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79화 (79/139)

79. 놓치지 말라움!

[..청룡 길드가 바이올렛 호퍼 퇴치를 시작하기 5분 전입니다. 만약 오늘 퇴치가 성공한다면, 전 세계에서 최초로 바이올렛 호퍼 퇴치에 성공합니다···.]

바이올렛 호퍼의 심각성은 한번 드러나기 시작한 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하루 만에 쑥대밭이 된 마을은 물론, 마을을 전소시키고도 퇴치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게다가, 어제는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지.’

국민의 90%가 농부이고 유난히 헌터 수도 적기로 유명한 라오스가 국가 재난 사태를 선포하고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한 일이었다.

라오스는 바이올렛 호퍼 발견 일주일도 걸리지 않아 모든 곡창지대를 잃었다고 한다.

‘우리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아니, 이 추세라면 시간의 문제지, 전 세계가 다 라오스 꼴이 될지도 모른다. 그걸 막을 유일한 희망이 TV 속에 나오고 있었다.

“흠···.”

허철영은 집무실 한 편에 켜져 있는 TV에서 눈을 시선을 고정했다.

“성공해야 할 텐데···.”

담배의 재를 털어내며 그는 염원을 담아 중얼거렸다.

“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함께 자리한 관리국 국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헌터를 다 불러서 함께 막아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돈에 눈이 멀어 일을 그르치진 않을지···.”

“국장님. 처음 사태가 터졌을 때 관심을 가진 길드가 어딥니까?”

대통령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드디어 청룡 길드와 에픽 길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화면에서는 아나운서가 긴박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동시에 S급 전소민, 정현민, 그리고 뒤이어 이번 사태의 주인공, 김서준이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고 있었다.

“...에픽과 청룡입니다.”

“그래요. 그들은 처음부터 이 사태를 위해 헌신했죠. 나라를 위해 말이죠. 이건 그 대가를 받는 겁니다.”

그들은 텅 비어 버린 밭을 가로질러 기지 앞으로 향했다. 그들의 앞에는 각 길드의 구성원들이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섰다. 한명 한명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벌써 자축하는 모양 세지 않습니까? 거기에 지원도 그만큼이나 받아 갔으면서···.”

국장은 화면을 보며 아쉽다는 듯 이야기했다.

두 길드의 인원을 합쳐야 대략 50명. 대통령이 보기에도 국가적 재난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적은 인원처럼 보였다.

“키를 잡은 사람이 충분하다 했으니 믿어야죠.”

그렇게 말한 대통령이 의자를 천천히 돌려 국장을 바라봤다.

“여기까지는 성공했을 때 이야기고, 실패한다면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대통령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

“와, 진짜 사람 많네요.”

“서준, 저 번쩍거리는 도구는 무엇인가? 클클클.”

“신기하게 생겼군. 나중에 하나 사서 연구해봐야겠어.”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거처럼 들뜬 엘린과 드워프 삼 형제에게 김서준이 말했다.

“네 제가 사드릴게요. 자 다들, 지금부터는 딱 무게 잡아주세요. 옆에 있는 사람들하고 어지간하면 이야기하지 마시고요.”

“클클. 알겠네.”

“알겠어요.”

청룡 길드와 에픽 길드가 먼저 트리를 내려가 밭으로 향했다. 김서준은 엘린과 드워프 삼 형제와 함께 마지막으로 밭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가득했다.

안테나 앞에는 망치의 술로 만든 간이 연단이 있었다. 전소민과 정현민이 먼저 그 위로 올라갔다.

“저도 다녀올게요. 여기 계세요.”

김서준은 엘린과 삼 형제로부터 떨어져 연단 위로 올랐다. 김서준이 올라오는 걸 본 정현민이 앞으로 나서서 소리쳤다.

“오늘 여기까지 와주신 방송국 및 기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스킬을 사용했는지 정현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정현민은 감사 인사와 함께, 희망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대단하네.’

대한민국 최고 길드에 수장답게 그는 막힘없는 연설을 보였다. 듣고 있던 기자는 물론, 몇몇 헌터들이 그의 연설에 감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제 시작하시죠.”

연설을 마친 정현민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번 작전의 지휘관은 김서준이었다. 두 사람은 S급이라는 서열을 내려놓고 김서준에게 모든 걸 맡기기로 했다.

‘흔쾌히 받아줘서 다행이었지.’

두 사람은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마련했다는 공은 인정했다. 또한, 현재 상황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김서준이라는 데 동의했기에 흔쾌히 김서준의 제안을 받았다.

[엘린 부탁해요.]

커넥션 링을 통해 엘린에게 말하며 엘린을 바라봤다. 엘린은 고개를 끄덕인 후, 가볍게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그러자 파란색 고리가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연결됐네.’

김서준은 머릿속으로 말했다.

[일종의 텔레파시를 연결했습니다. 이제 머릿속으로 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몇몇 헌터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어깨가 들썩였다. 커넥션 링으로 지휘하겠다는 건 이미 이야기된 바였지만, 역시 처음 겪는 현상은 신기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들리셨습니까?”

김서준은 전소민과 정현민을 바라봤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픽 길드 준비됐습니다.]

[청룡 길드 준비됐습니다.]

김서준은 길드 장 외에도 각 팀 간의 연락을 확인했다. 확인을 마친 김서준은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 신호에 맞춰 일제히 능력을 사출하고 중지하면 됩니다.]

그리고 김서준은 일부러 기자들이 찍을 수 있도록 몸을 돌려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김서준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엘린이 안테나로 다가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에서부터 뻗어 나온 빛이 사비오 안테나를 휘감았다.

마침내, 빛이 마법진으로 변모했을 때, 거대한 안테나에 푸른 빛이 모여들었다.

“와···.”

“호오···.”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안테나의 맺힌 푸른 빛이 하늘 높이 쏘아졌다. 쏘아진 빛은 하늘에서 갈라져 사방으로 뿌려졌다.

“하늘, 저거 찍어!”

“근데 이게 다인가요?”

“어떻게 된 거지···?”

“아무 일도···.”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미리 이야기를 들은 헌터들만이 침을 꼴깍 삼킬 뿐이었다. 그러다 기자 하나가 말했다.

“천안에서 바이올렛 호퍼들이 떠나기 시작했답니다.”

“대구에서도 호퍼들의 움직임이 감지 됐습니다.”

“순천만을 습격하던 바이올렛 호퍼들도 방향을 돌렸다고 합니다.”

관측 결과는 빠르게 기사로 이어졌다. 아나운서들은 현재 사태를 재빨리 말로 옮겼다.

‘제대로 먹혔나 보네.’

방송사의 반응을 보아하니, 안테나는 제대로 작동했다. 미끼는 뿌렸으니 함정을 시동할 차례였다.

[옵니다. 준비하세요.]

[넵!]

[네!]

대답하는 헌터들은 모두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저기 뭔가 온다!”

누군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멀리 작은 점이 보였다. 점은 점점 그 수가 늘었다.

“바이올렛 호퍼다!”

보라색이 선명해지고, 점이 점점 거대해졌다. 기자들이 조급해하자 헌터들이 움찔거렸다. 당장이라도 공격하고 싶은 기세.

‘아직은 안 돼.’

사비오의 주파수는 일종의 강력한 최면이다. 혹시라도 다른 개체가 죽는 걸 보면 생존본능이 다시 튀어나와 최면이 풀릴 수 있었다.

[소민아. 잘 부탁해.]

김서준은 전소민에게 지시했다. 전소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공중으로 치솟는 전소민의 신형. 그녀는 그대로 벌레들의 앞에 섰다. 그리곤 강한 바람을 일으켜 날아오는 벌레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가장 멀리서 오는 대구의 벌레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분들은 절대 스킬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마나 전송팀 소민이한테 마나 전송 시작하세요.]

김서준이 말하는 순간 반대쪽에서도 벌레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김서준은 곧장 도리를 불렀다.

[알겠습니다!]

은발을 휘날리며 소복의 사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의 이목이 잘생긴 도사에게 모여들었다.

“저건 누구시죠?”

새로운 헌터라고 오해한 정현민도 놀라서 김서준에게 물었다.

“제 정령입니다. 바람의 정령이죠.”

“저, 저런 정령도 있습니까?”

저런이라는 건, 생긴 모습일까, 아니면 잘 생긴 외모일까. 김서준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말했다.

“네. 제가 아끼는 정령이죠.”

김서준의 지시를 받은 도리는 공중에서 양손을 기도하듯 모았다. 이내 산들바람이 도리를 주변으로 불기 시작했다.

“대, 대단하군요!”

“저거 찍어! 저 사람 찍어!”

바이올렛 호퍼 떼가 마치 미로에라도 빠지듯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도리는 그 앞에 평온한 얼굴로 덤덤히 바라볼 뿐이었다.

‘명장면 하나 나왔네.’

방송국은 그 그림 같은 장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 감독들을 재촉했다.

[트레스, 현재 상황은요?]

트레스가 나침반처럼 생긴 장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가장 늦게 출발한 무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소. 하지만 이제 곧 도착 할 거요.]

[호퍼들이 정해둔 지점으로 다 모일 확률은요?]

[사비오 마나 상황은 충분하오. 양쪽의 지연을 동시에 풀어주기만 한다면 100%요.]

계획대로 모든 게 척척 이어졌다. 김서준은 정현민에게 말했다.

“말씀드린 대로 저 빛이 갈라지기 시작한 곳을 겨냥하면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절대 흥분해서 더 공격한다거나 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모두 준비!!”

정현민이 소리치며 밑으로 내려갔다. 그를 따라 50여 명의 헌터들이 무기를 들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김서준은 애써 더 침착하게 말했다.

[트레스.]

[지금이오!]

트레스의 말을 들은 김서준이 전소민과 도리에게 말했다.

[능력 풀고 합류해.]

김서준의 명령을 받자마자 양쪽의 바람이 모두 허공으로 흩어졌다. 도리는 다시 새가 되어 숲으로 돌아가고, 전소민은 헌터들의 옆으로 합류했다.

-파드득.

곤충의 날갯소리와 보라색 메뚜기가 먹구름처럼 금산의 하늘을 메우기 시작했다. 카메라 감독과 몇몇 아나운서가 그 징그러운 광경에 눈을 돌리거나 몸을 떨었다.

[엘린.]

엘린은 공중에 반투명한 막을 펼쳤다. 방어가 아닌 죽은 바이올렛 호퍼의 사체와 피를 받아낼 장막이었다. 이로써 준비는 끝이었다.

[다 모였소!]

트레스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김서준이 커넥션 링으로 말했다.

[전군 공격.]

그 순간 50여 명의 헌터들이 펼친 스킬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불, 바람, 얼음 등 자연계 스킬부터 염동력이나 마나 대포, 활이나 투창 류 스킬도 있었다.

“잘 찍어!”

“대박!!”

“장관이군.”

보랏빛 하늘을 가로지르는 각종 스킬의 향연은, 자칫 폭죽놀이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좀 전까지 벌벌 떨던 방송국 관계자들은 보장된 시청률에 싱글벙글 웃으며 중계를 이었다. 대단한 직업 정신이었다.

‘그나저나 소민이는 대단하네.’

전소민의 바람의 칼날은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바이올렛 호퍼를 학살하고 있었다. 바람 술사인 전소민은 공중전에서는 같은 S급 중에도 견줄 사람이 없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 말을 몸소 증명하는 중이었다.

-위이잉.

날갯짓 소리가 격렬해졌다. 서서히 대열을 이탈하려는 벌레들이 보였다. 드디어 생존본능이 발현한 듯했다.

‘그럴 만도 하지.’

고생했던 헌터의 분노 세례를 받은 벌레들은 벌써, 처음 온 숫자의 1/3 정도로 줄어 있었다.

“도, 도망갑니다!”

“막아!”

당황한 헌터들의 손이 바빠졌다. 반면 김서준은 기다렸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노움, 이제 네 차례야.]

[알겠습니다움!]

금수산 안.

“움!!”

연락을 받은 노움이 박력 있는 대답과 함께 뒤를 돌았다. 빼곡하게 땅을 채우고 도열 해있는 토리들. 그리고 그 위에 타고 있는 움들이 보였다.

“신농님의 명령이 떨어졌다움! 오늘 저 원수들을 모두 박멸한다움!”

“움!!!”

“꽥!!!”

“멍!!!”

토리와 움들이 소리쳤다. 그리고 일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리노공 가자움!”

노움과 도리, 그리고 도리의 마법으로 하늘을 날게 된 리노가 마지막으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노움은 도망가는 가증스러운 벌레를 보며 말했다.

“한 마리도 놓치지 말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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