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65화 (65/139)

65. 호산마을

“김 씨. 이거 진짜 괜찮은 겨? 여기 사유지잖여.”

파란색 등산복을 입은 남자가 뒤에서 말하자 앞서가던 남자가 다그쳤다.

“아유. 우리가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야? 당장 죽게 생겼는데! 제대로 하나만 캐면 대박이여.”

김 씨는 검은색 옷 위로 걸쳐 맨 조끼에서 거칠게 목장갑을 꺼냈다. 양손에 장갑을 낀 남자가 뒤를 보며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최 씨. 방법이 없어. 안 그려? 이러다 다 죽을 겨?”

“...하긴, 그려. 자네 말이 맞지. 방법이 없긴 하지만···.”

체념하듯 말한 최 씨도 손에 장갑을 꼈다. 그리곤 배낭에 걸어놨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김 씨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난주에 산 밑에서 캔 더덕. 그런 거 몇 뿌리만 더 캐면 당장 숨통을 틀 수 있을 겨.”

최 씨는 이 산에 아래에서 발견한 더덕을 떠올렸다. 팔뚝만 한 굵기에 흰색 진액이 뚝뚝 떨어지던 더덕은 몇 년산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특등품이었다.

‘그런 게 3뿌리나 있었지.’

하나하나가 8백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다. 산 아래에 있다면 산속에는 더 많을 건 당연했다.

“어쩌면, 그보다 좋은 게 있을 수도 있지. 천마나, 산도라지, 어쩌면 삼이 있을지도 몰러. 그거면 진짜···. 이제 남은 건 이거 아니면 로또 뿐이여.”

최 씨는 다시 한번 고뇌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 어떻게 든 살 구멍이 있으면 살아야지.”

낙엽을 사부작사부작 밟으며 두 사람은 길이 아닌 음침한 곳으로 산을 뒤적였다.

“이 산이 원래 이랬나?”

“놀랍구먼. 이러니 그런 더덕이 나오지.”

산을 오를수록 두 사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넘치는 생명력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했다. 공기는 같은 지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유난히 상쾌했다.

‘게다가 이 훈훈한 온도는 뭐야? 벌써 여기는 봄이 온 거 같구먼.’

노다지. 이 산은 ‘노다지’라는 단어가 어디보다도 잘 어울리는 산인 게 틀림없었다.

이쯤 되니 사유지라는 게 아쉬우면서도 아까울 정도였다.

“보이는 데로 뭐든 집자고. 다 엄청 돈이 될겨.”

“그려. 이런 산에서 난 작물이면 최소 상등품이지.”

중턱에 들어선 둘의 시선이 바닥에 집중됐다. 그러자 도라지, 마, 더덕, 칡, 하수오 등 각종 작물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뿐일까.

“이 상황버섯 봐. 미쳤구먼.”

“크기 봐. 이게 몇 년산이여? 이거 하나면 족히 3백은 되겠구먼.”

“얼른 집어넣어!”

“저건 영지버섯 아녀?”

“대, 대박이구먼. 이건 뭐 거의 접시가 따로 없네.”

“이거도 얼른 챙기자고!”

희귀한 버섯, 그것도 아주 성장을 잘한 대단한 버섯들이 한 걸음이 멀다 하고 나타났다.

‘왜 이런 산을 수십 년간 내버려 뒀던 거지?’

두 사람의 머리에 그런 의문이 떠오를 정도였다. 어쨌든 그 덕에 지금 이런 노다지를 캐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두 사람이 한참 신이난 그때.

-스슥.

수풀을 스치고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여?”

“짐승인가···?”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선가 계속 가지가 흔들리고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걸린 거 아녀?”

“그랬으면 바로 소리치면서 나타났겠지. 이거 짐승인 거 같은디, 일단 조용히 혀 봐.”

김 씨가 지팡이를 마치 검처럼 뒤집어 쥐었다. 그리곤 경계하듯 주변을 살폈다. 그때였다.

“저, 저, 저, 저기···!”

최씨가 너무 놀라 주저앉으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멀리 짐승의 눈동자가 빛났다.

-저벅. 저벅.

육중한 무게감이 땅의 진동으로 느껴졌다. 낙엽을 바스러트리며 거대한 짐승은 서서히 그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럴 수가···!”

“이건, 고, 고, 고, 곰 아녀···? 마을 뒤에 곰이 살았단 말이여?”

김 씨의 손이 덜덜덜 떨렸다.

소형차만 한 덩치에 검은색 눈동자. 검은 털. 동물원에서 손주 녀석이 귀엽다고 난리 치던 그 반달곰이었다.

‘이렇게 작은 산에 어떻게 저런 짐승이···.’

몸은 떨리고 입은 달싹거리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주가 좋아했던 털북숭이 몸은 위압적으로 느껴졌고, 흑진주 같던 눈은 완벽한 포식자의 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동물원의 그 순한 녀석들과는 완전히 달라.’

동화처럼 죽은 척이라도 해야 할까. 나무 위로 갈까. 도망칠까.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난다. 김 씨는 옆을 돌아봤다.

“...”

최 씨 역시 겨우 오줌을 지리는 것만 면한 채 벌벌 떨 뿐이었다.

“구오···.”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더니 곰의 입에서 침이 주륵 흘러내린다.

그 모습의 최씨가 졸도할 듯 숨을 ‘힉!’하고 들이킨다.

‘죽는다. 아니, 죽었다.’

그런 생각이 두 사람의 머리를 가득 채울 때, 김 씨가 말했다.

“에라이, 씨펄. 이판사판이여. 이래 죽나 저래죽나!”

“왜 그려!”

“곰한테 죽나, 나가서 빚에 깔려 죽나 똑같어. 안 그려?”

****

솟대를 통해 그들의 행색을 보니 불법 채취를 작정하고 들어온 게 확실했다. 너무 괘씸해 바로 혼내주려던 찰나, 솟대를 통해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방법이 없어. 안 그려? 이러다 다 죽을 겨?]

[...하긴, 그려. 자네 말이 맞지...]

[지난주에 산 밑에서 캔 더덕. 그런 거 몇 뿌리만 더 캐면 당장 숨통을 틀 수 있을 겨.]

동물들이 말한 대로 이들은 반대편 마을로부터 입산했다.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더덕 이야기를 들으니 확실해졌다.

‘얼마 전 호산마을에서 800만원이 넘는 더덕을 캤다고 지역 신문에 났었지. 설마 그게 내 산에서 난 더덕이었을 줄이야.’

애초에 농부가 된 지도 얼마 안 된 김서준에게 약초는 더더욱 낯선 영역. 신농의 눈으로 정보를 볼 수 있다지만, 산에 있는 식물을 전부 그 눈으로 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일단 약초는 나중에 천천히 확인해보려 했지. 남이 캐가라고 한 게 아니라.’

더덕이야 산 아래였으면 애매한 위치이기도 하고, 이미 지난 일이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불법으로 입산에 약초를 쓸어가도록 둘 수는 없었다.

‘문제는 반대편 마을이라는 거지.’

인접 마을과 괜히 얼굴 붉히고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인접 마을과는 언제 어떻게 엮일지 모르는 데다, 잘하면 김서준의 두 번째 터전이 될 수도 있는 장소가 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나름에 사연도 있는 모양이었다.

‘적당히 겁줘서 다시는 산에 들어올 생각을 못 하게 해야겠어.’

결단을 내린 김서준은 곧장 반달이에게 명령했다. 그리곤 도리의 눈을 통해 멀리서 지켜보는 데...

“아니, 뭐야?”

반달이와 불법 산행을 시도한 반대편 마을 주민들의 대치 상황에 김서준이 난감해했다.

“왜 도망을 안 가?”

김서준은 도무지 저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반대편 마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

호기심을 넘어 의구심이 들었다. 불법을 저질러 저렇게 처절한 태도라니. 정말 마을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걸까.

[구오?]

“멍?”

리노가 반달이의 의사를 교감으로 전달했다. 김서준이 말했다.

“기다리라고 해. 우리가 가자.”

“멍!”

리노의 대답과 함께 김서준은 반달이가 있는 현장으로 내려갔다.

“....와라!”

“안 오면 우리가 갈 겨!”

주변에 다가가자 버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좀 더 가니 벌벌 떨리는 손으로 호미와 지팡이를 꼭 쥐고 있는 노인들이 보였다. 그 뒤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반달이가 보였다.

“리노.”

“멍.”

리노가 반달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반달이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뭐, 뭐여?”

“곰이 지금 도망가는 겨?”

“우리한테 쪼, 쫄은 거 아녀?”

노인들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반달이를 바라봤다. 그러자 반달이가 아예 자취를 감추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도, 도망가는 구먼!”

“살았다! 살았어!!”

두 사람은 얼싸안고 생존을 축하했다.

‘찬물을 끼얹긴 싫지만...’

“흠흠...”

김서준은 헛기침으로 기척을 내며 두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노인들이 김서준을 바라봤다.

“저, 저건...”

“누, 누구여!”

“이 산의 주인입니다.”

“!!!!”

두 사람이 합주기가 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왜 제 산에 올라오신 거죠?”

둘은 대답 대신 옆에 놓아둔 가방을 바라봤다. 가방에는 방금 캔 상황버섯이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그, 그게 말이여...”

그렇게 말하며 슬금슬금 움직이던 검은 옷의 노인이 가방을 낚아챘다.

“최 씨, 튀어!!!”

그리곤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파란 옷의 노인 역시 그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곰을 보고도 안 도망가셨던 분들이···.’

김서준이 살짝 맥빠지는 상황에 고개를 저었다.

“리노.”

“멍멍!!!”

리노가 위를 바라보며 짖었다. 하울링이 산을 울렸다. 그러자 ‘샤샥!’하는 소리와 함께 일호 가족이 움직였다.

“컹컹!!”

“컹!”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들개를 보자 뛰어 내려가던 사람들이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일호 가족은 순식간에 노인들을 포위했다. 게다가 물러났던 반달이가 다시 나타나자 노인들은 망연자실해 버렸다.

“왜 자꾸 짐승들이···.”

“대체 뭔 놈의 산이 이려!”

그들은 분하다는 듯 소리쳤다. 김서준의 기척이 느껴지자 두 사람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잘했어.”

김서준은 동물들을 칭찬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포위하고 있던 동물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길을 열었다.

그 광경을 본 검은 옷의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 설마 헌터···?”

“네. 맞습니다. 그러니 도망은 이제 포기해주세요.”

그렇게 말한 김서준이 그들을 내려다봤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잠시 김서준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곰곰이 머릿속에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그러다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설마 그분인가?’

충남일보뿐 아니라 농사 관련 언론 매체에서 극찬했던 인물이 있었다.

‘성공한 6차산업의 대표 주자라고 했었는데···. 근데 그런 분이 여기서 이러고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그분 말고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김서준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호산마을 촌장님이세요?”

“그, 그걸 어떻게···.”

촌장이라는 말이 김서준에 입에서 나오자 처음에는 놀라움이, 그다음에는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으로 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1차 생산물로, 2차 가공품을 만들고, 3차 문화산업으로 엮어 새로운 농촌의 미래를 만듭니다! 6차 산업에 도전하세요!]

멋진 슬로건과 함께 정부는 5년전부터 6차 산업을 전국에 보급하려 했다. 그 움직임에 비교적 젊고 패기 넘쳤던 호산마을 촌장은 재빨리 올라탔다.

호산(葫蒜)이라는 마을 이름처럼 마을에 대표 생산물 마늘을 활용했다.

“처음에는 아주 대박이었지. 나라에서 투자금도 주고 지원도 해주지. 거래처는 지자체에서 잡아주는 덕에 몰려들지. 그야말로 대성공이였지.”

규모는 점점 커졌다. 흑마늘, 마늘 칩, 마늘즙 등등 가공품 공장도 만들었다. 6차 산업의 대표주자가 된 덕에 여기저기 박람회나 전람회에 모두 초청받았다.

“영농조합 규모도 커지고 마을 사람들의 투자금도 조금씩 늘어 갔슈.”

사업도 더 여기저기 발을 뻗었다. 호산마을 식당, 카페는 물론 체험형 농장과 펜션도 지었다.

두 사람은 마을 사람 모두가 부자가 되는 날을 꿈꾸며 열심히 영농조합을 이끌고 확장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 했슈...”

전국에 6차 산업이 많이 자리 잡았다. 그러자 지자체와 나라의 지원이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쟁쟁한 경쟁자들이 나타났다. 가능성을 엿본 똑똑한 이들이 대거 뛰어들었다.

“가공품은 물론, 체험농원도 이제는 흔해져 버린 거지. 거기다 지원도 끊기고. 그래도 처음에는 이 일대 학교랑 요양원, 유치원 납품으로 버텼는디...”

충남, 그중에서도 아무런 특색도 없는 금월 시의 인구는 가장 빠르게 줄고 있었다. 학교나 유치원은 물론, 요양원의 수도 급감하는 중이었다.

“그럼 영농조합은 부도가 난 겁니까?”

“막으려고 노력했지. 대출도 많이 했고. 하지만 이제는 진짜...”

“우리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빚더미에 앉기 직전이여.”

김 씨와 최 씨는 눈시울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미안혀.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 싶었네. 정말 미안하네. 신고한다면 죗값은 달게 받겠네...”

김서준은 자리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6차 산업이라···. 영농조합이라···. 잠깐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김서준의 머리에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제게 계획이 있는데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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