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86화 (86/139)

86. 고-블!(2)

금산마을을 유례없는 호황이었다. 단순한 마을 관광 및 체험은 물론, 가온길, 트리, 농장, 정령 등등 수많은 매력 포인트들이 모두 대중에게 어필된 덕이었다.

‘SNS뿐 아니라 너튜브에서도 최근 인기가 많지.’

농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V-log를 찍는 다며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젊은이를 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바이럴 마케팅은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인데, 호재는 또 있고-블! 정부의 지원 정책도 대박이고-블!”

여기서 정부는 대통령 뿐이 아니었다. 조영승 도지사 역시, 물들어올 때 노젓기를 하겠다는 듯 충청남도 홍보 영상 분량의 반을 금산농장으로 채웠다.

충청남도와 천성 시에서 운영하는 SNS도 금산마을, 호산마을 그리고 금산농장 관련 게시물로 피드가 가득 차 있었다.

“토종 작물도 지원이 대박이고-블! 정부 지원금도 늘었고, 거래를 원하는 업체도 많아지고 있고-블.”

허철영이 약속을 제대로 지킨 덕분이었다. 김서준이 바란 건 그냥 많이 먹는 캠페인 정도였다.

‘소비량만 늘어도 충분하지. 맛과 질로 승부 보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세계수의 가호가 없는 땅에서는 자란 작물은 어쩔 수 없이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서준의 작물을 먹었던 이들이 실망할 건 당연지사. 그렇다면 감자나 송이버섯, 산양삼처럼 토종 작물 역시 프리미엄 작물화될 게 뻔했다.

“그래서는 곤란하고-블!”

“맞아. 터전을 넓혀야 하니까.”

다른 작물은 몰라도 ‘토종 작물’은 그래서는 안 됐다. 터전을 넓히는 핵심인 토종 작물을 많은 소비량 아래에 더 멀리멀리 뻗어야 했다.

“근데 정부 정책 덕에 소비량뿐 아니라 식품 관련 기업에서도 관심을 끌게 된 거지. 세금 등 특혜를 받을 수 있으니까.”

“신농님의 말 대로다고-블.”

벽에 떠 있는 PPT 화면을 힐끗 바라본 고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이런 좋은 상황에서 우리 금호 영농조합은 좀 더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하고-블. 그래서 제가 준비한 전략은 이렇고-블!”

고블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리모컨의 스위치를 눌렀다.

“흠···.”

김서준은 유심히 내용을 살폈다. 넓은 화면에는 고작 4개의 문장이 적혀 있었지만, 김서준은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진짜 정령 맞아? 이 정도면 대기업 엘리트 사원 같은데?’

내용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김서준이 생각해둔 바와 너무나도 결이 비슷했다. 특히나 눈에 띄는 건 SNS를 이용한 광고를 직접 제작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첫 번째 건은 SNS 인플루언서에게 협찬하자는 거지? 정부가 만들어주는 광고 받지 말고?”

“맞고-블. 정부의 돈은 너무 많이 세는 고-블! 아깝고-블!”

“좋은 생각이야. 근데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돈의 흐름은 이미 전부 머리에 넣었다는고-블!”

고블이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김서준이 씩 웃었다.

어렸을 때, 좀 더 지적인 모습으로 보이겠다며 안경을 쓰는 애들이 있었다. 그러나 안경을 쓴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는가.

그래서 김서준은 저런 딱딱한 뿔테 안경이 주는 이미지를 믿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실수였다.

‘믿음직한 정령이 하나 더 늘었네.’

****

다음 날.

여지없이 아침 일과를 마친 김서준은 바로 밭일에 나왔다. 이번에는 고블을 함께 데리고 나왔다.

“식물에 물을 좀 줄래?”

명색에 물의 정령이 아니던가. 드론으로 물을 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꽤 걸렸다. 드론이 저수지까지 가서 물을 길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의 정령이라면 그런 시간 없이 바로 물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여태 나온 정령들은 농사를 짓는 데 아주 능숙하지 않았던가. 김서준은 고블 역시 그러리라 예상했다.

“알겠고-블!”

역시나 고블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리곤 앞으로 나서서 손을 뻗었다. 푸른 기운과 함께 감자밭 위로 거대한 물방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멍멍!”

“대, 대단하다움!”

함께 지켜보던 리노와 노움도 탄성을 터뜨렸다. 어지간한 소형차만 큼, 커진 거대한 물방울을 본 고블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런데,

-쾅!

김서준은 물풍선이 터지듯 물방울이 터질 거로 생각했거늘.

‘물풍선이 아니라 물 폭탄이잖아!’

비처럼 쏟아지는 물과 함께 후폭풍이 일었다. 김서준이 놀라 리노와 노움을 품에 안고 몸을 감쌌다.

“멍!!!”

“움!!!”

리노와 노움도 놀라서 비명을 토해냈다.

“....”

잠시 후 후폭풍이 가시고, 뜯긴 감자 잎 몇장이 하늘에서 휘날렸다. 그중 한 장이 김서준의 손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어···.”

순간 할 말을 잃은 김서준에게 고블이 말했다.

“한 번 더 할 고-블?”

고블이 배시시 웃으며 김서준을 바라봤다. 그 뒤로 난장판이 된 감자밭을 보며 말했다.

“아, 아냐 괜찮아.”

“알겠고-블!”

“근데 고블. 고블은 혹시 농사는 잘 모르는 거야?”

“농사···.”

고블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농사···. 는 잘 모르겠고-블.”

“예전에 농사 안 지어봤어? 이전 신농이랑?”

“이전 신농님은 기억이 안 나는 고-블···.”

고블이 아쉽다는 듯 이야기했다.

도리나 노움처럼 고블 역시 이전 신농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좀 마음 아픈 이야기네.’

분명 이전 신농과도 많은 일을 하고, 그만큼 많은 추억을 쌓았을 것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리움만은 남아 있을 게 분명했다.

‘노움도 그랬지.’

비록 움이었던 시절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 어딘가 뭉클하다고 했다. 도리는 그때는 떠올리면 왠지 모를 고마운 마음이 올라온다고 했다.

‘아마도 어딘가 남아 있을 아련한 기억의 영향이겠지.’

김서준은 고블의 안타까운 표정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괜찮아. 잘하는 걸 하면 되니까.”

“맞다움. 고블은 돈 관리랑 싸움을 잘하니까 그걸 하면 된다움! 농사는 제가 지겟습니다움!”

노움이 고블을 위로하듯 나서며 말했다. 그러자 고블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고-블. 그럼 농사는 노움에게 맡기겠고-블.”

“걱정 말라움!”

“멍!”

“알았고-블. 리노 공도 잘 부탁하는 고-블!”

“멍멍!”

김서준은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셋이 꽁냥거리는 모습이 정말 인형 3개를 모아놓은 것처럼 사랑스러웠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서준은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그럼 나도 잊힐까.’

그것은 너무나도 씁쓸한 일이었다.

****

“갑자기 무슨 일이랴.”

“그러게 말이여.”

가온길 식당 안.

휴일을 이용해 김서준은 마을 사람들을 모았다. 주민들은 영문은 몰랐지만, 김서준이 부르자 군말 없이 전원 참석했다.

“다 서준이가 뜻이 있어서 불렀겠지.”

“하긴 서준이가 허튼일로 부르지는 않았겠지.”

“그럼! 서준이가 어떤 녀석인 디!”

단, 한 사람도 이에 대해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한창 바쁜 와중에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사람들이 한참 모여서 떠들고 있던 그때, 김서준이 임종철과 함께 입장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구먼!”

“오랜만이여! 잘 지냈는가?”

“못 본 사이 더 잘생겨진 거 같어.”

“잘 지내셨죠?”

몇몇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봐 반갑다고 인사했다. 마을에 손님이 많고 할 일이 많은 탓에 이제는 같은 마을에 있으면서도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써야 하는 상황.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쁘게 지내고도 불안해하던 예전과는 달라진 덕이지.’

예전에 농사만 지을 때는 ‘이걸 지어서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항상 불안해야 했다. 흉작이나 시세 등 경매를 무사히 넘기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서준이 덕에 잘 지냈지.”

그 말대로였다. 김서준 덕에 농산물 가격이 일정 금액 이상으로 보장을 받았다. 설령 농사가 좀 망해도 농사를 체험하러 온 손님이 넘쳤다.

관광하러 온 김에 들르는 직거래 손님도 많았다.

이렇다 보니, 힘든 와중에도 주민들은 모두 안색이 훤했다.

“다행이네요.”

김서준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르신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후, 미리 설치해둔 화면을 켜면서 말했다.

“오늘은 어르신들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중요한 이야기?”

“그게 뭔가?”

“앞으로 금호 영농조합을 키워갈 계획. 그리고 어르신들이 돈을 벌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돈을 번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김서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 파란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오오.”

“저게 뭐당가.”

“멋지구먼. 껄껄.”

사람들이 감탄하는 사이 빛무리에서 작은 아이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아이?”

모두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실루엣이 드러났다. 파란 피부에 동그란 얼굴을 한 고블이었다.

“반갑고-블! 고블이라고 하는 고-블!”

고블은 만나자마자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시에 꾸벅 인사했다. 김서준이 미리 교육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말투가 신기하구먼.”

“귀여워. 우리 손주 닮았어.”

“피부가 파란색이라니. 특이혀.”

어르신들이 저마다의 감상을 뱉었다. 그러다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런디 저거 몬스터 아녀? 피부가 파란디.”

“뭔 몬스터여! 서준이가 우리 모아놓고 지금 몬스터를 불렀다는겨?”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그냥 그렇게 생겼다 이거지.”

“이 사람 큰일 낼 사람이네! 서준이를 뭐로 보구!”

어르신이 구박받자 김서준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고블은 몬스터가 아니고 정령입니다. 제가 새로 소환한 정령입니다.”

“맞고-블. 물의 정령 고블이라고-블! 만나서 반갑고-블!”

고블이 다시 한번 더 인사했다. 그러자 어르신들도 반가워하며 인사했다.

“근디 아까 돈 벌 계획하고 영농조합을 키울 계획을 말해준다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김서준은 웃으며 말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영농조합의 미래와 새로운 사업계획을 위해 안내를 드릴 겁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받지 못하는 혜택이나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 먼저 해결해드리고요.”

“우리 돈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우리 혜택? 그런 게 또 있는가?”

“아니, 서준이 자네, 그런 것도 할 줄 아는 겨?”

김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가 아니고 고블이가 할 겁니다.”

“...”

순간 분위기가 짜게 식었다. 모두가 못 미더운 눈치. 당연했다. 고블이는 얼핏 보기에 초등학생 정도의 외모. 거기에 정령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서준이의 정령이라지만, 정령이 돈 문제를 관리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 겨?’

모두가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요즘 귀가 안 좋아 그런디, 잘 못 들은 건가? 방금 정령이 돈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한 거 같은디···.”

“사업도 정령이 설명하고···?”

“그냥 서준이가 해놓은 걸 대신 읽기만 한다는 겨?”

“새로운 정령 소개할 겸 장기자랑 같은 건가?”

어르신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한마디씩 했다. 그러자 김서준이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닙니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고블이 에게는 돈을 다루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일단 이야기를 먼저 들어 봐주세요. 그러고 나서 고민해주세요.”

김서준의 말에 장애가 술렁였다.

“아무리 그래도 정령이···.”

“...그래도 서준인디.”

“그려, 한번 믿어보자고.”

현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마을의 영웅인 김서준이 아니던가. 주민들을 밑져야 본전이라는 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 잘 보여줘. 그리고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말고-블.”

김서준의 말을 들은 고블이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가져다 둔 TV에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