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85화 (85/139)

85. 고-블!(1)

“만나서 반갑고-블! 고블이라고 한다고블!”

“반가워요!”

“클클. 반갑소!”

엘린과 드워프 삼 형제는 고블을 반갑게 맞이했다.

고블은 파란색 피부와 고블린의 상징과도 같은 뾰족한 귀를 제외하면 노움만큼이나 귀여운 외모였다.

동그란 얼굴에 양쪽 뺨은 빵빵하고, 얼굴 반만 한 뿔테 안경에 멜빵바지까지. 피부색만 아니라면 조카라고 오해할만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고블은 노움과 리노와도 단번에 친해졌을 만큼 친화력이 좋았다.

그 덕분일까.

“와, 진짜 귀엽네요. 제가 알던 물의 정령이랑은 너무 다른데요?”

“그러게 말이오. 내가 봤던 물의 정령은 거북이의 형태였는 데 말이오.”

“거북이라면 운다인인가보고-블. 하지만 정령도 사람처럼 다양한 모습이고-블. 특히 소환자에 영향을 받는 고-블. 아 전 아니고-블. 전 원래 정령 출신이 아니라고-블.”

“클클. 고블. 재밌는 말투를 사용하는 군.”

“그러게요. 노움님도 그렇고 신농님의 정령은 모두 재밌네요.”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만나자마자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졌다.

‘잘하고 있네.’

하지만 동시에 의구심이 들었다. 저렇게 보면 그냥 성격 좋은 조카, 아니 정령에 불과했다. 그런데 아리아는 고블이 선물이라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서준의 사업을 도울 거야.’

저 마냥 귀엽기만 한 정령이 사업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설령 돈에 밝아도 문제야.’

라이너스 대륙, 벨리르 대륙 등. 이들이 넘어온 세계는 김서준이 알고 있는 판타지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업의 분야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복잡한 세법이나, 회계 관리뿐 아니라, 다양한 법이나 제도가 완전히 다르겠지. 훨씬 복잡하기도 하고.’

이 모든 걸 고블이 공부하고 이해하고 나아가 적용하기가 그리 쉬워 보이지 않았다.

‘지식 공유가 있어도 말이야.’

당장 김서준도 세무, 회계 등 어려운 문제는 외부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는 문제지 않는가.

그때였다.

[‘고블’이 신농 김서준의 정령이 되었습니다. 상태창이 업데이트됩니다.]

[상태창을 확인하시겠습니까?]

고블의 머리 위로 작은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김서준은 한참 거실 바닥에 앉아 떠드는 이들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곤 소파에 몸을 묻으며 상태창을 열었다.

[고블 : 물의 정령]

세계수를 돕는 물의 정령

본래 블루 고블린이었으나, 수완이 좋고 물 계열 마법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대 신농은 이런 점을 고려해 세계수에게 고블을 정령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덕분에 고블은 신농만을 위한 물의 정령으로 거듭났다. 정령으로 거듭나며 고블이 가지고 있던 재능은 고블만의 특별한 스킬로 거듭났다.

<특수 스킬>

* 재무 설계

- 유일 스킬

- 고블은 신농이 있는 세계의 돈에 대해 이해하고 그 돈을 관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

-온 세상에서 부의 신의 축복을 받은 ‘고블’만이 가진 스킬이다.

* 부의 미래

- 유일 스킬

- 고블은 돈의 흐름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정확도는 확률로 나타난다.

- 온 세상에서 부의 신의 축복을 받은 ‘고블’만이 가진 스킬이다.

김서준은 상태창을 꼼꼼히 읽었다.

‘1대 신농의 요청이라. 더군다나 유일 스킬이라니. 저게 뭐야?’

다른 정령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더군다나 신의 축복이니, 온 세상이니, 쓰여 있는 설명도 엄청났다.

‘인제 보니, 아리아가 고블을 부르느라 힘을 많이 썼다는 게 진짜였나 보네.’

아리아가 김서준의 사업 번창과 터전 넓히기를 위해 고블을 선물로 준 것도 확실해 보였다. 유일 스킬 이름부터가 그랬으니까.

다만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그래도 저 스킬이 현실에 잘 적용될 수 있을까?’

"인간 세계의 세법은 재밌다고-블!"

“역시 돈 버는 법을 배우는 게 제일 재밌다는고-블!”

이 모든 생각은 기우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블이는 정령과 신농의 지식을 공유하는 ‘지식 공유’ 스킬로 쉴 틈 없이 김서준의 지식을 습득했다.

‘남는 시간에는 인터넷과 뉴스, 신문으로 공부했지.’

신기한 건 그 속도였다. 이게 그냥 화면을 넘기기만 하는 건지, 공부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블이는 빠르게 움직였다.

쉴 때는 돈과 대화라도 하는지,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을 때만 해도.

“이 세계에서는 원이라는 단위의 화폐를 사용하고-블. 신기하고-블!”

라고 했던 고블이가 저녁을 먹을 때는.

“이 세계의 기축 통화는 달러라고-블, 외국의 정세가 중요한 거고-블. 한국의 주가가 신농님 덕에 최고점을 찍고-블, 지금은 그럼···.”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 고블이는 김서준에게 말했다.

“신농님! 이제 공부는 끝났고-블. 재무제표랑 장부 달라고-블. 이제 돈 관리는 제게 맡기라고-블.”

“어? 어, 그래.”

김서준은 ‘아무리 그래도 하루 만에···?’라는 의심과 함께 자료를 넘겼다. 그리고 점심시간.

모두가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 고블이가 말했다.

“영농조합에 새는 돈이 너무 많고-블!”

“비리가 있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혜택을 못 받고 있고-블! 영농조합에 토종 작물 재배, 거기에 6차 산업에 청년 농사꾼 제도까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너무 많다 보니 놓친 게 있고-블! 오늘은 이것부터 제가 다 등록하고-블, 그다음은 터전의 주민들 하나하나 관리를 하려는데 신농님 생각은 괜찮은고-블?”

김서준은 놀라운 얼굴로 고블이를 바라봤다. 비단 김서준뿐 아니라 함께 밥을 먹던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음음. 맛있고-블! 역시 과일은 사과고-블.”

고블이는 모두의 시선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갓 캔 사과를 베어먹었다. 그리곤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녁 먹은 후에는 저랑 사업의 번창에 대해서 고민해보면 좋겠고-블. 지금이 사업 확장의 타이밍이고-블. 우리가 움직여야 할 타이밍이고-블. 신농님의 계획과 제 생각을 들려드리고 싶고-블.”

“그, 그래. 그러자.”

“감사하고-블.”

고블이는 웃으며 대답한 뒤 안경을 추켜 올렸다. 그리곤 다시 남은 사과를 먹는 데 집중했다.

“대, 대단하네요.”

“대단하다움! 역시 고블 공은 여전하다움!”

“멍멍!”

“클클클. 엄청나구먼. 과연 신농의 정령이오. 이거 물의 정령이 아니라 돈의 정령이구먼. 클클클.”

“고블린이 정령이 된 이유가 있었군. 클클클.”

“그렇소. 우노보다 훨씬 똑똑하군. 클클.”

테이블 위에 모든 이들이 탄성과 함께 칭찬을 뱉었다. 김서준 역시 놀랄 따름이었다.

‘하루 만에 그 많은 제도를 익히고 그것도 모자라 사업 계획도 세운 건가?’

내용은 모르지만, 그걸 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했다. 역시 부의 신의 축복을 받은 고블린다운 면모였다.

‘재무 설계라고 했나. 말 그대로 우리 금호 영농조합에 재무설계사가 생겼네.’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경이로운 눈으로 고블이를 바라봤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블. 다들 잘하는 게 있듯이 제가 잘하는 건 이런 거라고-블. 나한테는 이게 당연한 일이라고-블.”

그렇게 말한 고블이는 고사리손으로 신문을 펼쳐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애가 아니었네. 고블이.’

김서준은 대견스럽다는 듯 고블이를 바라봤다.

****

“와, 엄마 여기 너무 예뻐요.”

뛰어가는 아이를 보며 아빠는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뒤에서 참다못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연신 셔터를 눌렀다.

“자기야. 여기서 사진 찍을까?”

“그래. 여기 예쁘다. 살짝 서봐”

한쪽에서는 연인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김서준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다들 좋아해서 다행이야.’

금산농장은 연일 붐볐다.

바이올렛 호퍼를 막은 현장을 보기 위한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관광객의 숫자가 대폭 늘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홍보가 됐을 줄이야.’

TV 속에 스친 거대 트리. 화제가 된 덕에 더욱 빠르게 퍼진 바이럴 마케팅. 거기에 IW 그룹과 청룡 길드, 에픽 길드의 헌터들 소개 등등.

금산농장과 금산마을, 그리고 호산마을까지 모두 화제의 여행지가 된 덕이었다.

덕분에 오늘도, 누군가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을 즐기기 위해, 또 누군가는 SNS에 한 컷 더 올리기 위해 연일 금산농장을 찾고 있었다.

“오늘도 사람이 많습니다움!”

김서준의 옆에서 노움이 튀어나왔다. 농장과 마을이 번성하고 있지만, 김서준과 노움의 일과는 변함이 없었다.

새벽에는 산책과 운동, 낮에는 밭일, 저녁에는 휴식. 오늘도 노움은 여지없이 밭일을 마치고 사과 농장 관리를 도우러 왔다.

“와! 요정님이다!”

“가서 사진 찍자!”

“와 정령이다!”

저 멀리 산책로에서 노움과 김서준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들의 사진을 찍으러 달려왔다. 사람들은 울타리에 바짝 몸을 붙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정령, 진짜 귀엽다!”

“엄마, 저기 강아지도 귀여워요! 우리도 강아지 키워요.”

“김서준은 TV보다 훨씬 잘생겼네. 저게 어딜 봐서 농부야?”

사람들의 소리를 들은 노움과 리노가 괜히 더 귀여운 자세를 취했다. 특히 노움은 최근 V자를 한 채 사진 찍는 데 빠져있었다.

“꺅! 너무 귀여워!”

오늘도 노움의 V자에 손님 하나가 빠져버렸다. 과연 대단한 팬서비스였다.

“자, 그럼 이제 여기도 빨리 마무리할까.”

“알겠습니다움!”

“멍!”

“꽥!”

도리와 노움, 토리와 움은 환상의 궁합을 보여주고 있었다. 농사는 물론, 생사(?)까지 함께 나눴던 그들이었기에 손발이 척척 맞았다.

“엄마! 요정님이랑 새랑 같이 사과를 따!”

“요정이 아니고 정령이라고 하는 거야. 대단하다. 그치?”

“와, 근데 어떻게 저렇게 하는 거지?”

“저거 다, 김서준이 조종하는 거래. 그래서 사실은 S급 헌터라는 소문이 있잖아.”

“진짜 대단하다.”

자기 이름이 들리니 귀가 기우는 건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각성자의 청력에 그 이야기가 너무 잘 들렸다.

‘기분이 좋긴 한데, 왜 자꾸 반말을···.’

김서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동안 사과 농사를 짓는 걸 바라보던 관광객 중 몇몇이 웅성거렸다. 김서준이 사람들의 고개가 향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구오···.”

저 멀리 어슬렁어슬렁 반달이가 오고 있었다. 본래라면 야생의 곰을 보고 모두 놀라야 정상이지만 금산농장에서는 아니었다.

[금산농장에 야생동물은 모두 스킬의 효과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기도 했고, SNS에 사람 어깨를 올라타는 다람쥐, 멋진 자세로 함께 사진 찍는 일호 가족 등 각종 사진이 퍼진 덕이기도 했다.

“바, 반달곰이야!”

“대박! 진짜 나오네/”

“사진 찍자!”

덕분에 사람들은 오히려 좋아하며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반달이에게로 달려갔다.

‘반달이 인기가 진짜 대단하다.’

리노, 노움만큼이나 반달이의 인기도 하늘을 찔렀다. 야생 곰을 저렇게 만지면서 교감할 수 있다는 게 역시 큰 듯했다.

‘반달이도 저걸 즐겨서 다행이고.’

때때로 손님들이 과자나 음식을 주기도 했는데 그 때문인지 반달이는 저 인기를 누리는 걸 좋아했다.

‘가끔은 순찰 경로가 아닌데 나오는 거 같기도 하고···.’

김서준은 금산농장에 새로운 인기 스타를 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반달이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과 교감하는 데 여념 없었다.

“곰! 곰!”

“와, 진짜 무슨 동화 속 곰처럼 엄청 순하네.”

“구오!!”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식물도 좋지만, 농장에는 동물이 있어야 해.’

애초에 농장이라는 표현이 농사와 목장을 함께 한다는 의미이지 않던가. 김서준은 꼭대기에 비워둔 초원을 떠올렸다.

‘수익도 많이 늘어가는 데, 슬슬 초원에 동물 좀 채워볼까.’

김서준은 머릿속에 몇 가지 후보군을 떠올렸다.

****

멜빵 바지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고블이가 서재에 섰다. 고블이의 손에는 대본으로 보이는 서류와 프레젠터가 들려 있었다.

‘이건 또 언제 배운 거야. 지식 공유 한 거 중에 프레젠테이션도 있었나?’

김서준이 놀랍고 신기한 눈으로 고블이를 바라봤다. 고블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프레젠터를 켰다.

-위잉.

기계가 돌아가면서 벽에 화면이 나타났다. 고블이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신농님의 터전 및 사업 확장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고-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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