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78화 (78/139)

78. 위기는 곧 기회다

바이올렛 호퍼를 퇴치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일정 구역에 주파수를 발사하면,

그 일대의 벌레가 전부 금산마을을 향해 날아오르고,

그걸 공중에서 격퇴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격퇴는 전소민이 했지.’

김서준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전소민의 영상을 찍어 일부러 기자들에게 흘렸다. 그런 다음 전소민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잠수 타자. 그리고 우리 집으로 가자.”

사태는 심각했다.

그 심각한 사태의 유일한 해결책이 된 지금. 별의별 단체와 사람들이 접근해올 건 자명했다. 김서준은 그런 이들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전소민의 행적을 찾을 수 있는 정도, 또는 나와 소민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여기까지 올 수 있을 정도라면 이야기를 해볼만 하겠지.’

정확히는 대한민국 5대 길드나, 헌터관리국의 중앙지부 정도는 되길 바랐다.

‘그런데 대통령이 직접 오다니···.’

기대했던 관리국장을 경호원으로 대동한 채 VIP가 직접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다.

“...”

옆에 앉은 전소민이 살짝 떠는 게 보였다. 하긴, 매사 차분하다고 자신했던 자신 역시 조금은 긴장되는 데 전소민을 더 할 게 분명했다.

“저는 헌터관리국 국장 한기호입니다. 여기 이 분은···.”

“아닙니다. 제가 직접 하죠. 대한민국 대통령, 허철영입니다.”

“청룡 길드에 저, 전소민입니다!”

“금산마을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김서준입니다.”

뒤에 서 있는 국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너는 왜 여깄냐는 눈치. 김서준은 가볍게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오늘은 청룡 길드의 일원이자 이번 사태의 당사자, 입니다.”

“당사자? 사태를 해결한 건 전소민 헌터가 아니었습니까?”

국장의 물음에 전소민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김서준 씨는 D급 헌터라고 알고 있는데요? 거기다 최근 전직했지만, 직업은···. 농부 아닙니까?”

과연 헌터관리국. 김서준은 농부로 전직한 이후 헌터 정보를 갱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장은 김서준의 직업을 알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러나 해결은 제가 했습니다.”

국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S급 헌터들도 쩔쩔매는 문제를···.”

그때, 허철영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국장을 말렸다. 그리곤 김서준과 전소민을 보며 부드럽지만 무겁게 말했다.

“소식을 듣고 바로 수소문해서 제가 직접 왔습니다. 그 정도로 이번 일은 위중한 일입니다. 장사나 계약하듯 에둘러 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김서준은 이해했다. 어떤 오해를 하는 지도.

‘아무래도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겠군.’

김서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두 분이야말로 착각하시는군요. 저 역시 이런 상황에 거짓말 따위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옆에 있던 전소민도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맞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바이올렛 호퍼를 ‘처치’하는 건 쉽습니다만, ‘박멸’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서준이의 능력 덕입니다.”

대통령 역시 익히 들은 이야기였다. 실제로 중국이 수많은 S급 헌터를 가졌음에도 박멸에 실패해 허우적대고 있지 않았는가?

‘그걸 D급 헌터가 해내다니···.’

대통령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자세한 이야기를 하긴 어렵지만 제 능력으로 만들어낸 작물 중에 바이올렛 호퍼를 유인할 수 있는 작물이 있었습니다. 그 작물을 이용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박멸한 장소는 금천면이 서산이지 않습니까? 식물의 유인 효과가 여기서 서산까지 뻗었다는 겁니까?”

“네. 그런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듣기로는 꽃이 벌을 유인한 것과 비슷한 원리가 아니던가. 그 원리를 수십km가 넘게 멀리 있는 벌레에게도 적응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러나 다음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었다.

“저는 이 능력을 전국이 아닌 전 세계에도 적응이 가능할 거로 보고 있습니다.”

“!!!!”

대통령은 김서준을 빤히 바라봤다. 눈앞의 청년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자신의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저런 자신감이라니? 정말인 건가?’

저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었다.

몇 년 전,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들썩였던 그때를 대통령은 여전히 기억했다. 그때, 가장 먼저 백신을 만든 국가들이 얼마나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우리가 그 검을 쥘지도 모른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경쟁자도 없는 상태로 말이다. 이건 국가적 위기가 국가적 경사가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지원이 필요합니다. 막대한 양의 마정석과 비용이···.”

“김서준 씨. 지금 한 말에 하나라도 거짓이 있다면, 나라를 기만한 죗값을 치러야 할 겁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지금 한 말이 전부 사실입니까?”

눈앞에 사내가 순간 눈을 부릅떴다.

“대통령님.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나라를 구할 의무가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으로서 선의를 베풀고 싶습니다. 능력이 있다면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김서준이 딱딱하게 말했다.

“이런 식의 의심은 썩 기분이 좋진 않네요.”

“대통령님께 감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국장은 곧장 발끈해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허철영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미 서산의 사태를 해결함으로써 능력을 보여줬는데도 의심을 했군요. 제가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이다 보니 신중했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중하게 사과한 대통령은 담백하게 선언했다.

“필요한 지원이 많다고 했죠. 뭐든 이야기하시죠. 전부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보상도 말씀해주시죠. 어지간하면 승인하겠습니다. 대신···.”

허철영은 진심으로 간곡하게 말했다.

“꼭 이 사태를 끝내주시기 바랍니다.”

****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지금이 딱 그랬다. 한번 마음을 먹은 대통령은 어떤 조건도 받아들였다.

‘설마, 사태 해결 후 전국적으로 토종 작물 지원금 추가 지급에 토종 작물 먹기 캠페인을 하자는 것까지 받아줄 줄은 몰랐네.’

바이올렛 호퍼가 그만큼 빠르게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된 덕이었다.

‘그만큼 이

정치가 역시 사업가 또는 사기꾼만큼 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금천면으로 터전을 넓히는 걸 넘어, 전국으로 터전을 뻗어 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리아가 또 놀라겠네.’

김서준은 씽긋 웃으며 사비오를 바라봤다. 거대한 위상 기지 안에서 사비오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사비오가 무럭무럭이라니.’

김서준은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원래라면 ‘무럭무럭’은 사비오와 아주 먼 단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매일 거의 억 단위로 마정석을 붓고 있으니 말이야.’

사실 이것만으로도 보상을 받았다 싶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정석을 사비오는 흡수하고 있었다.

지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비오 위로 지어진 안테나를 벗어나 조금만 마을 쪽으로 오자 보이는 거대한 관광버스. 저것 역시 대통령의 지원 중 하나였다.

“서준이 왔는 겨.”

버스 주변에서 탑승 준비를 하고 있던 어르신이 김서준을 보고 인사했다. 함께 온 리노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 어르신들의 손길을 누렸다.

“아휴, 서준이 덕분에 별 호사를 다 누려, 내가.”

“진짜 자네는 안 가도 되는 겨?”

“우리 자식들도 안 보내준 제주도 여행을 서준이가 보내줄 줄은 꿈에도 몰랐구먼.”

혹시라도 바이올렛 호퍼 퇴치 여파에 휘말릴까, 마을 사람들의 제주도에 있는 인재 개발원으로 대피시켜 주기로 했다.

‘거기에 여행 패키지는 덤이고.’

김서준은 웃으며 말했다.

“일주일간 푹 쉬고 오세요. 다녀오시면 농사뿐 아니라 영농조합 일도 많이 해주셔야 합니다.”

“걱정 말어. 재충전해서 빡시게 할 테니께.”

“우리가 그 정도 염치도 없을까.”

“영농조합이 잘 돼야 우리가 잘 되는 건디.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그려.”

“하하, 알겠습니다. 얼른 타세요.”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는 김서준에게 임종철이 다가왔다. 옆으로는 박보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사실 워낙 쉬운 일이라 다들 안 가셔도 되는데, 다들 초청회 준비로 너무 고생하셔서 마련한 거니까요. 보현 씨도 저 정말 괜찮으니까 표정 피시고요. 재밌게 놀고 와요.”

“그렇게 쉬운 일이면 저도 여기서···.”

“괜찮아요. 그리고 제주도 처음 가본다면서요. 좀 설레고 막 그래도 돼요.”

김서준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조금은 살이 붙었지만, 여전히 왜소한 박보현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이 은혜는 제가 평생 꼭 갚겠습니다. 이사님.”

“아니, 뭐 그렇게 거창하게···.”

옆에서 흐뭇하게 보던 임종철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엘린이랑 우노 삼 형제는 장치 손보느라 바빠요.”

마정석이 워낙 많아 마정석 갈고, 액체화시키는 데도 한참 걸렸다. 거기에 도스, 우노마저 다른 업무를 중지하고 안테나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소민이랑 정령들도 열심히 훈련 중이고요.”

“하여간 자네 주변 사람들은 자네 덕에 일 복이 터졌구먼.”

임종철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은근 양심에 찔린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세계수를 보러왔지, 이 세계와 관련도 없는 데, 김서준을 돕겠다며 밤낮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우리도 여행 한번 다녀와야겠네.’

사태만 진정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터. 김서준은 몇몇 후보군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사모님은요?”

“여행 대신 애들 집 간다고 미리 갔어. 농사 연구할 때 제주도 자주 갔거든.”

“아아.”

“하여튼 잘 하고. 뉴스 보면서 소식 기다리겠네.”

“마음 푹 놓으시고 잘 다녀오세요. 제가 깨끗하게 벌레 청소해놓겠습니다.”

“껄껄. 그려그려.”

“몸조리 잘하세요.”

두 사람은 포옹까지 해가며, 마치 오래 안 볼 사이처럼 인사를 나눈 후 버스에 올랐다. 김서준은 리노를 품에 안은 채 안은 채 출발하는 버스를 마중했다.

“자, 그럼, 사람들도 떠났고···.”

김서준은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정 회장에게 연락했다.

“네, 회장님. 내일모레 바로 시작하시죠.”

이틀 후.

모두가 떠난 금산마을이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랐다. 다른 관광지나 밭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사비오 안테나가 있는 건물 앞에는 사람이 잔뜩 했다.

“제대로 스트레스 한번 풀겠네.”

“다 죽여버려야지.”

바로 앞에서 몸을 푸는 많은 수의 헌터들. 그리고 그 너머에서는,

“거기 카메라 확인하고!”

“위에 잘 잡히나 봐봐!”

“안테나 위쪽에서 벌어진다고 했으니까, 그 쪽 확인 잘하고!”

여러 방송사에서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 준비하느라 바빴다. 얼핏 보면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지를 방불케 했다.

“다들 열심히 네요.”

트리 위에서 전망대 난간에 매달려 그 장면을 보던 김서준이 말했다. 그러자 옆에 선 에픽 길드의 길드 장 정현민이 말했다.

“국민들의 관심이 엄청나니까요. 거기에 서준 씨와 IW 그룹에 낸 비용도 회수해야 하고요. 서로 어떻게 하면 더 잘 연출할지 경쟁이 치열할 겁니다.”

“그렇겠죠. 그럼 저희도 이제 준비를 시작할까요?”

정현민이 돌아가려는 김서준을 가로막았다. 그리곤 정중히 인사했다.

“시작 전에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저희 길드를 협력 길드로 지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서준은 약속대로 청룡 길드를 현재 사태 해결의 주체로, IW 그룹은 초기부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착한 기업으로 포장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덕분에 두 단체에 대한 세간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그러자 많은 길드가 청룡 길드로 접촉해왔다.

“우리가 힌트를 줬다고 말해주시면···.”

“같은 충남으로서 저희 길드가 금산마을을 도와줬기에···.”

“말만 잘 맞춰주시면, 광고비로 5억 드리겠습니다. 대신···.”

각양각색의 조건과 명분을 가지고 길드원들이 달려왔지만, 김서준은 전부 쳐냈다. 하지만, 딱 한 군데, 에픽 길드는 정 회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협력 길드로서 인정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소민이를 도와 사태 진정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지.’

어릴 적부터 김서준과 전소민이 바라는 헌터의 이상은 영웅의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몰라도 위기에서만큼은 발 벗고 먼저 나설 수 있어야 했다.

‘에픽 길드는 그럼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줬지, 다른 길드, 헌터들과는 달리.’

이상은 실현하기 어렵기에 멋지다. 그 어려운 걸 해냈기에 그들은 대접받을 만했다.

“올바른 행동에 대한 보상이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그 선한 영향력으로 헌터들에 귀감이 되길 바랍니다.”

말하고 나니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같다. 김서준은 괜히 머쓱해져 서둘러 말했다.

“자, 그럼 얼른 가죠. 다들 기다리겠네요.”

김서준은 전망대에 설치해둔 탁자에 모여있는 전소민과 노움을 바라봤다. 거기에 에픽 길드와 청룡 길드의 헌터까지.

이로써 준비는 완벽했다. 이제 한국 땅에서 바이올렛 호퍼를 전부 지울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