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60화 (60/139)

60. 달걀을 특별하게 즐기는 법.

포션의 효과는 대단했다. 나무인지, 가죽인지 알 수 없었던 피부는 완벽하게 되돌아왔다. 겨우 숨만 붙어있던 녀석이 본래의 모습보다도 더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느껴지는 힘도 강해졌고.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는데···. 저 대책 없는 살의라니.’

트렌트와 드워프 사이 수준 차이는 현격하다. 체력이 회복됐다면, 도망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니, 왜 자신을 살려줬는지에 대한 의심을 품고 사태를 관망할 수도 있다.

트렌트는 지적능력이 있는 몬스터니까.

하지만, 트렌트는 눈에 붉은 안광을 일으키며 당장이라도 무지막지할 줄기를 뽑아낼 기세였다.

“크아아아!!!”

괴성을 지르는 트렌트.

‘이성을 잃었나. 트렌트가 소리를 잘 지르는 유형은 아닌데. 아니면 고통인가.’

하나하나 관찰하며 우노에게 말했다.

“우노, 부탁하지.”

“클클클!”

그렇게 말한 우노가 거대한 망치를 들고 하늘로 도약했다.

“망치 나가신···.”

“우노, 망치는 안 돼.”

“우노, 도스의 연구 대상이잖아. 한 번에 죽이면 곤란하다고. 클클클.”

도스와 트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우노는 어쩔 수 없이 허공에 망치를 내려찍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쿵!’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며 우노의 신형이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뽀얗게 피어오르는 먼지. 그 사이에 우노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이거, 깜빡했군. 클클클. 오랜만에 망치를 휘두르니 신이 나서 말이야. 일단 첫 번째 확실히 더 강해졌네. 모습만 그런 게 아니라고. 클클클.”

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무어라 내용을 적었다.

우노가 트렌트를 보며 물었다.

“자, 그럼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 볼까? 손바닥으로 대화할까? 아니면 남자답게 주먹?”

우노가 양손을 들며 씨익 웃었다. 그 순간, 트렌트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하실 거예요?”

엘린이 설레는 얼굴로 물었다.

노움과 도리, 토리들이 농사를 돕고. 드워프가 건축과 기타 잡일을 돕고. 엘린이 연구를 돕지만, 그 누구도 대체하지 못하는 게 있었다.

‘요리지.’

요리만은 누구도 대체하지 못했다. 누구 하나 요리에 재능있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간이나 맞추면 다행이랄까.

‘엘린이나 트레스마저 요리를 못할 줄은 몰랐지.’

“그냥 생으로 먹는 게 제일 맛있죠.”

“고기는 불에 대충 구워 먹으면 되지! 죽지만 않으면 되지 않겠소? 클클클.”

김서준이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은 대충 이런 반응들이었다.

거기에 이 세계는 뭘 먹고 사는지 소금, 후추 설탕 등 기초 양념 빼고 다른 양념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뭐, 요리가 힘든 건 아니니까. 재밌기도 하고.’

도리에 드워프 삼 형제, 엘린에 리노까지 식구가 많아져 시간은 좀 오래 걸리지만 역시나 불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고마운 이들이었고, 맛있게 먹어주는 걸 보는 일도 꽤 뿌듯했다.

‘근데 진짜, 이런 식이면 식당 해도 되겠다. 셰프님 말처럼.’

김서준은 옆에 잔뜩 쌓인 토리들이 낳은 달걀을 바라봤다. 달걀 2판은 족히 나올 양. 이제 워낙 입이 많고 먹성들이 좋다 보니 대용량 요리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오늘은 달걀로 만찬을 만들어 보려고요.”

“이렇게 많이 써요?”

“다들 한 먹성들 하시잖아요? 안 부족하면 다행이죠.”

김서준의 말에 엘린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엘린 말고 다른 사람들이요.”

“아, 네? 네. 하하···.”

어색하게 웃은 엘린이 앞치마를 둘러맸다. 엘린은 이제 어엿한 이 집의 부주방장이었다.

“엘린 우리 요리 시작 전에 이거 하나 먹어볼래요?”

“생으로요?”

새삼 엘린이 엘프라는 게 느껴진다. 김서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되고요.”

“좋아요!”

엘린은 김서준에게 달걀 하나를 받아들었다. 김서준도 큼직한 녀석으로 한 개를 집었다.

‘맛있어야 할 텐데.’

토리 농법은 분명 잡초나 벌레를 제거하고 천연 비료를 만든다는 데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농법이었다.

여기에 맛 좋은 달걀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지.’

김서준은 프라이팬 하나를 불 위에 올렸다. 그리고 식용유를 넉넉하게 부었다. 슬슬 기름 위로 연기가 올라온다. 김서준은 그 위로 달걀 하나를 톡 깨서 올려놓았다.

‘노른자색이 엄청 진하네? 일부러 뭐라도 먹인 거처럼.’

그 모습이 더 식욕을 자극한다. 일단 미관은 합격이다.

-지글지글.

잘 달궈진 기름 위에서 달걀이 맛있게 튀겨지는 소리가 난다.

‘역시 달걀은 프라이지.’

그 맛있는 소리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와, 맛있겠어요.”

어느새 날달걀 하나를 흡입한 엘린이 김서준의 뒤로 와 감탄을 토해냈다.

“날달걀은 어땠어요?”

“그 달걀 특유의 비린 맛이 거의 없어서 엄청 먹기 좋았어요. 엄청 고소하고.”

비린 맛이 거의 없고 고소하다라. 저보다 더 좋은 달걀의 조건이 있을까. 김서준이 기대감에 미소를 지었다.

“근데 이게 훨씬 맛있어 보이네요. 이게 뭐예요?”

엘린은 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계란 프라이라는 건데, 이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리 중에 하나예요. 금방 하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김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프라이팬을 살짝 기울였다. 기름이 한쪽으로 고이자 흰자가 부풀어 오르며 전면이 튀겨지기 시작했다.

‘이래야 전체적으로 고소한 맛이 나지.’

이렇게 만들면 모양은 울퉁불퉁 투박하지만, 맛만은 최고였다. 그 위로 하얀 소금을 마법의 가루처럼 살살 뿌려준다.

“좀 탄 거 아녜요?”

“아니에요. 이렇게 살짝 갈색빛이 돌아야 맛있어요. 이게 기름에 튀겨지는 거거든요.”

김서준은 작은 접시 하나를 꺼내 기름과 잘 분리해서 계란 프라이를 올렸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고소한 내음이 진동하는 게 완벽했다.

“먹어볼까요?”

“...네!”

반숙된 노른자를 툭 터뜨려 반으로 나눈 후, 김서준은 한입에 달걀을 집어삼켰다. 엘린 역시 김서준을 따라 입을 최대한 벌려 달걀을 입속으로 넣었다.

“와···.”

“음···.”

입안에 퍼지는 고소함, 풍미, 그리고 달걀 특유의 향이 엄청났다. 엘린의 말대로 거부감이 드는 비릿한 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맛있네요···. 이거.”

엘린이 녹을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제대로 실력 발휘 한번 해봐야겠네요.”

-탁탁탁.

김서준은 능숙하게 감자를 채썰기 시작했다. 오늘의 주재료는 감자와 달걀이었다.

‘이거라면 다들 좋아하겠지. 술이랑 먹기도 딱 좋고.’

계란찜. 계란말이. 이런 음식도 좋지만, 오늘은 토리의 환영회이자 드워프의 첫 사냥 날. 좀 더 술과 어울리면서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을 해보기로 했다.

‘거기에 오늘 갓 캔 감자도 좀 쓰고.’

채 썬 감자는 기름을 촥 두른 팬 위로 바로 올라갔다. 그사이 두껍고 기름진 베이컨도 채 썰어 주고, 삼동파와 노랑 당근까지 볶음밥처럼 송송 썰어 팬에 함께 넣고 볶아 준다.

“으흠. 맛있는 냄새~

뒤에서 대접에 달걀을 풀던 엘린이 감탄했다.

“기름에 구워지는 베이컨이랑 달걀 냄새도 좋지만, 감자랑 파가 내는 향도 너무 좋아요! 다들 이 냄새를 맡아봐야 하는 데!”

김서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곧 다 알게 될 겁니다. 이제 곧 농사를 시작할 거니까요. 저 달걀 물 푼 거 주세요!”

김서준의 말에 엘린이 대접을 넘겼다. 반짝거리는 칭찬을 바라는 눈이 김서준을 향한다.

“잘했어요. 수고했어요.”

엘린의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를 뒤로하고 김서준은 대접을 내려놓고 다시 프라이팬을 잡았다.

-휙휙.

“진짜 요리사 같아요!”

웍질과 함께 재료가 춤을 추자 엘린이 또 한 번 감탄했다. 김서준이 괜히 어깨를 으쓱하며 잘 볶은 재료를 달걀 물에 잘 섞었다.

그리고 오븐용 팬을 있는 대로 꺼내, 부어준 다음 치즈를 올린 후, 오븐에 넣는 것으로.

“끝!”

김서준이 기계처럼 척척 움직여 요리를 마무리하자 엘린이 손뼉을 쳤다.

“와, 오븐 너머로 맛있는 냄새가 퍼져 나와요. 너무 맛이 궁금해요!”

“프리타타라는 요리인데 분명 맘에 들 겁니다.”

김서준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기지개를 쭉, 편 엘린이 물었다.

“근데 저거 너무 적지 않아요?”

“나머지는 나가서 하려고요. 장소가 좀 좁아서요.”

“네?”

엘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김서준은 대답 대신 시계를 확인했다.

‘드워프들이 올 시간이네. 바로 시작해야겠다.’

김서준은 썰어둔 감자와 양념을 챙겼다. 엘린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뒤를 따라 남은 계란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집 밖에는 포탈이 있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트리. 낮에는 관광 상품이었다면, 늦은 밤에는 그들만의 휴식처인 트리였기에 이렇게 포털로 연결해두었다.

“요리를 트리 위에서 해요?”

“네. 거기가 넓잖아요.”

그렇게 말한 김서준이 곧장 포털로 들어갔다. 엘린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역시, 여긴 참 좋다니까.”

노을빛 하늘을 마주하는 듯한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도 기분이 좋았다. 그 멋진 풍경을 감사하는 전망대 한가운데. 벽돌과 숯, 그리고 거대한 가마솥 뚜껑 두 개가 있었다.

“저게 뭐예요?”

김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요.”

벽돌로 만든 임시 화구. 그 위 뒤집어 놓은 솥뚜껑을 덮고 있던 또 다른 솥뚜껑을 들어 올렸다. 하얀 김과 함께 김서준이 원한 결과물이 노릇노릇한 자태를 드러냈다.

“와···.”

“이건···.”

가마솥을 가득 채운 채 썬 감자가 마치 전처럼 둥근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 노른자 위까지 하얗게 변한 반숙란들이 쏙쏙 박혀 있다.

“새 둥지 전이라더니, 진짜 새 둥지랑 알 같네요.”

“그러게 말이오!”

“이 냄새. 못 참겠군!”

“서준. 어서 주시오!”

“저도 먹고 싶습니다움!”

“멍멍!!”

“꽥!”

모두가 그 자태에 빠져 난리가 났다. 김서준은 솥뚜껑째로 사람들이 퍼먹기 전에 서둘러 감자전을 잘라 나눠주었다.

“도리야. 앞으로 잘 부탁해. 모두 맛있게 드세요.”

김서준의 말과 함께 사람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리타타라고 했나. 맛좋은 달걀에 서준의 작물이 합쳐지니 엄청나군. 포크를 멈출 수가 없어.”

“이거 안주 먹느라 바빠서 맥주 마실 새가 없구먼. 클클클. 이런 안주는 흔치 않은 데 말이야.”

“과연 서준이야. 클클.”

드워프들이 저마다 감탄을 토해냈다. 엘린과 노움, 리노도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멍멍!!”

“바삭하고 고소하고. 향도 너무 좋아요!”

“감자를 계란 노른자 찍으면 더 맛있다움!”

그러자 도리도 말했다.

“꽥꽥!”

“달걀이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움!”

“근데 도리는 이런 거 먹어도 괜찮나···?”

“꽥꽥!”

“도리는 이미 정령이 되어 토리족이 아니기에 괜찮다고 합니다움!”

“꽥!”

“오히려 버려지는 알을 이렇게 맛있게 요리해줘서 감사하다고 합니다움!”

“다행이네. 맛있게 먹어.”

프리타타도 반응이 좋았지만, 가마솥 전의 인기는 대단했다. 혹시 몰라 썰어둔 감자까지 모두 사용해야 했다.

‘진짜 다들 잘 먹어.’

그렇게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첫 게이트 토벌은 어땠어요?”

맥주 한 잔을 시원하게 원샷한 김서준이 물었다. 그러자 우노가 클클클 웃으며 말했다.

“서준. 오랜만에 몸 제대로 풀었소. 역시 드워프는 종종 몸을 좀 격하게 써줘야 하오. 클클클.”

먹던 감자를 꿀꺽 삼킨 트레스도 말했다.

“서준. 고맙소. 덕분에 트랜트 목재는 전부 구했소. 이제 슬슬 양조장을 만들 준비를 시작해도 되겠소.”

“서준. 거기에 포션도 실험할 수 있어서 좋았소. 우리가 이 세계에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도록 해줘서 다시 한번 고맙소.”

도스 역시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 움직였다. 그러자 엘린이 물었다.

“실험은 어땠어요? 잘 됐어요?”

잔뜩 기대로 부푼 엘린의 얼굴. 김서준 역시 같은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엘린. 그게 말이오.”

도스는 던전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체력 회복 효과는 두말할 거 없이 뛰어났다고 했다. 자신이 본 어떤 물약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치료 효과도 대성공이었소. 너덜너덜했던 껍질이 아무는 수준을 넘어서 새 걸로 바뀐 듯 보였소. 내상은 몰라도 외상에는 이만한 포션 찾기 힘들 꺼요. 문제는 부작용이 있었소.”

“부작용이요?”

엘린의 말에 트레스가 안타깝다는 듯 이야기했다.

“치료 효과를 받은 녀석은 마력과 신체 능력이 강해지기까지 했소. 그런데, 동시에 이성을 잃고 엄청난 공격성을 보이더군. 마치 광전사가 된 거처럼 말이오.”

“광전사라···.”

엘린이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네요.”

“몬스터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유는 아직 모르겠소. 차차 연구해봐야겠지. 흠···.”

활기차던 식사자리가 착 가라앉았다. 어찌 되었든 공들인 연구의 실패. 덤덤한척하려 해도 실망을 감추기는 어려운 듯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서준이 입을 뗐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반대로 뒤집으면 그거 엄청난 거잖아요.”

김서준이 맥주를 부으며 말했다.

“정신을 잃는 일만 해결하면, 회복을 너머서 마신 사람의 힘을 강하게 해주는 포션이 되는 거잖아요? 와, 그럼 진짜 대박 아니에요?”

김서준이 그렇게 말하다 스스로 놀라 되내었다.

“잠깐만···. 아니, 진짜 대박이겠는데요···?”

아무래도 만들어야 할 게 또 생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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