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87화 (87/139)

87. 확장준비

강의 시작 얼마 후, 김서준이 그랬듯 의심은 싹 사라졌다. 어르신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고블의 강의를 경청했다.

“토종 작물 지원금 추가 지급은 어떻게 받는 거야?”

“농수산물품질인증관리 센터에 신청하면 되는 고-블! 서류는 여기 적힌 리스트대로 준비하면 도는 고-블!”

“농민 인증서와 함께 신청하면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28% 더 받는다고? 그럼 총 50% 할인인 겨?”

“그렇고-블!”

“대박이네. 대박이야.”

“농적 지원금은 또 뭐여?”

대학교 강의에 참석한 대학생들과는 달리 주민들은 질문도 거침없었다. 모르는 건 막힘없이 물었고, 고블 역시 막힘없이 대답하니 학구열로 현장이 뜨거웠다.

‘다행이야.’

김서준은 씩 웃었다. 금호 영농조합의 사업이나 대외 영업 등, 내실에 대해 김서준은 고블과 함께할 계획이었다. 세무 관련해서는 고블에게 전담시킬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영농조합의 이사는 김서준이라지만 함께 꾸려가는 기업. 모두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고블의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지.’

고블은 그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한 셈이었다.

“고블아. 이건 우짜는겨?”

“지원금은 지금 바로 신청할 수 있는겨?”

강의가 끝나고도 주민들은 줄을 서서 고블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고블은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고 상담했다.

“참말로 정령 맞는 겨?”

“뭔 놈의 정령이 저렇게 똑똑혀.”

“이렇게 또 서준이 덕을 보는구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임종철과 호산마을 촌장이자 이제는 영농조합 내, 2차 가공 업체 사장이 될 예정인 최씨가 다가왔다.

“아니, 저런 정령은 어디서 구하는 거여?”

“그러니까 말이여. 저 마을마다 하나씩 배급해야겠어. 면사무소 공무원보다 친절하고 똑똑하구먼.”

“하하.”

김서준이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사님의 능력이 끝이 없으니 아주 믿음직스럽구먼.”

“우리 서준이가 믿음직스럽긴 하지.”

“아닙니다. 저도 배울 게 많고 지금도 두 분께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난 우리 이사님 겸손한 게 참 좋더라.”

“서준이가 능력에 인성까지 완벽하다니께.”

두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김서준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괜히 뒤통수를 긁었다.

“근디 말이여. 정말 우짤 겨?”

임종철의 물음을 김서준은 단번에 이해했다. 최근 마을에 빗발치는 귀농에 대한 문의 때문이었다.

김서준은 금수산을 만들면서 틈나는 대로 마을의 빈 땅을 사들였다.

‘혹시라도 농장이 엄청 잘됐을 때, 엄한 사업체가 들어오면 안 되니까.’

애써 관광지를 만들었는데, 대기업이 호텔을 짓는 다거나, 투기꾼에게 땅을 빼앗기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워낙 촌구석에 땅값이 쌌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매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이었다.

“대책이 있긴 해야 혀. 귀농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대응하기도 힘든 수준이여.”

최씨가 임종철에 말에 보탰다.

“그냥 땅을 좀 풀어주는 게 어뗘?”

“어설픈 마음으로 농사를 하러 온 사람들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김서준은 딱 잘라 말했다. 이제 곧 출시될 사과주는 드워프가 전담한다. 가온 길은 이미 검증된 셰프들의 솜씨였다.

마을 주민들은 오랜 기간 농업에 종사한 전문가일 뿐 아니라,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자 하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아주 중요했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서 첫인상을 심는 거니까.’

그렇다 보니 사람을 받는 게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젊은 사람들이 어르신을 돕는 박보현 씨나 가온 길의 신동원 씨처럼 절박하거나 열정이 넘친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기술은 없더라도 배우려는 열정과 성실함 정도는 갖춘 사람을 뽑고 싶었다.

“마을의 번성은 기반만 잘 잡는다면 언제든 가능할 거고요.”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가 흔치 않은데···.”

“그려. 그리고 젊은이들이 열정도 좋지만 이게, 창의적이잖여. 그 뭐냐. 젊은 감성 그런 거 말이여.”

김서준도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김서준은 창의력에 우열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른 경험을 하지 않는가. 그 경험이 저마다의 상상력을 만들 테니 말이다.

‘새로운 영감을 줄 수도 있고.’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있는데요. 혹시 요즘 유행했던 쇼앤프루브 보셨어요?”

“그게 뭐여?”

임종철과 최 씨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김서준이 아차 했다.

‘어르신들에게는···.’

“‘트로트 마스터’ 같은 거요.”

그러자 두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그거 비슷한 거 한번 해볼까요?”

김서준이 피식 웃었다.

****

고블이 금호 영농조합의 사무실에서 세무작업을 하는 사이, 김서준은 금호산의 정상에 나머지 인원을 모두 소집했다.

“젖소가 좋지 않을까요? 신선한 우유도 나오고 치즈도 얻을 수 있잖아요?”

“엘린, 산양유도 맛있고 좋다네. 영양가도 풍부하고 말이야. 클클클.”

“전 그냥 양이 좋다움! 푹신푹신한 양이 좋다움!”

“멍! 멍멍!”

“꽥.”

그리고 잠시 후.

넓은 평야를 보며 모두가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토론 주제는 이 넓은 초원에 무슨 동물을 키울까였다.

“그냥 소는 어떨까요? 신선한 소를 도축하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든 강하진 셰프가 새로운 의견을 개진했다.

“갓 잡은 소를 도축해서 쓸 수 있다면, 소고기 오마카세를 해도 되겠는데요?”

신동현이 강하진 셰프를 거들고 나섰다. 그러자 엘린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아무리 고기를 먹는다지만, 직접 키운 소를 잡아먹는 건 도저히 용납되지 않네요···.”

“그,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하하···.”

강하진과 신동현이 쭈뼛거리며 웃었다. 눈치 없는 우노도 ‘하긴 엘프에겐 그럴 수도 있지 아쉽군.’ 하고 중얼거리다 엘린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흠.”

다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그냥 토리로 농장을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양이 짱 귀엽다움! 짱 푹신하고! 양 타고 놀구 싶다움!!”

저 쟁쟁한 토론 사이 7살 아이가 낀 것처럼 앙탈을 부리는 노움을 빼면, 모두가 나름 논리적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주변에 치즈가 유명한 곳도 있으니 젖소로 하면 시너지가 날 거예요. 그리고 우유는 건강식품이잖아요? 우리가 마셔도 좋아요.”

“산양으로 술을 담그면 기가 막히지.”

“그건 드워프를 위한···.”

“엘린. 그건 아니오. 우노만 있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있지 않소. 상품화시켜서 금산농장에 기여하겠소.”

“셰프 입장에서는 젖소도 좋습니다. 갓 짠 우유를 살균해서 요리에 활용할 수도 있고, 유제품을 이용한 디저트를 만들면, 고객에게 시각적인 마케팅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양도 예쁘다움! 양도 사람들이 좋아한다움!”

“멍멍!!”

“그렇긴 한데, 양은 미관 말고는 다른 활용도가 좀 부족합니다.”

잠자코 토론을 지켜보던 김서준이 손을 들었다.

“자, 이쯤 해보죠.”

“서준, 결단이 선 거요?”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의에 찬 김서준의 얼굴을 몇몇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젖소겠죠?”

“서준, 산양이오?”

“양! 양!”

“멍! 멍!”

토론에 열심히 참여했던 패널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김서준을 바라봤다. 김서준은 다시 한번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해. 이게 좋겠어.’

결정에 변함은 없었다. 오히려 확신에 찼다.

“제가 선택한 동물은...”

****

금호 영농조합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김서준을 제외한 모든 인력의 나이가 여느 회사에 정년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조합 회사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호산마을이 연령층이 어려서 다행이었지.’

덕분에 50대 중반의 젊은 인력을 조금 충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실은 농사를 짓거나, 체험농원, 심지어 게스트하우스와 펜션 운영에도 이 점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르신 특유의 인자한 감성과 너그러운 인심, 고향에 대한 향수가 어필되는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사무직이지.’

사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르신들이 컴퓨터와 멀기도 했고. 농업, 농사를 지으면서도 장부를 수기로 관리했기에 엑셀은커녕 기본적인 문서작성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김서준과 엘린이 저녁 시간마다 컴퓨터 클래스를 열까 고민했을까.

‘최 씨 아저씨와 김 씨 아저씨가 그나마 엑셀을 좀 다룰 줄 아셔서 다행이었지.’

거기에 노움과 도리, 토리 등 덕에 시간 여유가 있던 김서준이 시간을 내 경리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금산마을에 손님이 넘칠수록 업무량은 기하급수로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문제여서 인력을 좀 뽑으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

“거기 처리 끝났으면 서류 넘기고-블.”

“알겠고-블.”

“여기서 계약서 조항 확인 다시 하라고-블.”

“그건 저 고블이 한 거고-블.”

임시로 사용 중인 호산마을에 위치한 금호 영농조합의 사무실을 10마리의 고블린이 채우고 있는 덕분이었다.

‘신기하네.’

고블의 스킬인 ‘멀티태스킹’이었다.

“분신술과는 다르고-블. 일 할 때만 사용할 수 있고-블.”

고블은 자신의 스킬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뿐일까. 지식 습득도

대체 어떻게 성장하면 저런 스킬을 익혔을까. 이쯤 되면 이전 신농이 고블을 데리고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을 수준이었다.

‘덕분에 편해지긴 했지만.’

“사업 시작하고 이렇게 편했던 적이 없구먼.”

일찍이 사무실에 나와 자리에 앉아있던 사장, 최 씨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 덕을 또 보내. 내가. 조만간 한우 세트라도 대접하겠네.”

“하하. 감사합니다.”

이제 김서준이 할 일은 최 씨 아저씨가 고민하거나, 고블이 고민하는 일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결제해주는 정도로 확 줄었다.

‘이런 식이면 정말 다른 데 더 집중해도 되겠는데?’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단지 너무 바빴을 뿐. 그런데 그중 가장 큰 족쇄가 해결된 셈이니, 김서준은 날아갈 듯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신농님!”

저 멀리 앉아있던 고블 중 하나가 김서준을 발견하고는 인사했다. 김서준도 가볍게 인사하려는 순간 누군가 김서준 앞에 턱하고 섰다.

“결제 부탁하는 고-블!”

분신인 또 다른 고블이었다. 인사인 줄 알았는데, 업무였다니. 김서준은 애석한 웃음을 지으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금천면에서 전체에 토종 작물을 보급하는 데, 면장의 허가가 떨어졌고-블. 신농님이 이야기한 거처럼 지원금 확대하고, 수요 조사 먼저 하겠다고 하는 고-블!”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실, 금천면 면장은 진작부터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

대통령에 도지사에, 이제는 시장까지 나서서 금산마을과 토종 작물을 지원하는 데 당연한 이야기였다. 사실 옆에서도

“일단 수요 조사까지만 해달라고 해. 보급은 천천히 할 거니까.”

“알겠고-블.”

“그리고 광고 건은 어떻게 됐어?”

“허가받았고-블. 신농님이 원하셨던 대로 직접 업체 선정하고 작업할 수 있게 협조하겠다고 답신이 왔고-블.”

김서준이 씩 웃었다.

‘오랜만이네.’

김서준은 마케팅을 좋아했다. 특히 광고 제작을 좋아했다. 길드를 운영할 때도 광고 관련 내용만은 깊게 관여하는 편이었다. 대행사와 미팅도 자주 가졌다.

‘생각한 아이디어가 먹히고 반응을 보는 것만큼 희열 있는 일도 없지.’

이번에는 고블과 이야기했던 대로 SNS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인플루언서는 특이하고 신기한 사람이 많으니까 더 재밌을 거야.’

모든 게 계획대로 척척 흘러갔다. 일은 쌓이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뭐부터 해볼까.’

한참 마음이 들뜨는 그때, 김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트레스? 네. 네? 알겠어요. 얼른 양조장으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김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손님 때문에 곤란하다니.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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