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5주전
‘천산군 토종작물 재배지 특화 계획 행사’ 5주전.
김서준은 약속대로 임종철과 박보현을 농사감독이자 코치로 파견했다. 임종철은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내 목표는 돈이 아니라 우리 토종작물을 지키는 거니께.’
오히려 임종철이 더 환영이였다. 이미 임종철과 김서준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며, 일종의 월급쟁이인 박보현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파견 첫날.
면사무소에서 만난 금천면 대표로 나온 농부이자 지역 유지가 둘을 맞이했다. 인상이 좋은 남자는 두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저는 금산마을이 좀 유난히 다들 정이 넘친다고 생각했는데, 금천면도 다 그런가 봐요.”
박보현 역시 그 환대에 감탄을 터뜨릴 정도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때 시장에서 그 친구 덕을 우리가 아주 지대로 봤어유. 그 친구 아니었으면 사기꾼 놈들 행패에 사람들 다 떠났을 거유.”
“아, 그 정자만들때 목제 보내준 사람도 혹시...”
“맞아유. 지가 보낸 거유.”
임종철은 김서준에게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텃세하나 없다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군.’
덕분에 임종철의 교육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사람들은 금호 영농조합에 대한 호감 이미지와 더불어 임종철의 농사 명인으로서의 권위를 완벽하게 존중했다.
누구 하나 교육 기간에는 임종철에게 존대를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젊은 친구가 똑똑하네.”
“신기한 능력이구먼. 이렇게 순식간에 풀이 자라다니 말여.”
“하하, 감사합니다.”
박보현에게도 호의가 넘쳤다. 임종철 뿐 아니라 박보현 역시 마음껏 가진 재주를 보이고 전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때쯤.
임종철과 박보현은 금산마을과 호산마을을 뺀 나머지 7 마을 모든 곳에 농사 선생으로 완벽하게 입지를 굳혔다.
“각각 마을마다 작물도 안 겹치게 배분했으니 서로 경쟁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될겨.”
“맞아요. 그리고 다른 지역과의 경쟁도 걱정마세요. 시장에 나오는 다른 토종작물과 저희 종자는 질부터 다르니까요.”
“아이고, 감사혀유, 선생님들.”
유지는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했다.
“덕분에 마을들이 다들 희망에 부풀었구만유.”
“우리도 그랬네. 기대 반 걱정 반하며 마음 졸였는데 결국 다 대박이었어. 다들 걱정말고 이 시간을 즐기라고 전해 주라고.”
“맞아요. 기대한 거 보다 더 대박일테니까요. 그리고 마을별로 한 달에 한 번 정기 점검이랑, 주에 한 번 불시 점검 있으니까 절대로 농사법 바꾸지 말고 철저하게 배운대로 하셔야 하는 거 잊지 마세요.”
“알겠슈. 걱정마유.”
세 사람은 인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마을을 거닐었다. 밭에는 아주작은 새싹이 곳곳에 돋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희망처럼.
‘이런 날이 오다니 감격스럽네. 평생의 염원을 결국은 이루는 구먼.’
토종 작물의 보급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 염원을 이뤄주겠다던 김서준의 말이 진짜 이뤄지자 갑자기 마음 한켠이 울컥했다.
‘토종작물로 모두 대박 나기를.’
임종철은 그렇게 기도하며 살짝 맺힌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박보현이 살짝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임종철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건을 만족하여 김서준의 터전이 확장됩니다. 금산마을 -> 금천면(Lv.2)]
[세계수가 금천면 전체에 가호(Lv.2)를 내립니다.]
[세계수의 강한 생명력에 영향을 받아 더욱 빠르게 자랍니다.]
[세계수의 가호로 이 땅에는 더이상 게이트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때였다. 눈 앞에 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이건..?”
“자네도 보이는 겨?”
박보현과 유지가 화들짝 놀랐다. 오직 임종철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랑 같구먼!”
“그때요?”
“우리 마을이 본격적으로 변화했을 때 그때랑 똑같어. 설마 서준이는 이것마저 예상한 건가?”
임종철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그저 눈앞에 쏟아지는 안내창에 놀라운 내용에 끊임없이 감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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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과밭에 드론을 이용해 물을 주던 김서준이 쾌재를 질렀다.
“축하드립니다움!”
“멍멍!!”
리노와 노움이 옆에서 펄쩍 뛰며 함께 기뻐했다. 김서준은 귀여운 녀석들을 양팔로 안으며 말했다.
“고마워.”
“헤헤.”
“멍!”
그렇게 한껏 기쁨을 나누는 데, 김서준의 눈앞에만 새로운 안내창이 나타났다.
[터전이 확장되어 신농의 힘이 강해집니다. 새로운 능력을 얻습니다.]
[‘신농의 재능’ 스킬을 얻습니다. 당신이 길러낸 작물은 이제 ‘특별한 효과’를 얻습니다.]
[‘자연의 보답’ 스킬을 얻습니다. 당신이 만든 터전에 자연이 보답합니다. 대자연에 숨어있는 성지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김서준의 눈이 반짝거렸다.
‘스킬이 무려 2개라니!’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신농의 힘이 강해지고, 세계수의 가호가 강해지는 거야 예상했다. 그러나 새로운 스킬 2개는 전혀 예상 못 한 보상이었다.
‘이거 엄청나잖아?’
신농의 재능이라는 스킬은 작물이 특별한 효과를 준다고 한다. 미트루트나 사비오와 같은 집중력, 체력회복 효과만 줘도 엄청 좋았다. 아니 어쩌면 먹기만 하면 힘이 강해진다거나, 체력이 좋아지는 효과가 생길 수도 있었다.
‘정말 그렇게만 되면 대박이야!’
이 세계의 헌터는 강해져야만 했다. 지금과 같은 게이트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바이올렛 호퍼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석라도.
그리고.
‘혹시라도 넘어올 불청객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블랙드래곤과 같은...’
그걸 위해 김서준은 미트루트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것 외에도 많은 일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만약 김서준의 작물이 헌터를 강하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계획은 좀 더 탄력을 받을 터였다.
‘빨리 확인해보고 싶어.’
김서준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다음 스킬의 내용은 모호했다. 자연이 보답한다라. 꽤 거창한 내용이다. 거기에 대자연에 숨은 성지라니. 엄청난 내용이 가득한데 정작 무언가 예상되는 게 없었다.
“숨어있는 성지라는 게 무슨 의미지? 세계수의 언덕같은 걸 말하는 건가?”
세계수의 언덕도 일종의 성지였다. 그 안은 언제나 봄이었고 어디보다도 생명력이 넘쳤다. 축복받은 송이버섯이 자라는 나무도 모두 그 언덕 안에 모여있다.
‘이런 지역을 더 얻는 건가? 그럼 축복받은 송이버섯을 더 키울 수 있는 건가?’
애매했다. 세계수의 언덕은 좋은 쉼터이지만, 쉼터는 하나면 충분했다. 여기저기 많아지는 게 엄청난 일은 아니었다.
‘관광지 정도로 쓸 수 있을까.’
김서준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안내창이 하나 더 나타났다.
[‘자연의 보답.’ 스킬로 터전 금천면이 주는 보답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금천면이 숨겨진 온천수의 발원지를 알려 줍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김서준은 망설임 없이 확인을 선택했다. 빨리 성지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은 탓이었다.
“어?”
확인을 누른 순간 시야가 이상해졌다. 마치 유체이탈하듯 김서준의 몸에서부터 의식이 분리되고 있었다. 뒤통수가 눈에 보이고 자신의 등이 눈에 보였다.
‘어떻게 된거야?’
김서준은 꼼짝할 수 없었다. 의식은 하늘로 솟아 올랐다. 어느새 시야 속 사과밭은 장난감처럼 작아졌다.
‘읍!’
그리고는 바람에 휘날리는 연처럼 강제로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그 기분이 묘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김서준이 좋아하던 노래처럼 새가 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좋네.’
김서준은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공중을 가르고 날아간 의식은 호산마을 옆에 있는 작은 산으로 움직였다.
‘음?’
거기 아주 가늘게 흐르는 물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물줄기 위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게 아닌가?
김서준은 ‘설마’하며 다시 눈을 씻고 그 장소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성지 ‘금천온천’을 발견했습니다.]
안내창이 김서준의 ‘설마?’에 대답했다.
다음 날, 김서준은 호기심에 못 이겨 멀어진 의식 속에서 본 그 장소를 다시 방문했다. 호산마을 옆에 이름 없는 야산. 산책로도 없는 야산에 들어서니 미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기분이야.’
그 비어있는 듯한 곳이 길이라는 걸 눈치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김서준은 수풀을 해치고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말 있잖아?”
돌틈 사이 쪼르르 흐르는 물에서 정말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떄 본건 역시나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기하네.’
그 현상 이후, 김서준은 금천온천에 대해 찾아봤다. 그러나 어떤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역사서도, 어떤 논문도, 어떤 기사도 금천면에서 온천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우리나라에는 저런 온천이 없다지.’
온천에는 화산성 온천과 비화산성 온천이 있다. 쉽게 말하면 화산, 즉 마그마로 데워진 온천과 그렇지 않은 온천인 건데 한국의 온천은 전부 비화산성이었다.
‘당연하지. 한국에는 화산이 없으니까.’
그런데 비화산성 온천은 저렇게 땅 위로 물이 샘솟지 않는다. 땅을 파야만 온천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런데 물이 솟고 있어. 여기는...’
영문모를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데, 기록조차 없다니. 정말로 자연이 꼭꼭 숨겨 놓은 성지가 맞는 듯 보였다.
‘자세한 건 역시...’
김서준은 허공에 외쳤다.
“고블!”
“부르셨고-블!”
파란 피부를 가진 귀여운 고블린이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고블은 이래 보여도 물의 정령. 물의 대해서라면 김서준보다 훨씬 정확히 감정할 수 있었다.
“고블, 이게 정말 온천인지 확인해줄래?”
“알겠고-블!”
고블은 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에 손을 가져갔다. 눈을 감고 물을 느끼던 고블.
“오호...”
고블이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래?”
“이거 온천 맞고-블! 이 아래 수원에 물이 가득 차 있고-블!”
고블이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블의 말에 따르면 수원의 물이 가득 차 있고, 거기에 열이 가해지자 땅 위로 솟아올랐다고 했다.
“근데 고블. 이 밑에 뭐가 있길래 물이 뜨거워진 건데?”
“뭐가 있는 게 아니고 마나때문인 고-블!”
“마나?”
“물이 이 땅의 마나를 먹었고-블! 그래서 열이 생긴고-블.”
고블은 다시 한번 물을 맛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0.001%의 확률로 물도 풀처럼 마나를 머금을 수 있고-블. 그리고 물이 마나를 머금으면 자연스럽게 뜨거워진 고-블!”
놀라운 이야기였다. 설마 물에도 마나가 들어가는 경우가 생길 줄이야.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생겼다.
“그럼 위험한거 아냐? 풀은 마나를 머금으면 이상하게 변하잖아?”
“아닌고-블! 물이 마나를 머금으면 완전 대박인 고-블! 마나 먹은 물에 일정 시간 이상 들어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마나가 가진 힘을 흡수하는 고-블! 당연히 특별한 능력도 얻을 수 있는 고-블!”
“정말?”
“그렇고-블.”
고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물을 맛봤다. 그리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물은 스트레스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기본적인 효능이 있고, 몸의 기능을 키워주는 고-블! 아마도 민첩성이나 체력이 높아지겠고-블!”
김서준은 화들짝 놀랐다. 온천의 효능이 대단하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효능이라는 건 한 두 번으로는 효과를 보기 힘들뿐더러 확 체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 아니던가.
‘사실 대부분의 탕은 그냥 목욕탕에 몸을 담군거랑 큰 차이가 없지.’
그런데 탕에 몸을 담구고만 있어도 몸의 기능을 키워준다니. 이건 엄청난 일이었다.
‘자연의 성지가 이런건가? 대박이야!’
김서준은 내심 쾌재를 지르며 고블에게 말했다.
“고블, 그럼 마나 먹은 물이 지금 이 아래 충분히 있는 거야?”
“계속 사방에서 지하수가 흘러오고, 마나를 머금고 있고-블! 평생 쓸 수 있을 고-블!”
“관광지로 만들 수 있을까?”
“물론이고-블! 사업성 평가 바로 할고-블?”
고블의 물음에 김서준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오늘.
김서준은 홍성필에게 말했다.
“금천면 물이 아주 좋더군요. 아주 좋은 온천을 만들 수 있겠어요.”
“온천? 금천면에 온천이 있다는 건가? 그런 이야기는 처음들었는데?”
홍성필 군수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김서준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네. 그리고 아마 곧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온천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