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68화 (68/139)

68. 금산농장

“서준, 정말 신기하오.”

“이 세계 식물도 신기한 게 많지만, 농법은 더 특이하네요.”

오랜만에 사과밭에 방문한 도스와 엘린은 밭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도 완성하고 보니 놀랍네요. 진짜 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사과나무는 지주대를 따라 일직선으로 곧게 자라있었다. 신기한 건 옆으로 난 가지의 형태였다. 길어야 손 한 뼘 정도로 자라난 가지에 나무가 달려있으니, 마치 사과가 나무에 붙어 자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사과나무가 촘촘하게 일렬로 쭉 늘어서 있으니, 사과로 만든 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밀식 재배라고 했죠? 가지가 뻗는 건 어떻게 통제한다고 했죠?”

“네. 첫 번째 꽃을 기준으로 그 뒤에 뻗은 가지는 다 잘라내는 거예요. 그러면 그 뒤로는 다시 가지가 자라지 않죠. 처음에는 고생이지만, 한번 틀을 잡아놓으면 그다음은 오히려 편해요.”

엘린과 도스는 수첩에 김서준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적었다.

‘내가 무슨 선생님이라도 된 거 같네.’

사실, 오늘은 선생님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은 김서준이 사과를 키운 방식에 대해 기록하고 배우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영양분 분산도 막을 수 있어서 사과도 더더욱 싱싱하게 되고요.”

뒤이어 접목이나 지주대, 품종 등, 사과 농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엘린과 도스는 열정적인 학생들이어서 경청은 물론, 모르는 내용은 바로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그럼 맛을 볼까요?”

김서준이 옆에 있던 사과를 따서 도스와 엘린에게 나눠주었다. 둘은 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곧장 입으로 가져갔다.

-아삭!

도스와 엘린은 맛있는 소리와 함께 황홀한 표정으로 사과를 씹었다.

“정말 맛있어요. 라이너스 대륙에서 먹었던 거랑은 차원이 달라요.”

“서준! 지난번에 나무 관리를 위해 딴 사과도 맛있었지만, 이거 훨씬 더 맛있군! 비교가 안 되오!”

김서준도 웃으며 사과하나를 입에 넣었다.

“음···.”

과육을 씹을수록 입안 가득 퍼지는 새콤달콤한 맛과 사과 향이 대단했다.

“제가 키웠지만···. 정말 맛있네요.”

“클클클. 부끄러워할 필요 없소. 그 정도로 맛있으니 말이오. 이걸로 술을 빚으면 정말 꿈에 그리던 그 술을 만들 수 있겠소! 클클클!”

“맞아요! 사이다도 사이다지만, 와인은 진짜 대단하겠어요.”

김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혹시 더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없소.”

“저도 없습니다.”

“그럼 이제 수확 시작해야겠네요. 노움! 도리!”

확인을 마친 후, 김서준이 두 정령을 불렀다. 허공에 빛이 번쩍하더니 하얀 털을 휘날리며 도리와 노움이 나타났다.

“움!!”

“꽥!!”

“사과 수확, 시작해볼까?”

“알겠습니다움!”

그러자 도스와 엘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노움과 움들이 사과를 수확할 수 있어요?”

“서준.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노움의 키로는 저 위에 있는 사과는 못 따지 않겠소?”

그러자 노움이 도리에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된다움! 도리 공!”

노움의 말과 동시에 도리가 나무 꼭대기까지 날아올랐다. 노움이 도리에 탄 채 사과를 ‘똑’ 따내자 도리가 다시 땅에 착지했다.

“어떠냐움!”

“꽥!”

그 모습을 본 엘린과 도스가 흐뭇한 미소와 함께 손뼉을 쳤다.

“대단하네요.”

“클클클! 대단하오!”

옆에서 흐뭇하게 그 모습을 보던 김서준이 말했다.

“이제 시작할까?”

“알겠습니다움! 나와라움!”

“꽥!”

땅에서는 움들이 하늘에서는 산 곳곳에 자유롭게 퍼져있던 토리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움과 토리는 약속이라도 한 거처럼 노움과 도리처럼 각각 2인 1조를 짰다.

그리곤 쭉 도열하는 토리와 움들을 향해 노움이 소리쳤다.

“모두 장비 확인하라움!!”

“움!”

“꽥!”

움들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거대한 가위를 하나씩 꺼내 들었다.

“사과 따기 작전 시작이다움!”

노움의 신호와 함께 토리와 움들이 일제히 밭으로 퍼져나갔다.

“꽥!”

토리들이 날아오르면 그 위에 탄 움들이 자기 몸만 한 가위로 사과를 딴다. 그러면 떨어진 사과는 곧장 아래 놓인 바구니로 들어간다.

‘정말 농사 관련된 건 못 하는 게 없다니까.’

이 일련의 과정이 노움의 지시하에 질서정연하고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도스와 엘린이 넋을 놓고 구경하는 건 당연했다.

“허, “군기가 바짝 들었군. 망치의 후예가 자랑하는 백양 부대 같소. 클클클.”

“대정령이 아니라 대장군 같다니까요.”

노움은 이 모든 상황을 도리를 탄 채 내려보며 지휘하고 있었다.

‘대장군이라. 진짜 그 말대로네.’

김서준의 입에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러자 도스와 엘린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

높게 뻗은 나무는 하늘에서 맞닿을 듯이 무성한 가지를 뻗어 오솔길을 덮었다. 그 아래 흙길은 돌부리는커녕, 작은 턱 하나 없이 깔끔하고 평탄했다.

“참말로 대단하구먼.”

“그 야산이 이렇게 예쁘게 바뀌다니 말이여.”

금수산에 올라온 마을 주민들은 너나 할 거 없이 탄성을 터뜨렸다.

“진짜 대단혀. 재주꾼이여. 재주꾼.”

김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내심 안도했다.

‘다행이야. 다른 사람들 눈에도 괜찮아 보이나 보네.’

이제 금산농장 오픈을 앞둔 시기.

김서준은 호산마을과 금산마을 모두를 초대했다. 모두에게 농장을 선보이고 평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내가 만든 거라 냉정하게 평가가 어려우니까.’

다행히도 어르신들의 반응은 좋았다. 아니, 예상 이상이었다.

“이게 산림욕이지. 지대로구먼.”

“땅이 편하고 경사도 평탄해서 걷기 좋네.”

“풍경만 보고 걸어도 맘이 편해지는구먼.”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이 이런 반응이라면, 도시에서 놀러 오는 사람들의 반응은 더 좋을 게 분명했다.

굽이진 산책로를 지나 산 정상이 나타났다. 푸른 초원 사이, 산책로 끝에 하얀 건물 두 개가 보였다.

“경치가 기가 막히는구먼.”

“이건 뭐 그림이 따로 없구먼. 껄껄.”

감탄하는 사이 다가온 최 씨가 말했다.

“이거 오픈하면 난리 나겠구먼. 하여간 김 이사님 볼수록 참 능력이 대단혀.”

호산마을과 금산마을이 합쳐 설립한 금호 영농 법인에 김서준의 직책은 당연히 대표 이사였다.

김서준은 이사라는 직책이 어색했다. 모두 어르신이기도 했고. 그냥 편하게 대해주는 게 고마웠지만, 최 씨와 김 씨만은 이사라는 직책을 고집했다.

“우리 서준이가 대단하긴 허지.”

반대쪽에 서 있던 임종철이 돌아서며 말했다.

“우리 마을의 복덩이여.”

“이제 우리 마을의 복덩이기도 하고 말이여. 껄껄.”

두 사람이 칭찬 세례를 퍼붓는 사이 다른 주민들은 여기저기 자유롭게 퍼졌다.

누군가는 아래 보이는 경치를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거나 찍어주고,

누군가는 정취를 즐기며 산책을 했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다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다.’

딱 김서준이 원하던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뿌듯했다.

“근데 여기서 나는 수입을 정말 영농조합으로 돌릴 겨?”

최 씨가 김서준에게 물었다.

“이렇게 잘 만들어 놓고 돈도 많이 들었을 텐디, 괜찮겠어? 영농조합은 토종작물로도 충분하잖여.”

호산마을과 금산마을 모두 이제 토종작물 농사에 들어갔다. 엄민호 셰프를 통해 소개받은 지역 유명 식당 몇몇이 벌써 계약을 위해 컨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불안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

굳이 묻지 않아도 시스템 경고로 알 수 있었다.

“당분간만요. 아직 첫 수확도 안 했잖아요. 더군다나 게스트하우스나 체험농원도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 구요.”

농장은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이렇게나 생각하는 이사님이라니. 참 좋은 이사님을 만나서 다행이여.”

“복덩이라니까. 껄껄.”

김서준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시장하시죠?”

“오셨습니까!”

식당 안에 들어서자 신동현이 김서준을 맞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여러 가지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정갈하게 담긴 음식은 보기도 좋고 먹기엔 더 좋아 보였다.

“고생하셨네요.”

“고생이라뇨! 식당 첫 손님인데, 제대로 대접해드려야죠.”

“셰프님은요?”

“안에서 마지막 요리 준비 중이십니다. 드시고계시면 나오실 겁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마을 주민들이 속속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우아하네.”

“아주 고급스럽구먼.”

“요즘은 이런 게 대세여. 이렇게 보기도 좋고 사진찍기도 좋아야 하는 겨!”

김서준과 신동원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이번에 그런 걸 엄청 신경 썼지.’

건물을 인테리어 할 때, 김서준은 인별그램에 푹 빠진 엘린의 기준에 맞춰서 하도록 조언했다. 덕분에 식당 내부는 시골 식당과는 완전히 다른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물씬 났다.

“다들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신동원이 친절하게 마을 주민들을 접객했다. 말투부터 동작 하나하나 세심했다. 과연 사소한 거부터 제대로 배운 거처럼 보였다.

“이거 보슈, 이거 통유리라서 마을 풍경이 다 보이는구먼!”

“캬, 경치 죽이네.”

“이런 풍경이면 밥이랑 김치만 먹어도 되겠어.”

“그럼 자네는 김치랑 밥만 먹어. 난 이거 먹을 테니께!”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간 뭔 말을 못혀.”

마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하나씩 자리에 앉았다. 김서준과 신동원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모두 맛있게 드시고 천천히 드세요. 음식은 많으니까요. 그리고 아주 신랄하게 평가 부탁드립니다!”

신동원이 어르신들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하나둘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동원 씨랑 셰프님은 안 드세요?”

“먼저 평가부터 받고 먹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저거 지겹게 먹었거든요. 앞으로도 먹을 거 같고요.”

장난스럽게 울상을 짓는 신동원을 뒤로 한 채 김서준도 테이블에 앉았다.

“다들 맛있게 드세요.”

“그려. 서준이도 맛있게 먹어.”

“이거 이런 진수성찬은 또 오랜만이여. 서준이 덕에 오늘 호강하네.”

“아들내미한테도 못 받아 본 걸 받아본 호사를 누리네.”

“자네도? 나도 그려?”

어르신들의 농담에 함께 웃으며 김서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살폈다.

‘셰프는 다르구나.’

세심하게 플레이팅 된 음식은 흔히 봤던 음식과는 달랐다. 하나하나 파인다이닝에서나 나올법한 음식들이었다.

‘SNS에서 이목을 끌만한 화려한 음식 위주로 부탁드렸더니 진짜 거의 그림을 그려놓으셨네.’

금산마을은 워낙 외진 곳. 마을의 성공을 위한 최우선 전략은 당연히 바이럴 마케팅, 다시 말해 입소문이 최선이었다.

‘트리가 우연히 떴던 거처럼 말이야.’

그리고 이대로만 하면 분명 식당도 농장도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할 게 확실해 보였다.

‘맛은 어떠려나.’

김서준이 젓가락을 들었다. 처음은 김서준의 시선을 확 사로잡은 물회였다.

‘색이 특이하네. 무슨 맛이려나.’

양념 장에 고추장을 사용한 게 아닌지, 자줏빛 육수와 물회가 함께 담겨있었다. 김서준은 회와 함께 육수를 떠 입으로 가져갔다.

-후룩.

탱글탱글한 회와 함께 감칠맛 터지는 산미가 입안에 소용돌이쳤다. 특유의 가벼우면서도 여운 넘치는 풍미가 있었다.

“대박···.”

김서준이 육성으로 감탄하던 그때였다.

“다행히 입에 맞으시나 보군요.”

“아, 셰프님. 네, 이거 뭐로 만든 거예요? 너무 맛있는데.”

강하진이 안경을 으쓱하며 말했다.

“토종작물들의 채즙과 식초를 이용해 만든 육수입니다.”

“이, 이게 그냥 채즙이라고요?”

“토종작물이 워낙 상태가 좋습니다. 덕분에 약간의 간과 조리만으로 풍미가 엄청 좋아지더군요. 재료가 이 정도로 좋아야만 만들 수 있는 요리입니다.”

이 요리만이 아니었다.

가볍게는 샐러드부터, 비빔밥을 응용한 요리 등, 채소를 적절하게 활용한 요리가 많았다.

“워낙 작물이 좋아 어지간하면 채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메뉴를 짰습니다. 본연의 맛에 많이 의존한 메뉴도 많고요.”

강하진은 고개 숙이며 모두에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가격에 너무나도 좋은 작물을 제공해주신 서준 씨와 여기 마을 어르신 덕분입니다. 부디 맛있게 드셔 주시길 바랍니다.”

어르신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안내창이 나타났다.

[주민들의 안정감이 올라갑니다.]

[터전의 안정도가 증가합니다!]

직접 작물로 만든 요리를 맛보고, 사용한 셰프의 후기를 들으니 토종작물에 대한 확신이 커진 듯 보였다.

‘좋네.’

그때, 호산마을의 촌장 최 씨 할아버지가 말했다.

“사실 우리는 아직 작물 재배도 안 했는데. 실은 이거 다 서준이 꺼 아녀?”

“보급한 거도 서준이니까, 다 서준이 공이네.”

“그렇구먼!”

어르신들은 반쯤 장난삼아 김서준을 비행기를 넘어 우주선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 안에 터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진심이 섞여 있다는 걸 알았기에, 김서준도 마다하지 않고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식사가 끝나가고, 전부 행복해하던 그 무렵.

[마을 사람들의 터전에 대한 애착이 커집니다.]

[터전의 안정도가 올라갑니다.]

-띵!

[세계수의 두 번째 시험에 도전할 권한을 얻었습니다!]

[세계수가 당신을 부릅니다.]

기다렸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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