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드론 부대
“진짜 천천히 자라긴 한다.”
사비오 밭에 온 김서준이 이제 겨우 발목 높이까지 줄기가 올라온 싹을 보며 말했다.
싹을 틔운 지 한 달이 넘어가는 동안 사비오는 1%가 자랐다. 마정석을 먹이기 시작한 뒤로 자라긴 하는 데 여전히 속도가 느렸다.
“언제쯤 다 자라려나.”
전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탑까지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러다 자신이 먼저 죽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나 죽기 전에는 다 자라야 한다. 제발.”
김서준이 농담 섞인 이야기를 할 때, 하늘에서 노움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 완료 입니다움!”
나뭇가지 2개를 흔들며 소리치는 노움.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들었다.
“소환.”
땅 일대에 황금빛이 일었다. 빛무리가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건 30대의 드론이었다.
“머, 멋집니다움!”
노움이 황금색 드론을 보며 감탄했다.
“꽥!!!”
“““““꽥꽥!!”””””
옆에서 보고 있던 토리들과 도리도 감탄했다.
“멍멍멍!!”
리노 역시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좋아했다. 김서준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상상 이상이야.’‘
실제로는 처음보는 크기의 황금색 드론 부대는 놀라웠다.
하지만, 진짜 놀랄 건 이제부터였다.
“이륙.”
김서준이 짧게 읊조렸다.
-구구구구.
프로펠러 도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20대의 드론들이 천천히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김서준은 그 드론을 V자 형태로 배치했다.
“와···.”
“꽥···.”
“멍멍···.”
황금색 대문자 V가 하늘에 나타나자 모두의 감탄이 터져나왔다. 얼핏 보면 히어로 시그널 같은 게 생각이상이었다.
“도리.”
“꽥!”
고개를 끄덕인 도리가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러자 5마리의 토리들 역시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운데 도리를 필두로 토리들이 황금색 V자를 지키듯 퍼져서 자리를 잡았다.
‘이거면 새들이랑 부딪힐 일은 없겠지.’
케레스의 농기구가 강해진 이후로 다수의 드론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운용은 쉽지 않았다.
일단 물이 문제였다.
한 대일 때는 물을 끊임없이 뿌릴 수 있었는데, 이렇게 대수를 늘리자 물이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많은 드론에 물을 채우려면 저수지까지 보내야 했지.’
이게 두 번째 문제로 이어졌다. 저수지는 멀었다. 아무리 눈으로 마나를 모아도 2km 너머를 볼 수는 없었다.
‘조작은 텔레파시로 한다 쳐도 보이질 않으니 그 먼거리까지 조종할 방법이 없어.’
게다가 첫 시도에서는 날아가는 새와 부딪혀서 드론이 추락하는 일도 있었다. 폭발한 건 아니지만, 밑에 혹시나 누가 있었다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맘 같아선 헬리콥터라도 운영하고 싶지만, 물뿌리는 데 헬리콥터는 물보다는 농약에 적합하지.’
밭에 물 뿌리는 일은 분무기로 물 뿌리듯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땅이 물을 충분히 머금을 정도로 꽤 오래 뿌려야 했다. 헬리콥터가 아무리 크다 해도, 한 대로 밭 전체를 커버하려면 차라리 직접 물뿌리개로 뿌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애초에 아직은 헬리콥터 소환을 못 하기도하고.’
어쨌든 이런 문제로 드론은 포기했었다. 하지만 도리와 토리의 등장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도리! 토리! 새들이 접근 안 하게 잘 막아줘!”
“““꽥!”””
이렇게 토리들과 도리들이 주변에 달려드는 새를 직접 막을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럼 이제 가자!”
드론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김서준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마치 하늘에 있는 것처럼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이게 도리의 시야구나.’
도리의 본질은 정령. 주인인 김서준은 이렇게 도리와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이로써 김서준은 아주 멀리까지 드론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멋집니다움! 도리 공! 토리 공! 잘 다녀오시라움!”
“멍멍멍!!!”
노움과 리노의 인사를 받으며 드론 부대는 저수지로 향했다.
‘이거 신기하네.’
김서준은 VR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아주 높은 대 설치된 가느다란 철근을 걸어 케이크를 주워오는 게임이었다. 분명 바닥을 걸어서 가져오는 게 맞건만, 눈이 속았기 때문인지 삐끗하는 순간 바닥에 떨어지는 기분에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지금이 그와 비슷했다. 도리의 눈을 통해 아래로는 작게 변한 마을의 풍경이 보이고. 앞으로는 푸른 하늘과 손만 뻗으면 잡을 듯한 구름이 보였다.
‘진짜 새가 돼서 나는 거 같잖아?’
좋아하는 노래 제목처럼 정말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가 된 기분. 물 뿌리는 일을 하려다 엉겁결에 마주한 새로운 경험은 또 다른 방식의 힐링이 되었다.
‘좋다.’
그렇게 그 기분을 만끽하고 있으니 금세 저수지가 눈에 보였다.
‘물탱크에 물을 채워야 하니까, 좀 더 간격을 벌리자.’
김서준은 도리의 눈을 통해 드론을 보면서 충분히 간격을 벌린 후, 조심스레 드론을 하강시켰다.
드론의 아래에는 40L의 물을 담을 수 있는 통이 달려있었다. 김서준은 그 통이 잠길 정도로 드론을 조종했다.
-구구구구.
수면에 파형을 일으키며 정지한 드론들이 보였다.
“후···.”
단 한대도 침수되는 일 없이 순조롭게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텔레파시 조정이라 다행이야. 미세한 수평까지 쉽게 조정할 수 있었어.’
물을 다 빨아들인 김서준은 다시 천천히 드론을 위로 띄웠다. 무게가 늘었지만, 드론들은 무리 없이 다시 비상했다. 그리곤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 복귀하기 시작했다.
“저거 서준이 아녀?”
“아까 그게 서준이가 한 건가?”
“그런 거 같은디. 저기 노움이랑 리노랑 있잖여.”
다시 하늘을 나는 기분을 만끽하려는 순간,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서준은 드론에게 왔던 길을 돌아와 바로 밭에 물을 뿌리도록 자동 주행을 명령했다.
[자동 주행 명령이 입력되었습니다.]
안내창을 본 김서준이 도리와의 시야 공유를 풀었다.
“어르신.”
김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슈퍼를 하는 최 씨 할아버지와 임 씨 할머니였다. 최 씨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아예 간이매점을 차렸다. 임 씨 할머니는 키오스크 개발에 빠진 트레스를 대신해 매표소를 봐주고 계셨다.
‘아침 오픈 준비하시나 보네.’
“안녕하세요.”
김서준이 웃으며 인사했다.
“그려그려. 근디 아까 그건 뭐여?”
“그 막 황금색 뭐가 날아가던데. 또 뭘 만든 겨?”
“드론입니다.”
“드론? 그거 애들 장난감 비행기 같은 거 아녀?”
“맞어. 내가 우리 손주 사줬잖여. 근데 내가 사준 거보다 훨씬 크던디···.”
“물 뿌리기 용 대형드론입니다.”
그러자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밭이야 몰라도, 저 산에 만든다는 과수원에는 물 대려면, 어지간한 관개시설로는 힘들 테니 저런 거로 하면 좋겠구먼.”
“과연 대단혀. 다른 사람이었으면 분명 돈 왕창 썼을 텐디.”
두 어르신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이어갔다. 그 사이 ‘구구구’하는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흰 새들 사이에 황금색 드론이라니, 장관이 따로 없구먼.”
“나는 농부로 각성 안 하나.”
“그 나이에 각성해서 무리하다 허리나 안 부러지면 다행이지. 매점에서 물건이나 잘 파슈.”
둘의 대화를 듣던 김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드론을 바라봤다.
드론은 김서준이 명령한 대로 곧장 감자밭으로 향했다. 10대씩 2개 조로 나뉜 드론들은 일렬로 줄을 지었다. 그리고 고도를 낮춘 후, 밭을 따라 움직이며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동차 와이퍼처럼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물을 뿌리는 드론들.
“대단합니다움! 자동으로 막 비를 뿌립니다움!”
“멍멍!”
방방 뛰는 리노와 노움을 보며 어르신들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기 들이 보기도 그려? 할아버지가 보기에도 그러네.”
“할멈이 보기도 그려. 게다가 멋지네. 애들 장난감이랑은 다르구먼.”
“맞습니다움! 대단합니다움!”
“멍!”
김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색이라서 그런가, 더 멋졌다. 거기에 그 위에서는 토리들이 독수리처럼 원을 그리고 있으니 무슨 작전이라도 벌이는 기분이었다.
“이거 보니까 나도 얼른 농사 시작하고 싶구먼. 이렇게 편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여.”
“맞어. 서준아. 그 씨는 어떻게 된 겨?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땅도 다 녹고 있고.”
“그려. 얼른 다시 농사 시작하고 싶은디.”
세계수의 가호를 받은 금산마을의 땅은 전국 어디보다 빠르게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르신의 말대로 이제 종자를 나눠주고 슬슬 마을 전체가 농사를 시작할 차례였다.
‘문제는 종자를 아직 충분히 확보 못 했다는 거지.’
김서준도 임종철도 함께 열심히 노력했지만, 마을 전체에 나눠줄 만큼 수량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수량을 못 맞췄는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오는 일꾼이 제대로 일만 하면, 이번 주 내로 준비가 끝날 테니까요.”
김서준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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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화면을 바라본다. 새하얀 피부에 울긋불긋한 화장은 자연스럽다. 딱 붙은 셔츠는 운동으로 다져진 육감적인 몸매를 잘 표현한다. 그 위로 입은 정장은 섹시하면서도 지적인 분위기를 잘 연출한다.
‘스타킹도 올 나간 데 없이 완벽해. 딱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노을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역시 불안함이 해소되지 않는다. 김서준의 옆에는 대단한 마녀가 붙어있으니 말이다.
“흠···.”
노을이 후드를 뒤집어쓴 채 의자에 앉아있는 왜소한 남자에게 물었다.
“어떤 거 같아?”
“예뻐요.”
“아니, 진짜로. 진짜 솔직하게.”
“예쁘다니까요. 솔직하게.”
박보현이 답답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아니, 도대체 지금 뭐 하는 거지?’
박보현은 잡혔다. 눈을 떴을 때, 그는 구치소였다.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던 그때, 자신을 체포한 노을이 이상한 제안을 했다.
“본인 잡았던 헌터 기억나요? 그 사람이 제안했어요. 자기 밑에서 일하면 벌금을 다 내주겠데요.”
박보현은 나무꾼인지 헌터인지 몰랐던 남자를 떠올렸다.
‘마늘을 성장시키면 길을 열어준다더니, 그게 진짜였어?’
사기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법적인 일에 투입된다던가, 최악의 경우 실험체로 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상황에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더군다나,
“내 말을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냥 한번 믿고 따라가 봐요.”
헌터관리국 충남지부 총괄팀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니, 박보현은 일단은 동의했다.
대답한 이후, 정체불명의 남자는 정말로 벌금을 대납했다. 일단은 쉬라며 호텔도 잡아줬다. 헌터관리국의 감시하에 두고 쉬는 모습을 관찰한 거 빼면 별다른 제약도 없었다.
그 호텔 방에 누워 박보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진짜로 선의를 베푸는 거라고? 도대체 왜···?’
자신은 힘을 통제하지 못해 폭주까지 해버렸다. 더군다나 일면식도 없는 완전한 초면이 아니던가?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지만 완전한 ‘남’이었다.
‘근데 벌금을 물어주고 월급까지 충분히 챙겨주겠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그 마늘 좀 키운 게 뭐라고, 나 따위가 뭐라고···.’
박보현은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은 채,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오늘, 그 은인인지 사기꾼인지 알 수 없는 남자와 만나 이 고민의 결착을 내는 날. 박보현은 복잡한 마음으로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 데이트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벌써 한 시간 째, 노을의 사무실에서 패션쇼를 봐주는 중이었다.
‘게다가 다 오피스룩에 비슷비슷한데, 뭐가 다른 건가?’
박보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내 희소식이 들렸다.
“가죠. 만나러.”
거울에 몇 번 더 자신의 복장과 뒷모습까지 확인한 노을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
“저기 오나 봐요.”
엘린이 저 멀리서 오는 빨간색 외제 차를 보고 말했다. 임종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오는구먼.”
임종철이 옆에서 껄껄거리며 웃었다. 김서준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어르신의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껄껄. 한번 잘 보자고.”
식물 술사. 식물을 이용해 싸우는 헌터라는 점을 임종철은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식물도 엄연한 생물인데, 그 생물을 맘대로 휘두르고 함부로 다뤘을 거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직접 보고 같이 일할지를 결정한다고 하셨지.’
하물며 능력이 충분하더라도 말이다. 김서준은 임종철의 의사를 존중했다.
마침내 차가 그들의 앞에 섰다.
“서준 씨!”
노을이 내리며 환하게 인사했다. 김서준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옆 조수석으로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내렸다.
회색 후드 티를 뒤집어쓴 어두운 표정의 남자. 남자는 김서준과 눈을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멋쩍게 인사하는 박보현. 그 눈빛에는 약간의 경계가 서려 있었다. 김서준은 씽끗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오셨어요. 박보현 씨. 편하게 쉬셨죠?”
“네? 네. 그렇습니다.”
그때 임종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친구가 그 친구인가? 반가워. 나는 임종철이라고 혀.”
“아, 어, 박보현입니다.”
당황한 박보현이 내민 손을 잡았다. 가볍게 손을 흔든 임종철이 말했다.
“앞으로 일하면 나랑 같이하게 될 거여.”
김서준은 내심 생각했다.
'하던대로만 하면 문제없을 겁니다. 박보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