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기자 초청.
“아니, 무슨 시골 마을에 농장 열리는 걸 취재하라는 거야?”
충남일보 기자, 이종인.
차를 타고 금산마을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원인은 편집장과 친하다는 산양삼 협회의 연구원이었다.
‘아니, 뭐 대단한 게 있다고 꼭 취재를 나가래? 하여간 같이 농사짓는 사람이라고 챙기기는.’
아무리 대단해봤자 한낱 농장 아닌가?
심지어 대단한 걸 이룬 농장도 아닌 이제 막 오픈하는 농장. 광고비를 받고 홍보기사를 써줘도 모자랄 판에 무료로, 그 촌구석까지 취재를 다녀오라니. 이쯤 되면 자신을 엿 먹이려는 편집장의 간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건 아니구나.’
얼마 전에 SNS에서 화제였다는 트리가 있긴 했다.
‘간 김에 그 트리나 구경하자. 쓸 거 없으면 트리에 대한 기사나 좀 끄적이지 뭐.’
이종인은 가벼운 생각으로 금산마을을 향해 액셀을 밟았는데···.
“뭐야?”
마을 초입부터 차가 보이더니 마을 안에는 사람들로 꽤 북적거렸다.
“초청회 한다더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하긴, 주민분들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지 않은가. 손자, 손녀까지 데리고 가족들이 놀러 왔다면 그럴 수 있겠지.
그렇게 어물쩍 이상한 점을 넘기곤 이종인은 김서준과 만나기로 한 트리로 향했다.
“트리 죽이긴 하네. 다들 트리 보러 왔나 보고만.”
사진으로 봤던 거보다 더 웅장하고 멋졌다. SNS에서 난리가 날 만했다.
‘진짜 저거로 기사 써도 되겠는데? 헤드라인은···. 봄에도 보고 싶은 크리스마스트리? 헌터가 마을을 살리는 법! 정도 하면 되겠다.’
이종인은 그런 생각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종인 기자님!”
“어?”
차에서 내리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김희연 기자님.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기자가 뭐 달리 여기까지 올까요. 취재하러 왔죠.”
“하하, 농민신문에도 올라가나 봐요?”
“네. 송기호라고 하시죠? 그 산양삼 협회 수석 연구원. 그분이 취재 꼭 해야 한다고 하도 추천하셔서요.”
“거기도요? 아니, 송기호 씨 혹시 여기 농장 주인이랑 뭐 있는 거 아녜요?”
농민신문에 충남일보까지. 적어도 충남 안에 농사에 관심 있는 사람 대상으로 농장 홍보는 다 한 셈이었다.
“투자라도 했는지도 몰라요.”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두 사람이 이런 의심을 품는 건 당연했다.
“여하튼 대한민국 농사 계를 뒤집어 놓을 곳이라고 유혹하셔서 오긴 왔는데···. 저도 아직 긴가민가해요.”
“뭐 정 안되면 저 트리라도 기사 쓰죠. 트리 하나는 기막히네요.”
둘은 자신들은 이런 구석까지 취재 보낸 윗사람들에 대한 뒷담을 나누며 트리로 다가갔다.
“저기 계시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훤칠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보였다. 헌터 용 훈련복 위에 티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남자는 흡사 배우를 연상시켰다.
“잘 생겼네요.”
“그러게요.”
둘은 동시에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곤 풍경과 함께 남자를 사진에 담은 후, 남자에게 다가갔다.
“서준 씨?”
“아, 기자님들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금산농장의 김서준입니다.”
이종인은 깍듯이 인사하는 남자의 외모를 살폈다. 얼굴은 희고 악수하는 손이 부드러웠다.
‘헌터는 둘째치고 농부가 저럴 수가 없지.’
아버지가 농부였던 그는 농부의 피부와 손이 어떤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종인의 기대가 차게 식었다.
‘뭘 보고 추천했는지 모르지만 좋은 농부는 아닌 게 확실하네. 어쩐지 어린 나이에 영농조합 이사라더니 그냥 금수저였군.’
어쩌면 친한 금수저 동생한테 아부하기 위해 이용당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기와 여기까지 온 거, 계획대로 트리 취재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종인은 취재를 위해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충남일보 이종인입니다.”
“농민신문 김희연입니다.”
이종인이 김희연의 눈치를 살폈다.
‘똑같네.’
김희연 역시 미소를 연기하는 게 분명했다.
“저는 명함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트리가 멋지네요. 이런 거 만드는 게 스킬이신가 봐요? 보고 있으니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김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 스킬은 아니고 저랑 함께 일하는 동료의 스킬입니다. 오신 김에 한 번 올라가 보시죠.”
“그래요. 오늘은 천천히 걸으면서 느긋하게 취재 한 번 해봅시다. 괜찮죠, 김희연 기자?”
‘취재는 대충 각 나온 거 같은데, 시간이나 때웁시다.’라는 의도를 담아 눈빛을 보낸다. 김희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시죠.”
****
“와, 여기 엄청 좋은데요?”
“가족들 데리고 한번 와야겠어요.”
그 말을 들은 김서준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동시에 마음 한편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원래 이런 건가?’
취재를 나온 기자라고 하기엔 너무 열심히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밑에서 인증샷을 챙기는 건 물론, 트리의 나선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마을의 정취를 흠씬 느끼고 있었다.
‘좋은 일이긴 하지.’
딱 김서준이 관광객들에게 주고 싶은 걸 전부 누리는 셈이었다. 다만, 이들은 기자가 아니던가.
‘...좀 더 질문도 하고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둘의 관심은 마을의 사업이나 농장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굳이 따지면 관심은 트리 정도인 듯했다.
“와, 근데 이제 봄인데 무슨 작물이 이렇게 많이 자랐데요?”
그때 이종인이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경치를 만끽하던 김희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파리도 그렇고, 하얀 꽃도 핀 게, 감자···. 같은데요?”
“감자가 벌써 펴요?”
“그러게요. 감자가 봄에 꽃이 필 작물이 아닌데. 이제 심어야 할 작물인데 말이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김서준이 끼어들었다.
“아, 제 감자는 좀 특별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확하거든요.”
“네? 일주일에 한 번이요?”
김희연이 놀라 되물었다.
“제 능력입니다. 제 헌터 직업이 농부거든요.”
“농부가 직업인 헌터도 있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하.”
김서준이 대답하자 이종인이 말했다.
“그럼 저게 능력으로 기른 작물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빨리 크고 있고.”
“네.”
“와, 근데 능력이 엄청 좋네요. 농부가 이렇게 하루 쉬어도 되고. 그래도 작물은 잘 자라고···. 그냥 막 씨 뿌리면 쭉쭉 자라는 능력인가 봐요?”
사람에게는 말투와 억양이라는 게 있다. 그 미세한 말투와 억양의 차이는 그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기 마련.
그리고 지금 이 말투는 확실했다.
‘못 믿는 건가.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둘 다인가.’
어떻게 해줄까. 답은 간단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여주고 증명하면 될 일이었다.
“사실 농사짓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오늘 작업을 미뤄뒀습니다. 노움!”
“무슨 일이십니까움!”
김서준의 어깨에 노움이 푱 하고 튀어나왔다.
“노움, 일단 인사 먼저 드려.”
“반갑다움! 노움이다움!”
“와, 엄청 귀엽네요!”
기자들이 놀라더니 이내 카메라를 노움에게 들이밀었다. 김서준의 휴대폰 카메라에 적응된 노움은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김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시죠.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
****
이종인은 기자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었다. 바로 양심이었다. 진실만을 적어내는 건 기자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가 그 엄청난 스펙으로 고작 이런 회사 기자가 된 거라니까? 적당히 어그로도 끌고 해야지.’
친구는 그렇게 조언했지만, 이종인은 양심을 굽히지 않았다. 설령 충남일보 같은 지역 신문에 있더라도 진실만을 제대로 써내고 싶었다.
그래서 발끈했다.
‘일주일 만에 작물이 자라?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지어? 그게 말이 돼? 설령 된다 해도 그렇게 키운 작물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이건 과장을 넘어 기만이었다. 농사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건 누구보다 잘 알지 않던가? 분명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과장과 허세인 게 분명 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을 싸구려 광고매체로 여기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거기 조심하라움!”
“움움!”
그런데, 지금 눈앞에 풍경을 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견에 갇혀있던 건 자신이었다.
“대단하네요.”
“매일 하는 일인데요.”
김서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그러나 이종인은 그렇게 웃어넘길 수 없었다.
“알지? 당근은 씨 받아야 하니까, 꽃 따지마!”
“알겠습니다움!”
김서준 농부는 자신의 지식과 노하우를 적절하게 섞어 정령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그럼 정령은 자기 밑에 부하(?)들을 통제했다.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명령 하달 체계. 체계적인 움직임. 이건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거기에 아래로는 듣도 보도 못한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체계와 관리라니. 제대로 된 농부였어.’
정령과 능력에 오롯이 의존하는 게 아니라, 세심한 관리와 통제, 시스템이 돋보였다. 분명 이런 체계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터였다.
‘송기호 연구원이 추천한 이유가 이거였나?’
송기호도 분명 이런 점을 느꼈을 게 분명했다.
“꽥꽥!”
머리 위에 또 요상하게 생긴 새들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김서준의 밭 위로 내려앉았다. 이종인은 제대로 김서준이란 농부와 마을에 대해 취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새는 뭐죠? 유독 이 마을에 많던데.”
이종인이 묻자 김서준이 대답했다.
“바람의 정령인 도리와 토리들입니다.”
“저 새도 정령이라고요?”
“네. 도리!”
김서준이 소리치자 도리가 날아왔다. 그리곤 착지와 동시에 사람으로 변했다.
“와···.”
김희연이 감탄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은발은 반짝거리고 하늘하늘 휘날리는 소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을 연상시켰다.
“인사드려.”
도리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도리는 대화는 못 해요.”
“괘, 괜찮아요. 말 못 해도.”
“왜 이래. 정령이라잖아.”
이종인이 옆에서 넋을 놓고 볼은 발그레 물들이는 김희연에게 말했다. 그러자 김희연이 횡설수설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요. 오늘 사진 올라가면 여자, 아니 손님이 엄청 늘겠어요.”
“하하. 그러면 좋겠네요.”
김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정령들은 유기농법의 핵심이었다. 토리 농법이라 이름 붙였는데, 토리들이 벌레나 잡초를 잡아먹는다고 했다.
“평소에는 사료 대신 직접 사냥을 한다고요?”
“네. 그게 좀 특이한 점이죠. 게다가 어지간한 야생동물보다 강해서 사냥당할 염려도 없고요.”
“완성된 동물을 이용한 농법이나 다름없네요.”
“이쯤 되면 농촌마다 농부 헌터를 보급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세 사람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취재는 이어졌다.
****
밭을 일구던 농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뭐지? 연기인가?”
멀리 보이는 곳에 보랏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아지랑이는 무리가 되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저거···.”
“연기가 아니라 뭔가 살아 있어?”
“서, 설마···.”
함께 일하던 농부들이 웅성거렸다. 옆 밭도, 그 옆 밭도 마찬가지. 그러다 누군가 소리쳤다.
“메뚜기 떼다!!”
이미 메뚜기가 육안에 들어온 상황.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막을 방법이 없어!”
“저렇게 많으면 사람도 덮칠 거야, 그냥 도망쳐!”
온 마을이 난리가 났다. 모두가 소란을 떨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메뚜기를 발견한 농부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에 농기구를 털썩 떨궜다. 아마도 한해 농사를 전부 잃어버리게 된다는 망연자실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 보였다.
-촤라라라락!
메뚜기의 날갯소리가 가득 찼다. 동시에 보랏빛 메뚜기가 땅을 뒤엎었다.
잠시 후.
넋이 나간 농부 주변에 초록색은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프로젝터가 꺼졌다. 한국 대표 길드의 장들과 S급 헌터들이 가득 찬 회의실이 웅성거렸다. 그러다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니까 저 메뚜기가 아웃브레이크로 나온 마물이라는 거죠?”
“맞습니다.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데, 작물을 전부 먹어치웁니다. 중국 농촌의 작물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처는요?”
검은 양복을 이은 사회자는 마이크를 들고 말을 이었다.
“일반 농약은 통하지 않습니다. 마물이니까요. 현재 중국은 모든 헌터를 동원해서 마물을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만···.”
“만···?”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일단 한 마리만 남아도 금세 다시 군락을 이루는 데다가 워낙 작아서 잡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비호전적이라 도망도 잘 치고요.”
“하···.”
헌터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했다. 차라리 덩치가 큰 녀석을 잡아내라면 모를까 이런 식은 헌터들도 처음이었다.
“관건은 봉쇄와 일망타진이군요.”
“맞습니다. 현재 중국도 그런 방법을 고안 중이라고 합니다.”
“근데 이 벌레가 벌써 한국에 넘어왔다고요?”
“서해를 중심으로 벌써 시작됐습니다. 조금만 내버려 두면 곧 나라고 덮어버릴 겁니다. 헌터 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번 웅성거리는 회의장.
“말이 도움이지. 저걸 어떻게 우리가 막아?”
“지금 최상급 헌터 모아놓고 벌레 잡으라고?”
“나라에서 시키는 일은 돈도 안 되고 해서 뭐해.”
회의장 구석에 앉은 전소민은 옆으로 들리는 소리가 거슬렸다.
‘이 상황에 돈과 명예를 챙긴다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는 건가? 진짜 헌터로서 책임 의식은 없는 건가?’
이게 대한민국 최강의 현실이라는 사실에 환멸을 느끼며 전소민은 어떻게 사태를 해결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였다.
“좋은 방법 떠오르는 거 있어요?”
S급 3위이자 에픽 길드의 마스터. 정현민이 전소민에게 물었다.
“영상도 그렇고,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할 거에요. 어쩌면 세계 전체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딱히 방법이···.”
“소민 씨의 바람으로 공중에서 메뚜기를 묶어 버릴 수 없을까요? 아까 영상 보니 다 먹고 나면 일제히 하늘로 오르던데···.”
‘헌터계의 신사라더니. 역시 이 사람은 정신이 제대로 박혔구나. 다행이다.’
전소민은 마침내 말이 맞는 사람을 찾아 반가운 마음에 열띤 논의를 펼쳤다. 그러나 소득은 없었다.
“일단 시도할 건 바람으로 가두는 거뿐이네요. 허점은 많지만···.”
“한 마리라도 빠져나가면 문제인 게 크네요. 방법이···.”
고민하던 전소민의 머리에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혹시 서준이라면, 이런 마물을 상대할 농약 같은 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메뚜기도 병충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