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반전.
“멍!”
솜뭉치 리노. 귀여운 리노. 사랑스러운 리노 등등. 많은 귀엽고 소중한 호칭이 어울리는 리노지만 일만은 철저했다.
그리고 리노는 지금 화가 났다.
“구오···.”
“컹···.”
산 어디 간에 들어왔다는 침입자 때문이었다. 반달이의 촉이 느꼈다고 했지 않았나? 그렇다면 찾았어야 했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확실하게 확신할 필요가 있었다.
“멍!! 멍!!”
이도 저도 아닌 내용으로 주인님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구오···.”
“컹···.”
반달이와 일호 가족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멍멍!”
최선을 다했다는 건 알고 있다.
“멍멍멍!!!”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게 부족한 결과의 이유가 되어주지는 않는다.
“멍멍!!!”
리노는 한 번 더 산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라도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와! 리노는 그렇게 동물들을 다그쳤다.
한편, 그 시간.
김서준과 산양삼 협회 직원들은 산양삼밭에 도착했다.
“정말 좋은 산이네요. 겨울이라 낙엽이 가득 떨어져 있는데도, 뭔가 봄 같이 생기가 넘쳐요. 어쩐지 온몸이 정화되는 기분이랄까요.”
“그러게. 충남의 산이란 산은 다 다녀봤지만, 이렇게 산림욕이라는 게 실감 나는 산은 처음이군요.”
“혹시 이것도 농부의 능력이에요?”
세계수의 가호 덕이니까. 능력의 일종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네. 비슷합니다.”
“대단하네요. 생산직은 장인급이 아니면 다 별로라고 하던데······. 이런 데서 산양삼을 키우면 정말 잘 자라겠어요. 안 그래요. 연구원님?”
조수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송기호는 밭을 유심히 살폈다.
‘내가 또 오해한 건가?’
송기호가 김서준에게 물었다.
“입지 선정은 직접 하신 겁니까?”
“네. 비교적 음지에 온도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곳으로 결정했습니다. 제 능력의 영향으로 한파에도 땅 내부 온도는 10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요. 통풍이 좀 아쉬워서 주변 나무 위치도 조금 변경했습니다.”
“배수는요?”
“경사도 좋고 흙이 워낙 좋아서 걱정 없습니다. 배수로를 따로 만들거나 설비를 따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하라고 하셔서요.”
“저 이 흙 맛 좀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송기호는 흙에 입을 댔다. 흙의 맛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김서준의 표정이 중요했다. 아무런 반응도 없다.
‘확실해. 흙에 아무것도 섞지 않았나 보군.’
산양삼 평가 기준을 벗어난 약품이나 비료, 농약 등을 썼다면 이때 내심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김서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뿐일까.
“종자는 뭘 쓰셨습니까?”
“‘금원’을 썼습니다. 충청남도에서 출원한 종자니 이 땅에 가장 잘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가 충청남도니까요.”
종자선택도 완벽하고. 마지막으로···.
“이 땅은···. 아까의 밭과는 다른 거 같군요. 그 밭처럼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신 겁니까?”
“네. 지금 이 산과 환경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른 산에 비해 영양분은 훌륭하지만, 병충해나 날씨에도 견뎌야 하고 주변 식물과도 무던히 경쟁할 수 있게 환경을 구성했습니다. 최대한 야생산삼과 비슷하게요. 아마도 살아남으려면 무던히 뿌리를 뻗어야 할 겁니다.”
김서준이 농담 어린 어조로 말했다. 송기호는 반쯤 감격한 얼굴로 김서준을 바라봤다.
‘설마?’
조수가 놀랐다.
조수는 화학 공학의 전공자이자, 완벽한 연구원이었다. 시료 분석은 할 줄 알아도 산양삼에 대해서는 수석 연구원에게 귀동냥한 게 전부였다.
그런 그녀도 이 땅이 산양삼 부지로 최고라는 걸, 그리고 이 농부가 산양삼에 진심이라는 걸 아는 방법이 있었으니.
‘저 살짝 붉어진 눈과 표정은···. 여기가 그 정도라고?’
김서준 역시 살짝 당황했다.
‘저렇게 감탄할 일인가?’
제대로 공부하고 기본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능력에 매몰되지 않고 산양삼에 본질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다들 이렇게 하는 게 아닌 건가?’
의아해하는 김서준에게 송기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흠잡을 데가 없군요. 제가 크게 오해했습니다. 능력에 의존해서 대충 농사를 지으실 줄 알았는데···. 이토록 산양삼에 본질에 충실하게 준비하셨을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제야 아까부터 송기호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던 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례하게 굴거나 대놓고 무시를 한 것도 아니건만, 사과까지 하다니.
‘착한 사람이네. 아니 그만큼 산양삼에 진심인 건가.’
김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괜찮습니다.”
“파종은 당연히 종자 파종(씨를 직접 뿌리는 방식)으로 하시겠죠?”
산양삼은 종묘 식재(싹을 틔워서 옮겨 심는 방법)로도 재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특상품에 제대로 된 산양삼을 얻을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조건에 제대로 준비했는데. 당연히 최고로 키워내야지.’
김서준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요즘 키우기 어렵다고 다들 이런저런 꼼수를 쓰는 데 오랜만에 특등급의 제대로 된 산양삼밭을 보니 감격스럽군요. 꼭 잘 키워주세요.”
송기호는 그렇게 김서준의 양손을 꼭 잡았다.
****
현장 답사를 마친 둘은 김서준이 키우려고 사둔 종자와 흙을 담아갔다. 마지막으로 약품 검사만 마치면 재배 적합성 검사는 끝이었다. 그 후에는 산양삼을 재배할 수 있게 된다.
‘결과는 30일 걸린다고 했으니까, 그 사이에 사과나무밭을 마무리해둬야지.’
김서준은 아까 두 사람의 표정을 다시 떠올렸다. 감동한 듯한 모습을 생각하니 묘하게 짜릿했다.
‘그렇게 잘했나?’
대회에서 심사위원이 감동하는 걸 보면 기분이 이런 기분이려나. 김서준은 괜히 들떠서 저녁 준비를 위해 집으로 내려가려던 그때였다.
“멍!”
“리노?”
한참 순찰을 돌고 있어야 할 리노가 김서준을 찾아왔다.
“오늘은 일찍 내려온 거야?”
김서준이 리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리노의 표정이 영 기쁘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리노답지 않은 복잡한 얼굴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멍···.”
리노가 기운 빠진 목소리와 함께 ‘교감’을 통해 사념을 전달했다. 누군가 손으로 눌러 기울어뜨린 풀들. 부러진 나뭇가지. 밟힌 잡초들.
“이건? 설마 산에 누가 들어 온 거야?”
“멍···.”
“모르겠다고?”
“멍멍···.”
온 숲을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이 전부였다고 한다고. 그래서 리노 표정이 이런 건가. 결과는 아쉽지만, 저 책임감이 기특하다.
“괜찮아.”
애당초 김서준이 리노에게 기대한 건 침입자에 대한 완벽한 경계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수색, 그리고 짐승들이 밭으로 들어오는 걸 막는 게 주요 임무였다.
그리고 리노와 반달이, 일호 가족은 이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온 산을 뒤진 거잖아. 리노는 할 만큼 했어. 이리 와.”
리노가 쭈뼛쭈뼛 다가오자 김서준이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곤 부드러운 털에 얼굴을 비볐다.
“잘 했어.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멍!”
리노는 의외로 기뻐하지 않았다. 대신 걱정의 감정이 흘러들어왔다.
‘진짜 리노도 노움도 일에서는 전문정신이 투철하다니까.’
자신이 놓친 침입자의 존재를 걱정하는 거였다. 김서준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거 아닐 거야. 아니면 나갔거나.”
트레스는 솟대를 개조하며 여러 가지 기능을 집어넣었다. 그중 하나가 사람을 포착하는 반응이었다.
‘인간 특유의 마나 파장을 감지하는 방식이라고 했지.’
이 산에 핵심인 사과나무밭, 산양삼, 세계수의 언덕, 그리고 산의 반대편 인접 마을로부터의 진입로 등에는 모두 솟대가 존재했다.
‘어제도 오늘도 아무 반응도 없었어. 침입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지. 아니면 들어왔다가 그냥 나갔거나.’
세계수의 가호가 내려졌기에 게이트가 몰래 열렸을 리도 없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면, 이계의 존재가 갑자기 넘어왔다는 상황뿐이었다.
‘이것만은 알아채기 어렵지. 언제 어디서 나타나는지 예상도 힘들고 감지도 안 되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가능성이 희박했다. 리노의 후각과 청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 그런 동물들이 수차례 산을 돌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 정도면 먼저 찾긴 어려운 녀석이라고 봐야겠지.’
“그러니까 혹시 못 찾더라도 리노 잘못은 아니야. 걱정하지 마.”
김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리노는 그 맑은 눈망울에 살짝 울먹인 채 김서준의 뺨을 핥았다. 김서준은 한동안 그 애교를 받아주며 생각했다.
‘하지만, 넋 놓고 있을 순 없지.’
경계 태세는 올려놓자.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그런데 그때, 솟대에서 알림이 울렸다.
****
“흠···.”
[충남총괄 팀장, 노을.]
어울리지 않는 직함이 적힌 명패가 놓인 책상 뒤, 의자가 팽그르르 돌아간다. 그 위에 앉은 세미 정장을 입은 어여쁜 여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잡아야 할 텐데···.”
사방에 요원을 뿌려 겨우 꼬리를 잡고. 그러면 수배범은 재빨리 눈치채고 도망치고. 다시 사방에 요원을 뿌리고. 도망치고.
눈앞에서 놓친 적도 수차례.
그렇게 벌써 한 달째였다. 금세 끝나리라 기대했던 사건이 이렇게 길어졌다.
‘하지만 이제 끝이야.’
금천면 구석에 위치한 작은 마을. 산천마을에서 다시 한번 꼬리를 잡았다. 관리국은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조였다.
수차례의 실패 끝에 얻은 교훈을 관리국은 절대 무시하지 않았다. 인력도 아끼지 않았다.
1팀뿐 아니라 2팀과 3팀까지 지원을 보냈다.
‘탐지 계 인력까지 같이 보냈으니까 절대 놓치지 않겠지.’
이만하면 마나 먹은 풀 제거 작전 이후, 최대 인력이 투입된 작전이었다. 실패는 절대 용납되지 않았다.
-따르릉.
책상 위에 있는 하얀색 전화기가 울렸다. 노을은 서둘러 수화기를 들었다.
“네. 노을입니다.”
[1팀장입니다.]
노을은 조심스레 물었다.
“...잡았어요?”
[죄송합니다. 놓쳤습니다.]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바로 힘을 억제하지 못했다면 수화기가 가루가 됐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떻게 그걸 놓쳐요!”
[...죄송합니다. 산으로 들어가는 건 확인 했는데, 또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투명인간이 되는 능력이라도 얻은 건지···.]
“탐지 계 헌터들은 뭐 하는 데요?”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만.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노을이 깊게 한숨을 뱉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눈앞에서 사라지다니. 더군다나 탐지계열 헌터가 무용지물이라니 말이다.
[투명계열이 아니라, 공간이동 계열 스킬을 가졌을 가능성을 다시 고려해야 할 거 같습니다.]
1팀장은 무능한 직원은 아니었다. 그가 못했다면 자신이 갔어도 실패했을 터. 더 이상의 화는 분풀이에 불과했다.
노을은 애써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서둘러 대처 방법에 대해 지시했다.
“일단 주변 수색 더 해보세요. 공간이동 능력자일 가능성은 희박하잖아요. 아니면 같은 공간이동이라도 페널티나 조건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거라도 찾아야 해요.”
[알겠습니다.]
“사라진 방향으로 수색 인원도 파견하시고요.”
그러자 1팀장이 말했다.
[총괄팀장님. 마침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수배범이 사라진 곳이 금수산이라는 곳인데 여기가 사유지입니다.]
“사유지요?”
[네, 일단 수색은 시작하겠지만, 수사 협조를 따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이 너머에 마을이 있는데, 거기로 수배범이 공간이동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서 알아서 할게요···. 잠깐만 반대쪽 마을이라면!”
노을은 서둘러 보드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확인했다. 반대편 마을의 이름은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 금산마을이었다.
‘서준 씨!’
노을이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일단 수색 바로 시작해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노을은 대답도 듣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서둘러 외투와 휴대폰을 챙겼다. 그리곤 곧장 김서준에게 연락해 소리쳤다.
“....지금 그 마을에 수배범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