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하오위
[한국 세계최초, 바이올렛 호퍼 청정국이 되다.]
[한국 헌터의 저력 재평가? 그들은 어떻게 최가 되었는가?]
[한국이 해냈다! 전 세계 러브콜이 한국으로.]
아침부터 뉴스는 난리가 났다. 모든 채널에서 김서준 자신과 금산마을, 그리고 어제의 영웅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나왔다.
‘성공했네.’
동시에 어제 그 난리가 진짜였으며 성공했다는 걸 실감 나게 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한가지 뉴스가 더 쉴새없이 보도되는 중이었다.
[중국 최강의 헌터, 한국 상륙? 이유는?]
[무단 침입? 미확인 비행 물체, 중국 S급 헌터로 밝혀져.]
[중국의 S급 헌터가 무릎을 꿇었다!]
S급 랭커이자 중국 최강의 10인 중 하나인 하오위. 그가 국경을 넘고 황해를 가로질러 날아와 김서준에게 무릎 꿇은 장면은 모두에게 생중계되었다.
덕분에 김서준과 일행들의 활약과 더불어 하오위의 등장 역시 큰 화제가 되었다.
‘마나 고갈로 바로 쓰러진 게 오히려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집요하게 들러붙는 방송국 때문에 사태를 수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잘 주무셨어요?”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는 김서준에게 부스스한 얼굴로 방을 나온 엘린이 인사했다.
“아직 잡니다. 오늘은 일어나야 할 텐데요.”
“마나 고갈 그뿐만 아니라 체력소모도 극심했어요. 아마 회복에 좀 걸리겠죠. 곧 일어날 거예요.”
그렇게 말한 엘린은 주방으로 가 차를 타기 시작했다. 포트에서 물이 끓어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서준은 밖을 바라봤다.
‘산책하러 나가긴 어렵겠지.’
방송국 기자들은 김서준과 하오위 취재를 위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걸, 헌터관리국 요원들이 밤새워 지키고 서 있는 형국. 이 상태에서 산책은커녕 외출도 힘들어 보였다.
“한잔해요.”
“감사합니다.”
김서준은 엘린이 내민 차를 받아 마셨다. 베란다를 보던 김서준이 휴대폰을 열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1472개 있습니다.]
각종 문자와 연락이 와있었다. 가까운 임종철부터 언제 본지도 모를 연락처까지 너무 많아 일일이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정 회장님이 처음으로 문자를 보내셨을 정도로 사건이 크긴 했지.’
김서준은 이번 사태를 함께 한 전소민과 정현민 그리고 몇몇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답장을 보냈다.
그러던 중, 노을로부터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미안하네.’
처음에는 뉴스를 봤다는 이야기에서 지금은 자기 덕에 충남지부 전 헌터들이 출동했다며 투덜거리는 이야기였다.
‘근데 엄연히 말하면, 나 때문이 아니라 하오위 때문에 아닌가?’
김서준은 변명하려다 그냥 적당히 답장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이미 읽었던 메시지 하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허철영 대통령 : 하오위가 치료되면 연락해주세요. 바로 가겠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보낸 메시지라니. 볼수록 놀라웠다. 어린 날의 김서준이라면 안 하던 SNS라도 가입해 자랑했으리라.
‘청와대도 정신없나 보네.’
하오위가 왔건만, 이렇게 경호를 빙자한 감시만 하고 있을 뿐인 걸 보면, 아무래도 세계 각국에서 연락이 빗발칠 게 분명했다.
‘레드 호퍼가 사라졌다고 바이올렛 호퍼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니까.’
그뿐인가. 사비오 안테나는 전 세계 어디에 있는 벌레든 유인하는 게 가능했다. 아마 대통령은 지금 완벽한 갑으로 외교 하는 재미에 푹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하오위, 저 사람 진짜 어쩌지?”
****
“제발 우리나라를 살려주시오!”
하오위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 일어났다. 그리고 김서준과 허철영, 그리고 자신을 보는 모든 한국인 앞에 다시 한번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었다.
“사태가 심각하긴 하군.”
하오위가 말한 중국의 현실은 참혹했다. 땅이 더는 살아나기 힘들 정도로 수없이 불태우고 부수고 뒤집어엎었다고 한다.
그뿐일까.
수만이 넘는 사람들이 마을을 잃었지만, 그들을 수용소나 다름없는 아파트에 처박았을 뿐, 마땅한 보상도 없다고 했다.
‘중국 답네.’
내부로는 헌터들을 쥐어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겉으로는 ‘이번 사태는 심각하지 않다, 일반적인 메뚜기 사태나 비슷하며 중국은 빠르게 사태를 풀어가고 있다.’ 따위의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내부가 곪았다는 건 알겠네. 상황이 심각하고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도 알겠고 말이야.”
허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옆에 선 번역사는 빠르게 그 말을 중국어로 옮겼다.
“하지만, 우리는 도울 수 없네.”
허철영의 대답에 김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입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중국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가 간의 일은 모든 게 외교다. 모든 게 거래여야 한다. 그런데, 도움 요청은커녕 잘못을 인정도 하지 않는 나라를 먼저 도와준다?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지.’
허철영은 사람 좋은 웃음을 한 정치꾼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제안을 수락할 리 없었다.
“중국이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나머지는 그다음입니다.”
“하, 하지만···.”
하오위가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알고 있는 거지. 하오위도.’
이미 쌓아둔 거짓말이 너무 많았다. 그들의 주장을 전부 뒤집고 이제와서 잘못을 인정한 것도 모자라 전 세계의 도움 요청을 한다? 그 정권에서?
‘차라리 나라를 태워 먹을 놈들이지.’
허철영 역시 김서준과 같은 생각인지 잔인하지만, 명확하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우리는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서, 서준님! 나라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도와줄 수는 없습니까?”
하오위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서준에게 말했다. 김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닌 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이, 이럴 수가···.”
그때 김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습니다. 통할진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수죠.”
“그게 뭡니까!”
“...대신.”
김서준이 절박한 표정을 한 하오위와 의아한 얼굴을 한 대통령을 보며 말했다.
“하오위 당신은 목숨을 걸어야 할 겁니다.”
****
“짜증 나는군.”
풍채가 큰 남자는 의자에 앉아서 각국의 정세를 보던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 소국인 한국이 성공했습니다. 근데 왜 대국인 우리 중국은 못한다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주석님.”
“아니 아니. 죄송하다는 말을 듣자는 게 아닙니다.”
남자가 보고 있던 서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싱가포르, 인도, 러시아 모두 무릎을 꿇고 한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상황도 해결했다며 하나둘 뉴스가 나오고 있죠.”
중국 헌터관리국의 국장 장위는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내리깔았다.
“조공을 바친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무능력을 인정한 멍청한 정부들이죠. 아주 한심한 녀석들입니다.”
주석은 혀를 끌끌 차더니 이내 시선을 들어 장위를 바라봤다.
“근데요. 우리도 여기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 겁니까? 우리 대국이 이런 하찮은 목록에 이름을 올려야 합니까?”
“아닙니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주석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90도가 넘게 허리를 접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럼 방법을 찾아오세요. 나를, 우리 정부를, 우리 대 중화인민공화국을 하찮게 만들 생각하지 말고!”
주석이 들고 있던 문서를 집어 던졌다. 서류가 풀어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그저 입술을 잘근잘근 씹을 뿐이었다.
“세계 최강의 헌터 보유국다운 모습을 보여주란 말입니다!”
“서둘러 대안을 마련하겠습니다!”
“내부에서 대안 마련이 안 되면, 밖에서라도 해결하세요. 장치를 가져오던가, 기술을 빼 오던가 아니면 그 김서준이라는 놈을 돈으로 매수하던가, 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국장님?”
“알겠습니다!!!”
국장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석은 불편하다는 듯 신음하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하오위는 어떻게 됐어요?”
“행방불명이라곤 하는 데, 아직 그냥 망명 상태인 거 같습니다. 아직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간 이유가 뭐랍니까?”
“밝혀진 대로면 중국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러 간 거 같긴 한 데,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습니다.”
“도대체 아는 게 뭡니까?”
주석은 답답하다는 듯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는 불을 붙이며 말했다.
“국장님. 분발하셔야 합니다. 우리 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위상에 흠결이 없게 말이에요. 한국 같은 소국에 밀리는 일 따위 없게 분발하시란 말입니다. 알겠어요?”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국장의 전화가 격렬하게 울렸다. 동시에 대통령의 인터폰도 울렸다. 국장은 불길한 예상에 조심스레 휴대폰을 받았다.
“...뭐?”
국장이 놀라는 순간, 국가주석은 벽에 걸린 TV에 전원을 켰다. 켜자마자 화면에서 외국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영어로 가득한 자막의 한 가운데, 그 한가운데는 익숙한 얼굴의 거한이 보였다.
“하오위?”
“저 사람이 왜 저길···.”
하오위는 중국어로 똑똑하게 말했다.
“저 하오위는 중국을 지키는 헌터로써 오늘, 중국의 실상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
하오위는 단순한 헌터가 아니다. S급 헌터, 그중에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최강의 10인 중 한 명이다.
‘그런 하오위가 양심선언을 한다면 중국 내 파급력이 엄청나겠지.’
자국 내 현상에 대한 의심부터 국가 구호를 바라는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것이다.
그뿐일까.
S급 헌터는 세계 어디서나 귀빈. 그런 귀빈의 양심선언은 전 세계가 중국을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었다.
‘현재 사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빌미 말이지.’
결국, 안팎으로의 압박은 중국인들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게 뻔했다.
“그리고 마무리는 우리 정부가 치면 되는 거죠.”
김서준의 의견에 대통령과 하오위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하오위의 안위.’
정확히는 하오위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안위가 문제였다. 사태가 다 해결된다 한들 이들의 안위를 보장하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어쩔 수 없소. 선택의 여지가 없소. 왜냐하면, 이 사태는 모두 내 탓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하오위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오위는 자신의 실수가 이 사태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김서준이 보기엔 아니었다.
‘처음 보는 벌레 30여 마리, 거기다 바이올렛 호퍼를 전부 죽일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어.’
하지만 그는 달랐다.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고 이건 책임이라며 희생을 자처했다.
‘대단한 사람이야.’
국적에 상관없이 대단하다고 인정할만한 사람이었다.
[...저는 다시 한번 이 자리에서 말합니다. 중국이, 아니 제가 잘못해서 이런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더는 제 실수로 우리나라 국민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계의 지도자분들은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뉴스 속에서 하오위는 진심으로 호소했다. 김서준은 그 진심에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었다.
‘제발 중국인들에게 이 진심이 전해져야 할 텐데.’
김서준은 제발 하오위의 마음이 중국인들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그래서 중국의 주석이 한국이, 김서준이 내밀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3일 후.
약속대로 허철영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중국에 말합니다. 중국이 책임을 인정하고 체면을 차리기 위해 했던 거짓말을 인정하며, 그 책임을 배상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한국은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