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82화 (82/139)

82. 중국의 굴욕

하얀 새무리가 창공을 가르며 날아든다. 각각의 새는 늠름한 표정의 정령들을 등에 태운 채 활강한다.

“모두 준비하라움!”

선두에 선 새의 위, 파란색의 오묘한 이파리를 가진 나뭇가지를 흔들며 노움이 소리쳤다. 잠시 후, 나뭇가지에서 빛이 발했다.

-위윙!

날갯짓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떠오르는 보라색 점들. 토리들은 눈을 번뜩였다. 노움은 머리 위로 나뭇가지를 들고 소리쳤다.

“모두 잡으라움!”

“움!!”

“꽥!”

빛은 더욱 강하게 사방을 뻗었다. 동시에 대답한 정령들도 사방으로 산개했다. 바이올렛 호퍼들은 불나방처럼, 중심에 선 나뭇가지를 향해 날아오다, 산개한 토리들의 먹잇감이 되어 사라졌다.

“역시 대단하다움!”

엘린과 트레스가 아쥴을 이용해 만든 휴대용 사비오 안테나는 제대로 작동했다. 금산마을에서의 지원 없이, 일대의 벌레들을 모두 모으고 있었다.

“수가 적다움. 다 잡아 먹으라움움!!”

노움이 강하게 소리쳤다. 우크라이나 끝부터 꾸준히 바이올렛 호퍼를 잡아먹으며 이동했다. 이제 마지막에 다다르니 바이올렛 호퍼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다음은 동쪽이다움! 도리 공, 쉬어야 하냐움?”

“꽥!”

“역시, 좋다움! 신농님을 위해 열심히 진군하자움!”

순식간에 사태를 마무리한 정령 부대는 다시 동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작업을 마친 정령 부대는 현재 유럽과 중동으로 이동 중입니다. 이와 같은 속도면 이번 주 내로 사태는 수습될 거로 보입니다. UN은 이번 일에 대해 한국에···.]

자료 화면과 함께 앵커의 영어 브리핑을 듣던 주석은 마침내 화를 참지 못했다.

-쾅!

밖에서도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하게 책상을 내려친 주석이 국장을 바라봤다.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는 겁니까? 네?”

국장은 고개를 내리깔았다. 그러나 주석의 분노는 도무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아직도 답이 없는 겁니까?”

중국은 고립되었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미국까지 가세한 탓이었다.

[미국은 세계 평화를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발표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미국은 기존에 종종 시도했던 경제제재를 바이올렛 호퍼가 배나 비행기를 타고 전파될 수 있다는 빌미로 아주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모든 나라가 협조에 응했다.

‘한국놈들의 요구였겠지. 감히 소국 주제에···.’

그뿐일까. 해외만 문제가 아니었다. 내부도 문제였다.

“중국은 현재 매우 힘듭니다.”

“저는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SNS에는 정부의 탄압에도 이런 내용의 콘텐츠가 업로드되었다. 중국 주변국이 바이올렛 호퍼 청정국이 되었다는 소식이 공개되자 더더욱 여론은 악화 됐다.

이제는 몇몇 정의감 불타는 헌터들까지 나서서 중국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었다.

“김서준 납치는, 아니 기술 탈취는 어떻게 된 겁니까?”

“한국 정부와 각종 길드가 나서서 그를 보호하는 중이라···. 실패했습니다.”

“다른 방법은요.”

“서둘러 찾는 중입니다!”

국장은 이미 90도로 꺾인 허리를 더 깊게 내리 꺾으며 대답했다.

“이미 늦었어요. 근데도 더 늦겠다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일주일만 더 시간을 주시면···.”

“하루 단위로 사태가 심각해지는 데 7일을 달라? 그게 지금 할 소리입니까!!!”

주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취임 후 그가 이토록 화를 낸 건 처음이었다.

“미국 그 양아치들이 활개 치고, 나라 위상이 떨어지는 와중에 시간을 더 달라니!”

치가 떨렸다.

“저 소국에, 고작 D급 짜리 헌터가 이 사태를 막는답니다! 직업이 농부래요! 농부! 근데 우리 대 중화인민공화국의 14억 인구 중에는 이 사태를 막을 사람이 하나가 없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주석은 부들거리던 주먹을 다시 한번 책상 위에 묵직하게 내리꽂았다. 이제 사태를 종결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치욕을 견뎌야 하는가···.’

물밑 협상이 이뤄질 터였다. 외부적으로는 담대하고 성군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이 내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인 내가 저 양키놈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소국의 얍삽한 사기꾼들에게 사정해야 한다니!’

주석은 심호흡을 뱉고 또 뱉었다. 억지로, 억지로 화를 꾹꾹 눌렀다. 이내 신음하듯 목소리를 토해냈다.

“됐습니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군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

“당신은 이제 그다음을 준비하세요. 철저하게 블랙리스트 작성하고 단계별로 하나씩 처리해가는 겁니다. 나라를 위한답시고 나라를 욕보인 헌터부터 무매몽지한 시민들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서둘러 우리의 위상을 다시 드높일 사건을 준비하세요.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누가 당신에게 말했습니까?”

“네?”

허리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고 있던 국장이 놀라 고개를 슬쩍 들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국장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져 쓰러졌다.

-쿵.

쓰러진 국장의 뒤에서 남자가 나타났다. 주석은 남자를 바라봤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곱게 위로 넘긴 남자는 주석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주석님 알겠습니다.”

****

“자자, 밀린 일을 서둘러 합시다!”

“노는 데도 손이 근질거렸다니까.”

“쉬는데도 일 생각이 나는 게, 서준이 덕에 농사가 재밌어졌다니께?”

“서준이 때문에 진짜 살맛 난다니까.”

어르신들은 돌아오자마자 일에 대한 열정을 내보였다. 아니, 대부분 주민이 돌아온 당일 저녁부터 일을 시작했다.

‘설마 어르신들에게도 영향을 끼칠지는 몰랐어.’

김서준의 활약은 의외의 효과를 불렀다. 청룡 길드와 IW 그룹만큼이나 금산마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다.

그도 그럴게,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금산마을, 올해 꼭 가야 하는 관광지?]

[한국을 치료한 금산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치료한다.]

[벌레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치료해드려요. 금산마을에서 힐링을!]

마을에 대한 각종 좋은 기사가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온 덕이었다.

가뜩이나 SNS에서 알음알음 퍼지던 데다, 작금 최고의 영웅이 된 김서준이 직접 마을을 관리하고 조성했다는 사실, 거기에 지자체까지 나서서 밀어주니 기사가 쏟아질 수밖에.

‘그뿐만이 아니지.’

IW 그룹과 정부도 약속한 대로 금산마을과 금천면에 대한 대대적 홍보를 시작했다. 덕분에 아직 오픈도 안 한 게스트하우스와 체험농원 문의가 밀려들었다.

호산마을을 넘어 금천면에 토종 작물을 보급하는 일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다.

“토종 작물뿐 아니라 뭐든 도와드릴 테니, 금천면 전체가 김서준 씨와 함께한다고 홍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금천면장이 먼저 제안했을 정도.

‘거기에 다른 지역 지자체에서도 연락이 올 줄이야. 이러다 대한민국 전체를 터전 화 시킬 수 있는 거 아니야?’

김서준이 옆에서 함께 아침 산책을 뛰는 리노에게 말했다.

“그치, 리노?”

“멍!!”

리노는 그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활기를 되찾은 마을은 역시나 아침부터 분주했다. 새벽부터 다들 밭에 나와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휴 서준이 아녀!”

“오늘도 산책하는구먼!”

“대단혀!”

어르신들과 인사하며 산책을 이어가던 김서준은 임종철의 집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왔구먼.”

반갑게 맞이하는 임종철의 뒤편, 거한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왔습니까?”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하오위. 김서준은 세계수의 영향으로 언어의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잘 주무셨습니까?”

“덕분에요.”

하오위는 금산마을에서 신변 보호를 받고 있었다. 현재 중국 정부에게 하오위는 역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언제 살해, 납치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지.’

하오위가 비록 S급 최강 중 하나라지만, 중국에는 많은 S급이 포진해있다. 같은 S급끼리의 전투에서 아무리 급 차이가 나더라도 1:3 이상 이기는 건 힘들었다.

그래서 정부와 상의 끝에 하오위는 금산마을에서 신변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로써 끝이지.’

정부의 물밑 협상이 끝난 탓이었다. 중국은 책임에 대해 인정하고 교역에 대해 한국에 엄청난 혜택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거기에 다른 대가도 더 받은 거 같지.’

허철영은 사업가 출신의 대통령. 외교 특히 경제 관련 외교만은 여야 할 거 없이 호평을 받는 대통령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엄청 챙겼을 거야.’

그게 자기 주머니든, 국가의 주머니든 말이다. 여튼 협상은 끝났으니 하오위의 역할도 끝이었다.

하지만,

“돌아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한국에 귀화하셔도 됩니다. 분명 엄청난 대우를 받으실 수 있을 거 고요. 아니면 이 마을에 자리를 잡으셔도 됩니다.”

김서준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사태는 끝났지만, 하오위가 역적인 건 여전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은 중국 국민들의 관심이 하오위를 지킬지 모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위험할 게 뻔했다.

하나, 하오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야죠. 아무리 싫어도 중국은 제 조국입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한 것도 모두 제 조국을 위한 일이었고요. 그런 제가 어떻게 조국을 버리겠습니까.”

“...”

김서준은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 말이 맞았다. 목숨을 걸고 치욕을 견디고 자신 앞에 무릎을 꿇었던 건, 전부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이 사람이 마음에 들었던 거고. 그런 하오위에게 귀화라니. 말도 안 되지.’

김서준은 안타까움에 쓴웃음을 지었다. 반면 하오위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편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근데 그 정령들은 어떻습니까?”

“곧 마무리될 겁니다. 내일모레쯤에는 복귀시키려고요.”

“대단하네요. 나라를 넘어 돌아다닐 수 있는 정령이라니.”

“저도 제가 이런 능력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이렇게까지 멀리서도 소환을 유지할 수 있는지요.”

진심이었다. 지금의 정령 소환은 엘프인 엘린의 상식까지 뛰어넘는 일이었다.

‘신농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지.’

다행이었다. 덕분에 금산마을이 더 빠르게 평화를 찾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봐도 서준 씨는 보통 농부는 절대 아닌 거 같습니다. 저 정령만 봐도 S급 이상인 건 확실하고요.”

“과찬입니다. 이번 사태는 특이했지만, 사실 제가 잘하는 건 이렇게 농사를 잘 짓는 일뿐이거든요. 나중에 오셔서 제게도 잘 싸우는 법을 지도해주시죠.”

“물론입니다. 언제든 또 불러주세요.”

대답한 하오위가 임종철 일가에게도 인사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든 그들은 따뜻하게 인사를 나눴다.

“잘 가시게.”

“다음에 꼭 다시 찾아오세요. 그때는 맛있는 음식도 대접해드릴게요.”

“다시 오시면 저한테도 헌터로서의 노하우를 꼭 전수해주셔야 합니다.”

엘린의 통역마법 덕에 모두와 인사를 나눈 하오위는 문밖을 나섰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하오위가 손을 내밀었다. 김서준은 솥뚜껑만 한 거친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네. 또 뵙죠.”

문밖에는 예정대로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오위는 세단 위에 몸을 구겨 넣었다.

흙먼지를 날리며 떠나는 차를 보며 김서준이 말했다.

“잘 가시길.”

김서준은 왠지 하오위와는 꼭, 또다시 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며칠 후.

[‘다가오는 위기’를 완료하셨습니다.]

[세계수로부터 보상을 확인하세요.]

마침내 기다리던 알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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