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76화 (76/139)

76. 오랜만에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네.”

전라도에 거점을 둔, 황천 길드의 장, 강백호가 엄포를 뒀다.

“벌써 소각한 마을이 10개가 넘어. 이대로면 전라도 전체를 소각해야 할 걸세. 그렇게 두고 볼 수는 없네!”

그는 거대한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거대한 덩치가 분노로 떠는 모습은 누구라도 움츠러들 게 만들기 충분했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는 모두 S급 헌터.

그 정도 엄포가 통할 리 없었다.

“그럼 어쩌자고요?”

곧장, 소각 작전에 제일 앞장서고 있는 최현석이 대꾸했다.

“딱히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 그나마 그렇게 다 태워버려서 이 정도로 피해를 최소화한 거 아닌가?”

“남의 담당 지역이라고 그딴 가벼운 태도로 이야기하는 거냐?”

“그게 아니라, 진짜 대안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죠. 가뜩이나 다 태워도 다시 벌레들이 나타나는 형국에···.”

“그러니까 더 문제지! 이렇게까지 마을을 희생시키고 나서도 제대로 못 막으면, 그냥 당한 그거랑 이게 무슨 차이인가?”

-쾅!

결국, 화를 참지 못한 강백호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는 단숨에 박살 났다.

“지금 이게 무슨···.”

최현석도 지지 않겠다는 듯 손에 불을 피웠다. 그러자, 이번 회의를 주최한 정현민이 말했다.

“두 분 다 그만하시죠.”

순식간에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서로의 눈을 째려보던 둘은 정현민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저 끝에 앉아있던 헌터관리국의 요원이 작게나마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정현민이 예의 온화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먼저 황룡 길드에게는 죄송합니다. 협조도 해주시고, 지원도 해주셨는데 성과를 못 낸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저희가 남의 구역이라고 일을 대충 한 건 아닙니다. 애초에 여기 있는 분들 모두, 나라의 위기를 직감하고 먼저 나서준 분들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정현민이 회의실에 앉은 헌터들을 바라봤다. 그때는 남 일이라며 매몰찼던 헌터들이 전부 다 돌아와 회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뉴스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전국에서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강백호 헌터님 말대로 이제는 지금과 같은 작전은 불가능합니다. 나라 전체를 태울 수는 없으니까요.”

정현민의 말에 모두가 “끙”하는 탄식만 뱉을 뿐 아무런 대안도 내지 못했다.

‘진짜 믿을 건 서준이 밖에 안 남은 건가?’

전소민은 애꿎은 휴대폰만 바라봤다.

****

사비오가 안에 축적하고 있는 마나랑은 엄청났다. 하지만, 지구 전체에 주파수를 발산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 많은 마정석을 지원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청룡 길드는 바이올렛 호퍼에 온 힘을 다하는 상황. 김서준에게는 새로운 거래처가 필요했다.

‘싸고 많은 마정석을 지원받을 수 있는 거래처가 말이지.’

“IW그룹의 삼남이 길드를 인수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김서준은 정 회장을 찾았다.

“맞네. 근데 그게 자네가 나를 찾아올 정도의 일이었나?”

정 회장의 말대로 단순히 길드 인수 건에 김서준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아니,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길드를 인수하려는 건, 결국 이미지와 마케팅을 위함이겠죠. 그 부분에서 저와 회장님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제안하기 위해 왔습니다.”

“흠, 자네의 제안이라. 흥미롭군. 좋아 한번 들어보지.”

정 회장은 등받이에서 등을 땠다. 그리곤 차 한잔을 마시며 고요한 눈으로 김서준을 바라봤다. 김서준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바이올렛 호퍼에 대한 뉴스는 이미 보셨을 겁니다.”

“물론일세. 보도된 자료보다 훨씬 사태가 심각하다는 정보도 들었고 말이지. 설마 그 얘기를 하러 온 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과연 WI 그룹답게 사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었다. 이러면 이야기는 더욱 간단했다. 김서준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제게 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정말인가?”

“네. 이미 준비 중입니다.”

“대단하군.”

정 회장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룹의 정보통에 따르면 사태가 벌어진 중국 등 타국은 물론, S급이 모두 모인 회의에서도 별다른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걸 일개 농부가 해냈다는 건가?’

이미 수차례 그를 놀라게 한 김서준이었다만. 설마 이런 일에서도 자신을 놀라게 할 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방법이 뭔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나름 비밀이기도 하고, 이번 거래에 제가 가져온 카드기도 하거든요.”

“흠···.”

김서준은 정 회장의 반응에도 담담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 방법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모든 사태의 원흉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지?”

“마정석이 필요합니다.”

“마정석?”

“장치를 만드는 데 많은 마정석이 들어갑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사태를 해결할 확률이 높아지기도 하고요.”

장치를 만든 다라. 그럴듯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황금 트랙터를 비롯해 김서준의 마을에는 신기한 장치가 많았다.

‘농부라곤 했지만, 보여준 것들은 언제나 그 이상이었지.’

이번 사태 역시 그런 능력을 이용해 해결하려는 듯 보였다. 참으로 김서준다운 모습.

하지만,

“그렇다면 길드나 헌터를 찾아가면 될 일 아닌가? 알다시피 우리는 이제 헌터 사업에 손을 대려 하는 단계. 아직 회사와 계약을 맺은 길드도 없네만.”

“그 부분에서 저희가 서로를 도와줄 방법이 있습니다.”

김서준이 한 길드의 자료를 탁자 위에 올렸다. 정 회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종이를 받아 들었다. 청룡 길드의 자료였다.

“이건 뭔가?”

“보시다시피 청룡 길드의 자료입니다. 청룡 길드를 후원해주시죠. 그럼 저는 IW 그룹과 청룡 길드의 이름으로 사태를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미지를 만들어 줄 테니, 청룡 길드를 후원하고 사태 해결을 도와라, 이건가?”

“그렇습니다.”

정 회장은 담대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젊은 청년을 바라봤다.

‘좋은 조건이야.’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우는 건 실제 현상의 힘만은 아니었다. 당장 언론사에 기사 몇 개 풀면 사태는 금세 국가적 재난 이상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우리 그룹과 그룹에서 키운 길드와 헌터가 나선다면 분명 아주 좋은 이미지를 챙길 수 있겠지.’

마정석 지원도 길드 후원도 마케팅 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내할만했다. 다만 거슬리는 게 있었다.

“왜 청룡 길드인가? 청룡 길드가 전소민 길드장을 제외하면 별 볼 일 없다는 점을 빼더라도···.”

정 회장은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자네와 그렇게 관계가 좋지 않을 텐데···?”

김서준과 청룡 길드에게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전형적인 토사구팽을 당한 개국공신이 아니던가?

‘MP사의 전략에 속았다지만, 명백한 배신이었잖아?’

정 회장으로서는 이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서준이 그간 보여준 행적은 아무 모범적이었다. 그러나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법.

‘혹여나 나중에 청룡 길드에 위해를 가할 계획에 우리를 이용할 수도 있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그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염두에 둔 후, 이뤄지는 게 사업이기에, 정 회장은 마지막 찝찝함을 입 위에 올렸다.

“....알고 계셨군요.”

“상대에 대한 조사는 사업의 기본이지 않겠나. MP사의 계략에 속았다지만, 어쨌든 자네 입장에서는 배신처럼 느껴졌을 텐데.”

“맞습니다.”

김서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담담하게 말했다.

“MP사와 계약 해제. 소속 헌터의 대규모 길드 이탈. 길드 순위 폭락. 광고 계약 해지와 그로 인한 수십억 규모의 위약금 지급.”

김서준은 잠깐 멈춰 커피를 한잔 들이켰다. 그리곤 다시 입을 뗐다.

“전소민과 저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이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치른 대가입니다. 아직도 반성은 끝나지 않았죠. 헌터관리국부터 경찰 지원, 유망주 육성 지원 등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청룡 길드는 확실하게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있던 그때처럼요.”

김서준의 눈에는 아련함이 어려있었다. 살짝 핏줄이 선 눈이 그의 말이 전부 진심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헌터는 당연히 돈에 목숨을 겁니다. 목숨을 걸고 돈을 버는 이들이니까요. 저와 친구들은 그런 헌터 시장에서 영웅이 되고, 만들고, 지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친구들은···.”

김서준이 고개를 들어 정 회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반성하고 노력하면서 제가 이루고 싶었던 꿈을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제 동료이자 친구였던 이들이요. 저 역시 다시 한번 그들을 믿어주고 싶습니다.”

“물론, 맨입은 아니지만요.”

*****

마정석을 지원받으면서 사비오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들어오는 모든 마정석을 갈아 넣으니 심한 날에는 하루에 1%가 오르기도 했다.

“정말 잘 먹네.”

돈 먹는 하마가 따로 없다만 어쩔 수 없었다. 단순히 퀘스트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두면 정말 메뚜기 때로 세계가 멸망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하나!”

“움!”

“둘!”

“움!”

사비오에 마정석 가루와 액체를 퍼붓는 옆에서는 노움과 도리, 그리고 토리가 모여서 훈련 중이었다.

“신기하네. 노움과 도리가 저렇게 전의를 불태우다니.”

역병의 사도라고 부르며 둘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훈련은 토리를 탄 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훈련이었다.

더불어 도리가 전수하는 기공 술도 익히고 있었는데, 김서준보다 성취가 좋았다.

‘나는 아직 마나를 못 느껴서 무리라고 했지.’

이야기는 들었지만 움보다 못하다니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 오늘도 훈련 중이군.”

“멋지네요.”

“왔어요?”

구경하는 사이 엘린과 트레스가 도착했다. 뒤로는 우노와 도스가 큰 접시를 등에 이고 있었다. 하얀 접시의 가운데는 뾰족한 침이 달려있었다.

“트레스, 여기 내려놓으면 되나?”

“우노. 도스. 고생했어. 여기 내려놔. 조심히 말이야.”

트레스의 말대로 둘은 장치를 내려놨다. 김서준이 그 장치를 보며 말했다.

“정말 안테나 같네요.”

“안테나가 맞으니까요.”

“클클. 그렇소. 사비오가 내뿜는 주파수를 모아서 송출하는 게 전부니까 말이오. 물론 규모는 좀 크지만. 클클.”

좀 큰 게 아니었다.

지름만 20M가 넘는 대형 안테나였다.

“근데 이렇게 큰 걸 사비오 위에 어떻게 올려요?”

사비오가 많이 자라긴 했다만, 이제 겨우 잎사귀 몇 장을 단 어린나무에 불과했다. 안테나를 작동시키려면 사비오 위에 연결해야 하는데, 사비오는커녕 김서준이 들고 있기 더 버거울 정도로 안테나가 컸다.

트레스가 ‘클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도스!”

“한번 해볼까. 망치의 술. 건축!”

-쿠르릉!

사비오를 중심으로 피라미드처럼 삼각뿔 형태로 지지대가 나타났다.

“우노, 올려주시게.”

그러자 우노가 그 큰 접시를 양손으로 들었다. 온몸에 근육에서 핏줄이 팽창하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안테나가 들썩거렸다.

“흐압!”

이내 우노는 안테나를 하늘로 던졌다. 포물선을 드린 안테나는 정확히 하늘 쪽으로 침을 향한 채 피라미드형 지지대 위에 안착했다. 도스가 망치의 술로 결합 부위를 고정하자 순식간에 거대 파라볼라 안테나 기지가 완성됐다.

“놀랍네요.”

“이로써 사비오 안테나 완성이오!”

김서준이 자신만만히 소리치는 트레스에게 물었다.

“내일 바로 작동할 수 있겠죠?”

“제가 마나를 부여하면 지금 바로도 가능해요.”

“그렇소. 엘린 공의 마나가 바로 스위치니 말이오. 클클클.”

엘린과 트레스는 자신만만했다. 김서준은 둘의 자신감을 믿었다. 이로써 준비는 끝났다.

‘그럼 오랜만에 마물 퇴치 한번 해볼까?’

김서준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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