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80화 (80/139)

80. 메뚜기 토벌

보랏빛 양탄자처럼 하늘을 두껍게 덮었던 벌레들은 갈기갈기 찢겨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저거 저대로 두면 또 나옵니다!”

“막아야 합니다!”

신나게 벌레를 학살하던 헌터들이 갑작스러운 공격정지 명령에 우려를 표했다. 방송을 중개하던 아나운서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헌터들의 공격이 점점 잦아들고 있습니다! 바이올렛 호퍼들은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뒤늦게 도망가고 있습니다!”

“아, 토벌이 실패한 걸까요?”

“아직 하늘에는 보라색이 많이 보입니다. 저대로 두면 분명 다시 벌레가 창궐할 텐데요!”

모두의 우려에 정현민이 김서준을 바라봤다.

‘여기서부턴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지.’

이렇게 많은 호퍼를 유인한 것도, 그걸 전부 죽일 기회를 만든 것도 모두 김서준의 힘이 아니던가. 정현민은 김서준을 믿은 채, 불안해하는 헌터들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다음 단계를 위한 작전입니다! 기다리세요!”

“하, 하지만···.”

“지금 공격하면 오히려 작전을 방해하는 겁니다! 믿어주세요!”

결국, 헌터들은 무기를 내렸다. 쏟아지던 공격이 끝났다.

[공격 정지했습니다.]

정현민이 김서준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동시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저, 저기 봐!”

“저게 뭐지?”

뒷산에서 하얀색 무언가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헌터들의 시선과 카메라가 모두 그리로 향했다.

“새?”

“새다!”

하얀색 새가 마치 용오름처럼 산으로부터 하늘로 쏟아졌다.

“새 위에 뭔가 있어!”

“저게 뭐지?”

그때, 전소민이 중얼거렸다.

“저건 정령들···?”

“저게 정령입니까?”

그 말을 주워들은 PD 하나가 전소민에게 달려갔다. 전소민이 얼떨결에 말했다.

“아, 네. 저건 서준이의 정령들이에요.”

그러자 PD가 소리쳤다.

“정령 부대! 그냥 새가 아니고 정령 부대래요!”

그 말을 들은 아나운서들이 곧장 PD의 말을 옮겨 소리쳤다.

“이번 사태의 해결사인 김서준 헌터님의 정령 부대입니다!”

“저 새떼 하나하나가 모두 정령이며, 그 위에 타고 있는 작은 존재 또한 정령이라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한 번에 저렇게 많은 정령을 조종한다니, 역시 한국의 희망이자···.”

“정령 부대가 바이올렛 호퍼를 먹어치웁니다! 이게 2차 작전이었군요! 대단합니다!”

아나운서들이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말대로 공중에서는 하얀색 토리와 노움들이 도망치는 호퍼들을 모조리 잡아내고 있었다.

“대단하군.”

“저게 다 정령이라니!”

“정령을 저렇게 체계적으로 움직이다니, 저런 정령 술은 처음 보는군!”

헌터들은 바이올렛 호퍼가 정령 부대의 먹이로 전락하는 경이로운 광경을 보며, 이 상황을 통제하는 김서준을 더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노움, 포위망을 더 넓혀야 해. 오른쪽이 안 맞아.]

그러나 김서준에게는 그런 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노움이 현장의 선봉장이라면 김서준은 판을 보는 지휘관 역할을 해야 했다. 물 샐 틈도 없이 완벽한 포위진을 만들기 위해 김서준은 계속 명령했다.

“오른쪽 대열 유지하라움! 놓치지 말라움!!”

토리를 탄 움들은 노움의 말을 따라 움직였다. 자리를 잡은 토리들은 마치 뷔페라도 온 것처럼 닥치는 대로 벌레를 먹어치웠다.

설령 조금 도망가는 녀석들이 있을 때는 움들이 도리에게 배운 기공 술로 퇴치했다.

‘움의 기공 술은 벌레를 겨우 죽일 정도로 약하지만, 저 정도면 충분하지. 어차피 상대는 벌레니까.’

체계적인 움직임과 완벽한 전술 이해도로 하얀 물결은 빠르게 보랏빛 먹구름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이 기세라면 곧 바이올렛 호퍼는 전부 토리의 먹이가 되어 사라질 게 분명했다.

“다 죽어라!”

“잘 한다!”

“여러분 세계최초로 대한민국이 바이올렛 호퍼 청정국으로 돌아가는 순간입니다!”

모두가 난리가 났다. 긴장은 끝나고 흥분과 열광이 모두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때 굳은 표정을 한 엘린이 다가왔다.

“이상해요.”

“네?”

“뭔가 이상해요. 저 안에서 거대한 마나가 느껴져요.”

엘린이 말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파지직!

바이올렛 호퍼 무리가 발버둥 치고 있는 허공에 검은 스파크가 튀었다. 이내 스파크가 커지며 마치 하늘에 땅이 갈라진 거와 같은 균열을 일으켰다.

“게이트?”

김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행동을 멈췄다.

[서준 님! 저것도 계획해두신 겁니까?]

정현민의 다급한 외침이 머리를 울렸다.

‘그럴 리가요. 라고 답하고 싶지만···.’

여기서 그랬다간 모두가 혼란에 빠질 수 있었다.

[일단 두고 보시죠.]

김서준은 애써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리곤 곧장 노움에게 물었다.

[노움, 위는 어때?]

[일단 벌레 퇴치에는 별문제가 없습니다움! 다만, 저 균열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움!]

[컹!!]

성체의 모습으로 도리와 함께 하늘을 가르는 리노 역시 모르는 눈치. 그때 커넥션 링을 통해 차분하고 고요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마나는···?]

도리의 목소리였다. 도리는 행색처럼 행동 역시 정말 도사 같았다. 차분하고 평온한 목소리는 감정을 알기 힘들었다. 그런 도리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느껴졌다.

‘설마, 이전 세계에서 만났다는 드래곤과 관련이 있는 건가?’

김서준이 추측하는 사이 균열은 더욱 커졌다. 균열의 중심부는 더 크게 벌어져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공간이 나타났다. 이내 그 공간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위잉!

균열에서 무수히 많은 바이올렛 호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엘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금 나오는 바이올렛 호퍼들은 사비오의 마나 주파수를 무시하고 있어요!”

[일단 전력으로 막는 데 집중해!]

[컹!!]

김서준은 뒤이어 전소민과 정현민에게도 말했다.

[일단 쏟아지는 벌레를 요격할 수 있게 헌터들을 지휘해주세요. 제가 직접 명령하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두 사람에게만 명령을 보냅니다.]

[넵!]

[알겠습니다!]

김서준의 말을 들은 정현민이 소리쳤다.

“여러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방금 한 것처럼 균열 쪽으로 모두 공격하세요!”

전소민도 다시 한번 거칠게 바람을 끌어 올렸다. 헌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상황은 다시 급박해졌다.

*****

청와대에는 이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각국의 대사들이 너도나도 대통령과 만남 요청.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난리가 났군요.”

바쁜 비서진을 보며 국장이 말했다.

“말도 마세요. 일단 일이 완벽히 마무리된 후로 다 미뤄놨습니다. 김서준 씨 덕에 제가 아주 고생입니다.”

일 때문에 골이 아프다는 듯 말하지만, 대통령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오죽하면 ‘서준 씨는 정치 생각 없나?’ 하는 농담이 대통령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하긴, 전 세계에서 오는 러브콜이라니.’

사태만 잘 마무리된다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대통령의 지지율은 당분간 고공행진 할게 분명 했다.

“근데 국장님. 저걸 정령 부대라고 하던데, 한 사람이 저렇게 많은 정령을 다룰 수 있는 겁니까?”

“저도 처음 봅니다.”

정령을 사용하는 이중 S급 헌터는 없었다. 고작해야 A급이며 A급 헌터들도 한 마리 사용하는 게 겨우 였다.

‘농사나 짓는 하찮은 정령이라 다수를 부릴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설마 저런 능력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거기에 저 많은 정령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있었다. 어쩌면 S급 아닐까 의심될 정도. 이번 사태가 끝나면 꼭 등급 측정을 해봐야 할 듯했다.

감탄도 잠시. 마무리되던 현장이 다시 급박해졌다. 허공에 균열이 나타났고, 헌터들과 중계진도 분주해진 게 느껴졌다.

균열에서는 또다시 수없이 많은 벌레가 튀어나왔다.

[이번 작전에 벌레를 소환해낸 마물을 유인하는 작전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그 마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렇게까지 준비한 건가. 대단하군.”

“능력도 능력이지만, 사태를 읽은 눈은 의심스러울 정도로군요.”

“반대로 관리국의 정보망이 느슨했을 수도 있죠.”

“시정하겠습니다.”

국장이 대통령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농담입니다.”

허철영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국장은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음?”

허철영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국방부로부터의 핫라인이 울린 탓이었다.

‘이 상황에?’

잠시 후, 핫라인을 받은 허철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중국으로부터 미확인 비행물체가 오고 있다고요?”

****

무수히 뿜어져 나오던 바이올렛 호퍼들 사이, 거대한 몸체에 붉은빛을 가진 메뚜기가 나타났다.

[레드 호퍼]

바이올렛 호퍼들의 왕.

평소에는 ‘아공간’에서 잠을 잔다. 바이올렛 호퍼가 정착할 세계를 골랐을 때 잠에서 깨어 활동을 시작한다.

김서준의 눈에 보스의 정보가 보였다. 동시에 퀘스트가 갱신됐다.

[다가오는 위기2]

레드 호퍼를 퇴치하세요.

현재 상태 : 페이즈 2 – 레드 호퍼 강림, 바이올렛 호퍼의 정착

실패 시 : 예정된 멸망.

성공 시 : 세계수의 선물.

김서준이 잇몸을 씹었다.

‘역시 이게 진짜였나.’

페이즈라는 단어를 보곤, 게임을 떠올리긴 했었다. 그런데 정말 페이즈가 변하며 보스 몹이 등장했다.

‘차라리 잘 됐어. 저 녀석만 죽이면 문제는 해결되니까.’

김서준은 곧장 커넥션 링을 통해 말했다.

[저 마물을 죽여야 합니다. 저게 이 사태의 원흉입니다.]

김서준의 명령을 받은 이들의 공격이 모두 마물을 향했다. 각종 스킬이 레드 호퍼에게 닿기 직전.

-촤륵!

레드 호퍼가 날개를 펼쳤다. 동시에 마물의 몸이 바스러지며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로 변하기 시작했다. 헌터들의 스킬은 이미 벌레로 변한 몸을 꽤 뚫었을 뿐이었다.

[신농님! 저건 도망치려는 겁니다! 레드 호퍼가 정착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순간 도리의 급박한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도리는 평소에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았다. 언제나 차분하고 덤덤했다.

‘그런 도리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역시···.’

드래곤과 관련 있다. 그리고.

“저 붉은 벌레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김서준이 소리쳤다.

“알겠습니다움!”

노움을 필두로 모든 헌터들이 분전했다. 그러나 토리와 노움이 만든 포위망은 점점 느슨해지고, 헌터들의 공격 주기도 느려지고 있었다.

“너무 많아요!”

“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전선이 밀리면 안 된다움! 다들 더 빨리 움직이라움!”

“마나도 떨어져 갑니다!”

죽이는 수만큼의 벌레가 또다시 튀어나왔다. 마물의 몸에서부터 나오는 벌레는 무한한 듯 보였다.

그때였다.

[사비오가 강한 마기에 반응합니다.]

[사비오가 터전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려 합니다.]

[신농의 권한으로 사비오의 활동을 허가하시겠습니까?]

김서준이 놀라 시스템 창을 바라봤다. 드워프가 말해줬던 전설을 떠올렸다.

‘마물을 먹고, 마을을 지켰다고 했지. 설마?’

김서준은 고민 없이 바로 활동을 허가했다.

[‘사비오’가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 마을 곳곳에 피어있던 아쥴이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푸른색 빛 가루를 하늘로 피어 올렸다. 동시에 벌레들이 힘을 잃고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사람들은 영문모를 현상에 놀랐다. 엘린이 말했다.

“아쥴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오고 있어요.”

“사비오와 아쥴이 마나로 저 가증스러운 벌레를 죽이고 있소!”

“전설이 사실이었군! 클클클!”

“대단하오. 이걸 정말 보게 될 줄이야!”

드워프 삼 형제 역시 놀라운 현상에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비처럼 떨어진 바이올레 호퍼 들은 자석처럼 아쥴의 이파리로 끌려갔다. 아쥴을 파리지옥처럼 5장의 이파리로 바이올렛 호퍼들을 감싸 안았다.

“저렇게 아예 사체를 먹어버리는 건가.”

김서준 역시 놀랍다는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 순간, 남아 있던 붉은 벌레 몇몇이 다시 모여 몸체를 이뤘다. 아까의 1/5 정도 크기로 줄어든 레드 호퍼는 다시 한번 날개를 활짝 폈다.

도망가려는 의도가 명백한 움직임. 김서준은 소리쳤다.

“사비오! 막아!”

[사비오가 신농의 명령에 응답합니다.]

그 순간, 사비오의 밭에서 두꺼운 뿌리들이 튀어나와 하늘로 향했다. 도망치려는 레드 호퍼의 몸을 휘감았다.

“크악!!!”

괴성과 함께 레드 호퍼가 발버둥 쳤다. 그러나 재빠르게 몸을 묶은 사비오가 그대로 몸을 바닥에 내다 꽂았다.

“컥!”

레드 호퍼가 보랏빛 피를 토해냈다.

“크악!!!”

그 충격에 거대 메뚜기의 배가 터져나갔다. 날개도 꺾였다. 그러나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6개의 다리로 땅을 긁으며 저항했다.

“뭐해요! 공격해요!”

김서준이 소리쳤다. 그제야 넋을 놓고 있던 헌터들이 너도나도 레드 호퍼에게 스킬을 던졌다.

“크···.”

묵사발이 된 레드 호퍼는 그렇게 사비오의 뿌리와 함께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끝인가?‘

누군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이제 하늘에 보랏빛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아쥴의 먹이로 전락해 바닥을 기고 있었다.

“끝났다.”

김서준은 온몸에 땀을 흠뻑 적신 채 주저앉았다. 그러자 아나운서가 소리쳤다.

“끝났습니다! 마침내 토벌에 성공했습니다!”

“와!!”

중계진과 헌터들 모두가 환호했다. 힘이 빠진 헌터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서로를 칭찬하고 김서준을 칭찬했다. 노움과 토리들은 승리의 에어쇼를 보였다.

“세계최초로 바이올렛 호퍼 완벽 퇴치에 성공했습니다! 나아가, 세계최초의 바이올렛 호퍼 청정국이 되었습니다!”

아나운서가 신나서 선언했다. 여기저기 격양된 중계방송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김서준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

-쾅!

하늘에서 거구의 신형이 떨어져 내렸다. 등에는 거대한 도끼를 맨 남자는 김서준을 바라봤다.

‘뭐야?’

의아해하는 김서준 앞에 남자는 뚜벅뚜벅 걸어왔다. 드워프 삼 형제가 놀라 그 앞을 막으려는 순간.

-쿵!

남자가 양 무릎을 바닥에 꿇으며 말했다.

“우리나라를 살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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