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45화 (45/139)

45. 드워프가 집을 짓는 법

드워프 삼형제의 첫 번째 과제는 집짓기였다.

일단 여기 살려면 집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소는 김서준의 집 옆 넓은 공터가 있었기에 문제없었다.

“근데 집을 하루 만에 지을 수 있어요?”

“신농! 망치의 후예가 집을 짓는 데 하루 이상 걸리는 건 종족의 수치요! 걱정하지 말고 지켜보시오!”

사실 집이야 천천히 지어도 됐다. 엘린처럼 김서준과 같이 지내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실력이 보고 싶었다.

판타지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 공학자들. 대장장이들. 기타 등등.

얼마나 많은 매체에서 그들을 그런 화려한 수식어로 엮어왔던가. 더군다나 그들은 장인 정신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래서 매력적이었지. 엘프보다 더.’

엘린에겐 비밀이지만 예쁘고 고상한 신비의 종족보다, 결과로 보여주는 드워프 쪽이 좀 더 김서준의 취향이었다.

그래서 필요하면 자재도 지원하면서 천천히 그 실력을 보려 했는데...

‘하루면 충분하다니 정말 내가 아는 그대로의 드워프잖아?’

김서준은 호언장담한 자신감처럼 실력 역시 엄청나길 간절히 바라며 삼형제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삼형제는 공터를 보며 무언가 가늠하는 듯했다. 바닥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흙의 상태도 확인하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소. 모두 물러나시오.”

두형제와 김서준, 엘린까지 모두 뒤로 무른 우노가 망치를 높게 쳐들었다.

“망치 나가신다!!!”

-쾅!

우노는 망치로 냅다 공터를 내려쳤다. 폭음과 함께 뿌연 흙먼지가 일었다.

‘설마 땅을 깊게 파놓고 터전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강한 폭발이 일었다. 잠시 후 시야가 돌아오고 우노의 발 밑에 폭발의 흔적이 드러났다.

“저럴 수가 있나?”

이상했다.

방금의 박력은 흡사 다이너마이트 같아서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 줄 알았건만, 사람 3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고 깊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마력을 고도로 응축한 거예요. 생긴 거랑 다르게 마나를 섬세하게 다루네요.”

“엘프. 그쪽 세계 드워프를 우리와 비교하지 마시오. 우리에게 이 정도는 기본이오. 이제부터 시작이오.”

“기대할게요.”

엘린은 쌩끗 웃었다. 그러나 이제와는 느낌이 달랐다. 마치 한번 해보라는 식.

‘기 싸움이 대단하네.’

김서준이 괜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도스와 트레스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우노에게 다가갔다.

세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가자!”

우노가 소리치며 뛰어내렸다. 트레스가 다라 뛰어내렸다. 도스는 구덩이 위에서 무언가를 받을 준비를 했다.

“뭘 하려는 거지?”

의문도 잠시.

-쿵. 쿵. 쿵.

바닥 아래서 가볍게 망치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구덩이 밖으로 무언가 휙 빠져나왔다.

도스는 그걸 양손으로 잡아챘다.

“벽돌?”

레고처럼 위에 요철이 달린 블록이었다. 도스는 그 블록을 차곡차곡 옆으로 쌓았다.

“어떻게 땅속에서 벽돌이 나오는 거지?”

“직접 확인해보죠.”

엘린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하며 지팡이를 꺼냈다. 작은 마법진을 서둘러 그린 후, 그 위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올렸다.

“스카우트(Scout)!”

마법진에서 발한 푸른 빛이 돌멩이에 어렸다.

“물건을 잠깐 감시용 도구로 만드는 마법이에요. 구경 좀 할게요.”

엘린이 말하며 돌멩이를 던졌다. 도스는 군말 없이 돌멩이를 받아 구덩이 아래로 떨어뜨렸다.

동시에 마치 영사기처럼, 엘린이 가진 지팡이 끝에 달린 보석이 작은 화면을 송출했다.

"물체를 아주 잠시동안 카메라로 쓰는 마법이에요."

엘린의 말처럼 화면으로 우노랑 트레스가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은 마나로 땅을 부수고. 한 사람은 그걸 벽돌로 치환해서 위로 전달하네요. 그것도 엄청 빠르게...대단해요.”

엘린의 말대로였다.

우노는 가볍게 망치로 땅을 두드렸다. 그러면 땅이 바윗덩어리가 되어 떨어져 나왔다. 트레스는 그걸 받아 블록의 형태로 바꾼 후 위로 던졌다. 도스는 그럼 그 블록을 밖에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호흡도 좋고 엄청 유기적이야.’

그뿐이 아니었다.

정교했다. 마법으로 찍어내는 벽돌이 모두 균일하고 일정했다. 더군다나 아무 땅이나 부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땅을 부수는 동시에 내부 공간을 어떤 형태로 바꿔가고 있었다.

‘벽, 테이블, 저건 의자인가?’

장인을 보면 분야에 대해 알지 못해도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했던가. 지금이 그랬다. ‘클클’ 웃으며 대충하는 듯 보이지만, 그 오랜 여정의 세월은 거짓이 아니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엘린 역시 그렇게 말하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클클. 얼른 끝내자고!!”

우노가 소리쳤다.

“좋지!!”

“좋아!!”

그러자 도스와 트레스도 함께 소리쳤다.

“망치의 신이시여. 그대의 힘을 이곳에 내리소서!”

-화륵!

화구에 불이 타올랐다. 그걸로 끝이었다. 어느새 만들어진 계단으로 두 사람이 걸어 올라왔다. 자신만만한 삼형제와 달리 화면으로 모든 걸 보고 있던 엘린과 김서준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이게 끝이라고요?”

“신농! 무슨 문제가 있소?”

우노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집을 만든다면서요. 이건 집이 아니잖아요?”

지하에서 땅 위로 낸 굴뚝에 활활 불이 타오르는 화구, 모루까지.

“이건 대장간 아니에요?”

“클클! 맞소! 대장간이자 우리의 근간이지! 그리고 집을 짓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기도 하고. 이제부터 이 위로 집을 짓겠소.”

“이제 만든다고요?”

대장간을 만드는 데 두 시간여가 걸렸다. 짧아진 해는 이미 많이 기울어 있었다.

‘아무리 작업이 빠르다지만...’

“신농! 걱정하지 마시오! 밤을 새워서라도 오늘 끝내겠소!”

“흠...그거야 그럴 거 같지만, 너무 늦을 거 같아요.”

김서준은 벽돌을 바라봤다. 흡사 레고처럼 생긴 벽돌. 아마 저 벽돌로 레고처럼 조립해서 집을 지을 계획처럼 보였다.

‘겨울은 해가 빨라. 아마 1시간도 채 안 돼서 껌껌해질 거야. 그래도 손님인데 그렇게 둘 순 없지.’

김서준은 빠르게 판단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노움!”

김서준이 노움을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움!”

공중에서 ‘뿅’하고 나타난 노움. 그걸 본 삼 형제가 감탄을 터뜨렸다.

“신의 대지를 관리하는 정령이라니! 망치의 후예가 정중히 인사드리오!”

삼 형제는 가슴에 주먹을 댄 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오호. 망치의 후예들이다움! 반갑다움! 난 신농님의 충신, 대정령 노움님이시다움!”

‘노움은 어느 종족이나 다 존중하네.’

신기한 눈으로 그 광경을 보던 김서준이 정신을 차리고 노움을 부른 용건을 말했다.

“노움, 저들이 집을 지어야 하는 데 도와줄 수 있겠어?”

김서준은 노움이 일전의 배수로를 정비했던 일을 떠올렸다. 토목 공사에도 능하다 했으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괜찮소. 감히 신농님과 대정령님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없소!”

우노의 말을 무시한 채 노움은 쌓여있는 벽돌을 확인했다.

“벽돌 위에 요철이 있고 구멍도 뚫려 있네. ‘브리코’ 벽돌인가 보다움. 신농님! 제가 도울 수 있을 거 같습니다움!”

“신의 대지를 관리하는 정령이시여...”

“신농님이 돕겠다고 하면 무조건 알겠다고 하는 거다움!”

무어라 말하려는 우노에게 노움이 소리쳤다. 그러자 삼 형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오늘 노움이 좀 멋있네.’

김서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빨리 끝내고 같이 저녁 먹어요.”

“신농님! 정령님! 고맙소! 그럼 잘 부탁드리오!”

“걱정 말라움!”

함께 일하기로 합의한 후, 도스는 다시 지하에 만든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철근을 만들겠다고 했다.

트레스는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설계도?”

“그렇소. 집을 지을 설계도인데 간단하니 바로 여기다 그리도록 하겠소.”

“지워질 수도 있지 않나요? 그리고 해지면 안 보일 텐데···.”

“괜찮소. 어차피 금방 다시···.”

그 순간 트레스가 그린 설계도에서 빛이 났다. 빛은 그대로 떠올라 허공에 머물렀다.

“그 빛을 물감 삼아 허공에 그리세요.”

엘린이 말했다. 트레스는 엘린의 말대로 허공에 손가락을 휘저어 보았다. 손가락을 따라 빛이 나타났다.

“엘프. 고맙소.”

“별말씀을요. 대신 빨리해주세요. 저 배고프거든요.”

엘린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엘린의 저런 모습이라니···.’

김서준이 엘린의 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태연한 표정과 달리 엘린의 귀는 살짝 붉어져 있었다.

트레스는 빠르게 설계도를 완성했다. 그리곤 우노와 노움을 불러 설계도에 대해 말해주었다.

“대정령이시여! 철근 들어가는 위치 잘 확인하시오!”

“걱정 마라움!”

“우노. 실수하면 안 된다. 모두가 우리를 기다린다.”

“트레스. 걱정하지 말고 형만 믿어라!”

설계도를 보며 의기투합한 후 모두 작업을 시작했다. 노움은 움을 불러냈다. 평소에 쓰던 모자 대신 안전모를 쓴 움들이 나타났다. 노움도 초록색 안전모로 모자를 바꿔 썼다.

“모두 빠르게 움직인다움! 망치의 후예들을 돕는다움!”

““““움!!””””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김서준도 팔을 걷어붙였다.

“저도 도울게요.”

“신농. 우리를 받아준 것도 감사한데···. 정말 고맙소!”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면 최선을 다한다고 했죠? 그 약속 지키셔야 해요.”

“물론이오! 내 망치를 걸고 맹세하리다!”

엘린은 마법으로 일대에 빛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도 돕겠다며 대장간으로 내려갔다.

브리코는 생긴 모양처럼, 정말 레고나 다름없었다. 요철을 이용해서 조립하면 순식간에 벽이 뚝딱 만들어졌다. 거기다 꽤 견고했다. 중간 접착제 없이도 착착 잘 붙었다.

‘대단해. 이거라면 누구나 쉽고 빠르게 건물을 지을 수 있겠어. 이게 드워프의 기술력인가?’

김서준은 만들면서도 계속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레스는 디자인이나, 조금 설계가 복잡한 곳 중심으로 직접 벽돌을 쌓았다.

“거기 균형 맞춰!”

“우노! 그 쪽은 너무 많이 나갔어!”

정교하게 작업하면서도 작업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역시 오늘 최고의 활약은 ‘움’들이었다. 움들은 조를 이뤄 벽돌을 운반하고 노움과 함께 벽돌을 쌓는 건 물론, 동분서주하며 각종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고맙소!”

우노는 움들에게도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한참 작업하던 중.

“철근 가져왔소!”

엘린과 트레스가 정말로 철근을 들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만든 대장간에서 철광석도 없이 철이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어떻게 철근을 만들어 낸 거죠?”

“흙 속에 철 성분을 모아냈소.”

“...그게 돼요?”

“신농. 드워프에게 불가능은 없소.”

도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엘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도스! 이야기는 그만하고 얼른 철근 줘!”

“우노. 알겠어!”

철근은 브리코에 나 있는 구멍 사이를 꿰뚫고 땀에 심어졌다. 이로써 벽돌은 완벽하게 집을 이루는 벽이 되었다.

“도스! 목재도 꺼내!”

“트레스. 물론이지!”

도스가 동시에 손을 뻗었다. 도스의 수염이 휘날리며 그 손에 한 손 망치가 나타났다. 머리 부분이 유난히 큰 한 손 망치는 얼마 전에 본 히어로 영화 속 주인공의 그것과 비슷했다.

“망치의 신이시여! 그대의 창고를 빌려주소서!”

도스가 바닥에 망치를 내려쳤다. 망치를 중심으로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그 마법진 위로 빛과 함께 무언가 나타났다.

합판으로 잘 가공된 목재 더미였다.

“아공간 창고 같은 건가?”

“드워프는 모두 망치의 신이 빌려준 개인 창고를 가지고 다니오.”

도스는 그렇게 대답하며 목재를 어깨에 들쳐 맸다.

“트레스. 바로 내부 작업 들어간다!”

“도스. 좋다! 바로 시작해! 나도 돕겠다.”

“엘프. 미안하지만 한 번 더 도와주겠소?”

“좋아요. 얼른 마무리해요.”

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드워프와 함께 마루 및 내부 도배 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움들도 그들을 지원했다.

그렇게 다시 4시간쯤 됐을까. 달이 중천에 떴을 무렵.

“정말 완성했어.”

“진짜 대단하네요.”

마당과 연못은 없지만, 어지간한 전원주택보다 멋진 벽돌집이 만들어졌다.

“신농. 고맙소! 덕분에 일찍 끝낼 수 있었소.”

“아니에요. 모두의 도움 덕분이죠. 그리고 워낙 세 분이 대단하기도 했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던 건 노움과 움의 역할도 컸다.

하지만 그만큼, 저 간단하지만 엄청난 벽돌. 순식간에 만들어 낸 완성도 높은 철근. 10분도 걸리지 않아 완성한 설계도.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목재와 어디 하나 삐걱거리는 것 없이 진행한 작업 과정까지.

‘드워프들의 공이 가장 컸어. 분명 우리가 없었어도 하루 안에 완성했겠지.’

올라간 광대가 내려올 줄 모를 정도로 연신 미소가 지어졌다.

그건 성공한 덕후로서의 만족감도 있었다. 하지만 더 큰 건 기대였다.

‘앞으로 뭘 더 만들고 짓게 될지 기대가 되잖아?’

그들이라면 분명 어렵고 까다로운 주문도 수월하게 해내리라. 김서준은 자꾸만 그 웃음이 음흉해지려는 걸 겨우겨우 막아내야 했다.

“그 웃음을 보니 신농도 보람찼나 보군. 하여튼 앞으로 잘 부탁하오!”

“물론이죠.”

“그나저나 저렇게 달이 중천이라니, 저녁을 먹기는 좀 늦었군. 그건 미안하게 됐소.”

김서준이 시계를 확인했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저녁 9시면 이 세계에서는 술 한 잔 걸치기 딱 좋은 시간인데. 혹시 피곤한 건 아니죠?”

‘술’이라는 단어에 삼 형제가 펄쩍 뛰며 말했다.

“신농! 그 무슨 섭섭한 이야기오! 이렇게 근육이 탄탄한 우리고 이 정도에 피곤할 리가 있소?”

“맞소! 이제 시작이오!”

“우리를 빼놓고 파티를 한다면 곤란하오!”

그 반응에 김서준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노움은 괜찮아? 엘린도 괜찮죠?”

“먹는 건 항상 좋습니다움!”

“물론이죠. 일했더니 배고프네요.”

“리노도 순찰 그만 돌고 이제 오라고 해야겠네요. 환영 파티를 해야 하니까요.”

그 말에 드워프 삼 형제가 클클 웃으며 좋아했다.

김서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런 삼 형제에게 말했다.

“저 요리할 때 그 가마 써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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