난 실력자가 탄생하는 건 아닐까.

엘린은 기대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였다.

“으흠. 향 좋네요. 그쵸?”

어느 정도 박하가 성장하자 김서준이 눈을 떴다. 그리곤 엘린을 보며 물었다. 김서준의 말에 엘린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와···.”

코가 시원해지는 향이 사방에서부터 숨을 타고 들어왔다. 엘린은 벌써 머리가 환기되는 기분이었다.

“진짜네요.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에요.”

“다행이네요. 이정도만 키우죠. 더 키우면 과성장이 일어날 거 같네요.”

“그래요. 지금도 충분해요. 흡, 하. 진짜 좋다.”

엘린은 다시 한번 감탄하며 향을 들이마셨다. 라이너스 대륙의 민트보다 진하고 더 시원한 느낌.

아무래도 돌아가면 박하에 대해 연구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

“고블, 마지막까지 잘 봐줘.”

“알겠고-블!”

“트레스. 이제 시작해요.”

“알겠네.”

트레스가 밸브를 돌렸다.

-구구구.

잠시 후, 미세한 진동이 울리더니 모든 탕에 물이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하고 쏟아지는 맑은 온천수를 보고 있으니 물밀듯 성취감이 밀려왔다.

“물은 완전 깨끗하고 마나를 풍부하게 머금고 있고-블! 대성공이고-블!”

“클클. 정화장치와 파이프에도 이상 없소.”

“탕에도 물 새는 곳 하나 없다움!”

“멍멍!!”

노움과 트레스의 보고가 끝나자 김서준이 말했다.

“성공이네요. 모두 고생하셨어요.”

“클클! 서준도 수고 많았소!”

“수고했어요!”

“다들 고생 했다움!”

“모두 대단하고-블!”

“멍멍!!!”

모두가 한 마디씩 서로의 수고를 칭찬하고 치하했다. 온천 시추에 핵심이었던 우노와 도스도 오늘만은 양조 사업 준비를 젖혀 두고 참여해 박수를 쳤다.

‘다들 진짜 고생했다.’

김서준은 다시 한번 온천을 둘러보며 감격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가공된 목제로 지은 한옥과 고풍스러운 기와지붕.

그 뒤로 펼쳐진 정원과 곳곳에 설치된 노천 온천들. 그윽한 박하 향과 어우러지는 숲의 정취.

한쪽에는 산과 마을 전체를 탕 안에 몸을 담근 채 볼 수 있는 인피니티 풀까지.

‘생각한 그대로야.’

머릿속 그대로의 모습이 실제화되니 그 벅찬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서준, 이렇게 좋은 탕에 빠진 게 있군!”

우노의 목소리에 놀란 김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도스도 거들었다.

“맞소. 자연의 정취는 한 것 느낄 수 있겠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소?”

김서준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보다 완벽할 순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가요?”

그러나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김서준의 눈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어 보였기에.

‘아니, 내가 오기를 부리는 건가?’

그때, 트레스가 말했다.

“클클. 형제들. 뭔가 준비했나 보군. 괜히 우리 ‘신농님’ 놀리지 말고 어서 보여주라고.”

“클클, 역시 신농이라도 아직 어려. 이런 장난에 속다니.”

그런 진지한 표정으로 장난이라니. 김서준은 반론하려다 입을 닫았다.

“자, 그럼 신농 선물 받으시게나! 선물 나가신다!”

우노가 하늘로 붕하고 날아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곤 온천의 한 가운데 ‘쿵!’ 소리를 내며 내리꽂았다.

“...조각상?”

아름다운 여전사의 조각상이었다.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는 게 흡사 북유럽신화 속 전장의 여신, 발키리(Valkyrie)처럼 보였다.

“이건···.”

“서준, 망치의 신의 오른팔이자 전령인, 퀴리아 님이시오.”

“이분의 조각상 옆에서 목욕재계하면 화살도 피해간다는 전설이 있지.”

김서준은 입을 떡 벌렸다. 드워프다운 손재주로 만든 조각상은 전사다운 기품이 느껴지면서도 우아했다.

‘온천과도 잘 어울리고.’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화살이 피해간다는 미신이라고 했나. 그건 미신이 아니었다.

[퀴리아의 조각상을 설치했습니다.]

[일대의 탕에서 온천욕을 할 시,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정말로 효과가 있었던 것. 김서준은 그 놀라운 사실을 전하려 했다. 그러나 엘린이 먼저 나섰다.

“저 역시 질 수 없죠.”

“네?”

엘린은 탕 하나로 다가갔다. 가장 가운데에 만들어둔 편백 나무 탕이었다. 탕 앞에선 엘린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공간에서 지팡이가 나타났다. 엘린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저건?”

“나뭇잎?”

허공에서 이파리 몇 장이 하늘거리며 물 위로 내려앉았다. 이파리는 마치 설탕처럼 물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졌다.

“뭘 한 거예요?”

“주변 자연의 생명력을 모아 물 안에 넣어준 거예요. 이렇게 하면, 온천욕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그 생명력을 받아서 외모에 도움이 될 거예요.”

“..외모요?”

“피부도 좋아지고 노화도 막아주는 그런 거요.”

설마 엘프들의 외모관리 비결은 온천욕이었던 걸까. 김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엘린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엘린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여기다 그런 걸 좀 써놔야겠네요. 그런 탕이라고. 여자 손님들이 좋아하겠어요. 엘스가든의 외모 비결, 이런 식으로 써놓으면 되려나.”

김서준이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엘린이 살짝 볼을 붉히며 말했다.

“너무해요.”

“하하. 자, 그럼 우리가 처음으로 시험 삼아 온천을 즐겨볼까요? 정말 외모에 도움이 되는지?”

“좋다움!”

“멍멍!”

“좋소. 클클.”

김서준의 말에 모두가 신을 내며 탈의실로 향했다.

****

“본부장님. 그 기사 진짜예요?”

급한 호출로 불려 온 노을이 방금 속보로 올라온 기사를 언급하며 말했다. 정장을 입은 풍채가 좋은 사내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야.”

그렇게 말한 본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노을 역시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이 안 되는데요?”

노을은 방금 받은 보고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S급 헌터 3분과 청룡 길드가 던전에 갇혔다고 합니다.’

절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S급이면 대한민국 최강의 20인에 든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무리 S급 던전이 변형했다고 한들, 이틀이나 그들이 토벌을 못 할 리가 없었다.

‘던전은 게이트와는 다르니까.’

게이트는 안에서 방출되는 마나로 난이도를 책정한다. 즉, S급 게이트면 S급이상의 몬스터가 출몰한다는 이야기.

반면 던전은 등급을 하나씩 높게 책정한다. S급 던전이면 A급 몬스터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던전은 게이트처럼 사라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지. 관리가 더 중요하니까.’

즉, 게이트와 달리 던전은 관리 난이도가 표기된 셈. 특히나 블랙 바질리스크 던전이 아니던가.

‘레이드 연습하기 좋은 정도의 평범한 난이도 던전이야.’

그런 던전에 S급 헌터 세 명이 갇혔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그 멤버를 보면 더 이해가 안 되고.’

권왕은 말할 것도 없는 백전노장, 에픽 길드의 정현민 역시 6위로 한국 최고의 검사. 거기에 유일무이한 바람을 다루는 능력에 김서준의 절친으로 알려진 전소민까지.

‘저 세 사람에 청룡 길드의 엘리트만 모인 파티가 이틀이나 던전 안에서 헤매고 있다고? 아무리 변형이 되었다고 해도?’

노을은 넋이 나갈 것 같은 정신을 겨우 다잡고 물었다.

“던전 변형이 도대체 어떻게 됐길래요?”

“측정했을 때 마나 농도는 똑같아. A~S급 사이야. 그것도 잘 쳐준 거지.”

“말도 안 돼. 그럼 그냥 평범한 S급 던전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잖아요? 거기에 S급 헌터 3명이 갇혔다고요?”

“등급이 문제가 아니야. 입구가 막힌 게 문제지. 아마 그래서 못 나오는 거로 예상되는 거고. 물론 안에서 어떤 상황인지도 알 수 없고.”

강유식 충남 지부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위에서는 기사 터지기 전에 어떻게든 헌터들과 협조해서 해결하라는 지시야.”

“우리가 이걸 어떻게 처리해요? 입장을 못 한다면서요?”

“내 말이 그 말이다. 방법이 없어요. 방법이···.”

노을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지원은요?”

“다 해준다는 데, 여기서 받을 지원이 뭐가 있어? 던전 입장을 못 하는 데. 미국에 차원 열쇠를 요청하긴 했다는데, 오려면 먼 거 같고.”

차원 열쇠는 어떤 게이트든 통과하게 해주는 SS급 보구. 일개 지부장이 독촉하거나 할 사안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일단 주변 길드에 다 연락 돌려봐. 혹시라도 좋은 생각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노을은 표정을 구기며 사무실을 나왔다. 머리가 복잡했다. 불가능할 거 같은 일은 사실이었다. 거기에 하필 잡혀간 게 전소민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러나 판단은 금방 이뤄졌다. 노을은 곧장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서준 씨, 저 노을이에요.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노을이 최대한 차분히 말했다.

“지금 소민 씨가 위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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