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54화 (54/139)

54. 오해

“하, 귀찮아. 날도 추워죽겠는데···.”

달리는 차 안. 조수석에 앉은 충남 산양삼 협회 소속 연구원 송기호는 심드렁한 모습이었다.

“무슨 1월에 현장조사를 요청하고 앉았데?”

산양삼의 파종 시기는 보통 11월. 게다가 지금은 한파까지 닥친 상황. 이 시기에 현장조사를 요청하는 경우는 두 부류였다.

‘산양삼인 척 허가받고 사기 치는 놈팽이들. 아니면 어디서 귀동냥 좀 한 어설픈 돈 많은 귀농인.’

둘 다 딱 싫은 부류들. 한쪽은 쓰레기고, 한쪽은 부러워서 싫었다.

‘게다가 그런 녀석들이 제대로 산양삼을 키울 리도 없고 말이야.’

운전하던 부하 직원이자 조수인 김수연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하하, 연구원님 그냥 관광한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 요즘 꽤 잘나가는 마을이에요.”

“잘 나가? 금산마을이? 난 완전 처음 듣는 이름인데?”

“SNS에서 트리 못 보셨어요? 거기 완전 큰 트리를 지었는데, 엄청 멋지다고 난리에요.”

SNS라니. 이 나이쯤 되면 그런 애들이나 하는 앱은 보지도 않는다. 너튜브면 몰라도. 남 잘사는 소식이 뭐 그리 궁금하겠는가?

“몰라. 처음 들었는데? 트리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엄청나데요. 거의 무슨 건물만 하다던데.”

조수는 기대 어린 눈으로 대답하곤 덧붙였다.

“그리고 이렇게 일찍부터 준비하는 거면 제대로 해보려는 거 아닐까요?”

“제대로는 무슨. 이번에도 겨우 기준치만 딱 넘겨서 법적으로 허용되는 약재에 설비 다 해놓고 키우겠지. 한두 번 속냐.”

송기호가 혀를 끌끌 찼다. 사실이 그러했다.

중국산 장뇌삼이 수입되면서 한국의 산양삼은 변했다.

‘자연의 치열함 속에서 맺는 결실도, 느림의 미학도 사라졌지.’

그저 법망을 피해 어떻게 하면 생산량을 높일까를 고민한 흔적만 여실히 눈에 보일 뿐이었다.

오죽하면 너튜브에 그런 팁이 버젓이 돌아다닐까. 그러다 보니 앞서 말한 부류들이 우후죽순 늘고 있었다.

“게다가 마을에 임종철 명인이 산다던데요?”

“임종철 명인?”

“농사 명인이요. 못 들어보셨어요?”

“그 양반 산양삼 키워봤데?”

“어···. 그건 아닌 거 같던데···.”

“그럼 내가 알 필요가 있나?”

조수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구원님은 산양삼의 진심이 좀 과하시다니까···.’

그 진심이 좋아서 저 사람이 좋은 거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같은 마을 산다고 다 알고 지내나. 나는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라.”

“하긴...”

“됐고, 얼른 다녀오자. 도착하면 깨워라.”

송기호는 그대로 의자 시트를 뒤로 젖혔다.

****

“....돈을 빌려달라고요?”

김서준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자잠시 넋이 나갔다. 아침 일찍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드워프가 찾아왔다.

그러더니 대뜸 돈을 빌려 달라 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1500만 원이나요? 왜요?”

“크리스마스트리 때문이오.”

트레스가 안경 안으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이 세계에는 아주 좋은 기계 장치가 많소. 그중에 키오스크라는 게 있더군! 아주 훌륭하오. 이게 있다면 더는 거기 앉아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소! 그걸 우리 방식대로 만들어 보겠소!”

그런 거였나. 김서준은 트레스가 그 일을 좋아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

‘무인으로 시설을 돌릴 방법을 생각했구나. 동시에 새로운 장치 개발도.’

과연 트레스다웠다.

‘하긴, 이상하긴 했어. 매일 공방에 있던 트레스가 왜 매일 거기 나가 있나 했는데.’

사업을 편하게 굴리면서도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무엇이든, 김서준으로서는 환영이었다.

트리는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인기가 많아서 항상 신경을 써줘야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밤에 몰래 트리에 올라간 사람들을 잡았지.’

김서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사실 그냥 줘도 상관없지만, 드워프의 성격상 그러면 받지 않을 게 뻔했다. 트레스는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리고 트레스 지난번에 양조장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말했던 재료 있잖아요. 그게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몬스터의 사체는 사냥한 길드에 관련된 VIP나 장인에게 먼저 납품한다. 그 후 남는 재료가 시중으로 나온다.

그런데 드워프가 요청한 재료들은 너무 고급재료였다.

‘시중에서는 구할 수가 없네.’

전소민이 발 벗고 나서고 있긴 하지만, 딱 맞는 몬스터가 있는 게이트를 낙찰받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서울은 경쟁이 치열하니까.’

충남 쪽에는 드워프가 원했던 트렌트나 샐러멘더 던전이 좀 보이긴 했지만, 연결된 길드가 없었다.

“사냥이 어려워 그런 거라면 우리가 직접 가겠소!”

드워프의 전투력은 분명 대단할 터였다. 근력부터가 어지간한 A급 헌터 이상이지 않았던가. 맘 같아선 주변 게이트에 드워프를 직접 보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신원이 문제야. 드워프라고 따로 등록할 수도 없고.’

길드를 만드는 거라면 김서준의 이름으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길드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신원 등록을 해야 했다.

‘맘 같아선 노르웨이라고 쓰고 싶지만···.’

단순한 거짓말은 몰라도 범죄를 저지를 수는 없었다.

‘노을에 따로 잘 부탁하면 해 주려나···.’

헌터관리국 충남 총괄팀장 정도의 직함이라면 이 정도는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얼마 전에 했던 행동이 후회된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느라 김서준은 노을의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렇게 멋진 트리를 만들어놓고 제게는 어떻게 연락 한 통 없으셨어요? 서준 씨, 너무 해요.]

SNS에서 김서준의 트리를 본 노을은 잔뜩 화가 나 보였다.

‘미리 잘 챙겼어야 했는데···.’

너무 필요할 때만 찾아버렸다. 인간관계에서 그게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지, 알고 있었으면서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 탓에 김서준이 1월 1일에 보낸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에는 여전히 숫자 1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서준 갑자기 표정이 왜 그러오? 우리가 사냥하는 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오?”

트레스가 의아하단 얼굴로 상념에 빠진 김서준을 바라봤다.

“아, 아닙니다. 생각할 게 있어서. 하여튼 사냥은 제가 좀 알아볼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알겠네. 클클클.”

****

“안녕하십니까.”

김서준이 승용차 앞에서 내리는 두 사람을 보며 인사했다. 두 사람이 탄 차에는 ‘충남 산양삼 협회.’라고 적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악수하며 인사를 건네는 남자들. 산림청에서 인정한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산양삼은 기르기 전에 종자와 그 땅에 대해 검사를 꼭 받아야 했다. 허가를 받지 않으면, 나중에 상품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수석 연구원 송기호라고 합니다.”

“김서준이라고 합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김서준이 말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게 저희 일인데요.”

“근데 생각보다 나이가 어리시네요.”

송기호가 인사하며 남자를 훑었다. 훤칠한 외모에 남자는 묘하게 귀티가 난다. 그리고 나이가 어리다.

‘산양삼인 척하고 이리저리 법망을 피하는 부류겠군.’

아니면, 새싹 삼을 양산해서 장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근에는 이 역시 주목받는 농사니 말이다.

‘거기에 인삼이 아니라 산양삼 새싹이라고 프리미엄을 달려는 거겠지. 하여간 요즘 젊은 사람들 빠르다더니. 이런 것도 빠른가 보군.’

속으로는 이렇게 안 좋게 생각했지만, 송기호는 웃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이런 기분을 내색해야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 법에 저촉되는 일도 아니고. 빨리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게 상책이었다.

“어린 나이에 산양삼이라니. 참 대단하십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먼 길 오셨는데, 인삼밭으로 가기 전에 크리스마스트리라도 보여 드려도 되겠습니까? 사실 그 트리가 제 소유거든요.”

김서준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얼른 보고 집에 가고 싶네요.’

라고 송기호는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은 정반대의 말을 내뱉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송기호는 얕은 한숨과 함께 옆을 바라봤다. 조수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멋지긴 한데, 계단이 좀 많긴 하네요.”

조수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김서준은 이동 포털을 평소에는 비활성화해두었다. 외부에 포털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른 건 몰라도 순간 이동 기술은 귀하니까.’

이렇게 설치형 포털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방에서 조사와 영입 제안이 들어올 게 뻔했다.

그때 가서 ‘엘프랑 드워프가 해줬어요.’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진짜 장관이긴 하군요. 이렇게 논밭이 한 번에 보이다니. 근데 이 트리 생목(生木)인 거 같던데, 이런 나무를 어디서 구한 겁니까?”

“아, 나무를 거대화한 겁니다. 제가 헌터거든요.”

그러자 송기호가 놀라 물었다.

“헌터요? 젊은 헌터가 왜 벌써 귀농을···.”

그러더니 눈빛이 살짝 측은하게 물들었다. 김서준이 서둘러 말했다.

“아, 그런 거 아닙니다. 사고나 그런 후유증 때문에 내려온 게 아니고, 헌터로서 제 직업이 농부입니다.”

“농부요? 헌터가 다양한 직업으로 전직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농부는 처음이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전투에는 영 꽝이지만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런 멋진 트리도 만들었고요.”

그때 옆에 있던 조수가 물었다.

“그럼 서, 설마 저거 다 서준 씨가 일군 밭이에요?”

그 말에 송기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아까부터 이상하긴 했어. 이 겨울에 저렇게 파릇파릇한 싹이 있다니 말이야. 비닐하우스도 없이 말이지. 설마..?’

김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제 능력으로 지은 겁니다.”

“겨울에 저렇게 농작물이 잘 자라는 것도 능력입니까?”

“네. 밭에는 적절한 온도와 환경이 상시 유지되죠.”

조수가 놀라며 손뼉을 쳤다.

“진짜 대단한 능력이네요. 사진마다 뒤는 겨울인데, 밭은 항상 파릇파릇해서 신비로웠거든요! 그게 그런 이유였나 보네요! 저 사진 찍어도 되죠?”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인별그램’에 올려야지. 하고 중얼거리며 조수는 휴대폰을 들었다.

“진짜 대박. 직접 보니까 더 신기하네.”

조수는 들떠서 쉴 새 없이 휴대폰의 셔터음을 울렸다. 김서준은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거 볼 때마다 뿌듯하다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송기호의 표정은 오묘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송기호는 이제야 김서준의 의도가 이해되었다.

‘내가 오해했군. 이 사람은 제대로 산양삼을 키워낼 생각이야.’

이런 능력이 있는데 산양삼이 뭐가 무섭겠나. 적절한 환경은 자동으로 유지 시켜 놓고 산양삼 씨앗을 뿌리면 알아서 잘 자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건 진짜 산양삼이 아니지.’

산양삼의 진가는 야생의 경쟁에서 흡수한 정기가 뿌리에 담기는 일. 이렇게 편하게 자라는 산양삼은 일반 인삼, 잘 쳐줘야 자연 산삼과는 이제 많이 멀어진 최신식 산양삼 정도일 터였다.

‘아마 모르고 하는 일이니 그 놈팽이들 하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저 능력이 무슨 탓이며, 순진한 농부가 무슨 탓이겠는가.

‘굳이 말해줄 필요도 없지.’

아마 저 능력이 없다면 산양삼을 이 겨울에 키우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 게다가 저렇게 키운다고 상품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막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안타까울 뿐.

‘저 능력을 조금만 야생에 맞게 조정한다면, 야생산삼 못지않은 산양삼을 키울 수 있을 텐데.’

“밭이 참 잘 만들어졌네요. 농사를 잘 지시는 거 같습니다.”

“능력 덕이죠. 도와주는 분들도 많고.”

“그렇군요. 이제 슬슬 밭으로 갈까요?”

“그러시죠.”

“김수연! 가자.”

“아, 연구원님. 벌써요?”

조수가 애교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40 먹은 아저씨한테 통할 애교는 아니었다.

그리고 송기호는 잠시 후, 깨달았다. 자기 생각보다 김서준이라는 농부는 훨씬 더 준비가 많이 되어 있었다는 걸.

****

“구오.”

반달이가 자판기처럼 생긴 네모난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미트루트 몇 개 ‘구루루’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구오!”

김서준과 트레스가 머리를 모아 만든 미트루트 자판기였다. 반달이의 서식지에 심어둔 미트루트가 열매를 맺기 전까지 사용하라고 만든 장치였는데, 머리가 좋은 반달이는 이 장치를 애용하고 있었다.

반달이는 떨어진 미트 투트를 서둘러 입안에 집어넣었다. 식욕을 당기는 빨간 즙이 배어 나오고 과육이 아삭거리며 부서졌다.

“구오오!!”

갓 사냥한 야생동물의 내장만큼이나 멋진 맛이었다. 만약 반달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역시 이 맛에 순찰하지.’ 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맛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구오?”

반달이의 고개가 돌아갔다. 무언가의 기척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착각일까? 그럴 리가.

야생 곰의 동물적인 감각은 무언가 주변에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주었다. 포식자를 보며 도망간 산짐승의 기척도 아니었다.

-샤샥.

“구오!”

자신의 반응을 눈치챈 걸까. 그 무언가의 존재가 풀숲을 해치고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반달이는 씹고 있던 미트루트를 삼켰다. 그리곤 달리기 시작했다.

“구오!!!”

동시에 하울링과 함께 커넥션 링을 통해 리노에게 말했다.

[산에 침입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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