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73화 (73/139)

73. 금산식 회식

[...충남 산양삼 협회 수석 연구원 송기호 박사는 “금산농장과 금호 영농조합은 헌터 시대 6차 산업의 표본이자, 대한민국 농업 혁신에 시초가 될 겁니다.”라고 극찬했다.]

“아, 좀 부족한데···.”

이종인은 아쉬움과 함께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아직도 아까 취재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일까. 김서준의 이상과 선의를 좀 더 지면에 담아내고 싶었다.

“근데 진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처음에는 사라지는 마을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은 모두가 행복한 터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작물과 농부 모두에게 말이다.

그래서 농장을 관광지로 만들고,

영농조합을 세워 농부들이 안심하고 작물 재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능력을 동원해 토리 농법과 종자를 개량했다고 했다.

“이게 그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생각인가?”

이기심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아니, 세상이 그랬다. 혼자만을 위해 능력을 썼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종의 창업이잖아? 투자잖아?’라고 누군가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종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자기 농사만 짓고, 농장도 수익 극대화해서 굴리면 충분히 자신은 부귀영화를 누렸으리라.

이 젊은이는 그걸 포기하고 모두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창업한 셈이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인드뿐이 아니지. 능력도 탁월했어.”

이종인은 오늘 본 금산마을과 농장을 다시 떠올렸다.

정령이 함께 짓는 농사.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고 감탄이 터져 나오는 작물과 음식. 상상만 해도 힐링이 되는 멋진 풍경까지.

말한 걸 지킬 만큼 정말로 준비된 모습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오늘 초청회는 너무 감명 깊었고, 김서준이라는 농부는 더더욱 감명 깊었다.

“뭐라도 좀 돕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네.”

이종인은 모니터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커피 한 모금을 들이킨 후 뺨을 툭툭 때리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럼 이거라도 잘 써줘야지! 다시 퇴고해보자!”

이종인은 키보드 위로 손을 올리려 했다.

그런데 문득, 송기호가 보내준 저 멘트가 눈에 들어왔다.

‘헌터 시대 6차 산업의 표본이자 대한민국 농업을 혁신에 시초···?’

이종인이 생각해도 그랬다. 아니 오늘, 방문한 모두가 이게 평범한 농장은 아니구나 싶었을 거다.

‘그렇다면 명분은 충분하지 않나?’

오늘의 초청회는 결국 홍보가 목적이었을 거다. 모두에게 농장과 마을을 알리고, 나아가 SNS까지 노린 홍보가 분명했다.

‘좋은 취지가 있어도 일단 잘 돼야 뭘 하는 거니까.’

그런데 미래 유망하고, 의미 깊고, 명분도 좋다?

‘이거 완전 각이 나오는데?’

결심이 선 이종인은 키보드에서 다시 손을 뗐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찾으며 즐겁다는 듯 말했다.

“각이 나오는 데 힘 한번 제대로 힘 좀 써보자!”

그는 서둘러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형 나 믿고, 도지사님께 금산마을 한번 가자고 해. 100%, 지금 가면 나중에 크게 써먹는다.”

이종인의 휴대폰 화면에는 충남도지사 정무보좌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흠.”

휴대폰 화면을 골똘히 보던 김서준은 빙그레 웃었다.

“기사 잘 써주셨네.”

농장의 아름다운 경치 사진은 물론, 금산마을의 풍경, 크리스마스트리의 특별한 포토존 등을 칭찬과 잘 버무린 멋진 기사였다.

헌터 시대 새로운 농업의 패러다임이나, 새로운 6차산업의 표본 같은 말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나중에 감사 인사 한번 해야겠다. 아, 초청해주신 송기호 기자님한테도 인사 한번 드려야지.’

김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기사를 훑었다.

‘기자님은 노움이 진짜 좋았나 보네. 노움 단독사진을 기사에 왜 넣은 거지.’

김서준은 피식 웃으며 화면을 캡처했다. 노움에게 보여주면 ‘움움!’하며 좋아할 게 분명했다. 화면을 내려놓은 김서준은 다시 액셀을 열었다.

“이 정도면 선방했네.”

초청회에 사용된 비용이 꽤 많이 나왔다. 하지만 그만큼 성공적이었다. 비단 기사뿐 아니라, 왔다 간 사람들의 반응이 훌륭했다.

‘하나같이 좋은 반응뿐이었으니까.’

엘린의 말에 따르면 SNS에서도 인기가 꽤 좋다고 했다. 노을은 ‘새로운 힐링 포인트’라며 SNS에 금산농장이 소개된 게시물을 보내주기도 했다.

“다행이다. 다들 고생한 만큼 성과가 나와준 거 같아서.”

이렇게 고생했을 때 조합 이사로서 해야 할 게 뭘까? 답은 간단하다.

“회식 준비 좀 해볼까.”

이 촌구석에 회식하겠다고 갈 수 있는 식당 같은 건 없다. 더군다나 마을 주민 전체가 조합원. 어지간한 식당으로는 수용할 수도 없다. 당연히 직접 준비하는 게 최선이었다.

‘생각해둔 게 있지.’

김서준은 리노와 함께 드워프의 양조장으로 향했다.

“오, 서준. 무슨 일인가.”

양조장에는 트레스 혼자 있었다. 최근에 도스는 사과밭에 주로 가 있었다. 노움과 함께 사과 농사를 지으며 직접 몸으로 익히는 동시에, 술로 만들 사과의 상태를 직접 관리하고 위함이었다.

“우노는 오늘도 사냥 나갔네.”

“오늘은 뭐요?”

“샐러맨더의 심장이지. 심장에서 샐러맨더의 불꽃을 일으킬 수 있소. 트렌트로 만든 통을 그 불꽃으로 로스팅하면 기가 막힌 풍미가 생긴다오. 클클클.”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드워프의 양조기술은 신기한 것투성이였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오?”

“아,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김서준이 생각한 회식을 위해서는 거대한 돌판이 필요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명화의 테이블처럼 주민들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길고 평평하면서도 너무 두껍지 않은 돌판.

‘집을 지을 때 사용했던 망치의 술이라면 만들 수 있겠지.’

예상대로였다. 트레스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 정도야 기본이지. 바로 나가시게나.”

양조장과 가온 길의 앞에는 넓게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들판 위에 잘 만든 하얀 건물. 예전 컴퓨터의 배경화면을 연상시키는 전망이었다.

김서준은 그 들판의 한끝으로 트레스를 데려갔다. 앞으로 금수산과 마을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클클. 볼 때마다 참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오.”

“맞아요. 그래서 이 풍경을 보면서 먹으면 좋을 거 같아요. 여기에 테이블을 길게 설치해주시겠어요?”

“알겠소. 잠시···.”

트레스는 뒤로 물러나라며 손짓했다. 그리곤 허공에서 망치를 소환했다.

‘신기하네.’

드워프는 자신만의 고유한 망치를 소환할 수 있다고 한다.

우노의 망치는 우노 다운 크고 손잡이가 긴 양손 망치. 도스의 망치는 짧고 단순한 형태의 한 손 망치. 그리고 트레스의 망치는 기계 장치와 장도리처럼 곡괭이가 붙어있는 얇은 망치였다.

‘망치가 드워프의 성향에 맞게 만들어지는 건가.’

트레스가 유심히 자신을 보는 김서준을 마주 봤다.

“여기에 일렬로 맞소?”

“네.”

“좋소, 그럼! 망치의 술, 변형!”

-콰르르륵!

땅이 쩍쩍 갈라지고, 땅속에서 거대하고 납작한 바위가 지면 위로 솟아났다.

“멍멍!”

놀란 리노가 신기하다는 듯 소리쳤다. 김서준이 그런 리노를 쓰다듬으며 트레스의 작업을 주시했다.

“흡!”

솟아오른 넙데데한 바위를 작은 바위들이 솟아나 지탱했다. 흡사 납작한 고인돌 같았다.

“돌판 아래로 불 들어갈 수 있게 조금만 위로 올려주세요.”

“알겠소. 클클.”

트레스가 바닥을 한 번 더 내려쳤다. 그러자 미세하게 받침대의 높이가 조절됐다.

‘진짜 신기하고 편리하네. 노움도 나중에 저렇게 되려나?’

노움의 땅을 다루는 기술과 비슷하지만, 규모가 달랐다. 노움의 기술은 흙을 움직이는 정도. 저렇게 큰 바위를 들어올 릴 수는 없었다.

“다 됐소!”

아주 유명한 미술작품을 연상시키는 긴 돌판이 완성되었다. 김서준은 트레스와 함께 마지막으로 돌판을 평평하게 다졌다.

“고생했어요.”

“별말씀을. 지난번 먹었던 가마 삼겹살에 또 다른 버전을 먹을 수 있다는 데,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소. 클클.”

웃던 트레스가 이내 입안에 가득 고인 침을 ‘츄릅’ 소리를 내며 삼켰다.

“그럼 조금 이따 봐요.”

“멍멍!”

“기대하겠소. 리노 공도 이따 보시게. 클클.”

돌판이 끝났으니 다음은 고기를 손질할 차례. 김서준은 가온 길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청소 중이신가 봐요?”

테이블이 모두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두 사람도 평소와는 다른 일상복이었다.

“네. 다시 재오픈 준비 전에 싹 대청소하려고요. 영업 시작하면 대청소가 쉽지 않으니까요.”

“새 건물을 대청소까지···. 열정이 대단하네요. 고기 준비시킨 게 미안한데요?”

강하진 셰프가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좋은 입지 선정에 홍보, 투자까지 해주셨는데 그깟 고기 하나 준비 못 할까요.”

“맞습니다. 이사님은 푹 쉬세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신동원까지 소매를 걷으며 소리쳤다. 빙그레 미소를 지은 김서준이 말했다.

“같이하면 편하니까요. 그리고 마침 좋은 소식이 들렸거든요. 노움!”

“움!”

“멍!”

노움이 나타나자 리노와 둘이 인사를 나눈다. 흐뭇하게 두 귀여운 녀석들을 바라보다 겨우 정신을 차린 김서준이 말했다.

“오늘 농사는 끝난 거지?”

“그렇습니다움!”

“혹시 그럼 청소도 도와줄 수 있나?”

“여기 말씀입니까? 물론입니다!”

노움이 움들을 불렀다. 허공에서 눈처럼 ‘푱푱 ’ 쏟아지는 움들. 움들은 각자 청소도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설마···?”

“정령이 청소도 할 수 있는 겁니까?”

놀라운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진 신동원과 강하진이 다가왔다. 그러자 노움이 말했다.

“물론이다움! 청소는 기본이다움!”

떵떵거리며 소리치는 노움 앞으로 움들이 사열했다.

“자, 빗자루 부대 먼저 활동한다! 먼지떨이 부대는 유리창 먼저 공략한다!”

“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움들을 보며 두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이사님 능력은 대단하네요. 만능 정령이라니···.”

“부럽다. 요리 정령 같은 건 없나···.”

이내 그들의 시선은 부러운 마음을 잔뜩 담아 사태의 주인공에게 향했다. 주인공은 시선에 괘념치 않은 채, 자신의 정령에게 애정이 어린 손길을 주고 있었다.

“잘 부탁할게.”

“헤헤. 걱정 마시라움!”

“자, 그럼 우리는 바로 고기 손질하러 갈까요?”

돌아보는 남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움찔하며 대답했다.

“넵!”

-지글지글.

두꺼운 돌판 위에 흥건한 기름에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며 삼겹살이 노릇노릇 구워진다. 옆으로는 김치와 마늘이 기름에 맛있게 튀겨졌다.

냄새와 소리만도 대단하지만, 맛은 어떨까.

떨리는 손으로 임종철이 고기를 집었다. 그리고 입안에 욱여넣는다.

“으흠···.”

촘촘하게 만든 칼집이 튀김옷처럼 바삭거리고 속살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고소하고 살짝 짭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쌈장도 안 찍었는데, 간이 딱 맞는다.

동시에 눈앞에는 노을과 금산마을의 풍경이 보인다. 오감이 만족하니 온몸에 환희가 차오른다. 자, 이제 이 향연의 화룡점정을 찍을 차례.

-짠!

청아한 소리를 내며 잔을 부딪친 후, 투명한 잔에 담긴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는다.

“캬.”

임종철이 참지 못하고 거나한 탄성을 토해냈다. 임종철뿐 아니라 자리에 앉은 모두가 그랬다.

“술맛 죽이네.”

임종철이 말하자 기다렸다는 사람들이 대꾸했다.

“진짜 살면서 마셨던 술 중에 제일 꿀맛이구먼.”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리겠어. 산정상에서 먹는 돌판 삼겹살의 쇠주라니 말이여. 크. 진짜 서준이 아니었으면 어쩔뻔했어.”

저마다의 감상평이 튀어나왔다. 모두 호평 일색. 거기에 김서준에 대한 칭찬도 빠지지 않았다.

“진짜 서준이 덕에 죽기 전에 호사란 호사는 다 누리겠어.”

“뭔 벌써 죽느니 마니여. 이제 시작이구먼. 안 그려?”

“하긴 이제 시작이구먼. 이 나이에 다시 시작이라니 진짜 남의 보는 눈만 없었으면 내가 절을 했을 겨.”

“지금이라도 하지그려?”

“그럴까?”

“푸하하하.”

테이블 위로 웃음이 터졌다. 비단 임종철의 테이블뿐이 아니었다. 우노가 있는 술꾼들의 테이블에서도, 동네 할머니들이 모인 테이블도 그랬다.

“다들 좋아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이걸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엘린이 대답하자 강하진 셰프가 말했다.

“지금 이 식사는 요리를 넘어 행복을 나누는 자리 같군요. 모두가 이렇게 즐겁다니. 셰프로서 부러우면서 부끄럽네요.”

강하진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옆에 있던 신동원 역시, ‘맞습니다. 오늘도 하나 또 배우네요.’ 이러면서 맞장구를 쳤다.

“하하, 부끄럽네요.”

“부끄럽긴요. 지금 여기 있는 모두가 이사님 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 역시 이사님 덕에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요. 칭찬을 누리셔도 됩니다. 이사님.”

신동원이 칭찬에 쐐기를 박았다.

‘이거 참···.’

멋쩍게 웃으며 김서준은 괜히 잔을 들었다. 모두가 웃으며 한 번 더 잔을 부딪쳤다.

“음?”

휴대폰이 울렸다. 전소민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김서준은 휴대폰을 켜 문자를 확인했다. 한 장의 사진.

‘징그럽네.’

보라색 무늬에 붉은 눈을 가진 징그러운 메뚜기의 모습이었다. 김서준이 짐짓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래요?”

“아, 아니에요. 좀 징그러운 걸 봐서···.”

“뭔데요?”

엘린이 고개를 쑥 밀며 김서준의 휴대폰을 보고는 말했다.

“이, 이건···. 바이올렛 호퍼?”

엘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곤 떨리는 목소리로 김서준에게 물었다.

“서, 설마 이 세계에도 이게 나타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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