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46화 (46/139)

46. 가마 삽겹살

김서준은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가마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봤다.

‘신기하네.’

어떤 동력도 없이 마력으로 불꽃은 잘만 타오른다. 게다가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그리 뜨겁지 않았다. 포근한 온기만이 느껴졌다.

‘마나로 타는 것도 모자라 온도를 맘대로 조종 수 있는 불이라니. 진짜 신기하네.'

그렇게 감탄하며 보고 있자니 점점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뭔가 차분해지는 게 살짝 나른 해졌다.

‘이상하네. 이래서 캠핑가면 불멍을 하는 건가. 아니면 드워프의 불꽃의 힘인가?’

김서준은 잠시 그 기분에 몸을 맡기고 불을 바라봤다. 미약하게 느껴지는 온기가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쓰다듬어주는 기분이었다.

드워프들도 일을 하다 보면 이런 기분을 느낄까. 가끔 와서 일을 배워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김서준은 이내 숨을 들이쉬었다.

‘오늘은 이쯤 하자.’

좀 더 즐기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입이 한둘이 아니었다. 김서준은 살짝 손을 뻗으며 말했다.

“우노, 화기를 키워봐 주시겠어요?”

“알겠소.”

-화륵

순간 불이 강렬해지면 화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약했다.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더 뜨겁게 해주세요.”

“괜찮겠소?”

“네. 걱정말고 부탁 드릴게요”

“흠..이 정도면 되겠소?”

우노가 조심스레 물었다. 손바닥에 닿는 열기를 넘어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김서준이 웃으며 일어났다.

“감사해요. 그럼 바로 요리 시작할게요.”

“신농. 정말 이 화력으로 요리를 할 수 있겠소? 불이 쌔서 전부 타버릴 거요.”

“맞소. 불이 필요하다면 밖에 하나 피워드리겠소.”

도스와 트레스도 나서서 김서준을 말렸다. 가마로 요리한다는 게 궁금하다며 따라오긴 했지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하긴 평소처럼 쇠를 녹이던 곳에 요리라니. 상식적인 일은 아니지.’

김서준도 처음에는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온도가 조절되는 마나로 타는 불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3초 삼겹살 할 수 있는 거 아냐?!’

긴 삽에다가 고기를 잘 펴서 울리고 숯가마에 넣으면 3초 만에 구워지는 그 맛 좋은 삼겹살이 김서준의 머리에 아른거렸다.

‘금방 구워지니까 지금 먹기 딱이기도 하고.’

저녁이라기보단 야식에 가까운 상황에 모두가 열심히 노동을 하지 않았던가. 빠르고 맛 좋은 음식으로 이만한 메뉴가 없었다.

“믿어주세요.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흠..”

“하지만...”

그러자 우노가 둘을 다 그쳤다.

“도스, 트레스. 신농님을 믿어라! 신의 대지에 선택을 받은 분이시지 않나! 이곳에 살아가기로 해놓고 벌써 신농님을 의심하는 게 무슨 무례인가! 아둔한 아우들을 대신해 내 사과하겠소!”

“죄송하오!”

“죄송하오!”

그러자 두 드워프가 바로 머리를 조아렸다. 김서준은 괜히 머쓱해져서 뒷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케레스의 농기구. 삽.’

일반적인 삽보다 대가 길고 날이 넓적한 형태의 삽이 김서준의 손에 쥐어졌다.

“오오.”

“그것이 신의 농기구로군!”

“과연 전설답게 영롱하구려!”

뒤에서 삼형제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못 들은 척하며 김서준은 삽날 위에 숯을 올렸다.

“이거 넣어도 될까요?”

“물론이오. 나중에 우리가 알아서 치우겠소.”

우노의 허락을 받은 김서준은 거침없이 가마에 숯을 집어넣었다. 가마 속으로 들어간 숯은 금세 벌겋게 붉어지며 좋은 향을 품겼다.

“으흠. 향이 좋군.”

감탄이 절로 터지는 향이었다. 김서준 역시 내심 감탄했다. 향이 아니라 이 지하 공방의 환풍 구조에 놀랐다.

‘지하에 공방이 가능할까 했는데, 이 굴뚝 말고도 환풍 통로가 더 있었구나!’

여기저기 틈 사이로 연기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과연 드워프의 건축은 철저했다. 감탄도 잠시. 김서준은 챙겨온 삼겹살을 삽 위에 평평하게 깔았다.

‘고기를 좀 많이 사둬서 다행이야.’

반달이와 일호 가족까지 염두 해서 고기를 많이 구매해둔 덕에 고기는 충분했다. 삽날 위를 빽빽하게 채운 뒤 김서준은 고기를 가마 안으로 집어 넣었다.

-치익!!!

고기가 구워지는 맛있는 소리가 공방을 울렸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센 김서준이 이내 삽을 꺼냈다. 뒤에서 ‘헉!’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서준이 고개를 돌리자 드워프 3명이 모두 숨을 죽인 채 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럴만 하지.’

김서준이 봐도 너무 잘 구워진 고기였다.

쫙 빠진 기름이 지글거리고. 삼겹살은 그 기름에 잘 튀겨졌다는 듯 고소한 냄새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다.

그뿐이랴.

살짝 검게 탄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내부는 갈색빛에 윤기가 나는 게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자태였다.

“시, 신농. 제가 감히 맛을 한번 봐도 되겠소?”

우노가 고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눈에는 먹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김서준은 웃으며 말했다.

“이거 한 줄씩 드시고, 올라가서 노움 불러주세요. 바로 서빙 할게요.”

“으흠....”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우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입안에서 팡팡 터지는 육즙과 감칠맛, 그 위로 은은하게 묻어나는 불향까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망치의 후예라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맛있군. 먹어본 고기 중 최고야.”

우노는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도스와 트레스가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이야.”

“트레스. 가마로 이런 고기를 구울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왜 여태 몰랐던 거지? 넌 천재가 아니었던 건가?”

“도스. 요리에는 나도 재주가 부족했다는 걸 인정하겠어.”

트레스의 말에 우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트레스뿐 아니라 드워프는 모두 반성해야 했다. 그들의 가마는 공방일 뿐 아니라 훌륭한 요리기구라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다.

‘돌아가면 역사에 새길 게 한 줄 더 생겼어.’

우노가 그렇게 생각할 때, 트레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고기도 고기지만 이 소스는 정말 대단해. 달고 짜고 고소하면서도 침이 고이는 맛이라니. 이렇게 맛있는 소스는 처음이야.”

“하지만 최고는 역시...”

우노가 옆에 놓인 담배 상추를 하나 들었다.

“이 쌈이라는 거지.”

고작 평범한 풀떼기 하나로 고기를 감싼 것뿐인데, 아삭하고 건강하면서도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을 배가시켜줬다.

그리고 조금 아쉽지만, 신농이 내어준 맥주를 같이 들이키면···.

“크···.”

탄성이 절로 터졌다. 우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도스, 트레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멋진 땅을 관리하고. 저 대단한 정령을 다루며 상상을 넘는 요리를 해내는 그는 전설 이상이라는 걸.”

“인정하오.”

“인정하오.”

김서준이 어쩔 줄 모르자 엘린이 말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드워프의 인정을 받다니.”

“네?”

“드워프는 뭐든 자신들이 가장 잘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칭찬에도 박해요. 특히 누군가를 인정하는 일은 그 오랜 삶에서도 손에 꼽아요. 근데 그런 드워프 3명에게 인정을 받으셨어요. 정말 대단해요.”

“그렇군요.”

엘린의 말을 들은 김서준이 씩 웃었다.

‘조공이 제대로 들어갔나 보네.’

유능한 기술자들은 쓸모가 많다. 앞으로 많은 일을 시켜야 하건만, 이런 태도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김서준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우노가 한 번 더 장엄하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 축복받은 대지에 축복받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준 신농님에 말이야.”

우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가슴에 손을 대고 허리를 푹 숙이며 말했다.

“신농! 정말 고맙소. 우리를 받아주고 망치를 걸고 감사의 뜻을 표하오!”

그러자 두 사람도 일어나 말했다.

“도스의 망치를 걸고 감사하오.”

“트레스의 망치를 걸고 감사하오.”

김서준도 고개를 숙였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그런 의미에서..”

김서준은 캔맥주를 내밀며 말했다.

“짠 한번 할까요?”

****

드워프 삼형제가 온 지 3일이 지났다. 3일간 알게 된 우노가 말했듯 셋의 전문 분야가 확실하게 나눠진다는 점이었다.

첫째, 우노는 전형적이 일꾼이었다. 몸으로 하는 건 전부 잘했다. 농기구도 잘 다뤘다. 거기에 야금술이 가장 뛰어나서 세 사람의 농기구를 만드는데 그 품질이 엄청났다.

둘째, 도스는 농사의 전문가였다. 김서준의 농원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거기에 마법학과 약초학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엘린의 조수 역할을 맡기로 했다.

마지막 트레스는 마공학의 전문가. 마도구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진짜 대단하네요.”

트레스는 약속을 지켰다. 3일을 줬더니 솟대를 고치고 개조해왔다.

“사용자의 마력에 반응해서 머리가 돌아가게 개조했소. 이제 신농의 의지대로 카메라를 돌릴 수 있소. 그리고 다른 존재의 마나를 감지하면 자동으로 화면이 돌아갈 거요.”

김서준은 시험 삼아 솟대를 움직여 봤다. 휴대폰에 떠오른 화면 중 하나를 골라 움직이기를 바라자 정말로 화면이 움직였다.

“대단하네요.”

“이 정도는 김빠진 맥주 마시기보다 쉽소. 클클클.”

[다들 들려요?]

[네. 들려요.]

[들립니다움!]

[멍멍!!]

커넥션 링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속으로 손뼉을 치며 김서준이 말했다.

“고생했어요.”

“아직 끝이 아니오! 그것도 다 만들었소!”

“그거라면 설마 정자 지붕이요?”

김서준은 설계해둔 정자 지붕을 트레스에게 의뢰했다. 트레스는 지붕의 디자인과 기능을 좀 더 추가하겠다며 시간을 달라 했는데···.

“이거 하면서 그거까지 3일 안에 다 한 거예요?”

“신농의 창의적인 디자인은 대단하지만,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았소. 물론 그래서 좋은 디자인이지만.”

‘..드워프 진짜 최고다.’

김서준은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트레스와 함께 밭으로 향했다.

“조심하라움! 그러다 감자 상한다움!”

“알겠소!”

우노와 노움, 그리고 움들이 열심히 감자를 캐는 중이었다. 김서준과 트레스를 발견한 노움과 우노가 인사했다.

김서준은 손을 흔들어 대답했다.

“볼 때마다 놀랍소. 이 추운 날의 농사라니.”

엘린의 말에 따르면 온도 조절 마법은 그렇게 섬세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냥 적당히 따듯한 정도.

그렇다 보니, 라이너스 대륙의 겨울은 그냥 휴 농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드워프가 온 벨리르 대륙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저렇게 잘 자라는 농작물이라니. 과연 신의 대지는 다르오. 얼른 보리를 키워 맥주를 만들고 싶군!”

트레스가 아쉬워했다. 김서준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지금은 신농의 땅을 더 늘릴 여력이 없다는 걸.

‘자격시험이 완료되면 곧 가능해질 거예요.’

드워프들은 이해했다. 얼마든지 더 기다려 줄 수 있다 했다.

‘목표가 눈앞이면 조급할 만도 한데. 다시 생각해도 고맙네.’

김서준은 꼭 확장할 힘이 생기면 보리 농사를 위한 밭부터 넓히기로 다짐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정자 앞에 도착했다. 정자는 이미 새 지붕이 씌워져 있었다.

“잘 만들었네요...”

놀랄 정도로 잘 만들었다. 장치의 성능이 아니라 디자인의 이야기였다. 3D스캐치 할 때는 김서준도 멋들어진 전통 정자를 구상했다.

‘근데 만들 수가 없었지.’

지붕이 문제였다. 전통 문양과 굴곡을 만들기엔 김서준은 너무도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트레스는 그 문양을 그대로 구현했다. 마치 한국에서 평생 저런 건 봐온 장인처럼.

“문양이 멋스러워 맘에 들어 재밌게 만들었소. 신농님의 미적 감각이 참으로 탁월하오.”

트레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진짜 다르구나. 금손이라고 부르는 게 미안할 정도야.’

“이쪽으로 오시오. 기능을 설명해 드리겠소.”

트레스는 기둥으로 다가갔다. 기둥에 손바닥만 한 둥근 버튼같은게 있었다.

“누르는 게 아니오. 그 위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마력을 흘려보시오.”

“네.”

김서준이 트레스의 말대로 손을 올렸다. 은은한 황금빛이 일었다. 그때였다.

-쿠쿵!

뭔가 소리와 함께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지붕이 양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대, 대박!”

정말 돔구장처럼 지붕이 반으로 갈라지며 열리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마나 장치라 마나를 주입해야 하오. 비나 눈이 오면 자동으로 닫히는 기능을 추가했소.”

“대단해요. 제가 생각한 거 이상이예요.”

지붕이 열리는 팔각정이라니.

아마 전 세계에 이 하나뿐이리라. 김서준은 너무 신기해서 다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정자를 감상했다.

“진짜 고마워요.”

“별 말씀을. 재밌는 작업이라 나도 좋았소.”

“곧 여기서 술상 한번 대접할게요.”

김서준의 말에 반색하던 트레스가 손가락으로 밭을 가리켰다.

“근데 저긴 뭐 하는 곳이오? 왜 텅빈 땅에서 잡초를 뽑는 것이오?”

“아 저긴, 사비오를 심은 땅이에요.”

“사비오? 혹시 현자들이 지키는 콩나무를 말하는 거요?”

“어? 그걸 아네요?”

엘린이 말했던 이야기였다.

전설에 따르면 사비오는 워낙 높게 자라서, 거기에 현자들이 집을 짓고 살며 그 열매를 지켰다고 한다는 이야기.

“사라진 전설 속 작물에 대해서 책을 읽었소. 대단하군. 현자들이 현명함을 잃지 않기 위해 먹었다는 그 작물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이 역시 엘린이 했던 이야기.

‘아리아는 아마 그래서 나한테 이게 도움이 된다고 했던 거 같지만···.’

문제는 사비오의 성장 속도였다.

“아마 보려면 한참 걸릴 거예요. 아직도 3%거든요.”

“3%?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아 저한테는 작물의 성장 정도가 보이거든요. 사비오는 이제 3%에요. 벌써 2달이 다 되어 가는 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성장이 보인다는 건 신농의 땅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 그런데도 사비오는 유독 성장이 느렸다.

“흠···.”

트레스가 무언가 생각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신농님의 땅에서도 그런다는 걸 보면 전설이 사실인가 보오.”

“전설이요?”

“몬스터를 먹는 식물이라는 전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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