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도지사 방문
“...사비오요?”
“사비오는 매일 마정석을 먹잖아요. 이때까지 먹은 마정석의 양이면 우리가 만들 장치보다 더많은 마정석을 먹었을 테고요. 그래도 멀쩡하잖아요. 사비오라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김서준의 말에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사비오라···.”
무언가 계산하던 트레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매일매일 마정석으로부터 추출한 마나를 흡수하는 사비오라면, 가능하겠어. 마나를 모아서 흡수하기 전에 다시 방출시키는 방식으로···.”
트레스는 손가락을 튕겼다.
“실험은 해봐야겠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소! 서준, 역시 자네는 천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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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호퍼라고 지칭된 메뚜기 형 마물은 현재 중국과 인도, 북유럽 등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티비에서는 드디어 바이올렛 호퍼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과 인접국에 워낙 막대한 피해가 시작됐고, 한국에도 녀석들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다가오는 위기]
지구상의 바이올렛 호퍼를 모두 박멸해야 합니다.
현재 상태 : 페이즈 1 – 무리 형성 중.
실패 시 : 예정된 멸망.
성공 시 : 세계수의 선물.
동시에 퀘스트 창도 업데이트됐다.
예상대로 바이올렛 호퍼가 잠재적 위기였다.
‘먼저 알아서 다행이야.’
페이즈 1이라는 표현은 의아했지만, 아마도 바이올렛 호퍼 무리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생각했다.
‘상관없어. 만들고 있는 장치만 완성되면 전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화면은 이제 바뀌어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에픽 길드와 청룡 길드가 힘을 합쳐 현재 방재 중이며, S급 헌터까지 동원되었기에 헌터관리국은 수일 내에 방제는 마무리될 것이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인지, 전소민이 말한 상황과 달리 뉴스는 가벼운 사건 사고로 사태를 말했다.
잠깐 전소민과 정현민의 얼굴을 비춘 후, 뉴스는 마무리되었다.
“...힘들어 보이네.”
김서준은 방금 나온 전소민의 얼굴을 떠올렸다. 안색도 안 좋고 다크서클도 심하게 내려와 있었다.
전소민은 어렸을 때부터 정의감이 투철했다.
‘아마 성격상 이 상황에 자신이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당장은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장치를 빨리 완성하는 게 전부였다. 맘 같아선 대안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주고 싶지만 참기로 했다.
‘혹여나 모두가 이 장치만 기다렸다가 실패하면 큰일일 테니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대안을 끊임없이 논의하고 연구하길 바랐다.
사태는 모두가 처음 겪는 상황인 데다, 일촉즉발의 재난 상황. 대비 플랜은 A부터 B, C까지 많을수록 좋았다.
“그나저나, 이 타이밍에 도지사 방문이라니······.”
이종인 기자의 소개 덕이었다. 농장을 알리고, 금산마을을 알리도록 도움을 주려는 기자님의 배려는 이해됐다. 다만, 마음이 복잡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장치 만들 때까지 시간도 필요하고. 하루만 할애하면 되는 거니까.’
“흠, 보좌관님, 정말 이게 맞아요?”
뒷좌석에 탄 양복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도지사님. 이종인 기자가 융통성은 없어서 그렇지, 정보만은 확실합니다. 그런 이 기자가 직접 전화까지 한 사안입니다. 마침 마을에 농사 명인님도 계신다고 하고. 금산마을 심상치 않습니다.”
“도정이 바쁜데···.”
조영승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일벌레였다. 천안, 아산 같은 큰 도시는 물론, 점점 특색을 잃고 낙후되는 지역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는 등 전국 최고의 도지사로 평 받았다. 오죽하면 차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까.
그래서 더더욱 여기에 가야 했다.
“지사님. 연임하시려면 정치적 행보도 하셔야죠. 이걸로 농촌 표심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번 방문이 다른 지역의 농촌도 살릴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6차 산업을 아주 잘 적용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죠. 보내준 자료 보니 잘 꾸리기도 했고. 그런데 과연 그 정도 가치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조영승은 회의적이었다. 결국, SNS는 한 철 장사 같아서, 확 떴다가도 확 가라앉았다. 6차 산업은 장기적이어야 했다. 지속이 가능해야 했다.
‘과연 여기가 그런 곳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은데. 너무 설레발 같단 말이지.’
더군다나 주인이 젊었다. 젊은 만큼 SNS를 이용한 바이럴마케팅에 능했을 터. 아무리 생각해도 거품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쩌면 한 철 장사하고 다른 도시로 가버릴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러나 보좌관은 확고했다.
“SNS에서도 한창 유행이니, 저희 SNS에 페이지에도 올릴 수 있을 거고요. 젊은 친구들에게 어필 될 겁니다.”
정치 인생을 처음부터 함께 해온 보좌관이 아니던가. 조영승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정 걸리시면 잠깐 쉰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다녀오시죠.”
“보좌관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일단 믿겠습니다.”
조영승은 애써 시트에 몸을 묻고 밖을 바라봤다. 산과 들, 논과 밭이 보였다. 예전에는 이런 풍경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관리가 안 된 토지가 너무 많아. 방치된 산도 많고.’
너무 많은 사람이 농촌을 떠난 탓이었다.
충남은 금산, 부여, 예산, 청양 등 농산물로 대표되는 도시가 많았다. 역시 농촌을 활성화할 대책이 필요했다.
‘금산마을이 보좌관의 말대로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런···.”
무리했던 탓일까. 깜빡 잠이 들었던 듯했다. 기척을 느낀 보좌관이 말했다.
“일어나셨습니까.”
“미안합니다. 근무시간에···.”
조영승이 무릎 위에 흐트러져 있는 서류를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요즘 많이 무리하셨으니까요. 다 왔습니다.”
조영승은 서류를 정리한 후 창밖을 바라봤다.
“오호···.”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농촌은 오랜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게 그 유명한 그 트리군요.”
조영승은 살짝 기대에 부풀어 차에서 내렸다. 내라 자마다 잘생긴 청년이 그를 맞이했다. 보좌관이 남자를 지칭하며 말했다.
“금산농장의 주인이자 금호 영농조합 이사 김서준 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서준입니다.”
“안녕하세요. 충남도지사 조영승이라고 합니다.
“도지사님 아닙니까. 뉴스에서 많이 봤습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도지사가 도착한 시간은 12시. 마침 점심시간이었기에 첫 번째 일정은 가온 길에서 식사로 정해두었다. 김서준은 도지사를 모시고 마을을 통과해 금수산을 오르기로 했다.
‘인기가 대단하네.’
그런데 중간중간 도지사를 알아본 주민들이 인사를 해왔다. 역시나 소문난 도지사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때, 조영승이 김서준에게 물었다.
“마을이 너무 활기차군요. 제게 먼저 이렇게 인사하는 마을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시장이나 사람이 많은 곳은 몰라도 시골은 보통 저를 못 알아보는 경우가 더 많은 데, 여기는 모두가 제게 인사를 하네요. 하물며 제가 누군지 몰라도 인사를 하는 분도 계시고...”
의외였다. 인기가 아니라, 학습의 결과였나보다. 금산마을과 호산마을은 이제 단순한 농촌이 아니었다.
체험농원, 농장, 트리, 가온길, 게스트 하우스 등등 마을 전체가 관광 사업을 겸하고 있었다. 김서준은 그랬기에 마을에 오는 손님에게 인사를 강조했다.
‘누구든 마을에선 정겹게 인사하기 전략이 제대로 먹혔구나.’
김서준은 자신의 말을 잘 따라준 주민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뿌듯한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군요. 정말.”
조영승은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단순히 마을이 아닌 전국 단위로 봐도 비교가 불허한 거대 트리 전망대. 활기찬 농부들과 체험농원 등
‘왜 여기에 가야 했다고 했는지 알겠어.’
이 노하우를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제대로 전수한다면 수많은 농촌이 되살아날 수 있어 보였다.
놀라운 건 6차 산업뿐만이 아니었다.
“저 특이하게 생긴 파는 뭡니까?”
“삼동파라는 거유. 돌연변이 파 같쥬? 원래 텃밭에서나 기를 많나 작물인디 여기, 서준이가 아주 멋지게 개량해서 이제 우리 마을의 대표 작물이 되었쥬.”
농사를 짓던 할아버님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단순히 6차 산업을 한게 아니라, 1차산업인 농산물도 차별화를 한 건가.’
덕분에 2, 3차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농부들도 싱글벙글 웃으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방금 자신에게 삼동파를 설명한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이 청년. 젊다고 무시할 게 아니야. 탁자 위에서 머리로만 사업하는 녀석들보다 훨씬 나아.’
김서준이라는 젊은 청년을 농촌개발 계획 특보와 같은 직책으로 데려가고 싶은 욕심이 일 정도.
‘아니, 돌아가면 한번 추진해봐야겠어.’
“정말 대단하군요.”
가온 길에서의 식사는 대단했다. 현대식 세련된 음식 안에서 묘하게 고향의 정취가 느껴졌다.
몇몇 음식은 어릴 적 텃밭에서 갓 캔 작물로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음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식사만 대단한 게 아니었지.’
멋진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모자라 그 안을 직접 거닐었던 건 너무나도 감명 깊은 경험이었다.
‘몸 안에 새로운 공기가 가득 차는 기분이었어.’
업무차 왔던 장소건만, 정신을 차려보니 아름다운 자연과 정취, 분위기 등을 만끽하는 데 빠져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말마따나 완벽한 힐링이었다.
‘이런 휴식이 얼마만 인지. 정말 고맙군.’
동시에 놀라웠다.
‘저 젊은 친구가 이걸 다 계획하고 만들었다니 말이야.’
헌터로서 농부로 각성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다양한 스킬 덕이라며 김서준은 겸손하게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영승은 알고 있었다.
‘같은 능력이라도 이런 장소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을 거야. 정말 놀라워···.’
김서준은 다시 한번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겸손하실 필요 없어요. 충청남도에 이렇게 좋은 장소와 좋은 사람이 나타난 걸 보니, 제가 아무래도 올해 운이 좋을 건가 봅니다.”
“하하.”
둘은 허심탄회한 웃음을 터뜨렸다.
****
“의외네.”
도지사가 괜찮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적극적이리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자세로 나오며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덕분에 의외에 성과를 얻었다.
“토종 작물을 지원해주겠다니. 의외의 성과였어.”
조영승은 영농조합과 마을의 새로운 산업에도 큰 관심을 보였지만, 동시에 토종 작물을 보급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금천면에 토종 작물을 보급하고 싶다는 김서준의 계획을 듣곤 기존의 토종 작물 지원금에 도에서 특별 지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꼭 성공해서 다른 지역 보급에도 도와 달라고 하시다니. 안목이 좋으시네.’
토종 작물이 무색무취한 많은 농가에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조영승의 판단은 김서준과 일맥상통했다.
‘덕분에 더 쉽게 터전도 늘려갈 수 있을 테고.’
김서준은 웃으며 세계수의 언덕으로 향했다. 엘린의 공방으로 들어가는 나무 앞에 기계 장치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가운데 앉아 엘린과 트레스는 함께 장치를 만들고 있었다.
“어때요? 잘 돼가요?”
“오셨어요?”
“오, 서준 왔소?”
반갑게 인사한 두 사람의 표정이 좋았다. 아무래도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는 듯 보였다.
“사비오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덕에 일은 척척 진행되고 있소. 설마 사비오가 그렇게 많은 마력을 머금고 있을 줄이야. 과연 현자들이 살던 나무요. 클클.”
사비오는 단순한 매개체 이상이었다.
‘설마 그 마나를 전부 안에 품고 있었을 줄이야. 저 마나가 모여서 전설 속의 그 열매가 열리는 건가.’
어찌 되었든, 덕분에 그 마나가 가진 파장을 밖으로 뿜어내기 위한 안테나만 만들면 유인 장치는 완성이었다.
“근데, 문제는 모은 다음이에요.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 해요. 사태가 길어지면, 생존본능에 따라 다시 도망치기 시작할 테니까요. 아무리 제 마법진을 이용한다지만 부족할 거에요.”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노을을 통해 헌터관리국의 힘을 얻을 수도 있었다. 전소민과 청룡 길드, 아니 나아가 많은 헌터에게 협조 요청을 바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서준이 믿는 바는 따로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있기도 했고요.“
”애들이요···?“
엘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김서준은 웃으며 정령을 소환했다.
”처리는 우리만 믿으라움!“
”꽥!“
김서준의 비밀무기(?). 노움과 도리, 그리고 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