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91화 (91/139)

91. 계약 성사

김서준의 해결책에 홍성필 천산군 군수는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종철 농사 명장을 필두로 한, 농사 교육 및 농사 지원. 그리고 품질 관리를 하겠다니.’

김서준이 헌터로서 농부로 각성했고, 금호 영농조합에 이사인 데다 토종 종자를 보급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건 능력에 의지할 가능성이 컸다.

‘실제 현장에서는 임종철 명장의 지식이 더 도움이 될 거야.’

거기에 수제자까지 함께 파견한다고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토종 종자 농사가 자리 잡을 때까지.

지금으로서 이만큼 든든한 일이 없었다. 김서준의 말대로 금산마을로서는 그들의 빈자리가 크겠지만 말이다.

‘그만큼 토종 종자 보급에 김서준도 진심이라는 소리고.’

거기에 종자 보급 계약이나 토종 종자 재배 후 거래처 선정에까지 지원을 약속했다. 군수로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서둘러 도장부터 찍고 싶은 이야기였다. 여기까지는.

“대신 금천면 땅에 대한 개발권을 제게 주세요.”

홍성필은 예상하지 못한 요청에 순간 말을 잃었다.

“저는 금천면과 천산군을 시의 규모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 방법으로 농사와 관광을 이용할 셈이고요.”

“알고 있네. 그게 자네 영농조합의 이념이라지.”

그 이념 덕에 김서준의 행보가 더욱 칭찬받고 응원을 받고 있던 게 아니던가. 심지어 정부에서 6차산업의 대표 모델로 김서준의 금호 영농조합을 올리고 이 정신을 일종의 유행으로 만들고 하고 싶어서 할 정도였다.

“그런데 제가 만든 그 공이 모두 정치와 기업가들의 사익으로 옮겨가길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정치가나 기업이 손 데는 걸 막겠다? 하지만 그 말은 어불성설일세. 기업이 들어오는 건 도시가 커지는 데 더 도움이 되는 행위지 않나?”

김서준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즉답했다.

“그건 마을 사람들이 충분히 자리를 잡은 이후에나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군수님도 아시다시피요.”

홍성필이 뜨끔했다.

기업은 사익을 추구하는 데는 누구보다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이다. 금싸라기 땅부터 척척 선점하고 들어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걸 지원함으로써 우리 당과 나는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

실제로 이번에 금천면을 시작해 토종작물을 확대한다고 하자 몇몇 식품 가공업체에서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가공 공장이나 유통센터를 짓기 위해서였다.

그뿐일까.

금산마을 주변에 호텔부지 등의 허가는 이미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다. 김서준이 그 일대 땅을 전부 사놓지 않았다면 지금의 금산마을 주변은 온통 공사 중이었을 것이다.

홍성필은 김서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전제가 너무 극단적이군. 도시가 크려면 기업이 들어오는 건 필요해. 그만큼 많은 인구가 함께 따라올 테니까.”

“맞습니다. 그러니 그 과정을 조금만 늦춰달라는 겁니다.”

“언제까지 말인가? 1년”

김서준은 홍성필을 바라봤다. 1년. 홍성필은 대놓고 자신의 임기를 기간으로 잡았다.

‘역시 이 사람은···.’

알려진 대로다. 성과주의자라고 알려진 홍성필 군수. 사업가 출신인 만큼 그의 행보는 언제나 합리적이라는 평이 자자했다. 하지만, 김서준은 홍성필의 행보에서 한 가지를 더 볼 수 있었다.

‘일만큼 홍보를 열심히 한다는 거지.’

그는 일을 잘하는 정치가는 맞았다. 하지만 그걸 홍보하는 능력은 훨씬 더 뛰어났다. 벌써 그가 차기 도지사 후보로 주목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보통이라면 시민들이 군수에게는 관심이 없어야 하는 데 말이야.’

거기다 이런저런 기업과 연계된 사업도 많았다. 아마 정경유착의 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리라.

‘그 말인즉,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선거를 노린다는 이야기겠지.’

생각이 적중한 만큼, 김서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 전. 그러니까 3년 안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이해를 못 한 건가? 내 군수 임기는 1년밖에 남지 않았네만.”

“연임을 노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중간에 사퇴 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실 테고요.”

“흠···.”

홍성필은 대답 대신 커피를 들이켰다. 일종의 노코멘트인가. 그러나 노코멘트는 누구나 알 듯 긍정에 가깝다.

“...정착만으로는 부족해. 그건 티가 안 나잖아.”

“물론입니다. 그 안에 금천면 전체가 관광으로 유명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계획은 있는 거겠지?”

“어차피 이 모든 일이 금호 영농조합과 연결되는 일입니다. 네. 당연히 계획이 있습니다.”

홍성필은 다시 한번 김서준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마치 김서준의 머릿속을 간파하려는 듯.

그러나 김서준은 오히려 담대하게 그 눈을 마주했다.

“계획을 공유할 수 있나?”

“러프하게는요. 자세히는 어렵습니다. 비밀이라.”

“그런 식이면 자네 제안을 받아주지 않는 방법도 있겠네만?”

김서준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되지도 않는 협박을 하시네.’

지금 김서준과 금산마을의 인기는 대단했다.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은, 실은 군수의 지원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 진행이 가능했다.

‘주민들이 지원을 받지 않고도 직접 찾아오는 실정이니까.’

다만 더 원활하고 완벽한 진행을 위한 협상이자 계약이라는 걸 홍성필 역시 모르지 않을 터.

그런데 좀 더 부드럽게 타이를 수도 있지만, 그는 강하게 이야기했다.

‘내 확신과 그릇을 보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응해야지. 김서준은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대충 그린 청사진만으로도 분명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거절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시죠.”

****

“멍멍!”

“움움!”

아침부터 리노와 노움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산책하는 내내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이유는 오늘 할 일 때문이었다.

“미트루트 밭이라니 너무 좋다움!”

“멍멍!”

드워프들은 사과로 빚는 술에 당분간 매진하기로 했다. 밀로 맥주를 빚는 일도 좋지만, 사과로 만든 술의 끝을 보겠다고 했다.

‘고블은 격하게 반대했지만, 존중해야지.’

고블은 드워프의 술이 만들 엄청난 수익이 사라진다며 격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김서준은 달랐다.

농사, 농원 모든 게 김서준이 하고 싶다는 일념하에서 시작됐다. 김서준은 주변에 있는 모든 이가 그러길 바랐다.

돈은 언제나 2순위 혹은 3순위였다.

‘나도 마셔보고 싶기도 하고.’

지금 가온 길의 납품하는 애플 사이다(Cider) 역시 매일 마시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맛있는 사이다와 다른 술이라니.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도였다.

그렇게 믿고 기다리기로 하니 남는 땅이 생겼다. 본래 밀을 키우려고 했던 밭이었다.

‘마침 잘됐어. 연구도 마무리되어 가는 데 미트루트를 심으면 되겠지.’

그리고 미트루트를 가장 좋아하는 노움과 리노는 당연히 신이 날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미트루트는 상품 작물도 아니다 보니 언제든 한두 뿌리는 먹어도 상관없었다.

즉, 둘에게는 거대한 간식 창고가 생기는 셈.

“너무 좋다움!”

“멍멍!”

둘은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며 즐거워했다. 어느새 밭에 도착한 김서준은 오랜만에 황금 트랙터를 소환했다.

“일하느라 바빠서 많이 못 탔으니까. 이번에는 나도 직접 운전해볼까.”

“저도 타겠습니다움!”

“그럼 오늘은 움들은 없이 둘이 해볼까?”

“좋습니다움!”

“멍멍!”

“하하, 리노도 태워줄게. 리노는 내 옆에 타자.”

“멍!”

리노가 작은 몸으로 통통 튀며 좋아했다. 김서준은 트랙터 한 대를 더 소환해 조종석을 노움에 맞게 축소해줬다.

김서준의 트랙터에는 원래는 없는 조수석을 하나 만들었다. 리노는 조수석의 냉큼 올라탔다.

“반 나눠서 누가 먼저 하나 경쟁해볼까?”

“좋습니다움! 지지 않겠습니다움!”

“그래. 이기면 저녁에 참치마요 미트루트 샐러드 해줄게.”

“조, 좋습니다움! 무조건 이기겠습니다움!”

노움이 반색했다. 참치마요 미트루트 샐러드는 노움과 리노가 가장 좋아하는 특식 중 하나였다.

“멍멍!”

“리노, 넌 나를 응원해야 하는 거 아냐?”

“멍!”

“하하. 알겠어.”

이 녀석들 식탐은 어쩔 수가 없다. 노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에 쌍심지를 켜고 승부욕을 불태웠다.

‘승부니까 봐줄 수는 없지.’

김서준은 피식 웃으며 소리쳤다.

“자, 그럼 바로 시..작!”

두 대의 황금 트랙터가 동시에 밭으로 들어갔다. 잡초와 땅속에 박힌 돌들이 하나둘 위로 갈려 나왔다. 뭉쳐있던 흙이 풀리고 아래에 있던 흙이 위로 올라오면서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니까 더 재밌네.’

한동안은 트랙터 탈 일이 없었기 때문일까. 밭을 가는 데 무언가 속이 시원한 기분이었다. 리노 역시 창가에 매달려 이 즐거운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김서준은 그대로 트랙터를 더 빠르게 몰았다. 그런데 그때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트랙터 엄청 멋있다.”

“온통 황금색이네.”

“우리 할아버지 거는 엄청 작던데 저건 엄청 커!”

“외국에서나 볼법한 모델이네.”

주변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트랙터의 화려한 비주얼에 끌려 구경 온 듯했다.

‘이런 것도 구경거리가 되겠구나.’

한 번씩 트랙터를 굴려줘야겠다. 김서준이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구구구구!

옆에서 움직이던 노움의 트랙터가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심을 받은 노움이 아무래도 흥이 오른 모양.

‘질 수 없지.’

김서준도 액셀을 더 강하게 밟았다.

“와, 저 트랙터 힘이 엄청나네.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나?”

“정밀도도 엄청나네. 저 골 만드는 거 봐. 완전 직선으로 똑바로 만들잖아. 저렇게 빠른데.”

“엄마! 나도 트랙터 타고 싶어! 완전 멋있다!”

트랙터가 더 빠르고 강하게 움직일수록 사람들은 열광했다. 김서준은 새삼 이 상황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농사 자체가 쇼가 될 수 있는 건가?’

정령이 짓는 농사라던가, 김서준의 트랙터나 굴착기는 독특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도리나 토리와 함께하는 물을 뿌리는 시스템도 그중 하나.

‘이런 걸 일종의 쇼로 만들면 재밌겠는데?’

김서준 역시 처음에는 스스로 놀라지 않았던가? 노움과 리노도 열광했고 말이다. 일도 하면서 관광 상품도 만들 수 있으니 꽤 좋은 생각처럼 보였다.

‘돌아가서 모두와 상의해봐야겠어.’

오래간만에 스스로 맘에 드는 아이디어였다.

-끽!

트랙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노움이 조종석을 박차고 나오며 소리쳤다.

“끝났다움!”

“와! 정령이다!”

“저 큰 걸 저 작은 정령이 움직인 거야?”

“노움 대박!”

“진짜 농부 헌터 짱이다!”

사람들이 그런 노움을 보며 찬사와 놀람을 보였다. 노움이 그들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비록 졌지만, 김서준도 트랙터 안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진짜 맛있고-블!”

“그렇다움! 참치마요 미르투트 샐러드는 최고다움!”

“멍멍!”

김서준은 커다란 보올에 남은 참치마요 샐러드를 전부 얹으며 말했다.

“많이 먹어. 여기 빵도 발라 먹고.”

“감사하고-블!”

“알겠습니다움!”

“멍멍!”

귀여운 셋은 무슨 파티라도 온 것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열심히 샐러드를 먹었다.

“저게 그렇게 맛있을까. 난 진짜 맛없던데.”

“그러게 말이오. 클클클. 연구하면서 몇 번 먹어봤다가 몇 번을 실패했지. 클클.”

도스와 엘린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우노가 말했다.

“도스. 포션이 완성되면 우리도 저 맛을 견뎌야 하는 건가?”

“우노. 그 비릿하고 텁텁한 몹쓸 맛은 좀 덜하니 작은 망치 입맛인 너도 먹을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클클.”

“작은 망치라니! 이제 채소도 잘 먹는다고!”

발끈한 우노가 나물을 한 움큼 가져가 입안에 욱여넣었다. 그 모습을 본 모두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근데 포션은 어때요? 좀 진전이 생겼어요?”

한참을 웃던 와중 김서준이 물었다. 그러자 엘린과 도스가 눈을 마주쳤다. 그러더니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서준 씨의 말이 옳았어요. 사비오의 진정 효과는 생각 이상이었어요.”

“분명 차도가 있었소. 그리고 몇 번을 테스트했고 이제 마지막 테스트만 남았소.”

“마지막이라면···.”

김서준의 말에 나물을 꿀꺽 삼킨 우노가 말했다.

“서준, 당연히 실전 아니겠소!”

김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그 말은 설마?”

“맞소. 이제 완성했소. 미트루트 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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