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토리농법
유기 농법에서 닭이나 오리를 활용하는 경우는 흔했다. 닭이나 오리가 해충이나 잡초를 제거해주고, 동시에 달걀, 나아가 고기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도 많지.’
사육에 드는 사료나 노력이 추가로 든다. 초반 투자금도 만만치 않다. 야생동물이 내려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또한, 새들이 익충이나 작물을 해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뉴스나 기사가 그렇게들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다들 농약이나 비료를 선호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지.’
하지만, 도리와 토리는 어떠한가?
“꽥꽥!”
“도리와 토리족은 반은 정령이자 영물입니다움! 수명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움!”
“괙꽥꽥!”
“도리도 농사의 정령인데 해충, 익충 구분은 기본이라고 합니다움!”
“꽥꽥!”
“개체 수는 도리가 일정하게 조절하겠다고 합니다움!”
“꽥?”
“야생동물 말입니까움?”
“아, 아니다.”
이건 물어볼 필요도 없겠네. 반달곰의 뺨을 두들겨 팬 도리를 금수산에 그 어떤 맹수가 건드리겠는가?
‘완벽하다. 진짜.’
이보다 완벽한 유기농법 대상 조류가 있을까. 게다가 저 멋진 생김새. 떼로 날아다니는 화려한 모습.
‘마을의 마스코트이자 상징이 될 수도 있겠네.’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도리에게 제 생각을 말했다.
“마을 전체의 농사를 도울 수 있을 정도로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을까?”
“꽥꽥!”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할게.”
****
[주민들의 의심이 커집니다.]
[터전의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주민들의 마음에 기대가 커집니다.]
[터전의 안정성이 올라갑니다.]
김서준의 영지이자 터전. 금산마을의 규모는 10가구 내외로 아주 작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곧장 안정성에 영향을 끼쳤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설레면서도 불안하다던가. 토종작물 농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상황이 되자 김서준은 하루에도 수십번 저 메시지와 그 반대 메시지를 봐야 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처음 해보는 농사를 앞둔 당연한 과정이니까.’
다만,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서는 조금 조바심이 생겼다. 서서히 이슈가 시들면서 방문객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금산마을도, 금천면도 워낙 아무것도 없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관광도시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어르신들 반응을 보면 그냥 두고 보기는 좀 아쉬워.’
마을에 사람이 많이 오가니 마을이 전체적으로 활기찼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서준의 마음에도 조바심이 일었다.
‘농사도 농사지만, 역시 농원도 잘 조성해서 관광 쪽도 신경 써야겠어. 잘만 되면 마을 전체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거야.’
이렇게 할 일을 정리하니 더더욱 조바심이 생겼다. 김서준은 얼마나 바쁜지를 실감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자마자 향한 곳은 역시 밭이었다.
“모두 힘내자움! 화이팅이다움!”
“““움!!!”””
산책을 마친 노움은 곧장 밭에서 움들과 감자를 재배하고 있었다.
김서준이 상자에 담긴 감자하나를 집어 들었다. 흠집 하나 없는 말끔한 표면에 적당히 먹기 좋은 크기. 역시나 이번 감자도 제대로였다.
“신농님! 오셨습니까움?”
“이번 감자도 잘 나왔다. 고생했어. 노움.”
“헤헤, 아닙니다움! 다 신농님 덕분입니다움!”
“아냐. 이번 농사는 다 노움이 지었잖아.”
씨만 뿌리면 기존의 밭과 달리 사과밭을 조성하는 데는 인간의 기술이 많이 들어갔다. 덕분에 김서준은 직접 사과 농사를 진두지휘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밭농사는 완전히 노움에게 맡겼지···.’
김서준이 한 거라곤, 노움이 필요하다고 할 때, 물을 준 게 전부.
하지면 역시 노움이었다. 농사에서만은 절대 실망하게 하는 법이 없다. 완벽한 감자였다.
“사과밭 조성 마무리하는 대로 특식으로 한번 준비할게.”
“감사합니다움!”
노움이 활짝 웃었다. 김서준은 그런 노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토리족은 어때?”
김서준이 뒤뚱거리며 밭을 돌아다니는 토리 3마리를 보며 말했다.
“완벽합니다움! 역시 다들 농사에는 일가견이 있습니다움!”
노움은 예전의 주인을 기억하지 못했다. 전대의 신농과 했던 일도 대부분 기억하지 못했다. 노움이 말해주는 정보는 인공지능 사전이 정보를 주는 일과 비슷했다.
‘근데 이번에는 좀 달랐어.’
노움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다. 도리를 보는 순간 이전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도리가 어땠는지, 토리들이 어땠는지, 그들과 어떤 농사를 지었는지 등.
‘여전히 전대 신농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지만, 이렇게 하나씩 떠오르다 보면 알 수 있게 될까. 이전의 신농이나 혹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김서준은 자그마한 기대를 품었다. 그리곤 일전에 토리족이 얼마나 잡초를 잘 쪼아 먹고 있는지를 찬양하는 노움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럼 수고하고! 이따가 납품시간에 다시 내려올게!”
“알겠습니다움!”
노움의 경례를 받으며 김서준은 곧장 사과밭으로 향했다. 사과밭 역시 분주했다. 아직은 흙빛인 밭에 하얀 깃털을 가진 새들이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었다.
“꽥!”
도리가 소리쳤다. 잡초를 열심히 뜯던 도리와 토리들이 멈춰섰다. 그러자 도리가 양 날개를 살짝 포개 고개를 숙였다.
“““꽥꽥!!!”””
토리들도 도리를 따라 인사했다.
‘맨날 저 포권 자세를 취하네.’
김서준도 포권을 취하고 인사했다. 그러자 다시 일사불란하게 토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기하네. 정령들은 원래 저렇게 지휘관 기질이 다분한가.’
토리들은 조를 나눠 정해진 구역을 담당했다. 구역이 일찍 끝나면 곧장 옆 조를 도우러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아주 철저하고 질서가 잡혀 있었다.
노움도 그렇고, 도리도 그렇고. 다들 군대를 이끌었다면 정말 잘 이끌었을 성싶었다.
“꽥꽥!”
토리들의 개체 수는 빠르게 늘고 있었다. 첫날 20여 마리였는데, 3일 만에 100마리에 다 달았다.
‘이제 슬슬 산양삼밭에도 좀 보내줘도 되겠다.’
산양삼은 아직 약한 1 ~ 2년 차까지는 잡초 제거가 필요했다. 이미 성체인 잡초에게 성장이 느린 삼이 이겨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지 않으니까, 한 20마리 정도 보내주면 되겠지.’
김서준은 머리로 계산하고 있을 때였다.
“서준 씨.”
김서준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파란색 레깅스에 분홍색 바람막이를 걸친 엘린이 보였다.
“엘린. 이 시간에 여기 무슨 일이예요?”
“서준 씨 심심할까 봐요. 도리 님도 안녕하세요.”
“꽥!”
엘린의 말에 도리가 대답했다. 엘린은 한참 바빴다. 미트루트로 만드는 포션 연구가 이제 곧 성과를 낼 거 같다고 했다.
‘요즘은 연구실에서 잔 날도 허다했지.’
워낙에 타고난 미모와 피부가 빼어나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분명 저 아래 엄청난 피로가 쌓여있을 터.
“괜찮아요. 엘린. 피곤할 텐데 좀 쉬어요.”
“에이. 농사 혼자 지으려면 심심하잖아요. 그리고 오늘은 임상시험을 하는 날이니까, 여유도 있고요.”
“임상시험이요?”
“드워프들이 포션을 쓰고 올 테니까요.”
엘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드워프 삼 형제는 게이트를 토벌하러 갔다. 높은 등급은 아니고 C등급의 게이트였다.
일족 최강의 전사라 자부하는 드워프들이 약하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대뜸 B나 A등급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3명이서 B급 게이트를 박살 냈다고 하면 이목을 엄청 끌겠지.’
C급 게이트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활동반경을 키워가는 게 좋았다.
‘그편이 나중에 드워프들 신분 위장하기도 편할 거고.’
게이트의 몬스터는 드워프들이 원했던 트랜트로 낙찰받았다.
‘원래라면 다들 포션 쓸 일이 없었겠지만···.’
오늘은 엘린과 도스가 함께 만든 포션을 시험해볼 날. 세 사람은 억지로라도 포션을 한 병씩 사용해보기로 했다.
‘잘 만 된다면 대한민국 헌터의 판도가 바뀌는 발견이 될지도 모르겠어.’
김서준은 부디 실험이 성공하길 바랐다.
“자, 그럼 뭐부터 도와줄까요?”
“정말 쉬셔도 되는 데···.”
김서준은 결국 엘린의 고집에 못 이겨 바구니 하나를 꺼냈다.
“그러면 이걸로 토리들이 낳은 달걀 좀 챙겨주세요.”
도리는 토리를 통제해서 알은 항상 이 사과밭 안에 낳기로 했다. 한 장소를 딱 정했다면 더욱 편했겠지만, 도리가 반대했다.
‘어느 정도의 자유를 줘야 더 좋은 알이 나온다고 했지?’
대신 유정란의 경우만 구분할 수 있게 임시 둥지를 지어 놓았다. 조만간 토리를 위한 닭장도 만들어야 할듯싶었다.
“알겠어요!”
엘린은 웃으며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그리곤 돌아다니며 하나씩 달걀을 줍기 시작했다.
“나도 시작해볼까.”
김서준은 케레스의 농기구를 사용했다. 황금 날을 가진 작은 커터칼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묘목 상자를 들고 잘 심어진 대목의 옆으로 다가갔다.
“하루 지났는데도 꽤 많이 자랐네.”
과연 신농의 땅이랄까. 땅으로부터 약 20cm 부근 위로 잘려있던 대목에서 벌써 새 줄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저렇게 며칠만 두면 금세 나무가 회복될 성싶었다.
“그럼 안 되지. 오늘은 접목을 다 끝내야겠다.”
김서준은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리곤 상자에서 묘목을 하나 꺼내 접목을 시작했다. 작업이 반복되며 요령이 생긴 김서준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동시에,
-딱. 탁. 치익. 측측. 찍.
자르고. 가르고. 테이프를 떼어 두르고, 마무리까지. 간결한 작업에서 나는 약간의 소음이 마치 ASMR처럼 김서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좋네.’
김서준은 그 정취에 흠뻑 빠진 채 잠시 허리를 폈다. 우두둑 소리가 나며 시원한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후···.”
눈앞으로는 경사진 사과밭 너머 마을의 풍경이 보인다. 푸른 하늘에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도 예쁘다.
‘역시 농사는 여유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다시 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일하면서도 여유와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이토록 자신의 특기와 취향이 잘 맞는 일을 만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생각에 김서준의 마음에 새삼 감사함이 떠올랐다. 입가에는 어느새 자연스레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김서준은 그 감사함과 애정을 담아 사과 나무에게 속으로 말했다.
‘잘 자라라. 나무들아. 맛있는 열매를 맺어주렴’
김서준은 그렇게 하나하나 애정 어린 마음을 담아 접목을 이어갔다.
****
“도스, 트레스. 이 세계 트렌트도 별반 다를 게 없군. 시시하군. 클클클.”
“우노. 어차피 필요한 재료를 얻으러 온 거잖아.”
“우노. 도스 말이 맞아. 괜히 힘자랑하지 말고 최대한 시체 손상 없이 처리해.”
트레스가 아공간 인벤토리에 사체를 집어넣으며 질책했다.
“알겠어. 너무 잔소리들 하지 말라고. 클클.”
민망한 얼굴로 웃은 우노는 도끼질로 묵사발을 내놓은 트렌트를 옆으로 후다닥 치우며 대답했다. 그렇게 튕겨 나가는 트렌트가 ‘끄륵’하는 소리를 냈다.
“음? 저 트렌트 아직 살았나 보군! 엘리트급이었나?”
우노가 놀라 말했다. 그러자 도스가 트렌트를 쓱 보더니 말했다.
“엘리트급이잖아! 저 나무 머리 위로 솟은 꽃 안 보여? 귀한 엘리트급 트렌트의 시체가 난도질이 나버렸군.”
트레스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그때였다. 도스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아냐 아냐. 잘 됐어. 마침 딱 좋은 실험체잖아?”
“딱 좋다고?”
도스가 품 안에서 붉은 액체가 들은 약병을 꺼냈다.
“꼭 우리가 써볼 필요는 없잖아?”
“클클. 그 말도 맞는군. 거기에 잘 치료되면 좋은 재료도 얻을 수 있고.”
도스가 쓰러져 있는 트렌트의 머리 위로 붉은 액체를 뿌렸다. 그러자 초록빛이 트렌트를 휘감았다.
“오오···.”
“도스, 과연 잘 만들었나 보군.”
“엘린의 공이 컸지. 거기에 서준이 키운 미트루트 질이 장난이 아니더군. 안에 아주 영양분이 꽉 차서 훨씬 양질의 포션을 제작할 수 있었지.”
세 사람은 만족하며 엘리트 트렌트를 바라봤다. 트렌트는 점차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치료와 체력 회복을 동시하겠다는 목표도 성공인가.”
“이거, 오늘 가면 축하파티를 하자고 해야겠어.”
모두가 축하하는 사이, 도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이, 이건···.”
도스의 말에 모두가 트렌트를 바라봤다. 트렌트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크르르···.”
낮게 그르렁거리는 트렌트. 전의로 불타는 녀석의 모습은 드워프의 막강한 위세에 눌려있던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젠장, 부작용이군!”
도스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트렌트가 손에서 줄기를 뻗었다. 도스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노, 부탁하지.”
“클클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