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50화 (50/139)

50. 파티의 꽃

“뭘 하는 겨??”

“서준이의 정령들이 뭘 준비했다는 디?”

“재롱잔치까지 하는 겨? 귀엽네.”

조금씩 취기가 오른 주민들이 하나둘 정자의 난간으로 모여들었다. 리노와 노움이 준비한 걸 보기 위해서였다.

김서준 역시 엘린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까 노움이 엘린에게 뭐라고 하던 데, 혹시 뭔지 들었어요?”

“아니요. 노래를 좀 틀어주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노래 선곡도 부탁하고. 그래서 선곡해줬어요.”

“노래요? 노래가 왜 필요하지?”

김서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착. 착. 착. 착.

트리에 온 조명이 꺼지기 시작했다.

“뭐여?”

“무슨 일이여?”

어르신들이 당황했다. 그러자 트레스가 말했다.

“불을 꺼달라고 하더군요.”

김서준이 그 말을 옮겨 소리쳤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서서히 멎고. 적막과 함께 어둠이 내려앉았다. 별빛만이 반짝거리던 그때.

“아아! 시작하겠다움! 노래 켜 달라움!”

노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린이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하늘에 튕겼다. 그러자 어디선가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잔잔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이었다. 그렇게 전주가 흐른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팟!

어둠을 헤치고 밝은 빛들이 텅 비어있는 밭은 가득 채웠다. 하얗게 빛나는 작은 빛들.

“오호···.”

“저게 뭐유.”

“멋지네.”

밭에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한 풍경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졌다.

엘린이 말했다.

“저건 움이에요. 움들이 라이트 마법을 쓰고 있어요!”

엘린이 격양된 어조로 이야기했다. 김서준이 시력을 강화했다. 그러자 위로 뻗은 작은 움들의 손마다 빛이 맺혀 있는 게 보였다. 리노의 하얀 몸에서도 빛이 나고 있었다.

“대단하네.”

노움과 리노는 눈을 마주쳤다.

“벌써 반응이 좋다움. 제대로 시작해보자움!”

“멍멍!!”

“““““움!!!”””””

노움이 지휘를 시작했다. 그러자 전반적으로 조도가 낮아지더니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빛의 밝기를 이용한 연출이었다.

유성이 떨어지는 하늘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 물을 뿜은 고래는 이내 나비로 변했다.

“와, 대박.”

“엄청 아름답네요···.”

“놀랍구먼. 재롱잔치 수준이 아니잖여.”

모두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다들 그 멋진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라이트로 저런 쇼를 연출할 발상. 거기에 이 짧은 시간에 저런 체계적인 지휘라니. 역시 노움은 대단하오.”

드워프들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버섯, 구름, 바람이 부는 들판 등 여러 가지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다 다시 불이 꺼졌다.

“끝인가?”

“굉장한 쇼였어.”

누군가 박수치려던 그때였다.

[짜라짜라 짠짜짜. 짜라짜라 짠짜짜.]

노래가 바뀌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번에 무슨 노래인지 알아챘다.

“이 노래는···?”

“이거 그거 아녀?”

그러더니 어르신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떼창 했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짜짜라 짜라짜라 짠짜짜!”

‘짜’의 타이밍에 맞춰 형형색색의 불들이 화려하게 수를 놓았다. 번 갈아가며 켜지고 움직이고, 모양을 다시 바꾸다가도 깜빡거리는 등. 노래의 박자에 맞춰 노움과 움들은 화려한 빛의 향연을 그려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특급 사랑이야~”

정자 위는 난리가 났다. 떼창은 기본이고 술이 좀 들어간 어르신들의 신명 나는 춤사위가 벌어졌다.

엘린도 귀를 쫑긋거리며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노래가 좋소! 엄청 신 나는군!”

“이거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구먼.”

드워프도 그런 어르신들과 함께 몸을 들썩였다. 모두가 흥에 겨웠고. 점잖던 김서준 역시 고개를 까딱거리며 멋진 빛 쇼를 즐겼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노래는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노움과 리노가 만드는 빛의 화려함도 극한으로 다다랐다. 그러자 들썩거리던 트레스가 각오했다는 듯 이야기했다.

“우노, 도스. 비장의 무기 지금이 타이밍인 거 같다! 더 아껴둘 이유가 없겠어.”

“좋다!”

“바로 쏴버려!”

우노와 도스가 소리쳤다. 트레스는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펑!

팡파르와 함께 하늘에 불꽃이 수를 놓았다.

‘폭죽? 마법으로 만든 폭죽인가?’

땅에는 노움과 리노, 움이 만든 빛 쇼. 위로는 폭죽. 신나는 노래까지. 그야말로 축제였다. 어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밭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글자가 영어로 떠올랐다.

“감사합니다움!!”

“멍멍멍!!!”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김서준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주민들이 마을에 더 큰 애착을 가지게 됩니다.]

[터전의 안정도가 오릅니다.]

[자격시험의 달성도가 증가합니다.]

‘대박···. 하긴 엄청난 공연이긴 했지. 하여간 저 둘 진짜 대단하다니까.’

김서준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소리쳤다.

“최고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파티의 밤은 깊어갔다.

모두가 잠든 밤. 김서준은 찬물 한잔을 떠 소파에 홀로 앉았다.

“고맙네. 이렇게 즐거운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었어.”

“이렇게 멋진 날을 만들어주다 참으로 고마워.”

“언제 한번 우리 집 와. 내가 작게라도 보답 삼아 맛있는 식사 한번 대접할 테니까.”

한명 한명 떠나며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은 분들이 없었다. 모두가 행복하고 값진 시간이었기에 김서준 역시 뿌듯했다.

“진짜 다들 고맙네.”

리노와 노움, 엘린, 우노, 도스, 트레스 하나하나 고맙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 김서준까지 좋은 추억 하나를 새겼다.

“작지만 보답입니다.”

그런 착한 어린이(?)들을 위해 산타가 될 시간이었다. 김서준은 준비한 선물을 하나하나 챙겼다.

엘린의 방 앞에는 최신형 스마트폰. 리노의 집 위에는 프리미엄 간식 세트. 드워프의 집 앞에는 나름 고가의 술을 준비했다. 도수가 높아서 얼지는 않을 듯 보였다.

“다들 맘에 들려나.”

대단한 건 아니지만, 모두가 좋아하길 바랐다. 김서준은 마지막으로 노움을 위한 트랙터 장난감을 가지고 트리로 향했다.

‘트리에 두는 게 좋겠지?’

다시 봐도 크리스마스트리는 참 화려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설치한 트리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게다가 올라갈 수 있는 규모의 트리라니.’

김서준은 피식 웃으며 선물을 적당한 곳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행선지는 사비오의 밭이었다. 파티가 전부 끝나 정리마저 끝났을 때, 한 가지 안내창이 더 나타났다.

[터전의 안정도가 조건 치에 다 달았습니다.]

[사비오의 성장 조건이 달성되었습니다!]

[사비오가 이제 성장을 준비합니다.]

‘깜짝 놀랐지. 설마 그런 조건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씨앗이 심어진 밭의 정중앙.

“이제 자라날 거라는 거지?”

김서준이 다정하게 말했다.

“이 방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맞다면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

김서준은 웃으며 마정석으로 만든 농축액을 부었다. 그리고 그 위에 마정석 가루를 덮었다.

그리곤 나지막이 덧붙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

금산마을 노인정은 며칠째 같은 이야기로 난리였다. 다름 아닌, 크리마스트리와 파티의 이야기였다.

“영상 보내줬더니 손자가 한번 보고 싶다고 난리랴.”

“심씨 네도? 우리 손녀도 크리스마스트리 올라가 보고 싶다고 울고불고 한뎌. 손녀가 시골 오고 싶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여.”

어제까지는 그 여운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오늘은 주제가 달라졌다.

김서준의 결단 덕이었다. 어르신들의 요청에 김서준은 트리를 철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더군다나 무료 개방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여.’

실은 트리가 완성된 순간부터 김서준은 철거할 생각이 없었다. 너무 잘 만들었고, 너무 멋있었기에. 이렇게 한번 쓰고 철거하기는 너무나도 아까웠다.

“하여간 서준이가 마을 복덩이여. 덕분에 저런 좋은 구경도 하고.”

“함께 있는 애들도 다 재주꾼이여. 그 근육질 할아범들이 만든 거라며?”

“그것도 다 서준이 보러 온거라며. 저런 젊은이들이 마을로 더 모여야 할 텐데.”

그 사실을 모르는 어른들은 입이 마르도록 김서준을 칭찬했다.

“그 쇼는 또 안 하나? 엄청 멋있었는데.”

“아휴, 그거 힘들 텐데 염치없게 그걸 어떻게 시켜. 트리 철거 안 한 거만해도 감지덕지여.”

“알지. 아는 데 아쉬워서 그러지. 당신을 향한~”

어르신들이 깔깔거리며 떠들 때 노인정의 문이 열렸다.

“어휴, 뭔 눈이 이렇게 온 데.”

임종철이 어깨 위 쌓인 눈을 털며 말했다.

“웬일로 이 시간에 여길 다 왔어. 오늘은 농사 안 짓는 겨?”

“점심 이후 눈 많이 온다고 혀서, 일찍 짓고 왔슈.”

“비닐하우스라 상관없으면서... 하여간 성실혀. 괜히 명인이 아니라니께”

임종철이 껄껄 웃으며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일러로 따뜻하게 데워진 방바닥이 눈을 맞고 온 몸을 녹였다.

“근디 뭐 재밌는 일이라도 있나 봐유. 밖에서도 웃는 소리가 다 들리던데.”

“아유, 그날 얘기지. 아직도 생생혀. 아무래도 낼쯤에는 거기 한 번 더 다녀와야겠어.”

임종철이 미소를 지었다.

“가기 전에 서준이한테 말하고 가유. 서준이 당황할라.”

그때 반대편에 있는 심씨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임씨, 뭐 좀 물어보자. 이렇게 한 겨울에 자라는 잡초도 있나?”

“잡초유? 이 날씨에? 지금은 다 땅속에 있지. 위로 나오는 애들은 거의 없을 텐디.”

“그치? 근데 우리 밭에 웬 잡초가 자라더구먼.”

그러자 맞은 편에 있던 다른 어르신들이 말했다.

“거기도? 우리 밭도 그러던디.”

“울 집에도 자랐어. 이파리에 푸른색으로 무늬도 있고 특이하던디.”

“난 그래서 마나 먹은 풀인 줄 알았슈. 마나 먹은 풀들이 미쳐서 별의별 짓을 다 하잖여.”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지만 명확하게 그 원인을 아는 이는 없었다. 임종철 역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겨울에 새싹이 난 것도 모자라 푸른색 무늬가 있는 이파리라고? 그런 잡초는 본 적도 없는디.’

혹시라도 정말 마나 먹은 풀이라면 조심해야 했다. 일전에 도로를 점거했던 풀 같은 종류가 사람들의 밭을 뒤덮어 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말이다.

“직접 한번 봐야겠구먼. 지금 보러 가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임종철이 모른다면 김서준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었다. 거기에 마나 먹은 풀 따위는 갈아버릴 황금 트랙터도 있으니 말이다.

‘이 기회에 한 번 태워달라고 부탁해도 좋겠구먼.“

임종철이 껄껄 웃었다.

****

“떡잎이 올라 왔다움!!”

잡초를 뽑던 노움이 놀라 소리쳤다.

“멍멍!!”

동물들에게 순찰을 맡겨놓고 노움을 도우러 온 리노도 덩달아 소리쳤다.

“정말?”

도로의 눈을 쓸던 김서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렇습니다움!”

김서준이 빗자루를 들고 서둘러 달려갔다.

마정석을 이용한 키우기는 효과가 있었다. 그날 이후 멈춰있던 퍼센트가 0.01 ~0.1% 정도 사이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작물처럼 쑥쑥 크는 건 아니었지만, 이것만으로 크나큰 발견이었다.

‘멈춰 선 거랑 조금이라도 기어가는 간 완벽히 다른 이야기니까.’

그래서 김서준은 마음먹고 제대로 투자하기로 했다.

마정석은 1g에 최소 10만 원에서 나아가 천만 원을 호가한다. 사비오의 성장을 위래서는 그런 마정석을 하루에 최소 3g씩 사용해야 했다.

엘린과 협의 끝에 정한 등급은 최소 중 하급 마정석. 이로써 대략 하루에 200만 원어치의 마정석을 갈아 넣어야 했다.

만약 감자만 팔았다면 빠듯했다만.

‘축복받은 송이버섯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제 가을이 아닌 겨울이 되었다. 송이버섯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 게다가 그냥 버섯도 아닌 축복받은 송이버섯이 아니던가. 당연히 경매가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번에는 1kg 당 1천만 원에 팔렸지.’

당분간은 이 정도 시세가 유지될 듯했다. 거기다 생산량도 늘어 이제 매달 10kg 정도를 생산할 수 있었다.

덕분에 김서준은 별다른 고민 없이 사비오를 키우는 데 돈을 쾌척했다.

그렇게 비싼 값을 들인지 5일 만에 첫 성과가 아니던가. 김서준은 반색하며 사비오의 떡잎을 확인했다.

“오호···.”

초록색보다는 청록색에 가까운 묘한 빛깔이었다. 떡잎은 꽉 닫혀 있었지만, 그 안에는 이미 꽤 자란 이파리도 보였다.

“귀, 귀엽습니다움!”

“멍멍!!”

두 사람의 말처럼 김서준의 눈에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내게는 이게 연말 선물인가.’

김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떡잎이 겨우 났으니까 상하지 않게 잘 봐줘. 노움.”

“맡겨 주시라움!”

노움은 호언장담했다.

다음 날.

[사비오가 싹을 틔웠습니다. ‘금산마을’을 터전으로 받아들입니다.]

[금산마을에 사비오의 영향으로 아쥴이 자라납니다.]

[‘아쥴’이 자라는 땅은 더 많은 영양분과 마나를 머금습니다.]

아침부터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내용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주민들이 어리둥절한 사이.

“이건···.”

아침 일찍 눈을 뜬 김서준에게는 한 가지 더 메시지가 와있었다.

[자격시험의 달성도가 90%를 넘겼습니다.]

[아리아가 당신을 부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