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의외의 손님
“이 사태 우리 혼자 해결은 힘듭니다!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니까요?”
중국의 헌터 관리국 안 회의실.
잔뜩 격양된 하오위는 거칠게 현재 정책에 대해 항의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서부의 모든 지역을 다 태워버려야 할 판입니다! 이래도 됩니까?”
“나라의 명예를 위한 희생은 불가피하네!”
국장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빌어먹을!’
하오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현재 바이올렛 호퍼는 중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은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다.
[바이올렛 호퍼는 새롭게 나타난 기행종. 중국의 아웃브레이크 현상과는 상관없어.]
[세계는 중국이 아닌, 미확인 아웃브레이크 현상을 의심해야 한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이런 입장을 내고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나아가 연구 결과를 연이어 발표까지 연달아 발표했다.
당연히 전 세계가 반발했지만, 그들이 어떤 나라던가.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들의 기조를 이어나갔다.
‘백번 양보해서 여기까지는 국가적 명예를 위한 거라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중국이 타국과 협력하기는 어려웠다. 반대로 타국도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에서 중국의 협조를 받을 수 없었다.
‘당연히 연구와 대응책이 느려지고 피해는 점점 커지고 있지.’
중국은 서부에 위치한 마을 대부분이 초토화 당했다. 헌터와 군경 모두 나섰지만, 시간을 늦추는 게 전부였다.
‘이제 다음은 전 세계가 같은 일을 겪게 되겠지.’
그리고 이 상태라면 대안이 나오는 속도보다 바이올렛 호퍼가 지구상의 모든 작물을 먹어치우는 속도가 더 빠를지도 말랐다.
‘그렇게 되면 그건 전부 내 책임이야.’
하오 위는 이 사태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 발견한 약 30마리에 바이올렛 호퍼. 그 녀석들을 제때 죽였다면 이런 일은 애초에 없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라도 꼭 막아야 했다. 하오위는 진심으로 외쳤다.
“이러다 다 죽습니다! 중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가요!”
풍채가 좋고 가운데 머리가 벗겨진 국장은 의자에 팔걸이를 올린 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례 보여줬다가 우리가 이 사태의 원흉이라는 증거가 나오면 어쩔 텐가? 아니면,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이 고작 메뚜기 하나 못 잡아서 쩔쩔매는 국가라고 광고라도 하려는 건가?”
-쾅!
국장은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런 생각할 시간에 메뚜기 새끼들을 잡을 궁리나 하게!”
“...”
하오위는 주변을 바라봤다. 모두가 말이 없었다. 중국은 길드보다 중앙 헌터관리국이 가진 권한이 훨씬 막강했다. 어지간한 S등급 헌터들이 길드 대신 관리국을 선택한 건 당연하다.
‘나라 꼴 훌륭하군.’
덕분에 이 자리에 나서는 헌터는 자신 말고 아무도 없다. 모두 겁을 먹은 탓이다.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S급 헌터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하오위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혼자 아무리 떠들어봐야 의미가 없었다. 결국, 회의는 그렇게 끝이었다.
하오위는 고개를 떨군 채 회의실을 걸어 나왔다.
‘이렇게 둘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지?’
하오위는 걱정하며 휴대폰을 켰다. 회의 시간 사이 벌어진 일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뭐지?’
동료이자 오른팔인 신이로부터 메시지가 잔뜩 와있었다.
[대장, 이거 봐요.]
잠시 후, 메시지를 확인한 하오위는 어디론가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
“잘 주무셨어요?”
눈을 비비며 나오는 전소민에게 엘린이 인사했다. 식탁에는 김서준이 잘 차려놓은 밥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일어났어?”
“아, 응. 좋은 아침.”
전소민은 인사하며 식탁에 앉았다. 그리곤 옆을 바라봤다.
‘이 사람은 오늘 아침도 예쁘네.’
식물 연구를 위해 김서준의 식솔이 되었다는 여자는 아침부터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김서준이 대책을 마련했다고 전소민을 부른지 3일 차. 많은 게 익숙해졌지만, 엘린의 아름다움에 무덤덤해지는 건 어려웠다.
그리고 익숙해지기 어려운 게 하나 더 있다면.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맛있게 드세요.”
바로 눈앞에 있는 밥이었다. 김서준의 요리 실력이 는 건지, 아니면 서준의 말대로 작물이 더 좋아진 건지 한 끼 한 끼가 너무 맛있었다.
“으흠···.”
“오늘도 맛있네요.”
가벼운 인사와 함께 전소민은 수저를 들었다.
“진짜 맛있네.”
보기엔 특별할 거 하나 없는 감자채 볶음이건만 입안에 들어간 순간 엄청난 위력을 뽐냈다. 심지어 본래는 골라 먹던 당근마저 맛있게 느껴졌다.
‘진짜 신기해.’
맛있는 음식으로 아침부터 황홀경에 빠진 전소민에게 김서준이 물었다.
“신 비서님 연락 왔어?”
“응. 아침에 확인했는데 여전히 서산에 바이올레 호퍼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 ”
전소민은 다시 김서준이 자신을 부른 날을 떠올렸다.
‘대단했지.’
김서준의 밭에 흡사 위성기지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했는지, 그 안테나를 향해 서산에 있던 바이올렛 호퍼들이 일제히 비행을 시작했다는 연락이 들렸다.
‘그리고 땅에 내려앉기 전에 전부 퇴치해 버렸지···.’
전소민으로서는 이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생존본능이 뛰어난 벌레들이 김서준이 만든 무덤으로 속속들이 뛰어드는 광경은 대단했다.
전소민의 대답을 들은 김서준이 엘린에게 말했다.
“번식도 엄청 빠르고 먹성도 좋은 바이올렛 호퍼가 3일 동안 발견이 안 됐다면 전부 퇴치됐다고 봐야겠죠?”
“네. 거의 확실해요. 성공이네요.”
엘린이 웃으며 뿌듯해했다. 김서준 역시 환한 미소로 답했다.
“이제 무기를 만들었으니 제대로 퇴치를 할 차례긴 한데, 그 전에 밑 작업을 해야겠네요.”
“밑 작업?”
전소민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 대안이 나왔는데 또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말인가?
“엄청난 건 아니고. 어쨌든 곧 사태는 해결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김서준은 대답과 함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전소민으로서는 김서준의 계획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절친이자, 언제나 가장 올바른 답을 가진 김서준이지 않았던가. 그저 그 말을 믿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어떻게 된 겁니까?”
청와대 안, 대통령의 집무실.
마치 벌서는 것처럼, 한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하···.”
헌터관리국 국장, 이정민은 다시 한번 머리 숙이며 말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줄이야.’
처음 바이올렛 호퍼를 발견했을 때는 고작 벌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픽 길드를 믿었다. S 랭크 길드 장에 전체 대한민국 5대 길드 중 하나인 에픽 길드가 직접 해결하겠다고 나섰는데 어찌 믿지 않겠는가?
‘거기에 청룡 길드를 비롯한 몇몇 S급 헌터들도 나섰고. 금방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방심한 게 낭패였다. 별다른 대안 없이, 필요한 물자를 지원하며 기다렸건만 에픽 길드의 계획은 실패였다.
“방법은요? 지금처럼 마을 불태우는 게 전부입니까?”
“국정원에 따르면 S급 헌터가 압도적으로 많고, 최초로 이 사태를 당면했던 중국 역시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을 강구해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한숨을 푹 내쉬며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비프음과 함께 켜진 티비에서는 곧장 뉴스가 흘러나왔다.
[...UN은 바이올렛 호퍼가 평범한 마물과는 다르다고 보고 범지구적인 재난으로 분류하고 전 세계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채널이 바뀐다. 이번에는 다른 색의 양복을 입은 리포터가 나왔다.
[....중국은 현재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조를 원한다면 이 사태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안타깝다는 말을 전하며 경계를 높이고···.]
[...호주는 비행기, 항만 등의 운행을 대폭 줄이고···.]
[....농민들은 자신들의 밭이 언제···.]
[...물가가 치솟아 오르자 사람들의 입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했던 사태가···.]
대통령은 음소거를 눌렀다. 그리곤 현 사태에 대해 분석하고 보도하는 뉴스 자막 등을 보며 말했다.
“사태가 이 지경입니다. 전 세계가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습니다. 국민들도 불안과 불만이 가득합니다.”
그러더니 이내 시선을 국장에게로 옮겨 소리쳤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제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온화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유명했다. 그런 대통령이 임기 간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모습으로 역정을 냈다.
‘대체 저런 뉴스가 다 어디서···.’
불과 며칠 사이. 바이올렛 호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더불어 어디서 새어 나갔는지 모를 정보가 언론사에 대폭 풀렸다.
당연히 불만은 치솟았고, 지지율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후···.”
얼굴이 붉어졌던 대통령이 심호흡을 뱉었다. 스스로를 조금 진정시킨 그는 ‘흥분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당장 뭔가 수가 필요합니다. 다른 나라와 공조는 어려운 겁니까?”
“아시다시피 중국은 무리입니다. 동남아나 유럽도 다 각자도생하기 바쁜 형국입니다. 섬나라들이 그나마 피해가 덜하고 여유가 있는 상황입니다만······.”
“모두 장사에 들어갔겠죠.”
허철영이 먼저 말했다. 그러자 여지없이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을 토해낸 허철영은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입에 담배를 물자, 국장이 양손으로 조심스레 불을 붙였다.
“...”
뿌연 연기를 머금으며 허철영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어언 3년.
대통령이란 자리가 안으로는 정치인이라면 밖으로는 장사꾼이었다. 나라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지지율을 위해서라도 밖에 나가면 최대한 국익을 가져와야만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수도 없이 겪었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는 걸.’
조금만 우위에 서면 누구나 여지없이 갑질을 해대는 게 외교 판이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전 세계적 위기고 뭐고, 피해가 없는 두 나라는 여유가 넘치겠죠.”
그들 입장에서 작금의 사태는 UN 회의에 참석해 그럴싸한 이야기 정도만 해도 정치적으로는 충분할 터. 무리해서 S급 헌터를 파견하거나 자원을 지원해줄 이유가 없었다.
“원하는 게 뭐랍니까?”
“일본과 미국 모두 금전적인 건 당연하고 정치적 요구가 들어왔습니다. 미국 측에서는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 찬조와 무기 추가 구매를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정식적으로 감사의 인사와 여당의 지지를 올리기 위한 쇼에 맞장구를 쳐달라는 요구입니다.”
이런 시국에도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생각하는 자들. 과연 한 나라의 정치적 정점에 선 자들다운 요구였다.
“대단들 하군.”
허철영은 어느새 손가락 마디만큼 남은 채 타들어 간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겼다. 머리가 아팠다.
미국의 들어주자니 정치는 둘째치고 나라 자체에 큰 부담이었다. 일본의 요구는 한 술 더 떴다.
‘쇼에 동조하라니. 미친놈들이 따로 없군.’
허철영은 맥빠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정말 방법은 없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때, 허철영의 주변시(周邊視)에 이상한 글자가 보였다. 허철영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뉴스에 적힌 자막을 본 허철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저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그게 저도 잘···.”
국장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허철영은 다시 한번 자막을 바라봤다.
[속보) 청룡 길드 처음으로 바이올렛 호퍼 완벽 퇴치 발표.]
‘저게 오보가 아니라면, 저게 거짓이 아니라면···?’
허철영을 서둘러 소리쳤다.
“당장 사실 여부 확인하세요. 그리고 청룡 길드장과 미팅 잡으세요. 제가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
전소민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김서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받지 마.”
“아, 응.”
정 회장은 김서준의 말을 듣고 곧장 행동했다. 바이올렛 호퍼 사태로 나라는 완전히 뒤집혔다. 식량난에 대비한다며 라면 품절 사태가 일어날 정도.
그리고 김서준은 약속을 지켰다.
‘이 정도 타이밍이면 충분하겠지.’
IW그룹의 지원을 받은 청룡 길드의 바이올렛 호퍼 퇴치 성공을 미디어에 흘린 것이다. 세계최초로 이뤄진 바이올렛 호퍼 완전 퇴치는 진위에 상관없이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덕분에 전소민은 결국 휴대폰을 꺼야 했다.
“근데 서준아. 굳이 이렇게 일을 크게 벌릴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영웅을 꿈꾸긴 했지만, 진짜 영웅은 아니잖아. 만드는 데 든 고생 값하고 비용은 챙겨야지. 그리고 IW그룹도 챙겨야 하고.”
“음···.”
“그리고 일을 좀 키워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어.”
“하나 더?”
“말 안 듣는 헌터들 도움을 받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 이 정도는 돼야 했다. 그래야 돈과 권력 앞에서만 춤추는 녀석들이 바짝 엎드려 줄 테니 말이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벌써 여길 찾았다고?’
김서준이 놀라 인터폰에 다가갔다.
“어···?”
김서준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놀란 전소민과 엘린이 다가왔다.
“저 사람은···?”
“아는 사람이세요?”
“대, 대통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