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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로 꿀 빠는 헌터-92화 (92/139)

92. 농사쇼

정 회장은 눈앞에 앉은 여자를 바라봤다. 동안의 얼굴과 하얀 피부를 가진 가녀린 여자. 외모로는 도저히 한 길드의 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저희야 참여하신다면 고맙죠. 기업의 이미지에 더더욱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괜찮겠습니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정 회장이 안타깝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러나 여자는 단호했다.

“헌터로서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시기가 조금 당겨졌을 뿐이죠.”

중국이 북한에서 무얼 하려는 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나라에서 지금 북한 토벌 조를 짜는 이유는 단순한 중국의 행위에 대한 대응책일 뿐이었다.

‘일종의 땅따먹기기도 하고.’

그랬기에 모든 길드가 서로 눈치만 보는 실정이었다. 아무리 국가적 차원에 지원이 있다고 한들 명백한 사지로 가야 하는 일에 누가 지원하겠는가.

‘특히나 이미 사회에 최상층에 자리잡은 상위 헌터라면 더더욱 그렇지.’

그런데 전소민은 지금 그 사지로 가겠다며 지원을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한 점의 망설임도 없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말이다.

‘대단해. 왜 김서준 이사가 추천했는지 알겠어.’

하지만 그래서 더 걱정되었다. 이렇게 궂은일도 마다않고 평화를 위해 한 몸을 던지는 헌터를 사지로 넣어도 되는가. 혹시 정말로 ‘전사’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건 세상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지 않나?’

정 회장은 다시 한번 전소민을 바라봤다. 꾹 다문 입술을 한 그녀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찌 보면 이건 위기를 없앤다기보다는 중국과 한국의 영토분쟁에 가깝습니다. 지난번 일과는 다릅니다.”

“북한 안에 몬스터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결국 언젠가는 토벌해야 할 시기가 올 겁니다. 그리고···.”

전소민이 두 손을 꼭 쥐며 말했다.

“북한 안에서 사람이 발견되었습니다. 토벌은 못 하더라도 그 사람들만큼은 살리고 싶습니다.”

그 말에 정 회장이 소파에 몸을 묻었다.

“듣던 대로 참 정의감이 투철하십니다. 참 낭만이 넘치십니다.”

“낭만이 아니라, 그게 헌터로써···.”

“아, 오해하셨군요.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서준 씨가 추천한 것도 제가 청룡 길드와 함께한 것도 그 낭만 때문이죠. 지금의 헌터는 모두 자기 밥그릇에만 신경 쓰죠. 몬스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대의는 많이 사라졌고요. 다만 걱정이 되는 겁니다. 그런 헌터가 하나라도 더 필요한 세상인데 말입니다.”

혀를 끌끌 찬 정 회장이 이내 말했다.

“청룡 길드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준비하는 데 차질 없게 지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소민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예의도 바르고 심성도 고운 볼수록 괜찮은 처녀였다.

“김서준 이사한테도 미리 알려주세요.”

“네? 아, 그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다음에...”

전소민이 얼굴을 붉혔다. 갑자기 소녀 같은 면을 보이자 정 회장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묻어났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면 분명 나중에 후회할 겁니다. 그리고 이 일이 아니더라도 연락한번 해보세요. 주변에 여자도 많던데 그렇게 미적거리다 뺏겨요?”

“네? 아, 그, 그게···.”

“하하. 선택은 자유지만 연락 한번 해보세요.”

전소민은 주머니 위로 느껴지는 핸드폰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

하얀꼬리를 흔들며 열심히 땅을 파는 리노 주변에서 움들이 함께 땅을 판다. 흡사 그 모습만 보면 두더지 떼가 밭을 들 쑤시는 거 같았다.

“그거 먹으면 안 돼!”

“알겠습니다움!”

“멍!”

김서준의 경고에 뜨끔하는 둘. 김서준은 그 모습을 애써 모른체 했다.

‘벌써 먹었나보네. 뭐 괜찮지.’

한두 개 정도야 저 둘에게 못 줄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그럴만큼 열심히 일하는 중이니 말이다.

“일찍 끝내고 오늘도 맛있는 거 먹자!”

“좋습니다움!”

“멍!”

환호하는 둘. 김서준은 웃으며 미트루트를 작물 심기를 이어갔다.

“엄마, 엄청 신기해. 강아지가 땅을 파.”

“그러게. 엄청 똑똑하다. 강아지가 농사를 짓네.”

한참 농사를 짓는 데 옆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서준이 그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귀엽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남자 아이는 작은 손으로 엄마 손가락을 꼭 잡은 채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엄마, 나 정령이랑 같이 농사지어보고 싶어!”

“안 돼. 여기는 체험농원이 아니야. 여기는 구경만 하는 거야.”

“진짜? 힝.”

엄마의 대답에 아이의 표정이 우울해진다. 그게 못내 신경이 쓰였다.

‘음..’

잠깐 고민한 김서준이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를 건네는 엄마와 달리 아이는 활기찬 모습으로 인사했다. 김서준은 웃으며 그런 아이를 바라봤다.

“아저씨! 방송에서 봤어요! 완전 멋있었어요.”

“그래? 하하. 고맙다.”

김서준은 웃으면서 괜히 턱 밑을 메만졌다.

‘아저씨라니. 면도좀 하고 나올껄 그랬나.’

아이는 그럼 김서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해맑고 순수한 동경의 눈빛으로 김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근데 무슨 일로.. 혹시 여기는 이렇게 가까이서 구경하면 안 되는 밭인가요?”

“그럴 리가요. 그게 아니라 우리 친구가 정령들이랑 함께 농사 체험을 하고 싶은 거 같아서요.”

김서준의 말에 아이가 대답했다.

“맞아요! 하고 싶어요!”

“그럼 잠시만. 노움.”

“움!!”

김서준의 부름에 노움이 하늘을 유유히 날아 왔다. 노움이 가까이 오자 꼬마가 반색했다.

“저, 정령이다!”

“노움, 이 꼬마가 노움을 돕고 싶다는데 어때?”

김서준이 동시에 눈을 찡끗했다. 그러자 노움이 꼬마에게 말했다.

“좋다움! 대신 내 말에 잘따라야 한다움!”

“웅웅!”

고개를 끄덕이는 꼬마. 뒤에서 보고 있던 어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자 그럼 시작 해 볼까?”

김서준은 꼬마를 데리고 밭으로 다시 돌아왔다. 노움은 꼬마의 옆에 딱 붙어 전담으로 꼬마를 관리했다.

‘능숙하네. 역시.’

노움의 인기는 여전히 최고였다. 또한 남녀노소 누구와도 자연스레 사진을 찍는 건 물론 가끔 양떼 목장에서는 가이드를 자처할 정도로 그 상황을 즐기는 중이었다.

“자, 그럼 형이랑 같이 한번 해볼까?”

“네.”

김서준도 노움과 꼬마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케레스의 농기구로 황금색 미니 호미를 소환했다.

“와...”

“자, 이거 받아봐.”

“네!”

꼬마는 새로운 장난감을 보듯 신기해하며 황금 호미를 쥐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둘러보다 이내 노움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자, 먼저 땅을 적당히 파라움! 이때 손 안 다치게 조심해야 한다움!”

“그래. 가볍게 쳐도 돼. 이렇게 툭.”

김서준이 노움의 지도를 함께 따르며 시범을 보였다. 꼬마는 유심히 잘 지켜보곤 어렵지 않게 김서준의 동작을 따라 했다.

“그다음은 여기 미트루트 조각을 하나 넣으라움.”

“이거 엄청 빨간색이네요! 이게 뭐에요?”

“미트루트라고 엄청 맛있는”

노움의 말에 김서준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아니, 먹으면 안 되고. 약만들 때 쓰는 농산물이야. 그냥 여기다 놓으면 되고, 절대 먹으면 안돼.”

“알겠어요. 헤헤.”

꼬마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는 사방에서 일하는 움들을 신기하다는 듯 보기도 하고, 흙의 촉감과 미트루트라는 처음 보는 작물에 대해 놀라며 즐겁게 체험을 이어갔다.

‘재밌네.’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김서준의 마음도 묘하게 치료받는 기분. 김서준은 왜 체험농원을 하는 어르신들이 그렇게 좋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재밌어요!”

“농사는 재밌는거다움!”

“멍!”

리노도 꼬마가 맘에 들었는지 옆에서 함께 꼬리를 흔들며 어울렸다. 넷이 여유를 부리는 사이 기계처럼 척척 움직인 움들 덕에 농사는 금세 마무리되었다.

‘능력 강해져서 움들도 더 많아진거같아.’

지금처럼 최근 들어 움들이 하는 일의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 김서준은 아무래도 이게 움들의 수가 늘은 덕이라고 생각했다.

“옆으로 조금만 붙어. 자, 하나 둘.”

-찰칵.

마지막으로 기념사진까지 찍으니 꼬마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더 놀고 싶은데...”

“그렇게 재밌었어?”

“응응. 엄마 더 하구 가면 안 돼?”

“안 돼. 이제 가서 밥도 먹어야지. 그리고 일도 다 끝났고.”

엄마는 그런 꼬마를 달랬다. 김서준 역시 아쉬워하는 꼬마에게 말했다.

“우리 민현이가 도와준 덕에 농사가 빨리 끝난거야. 고마워.”

“맞다움! 잘했다움!”

“멍!”

노움과 리노도 나서서 칭찬했지만, 꼬마의 시무룩한 표정은 여전했다.

“다음에도 또 와서 도와줘.”

“응...”

여태 밝았던 꼬마가 저렇게 시무룩해 하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김서준은 뭔가 더 해줄게 없나 하다 한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그럼 이 참에 한번 실험해볼까.’

김서준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꼬마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 이렇게 끝내는 게 아쉬우니까 형이 특별히 민현이에게 재밌는 거 하나 보여줄게.”

“네? 특별한 거요?”

김서준은 조심스레 어머니께 물었다.

“잠깐 더 시간 되실까요?”

“물론이죠. 저야 오히려 감사하죠.”

김서준이 양해를 구한 후, 케레스의 농기구를 사용했다. 그러자 밭 일대 여기저기 황금빛이 피어올랐다.

“소환. 드론.”

“와! 대박!”

황금빛은 모두 드론으로 변모해 하늘로 천천히 부유했다. 프로펠러 소리를 울리며 공중으로 떠오르는 황금 드론 부대의 모습은 역시나 장관이었다.

“이거 다 형 꺼에요?”

“그럼. 다 형꺼지. 봐봐.”

-위잉.

김서준이 손바닥을 뒤집자 드론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팽그르르 돌았다. 30여 대의 황금 드론이 함께 움직이자 여지 없이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 다음은, 도리!”

김서준이 소리치자 마을 여기저기서 하얀 새들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드론의 머리 위로 모여든 토리들은 파란 하늘을 가르고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나 저 새 봤어요! 저 새가 메뚜기 다 잡아먹었잖아요!”

“맞아. 바람의 정령 토리라는 거야. 한번 인사해줘.”

“네! 안녕!!!”

꼬마는 하늘을 보며 마구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도리가 인사라도 하듯 활강하고 내려오며 묘기를 부렸다. 꼬마의 입이 귀에 걸렸다.

“볼 때 마다 참 멋지다움!”

“멍멍!”

뒤이어 도리의 지시를 토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햇다. 토리들은 사방으로 퍼졌다 모이기도 하고 바람개비처럼 돌다가 일순간 하강하기도 했다.

그 사이로 황금색 드론들이 움직이며 꾸미자 화려한 에어쇼가 시작됐다.

“엄청 멋져요!”

꼬마가 좋아하는 사이, 하늘에 벌어진 멋진 쇼를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기 봐. 뭐야 저게?”

“엄청 멋있다. 무슨 올림픽 개막식 공연같네.”

“저 새도 정령이라더니 진짜였나 봐. 엄청 칼각이네.”

“드론은 어떻게 조종하는 거지? 프로그래밍이라도 할 줄 아는 건가?”

“손 움직이는 거 보니까 손으로 하나 보네. 멋있다. 토비 스타크 농부 판 같네.”

저마다의 감탄이 흘러나왔다. 저 멀리 트리에서 서도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손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역시 스마트폰이었다.

‘이렇게 촬영하고 환호할 정도면 대박인 거 같은 데?’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무래도 농사 쇼를 서둘러 금산 농장의 특별한 이벤트로 만들어야 할 성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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