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정자만들기(2)
또 몬스터가 넘어온 건가.
아니면, 이계의 존재라도 넘어온 걸까.
김서준은 걱정과 함께 전력으로 질주했다. 노움도 이상한 눈치를 챘는지, 먼저 와 있었다.
“노움?”
김서준과 엘린은 노움의 옆에 섰다. 그리고 노움이 넋을 잃고 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이게 뭔 일이지?’
늑대라고 해도 믿을 만한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를 가진 7마리의 들개들이 쭉 늘어섰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거대한 반달곰이 하얀 솜뭉치 같은 리노를 등에 태우고 있었다. 흡사 무슨 즉위식이라도 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리노 공! 어떻게 된 거냐움!”
김서준이 묻기도 전에 놀란 노움이 먼저 나섰다.
“멍!”
리노가 말하자 반달곰이 몸을 낮췄다. 폴짝 등에서 뛰어내리는 리노. 리노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모두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멍멍!!”
그러자 노움이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나무를 발견했는데 자기 나무라면서 달려왔다는 겁니까움?”
“멍멍멍!!”
“그래서 한 방에 쓰러뜨렸더니 자길 형님으로 모신다고 했다는 겁니까움?”
“멍멍!”
“저 개들도 리노 공을 우두머리로 모시기로 했다는 겁니까움?”
“멍!”
“리노 공! 이제 이 산의 왕이 된 겁니까움! 역시 제 라이벌답습니다움!”
둘의 대화를 듣던 엘린과 김서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곰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다니. 엘린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짜 에인션트 울프답네요. 멋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리노의 머리를 쓰다듬자, 리노가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곤 김서준을 바라봤다.
‘귀여운 녀석.’
눈에 기대가 잔뜩 어려있었다. 살짝 고개를 들이미는 게 어서 칭찬하라는 모습이었다.
김서준은 리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리노의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멍멍!!”
“그래. 이제 산의 경비는 진짜 리노한테 맡기면 되겠다.”
김서준이 리노의 마음을 읽고 대답했다.
하지만 반쯤은 진심이었다. 엘린의 마법은 대단했지만, 산 전체에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이제 농원을 만들 계획. 더더욱 무단침입하는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저 동물들이 눈과 귀가 되어서 그런 사람들을 감시하고 몰아 내주면 엄청 도움이 되겠지.’
김서준은 기특하다는 생각에 리노를 한 번 더 만져주고는 곰과 들개들을 바라봤다. 다들 리노의 명령을 받아 얌전했다.
“리노 공. 만져봐도 되겠습니까움?”
“멍멍!”
“그럼 저도···.”
엘린과 노움이 들개와 곰을 쓰다듬었다.
‘의외네.’
들개들은 의외로 손길을 낯설어했다. 딱딱히 굳은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반면 곰은 손길을 즐겼다. 살짝 몸을 비비는 게 사람 손이 익숙해 보였다.
‘저건?’
그러고 보니 목에 이상한 장치를 차고 있었다. 김서준은 조심스레 장치를 살펴봤다.
목에 있는 장치는 파손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KM51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런 야산에 웬 곰인가 했더니, 방사했다는 반달곰 중 하나가 여기까지 흘러온 건가?’
순간 고민에 휩싸였다. 반달곰은 멸종 위기종. 거기에 이 녀석은 고장 난 발신기까지 차고 있지 않은가?
‘역시 신고해야겠지.’
김서준이 조심스레 말했다.
“리노야. 저기 들개들은 몰라도 이 녀석은 아무래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거 같은데···.”
리노와 곰 모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산이 집인데 어디로 간다는 지를 묻는 눈치. 김서준은 좀 더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연구소에서 나온 거 같아. 그래서 연구소로 돌려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리노가 울상을 지었다. 반달곰이 의아하다는 듯 리노를 바라봤다. 리노는 교감을 통해 김서준의 말을 전달했다.
“구오오오...”
반달곰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울었다.
“가기 싫은 거야?”
그러자 리노와 곰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흠···.”
글썽이는 눈으로 보는 리노와 반달곰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아마 방사한 곰일 테니까, 이 산만 안 벗어나고 사고만 안 치면 굳이 돌려보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곰도 원하지 않고.’
김서준은 고민 끝에 리노와 반달곰에게 말했다.
“좋아. 대신 약속해. 절대 사람을 공격하면 안 되고 이 산 밑으로 내려가면 안 돼. 알겠지?”
리노와 반달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준은 둘의 머리를 쓰다듬곤 일어났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구오.”
“멍멍!!!”
“멍!”
가볍게 인사를 한 후, 가장 먼저 들개들과 반달곰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리노처럼 집안으로 들일 건 아니었지만, 이름은 필요했다.
“반달곰은 반달이. 들개들은 제일 큰 녀석부터 차례대로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오호, 육호, 칠호. 어때요?”
단순하지만 간단하고 외우기 쉬운 이름으로 정해보았다. 노움과 엘린은 괜찮다고 했는데, 리노는 아쉬워했다.
아무래도 마이클 베어 레오닐 3세 같은 이름을 바라는 듯했다.
“이번에는 안 돼. 외우기 너무 힘들어. 그리고 저 7마리는 더더 힘들 거고.”
“멍···.”
안타까워하는 리노와 달리 반달이와 일호 가족은 맘에 들어했다.
이름까지 전부 정한 김서준은 이제 오늘의 본론, 나무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먼저 리노가 찾은 나무를 확인했다.
“꽤 깊게 들어가네요.”
리노가 찾은 나무는 반달이가 돌아다니다 간식이 먹고 싶을 때 들르는 나무라고 했다. 반달이는 더 좋은 나무가 있다며 일행을 안내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곧게 뻗은 신갈나무(‘참나무’과 나무)가 무성한 숲이 나타났다.
“와, 목재로 쓰기 엄청 좋아 보이네요.”
엘린의 말대로였다. 도토리를 주렁주렁 연 신갈나무는 무늬도 예쁘고 형태나 굵기도 적당해서 목재로 가공하기도 딱 좋아 보였다.
“리노 공. 정말 대 단하다움. 이번에도 내가 졌다움.”
노움이 곧바로 패배를 인정했을 정도였다. 김서준과 일행들은 천천히 나무를 살폈다.
‘여기에 신갈나무가 이렇게 많은 곳이 있었다니···.’
반달이는 저기 열린 도토리를 주식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생긴 건 하루에 멧돼지 한 마리씩 잡아먹을 거 같은데 의외의 식성이었다.
“원래 반달곰은 도토리가 주식이래요.”
신기한 건 엘린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 우연히 봤다는데, 김서준은 뭘 하면 우연히 반달곰의 식성을 보는 건지 궁금했다.
“고마워 반달아. 그리고 리노.”
자신의 터전이자 식량을 나눠준 반달이에게 김서준은 다시 한번 인사했다. 반달이는 김서준에게 몸을 비비며 좋아했다.
“그럼 바로 작업할 테니까, 다들 조금씩 물러나세요.”
김서준은 ‘케레스의 농기구’로 도끼를 소환하며 나무로 다가갔다. 그리곤 거침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역시 케레스의 농기구 답네.’
도끼는 도마 위 무를 자르는 칼처럼 아주 쉽게 나무를 베어냈다. 휘두른 김서준 마저 놀라울 정도로 잘 들었다. 그렇게 자른 나무를 엘린이 마법으로 건조 시킨다.
"고열로 수분을 날리는 게 아니라, 물기가 공기중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게 하는 마법이라 뒤틀리거나 하지 않아요. 우리 엘프들의 비전 마법이죠."
엘린의 설명대로 김서준이 밴 나무는 형체를 그대로 유지한 체 잘 건조 되었다.
'마법은 진짜 편하다. 배울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아쉽지만, 어차피 엘린이 있으니 괜찮았다.
이렇게 구해준 목재는 동물들과 함꼐 힘을 합쳐 옮겼다. 동물들은 김서준이 밴 목재를 옮겨주고 산으로 돌아갔다.
“아쉽지만, 너희는 산에서 사는 게 더 좋을 테니까.”
“멍멍!”
“구오!”
반달이와 일호 가족도 그렇게 생각했다. 리노는 아쉽지만, 내일 또 놀기로 하고 인사를 나눴다.
재료가 전부 갖춰지자, 오두막 짓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여기랑 여기 땅 좀 파 줘. 깊이는 노움의 키만큼.”
“움!!!”
노움과 움들은 김서준의 지시대로 땅을 팠다. 그다음 삽과 노움의 마법으로 땅을 평평하게 다진 뒤 그 위에 주춧돌을 심었다.
“자, 조심해서. 하나, 둘, 셋!”
다 같이 힘을 모아 그 위에 신갈나무 기둥을 세웠다.
“벌써 그럴듯한데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엘린은 감탄하듯 말했다.
“이제 시작이죠. 완성되면 훨씬 멋질 거에요.”
이후는 더 간단했다.
아까 스테인을 발라둔 목재를 설계도대로 조립만 하면 됐다.
노움과 엘린, 리노가 판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각을 맞춘다. 그러면 김서준이 타카로 고정했다.
-팍!
버튼 한 번이면 못이 박히는 게 신기했는지, 리노와 노움은 또다시 초롱초롱한 눈으로 타카를 바라봤다.
“안 돼. 위험해.”
하지만 총처럼 못을 발사하는 타카는 정말로 위험해서 이번에는 철저히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정자 만들기 자체가 재밌어서 리노와 노움은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마루까지 다 깔았으니 다음은 지붕 차례. 지붕을 조립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엘린의 부유 마법으로 공중을 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진짜 편하네요. 감사해요.”
“에이. 이게 뭐 대단하다고요. 엘프는 다 이렇게 작업하는 걸요?”
덕분에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일 없이 손쉽게 지붕조립도 마쳤다.
그렇게 몇 시간 후.
“흠···. 괜찮은데?”
3D 스케치 프로그램으로 설계한 거보다 완성품이 더욱 예쁘게 나왔다.
“맞습니다움! 예쁩니다움!”
“잘 지은 거 같은데요?”
“멍멍.”
모두가 감탄할 만한 정자가 완성되었다. 다들 스스로 만든 정자가 맘에 들었는지, 꽤 감격한 모습이었다.
김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들 이리 모여봐요. 우리 셀카 한 장 찍죠.”
그렇게 기념 샷으로 오두막 만들기는 마무리되었다.
****
“귀농 생활 한번 제대로 하는구먼.”
정자에 앉은 임종철이 가볍게 바닥을 두드렸다. 마루 밑에 나무를 덧대어 놓은 게 느껴졌다. 접합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튼튼해 보였다.
“깔끔하네. 이걸 정말 다 직접 만든 겨?”
“다 같이 만들었습니다.”
김서준이 옆에 둘러앉은 엘린과 리노, 노움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엘린이 대답했다.
“서준 씨가 다 했죠. 저희는 옆에서 거들기만 한 걸요.”
“그려. 너무 겸손하지 말어. 요즘은 겸손하면 손해여.”
임종철이 웃으며 엘린에 말에 덧붙였다.
“근디, 진짜 신기하네. 이제 초겨울 날씨인데, 여기만 선선하니 딱 좋구먼.”
“제 힘을 좀 활용해봤습니다.”
김서준이 옆에 흙바닥을 보며 말했다.
“저기에 나무를 심고 이 주변을 신농의 땅으로 설정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지은 정자나 다름없다, 그거구먼. 참 편한 능력이야.”
임종철은 껄껄 웃으며 논밭을 바라봤다. 김서준도 그를 따라 시선을 저 멀리 풍경으로 던졌다.
푸르른 논밭. 선선한 공기. 옆에는 즐거워하는 리노와 노움. 그리고 엘린과 어르신.
-아삭.
맛좋은 개구리참외까지.
모든 게 머릿속의 이상 그대로였다.
‘매일 오늘만 같으면 좋겠네.’
김서준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을 때, 임종철이 말했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운치가 있는 게 술이 당기는구먼. 특히 밤에 선선한 바람 쐬면서 술 한잔 걸치면 기가 막히 겄어.”
듣는 것과 동시에 그 풍경이 머리에 그려졌다. 풀벌레 소리와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마시는 술이라니.
‘진짜 어르신 말대로 꿀맛이겠네.’
그런데 임종철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근디 조금 아쉽구먼.”
“네?”
“이거 말이여. 이 천장 때문에 하늘이 잘 안 보일 거 같구먼. 밤에 술을 마실 때는 술 한 잔에 별빛 한번, 달빛 한번 봐야 하는 디.”
낮에는 좋은 그늘이지만, 밤에는 어르신의 말대로 가림막이 되어 버린다.
‘밤에도 쓸 수 있게 하려면 지붕을 바꿔야겠는데. 열리게 해볼까?’
머릿속에 돔구장처럼 열리는 지붕이 떠오른다. 그 위로는 쏟아지는 별빛이 보일 테고.
그 별을 보면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이라.
‘너무 좋은데? 그런 힐링이 또 없겠어.’
상상만으로도 감성에 젖는 기분. 김서준은 당장에라도 시작할 기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바꿔보겠습니다.”
“너무 무리허지는 말고. 그냥 내가 아쉬워서 그려. 여기가 너무 좋아서.”
“아닙니다. 정말 좋을 거 같네요. 곧 고쳐서 조만간 여기서 술 한상 대접하겠습니다.”
“그럼 나야 고맙지.”
두 사람이 환하게 웃자 옆에서 듣고 있던 엘린이 말했다.
“저도 끼워주셔야 해요.”
“아, 물론이지.”
임종철이 반색하며 환영했다. 김서준 역시 당연히 함께하자며 맞장구를 쳤다.
“그건 그렇고. 연구는 어떻게 되어 가는가?”
그 말에 엘린과 김서준이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인 둘. 이내 엘린이 말했다.
“안 그래도 연구 관련해서 부탁할 게 있어요.”
“부담 없이 도울 일 있으면 뭐든 말혀.”
엘린이 감사하다고 대답하며 활짝 웃었다. 보는 이마저 기분 좋게 만드는 그 웃음에 임종철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럼 제가 어르신 작물에 저주를 좀 걸어봐도 될까요?”
“저, 저주를 걸겠다고? 다른 마법도 아니고 저주를?”
엘린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순간 임종철과 김서준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