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34화 (34/139)

34. 외출

[132,080,230원]

계좌에 찍힌 돈을 본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달도 7천만 원 정도네.’

감자 사업은 순항 중이었다. 아니, 대박이었다. 밭의 규모는 작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남들의 2배 가까운 양을 수확하고 팔았다. 투자금은 노움 덕에 제로에 수렴했다.

덕분에 매달 7천 이상의 수익을 보고 있었다.

‘감자 농사로 억대 연봉을 볼 줄이야.’

모아놓은 돈으로 농사지으면서 소소하게 살아가려 했건만. 신농이 된 덕에 은퇴 이후 오히려 더 큰돈을 버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돈을 벌었으면 써야겠지?’

김서준은 어떻게 이 돈을 쓸까 고민했다. 결론은 빠르게 귀결됐다.

‘농원을 만들어야겠어.’

밭농사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은 일이라면 농원은 김서준의 개인적인 꿈 중 하나였다.

하얀 풍차에 넓은 들판. 그 안에 뛰노는 양과 소들. 그리고 농원을 쭉 두르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들까지.

‘그때 정말 좋았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갔던 농원은 김서준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한동안 집 뒷산을 농원으로 만들겠다며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계획을 늘어놓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다.

‘사실 헌터 일하면서는 생각조차 못 했던 꿈이지만...’

다시 농사를 짓고 있으니 어릴 적 꿈이 다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거기에 금전적 여유가 불을 지폈다.

‘다양한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고.’

과수, 논, 나무, 심지어 가축 농사 등 한번 농사의 재미를 알게 되니 다른 분야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더군다나 저변을 넓혀놓으면 다음 세계수가 주는 퀘스트에도 분명 도움이 될 거고.’

동시에 지금 해결해야 할 ‘터전’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투자기도 했다. 농원이 잘 조성되어 마을에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 슈퍼처럼 더 많은 기반 시설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럼 마을도 커지고 다들 더 마을에 애착이 생기겠지.’

물론 조금 시간은 걸릴 이야기긴 했지만.

‘시간은 많아 급할 필요 없지. 천천히 하자. 산을 조금씩 사들이는 거부터 천천히.’

김서준의 땅은 뒷산 중 아버지의 묘가 있는 부분과 세계수를 심은 부분 정도. 그 주변 땅을 사들이는 것으로 농원 만들기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난 가면 치킨 먹을꺼다움!”

“저도요. 치킨이라는 게 진짜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전이라는 것도 먹어보려고요. 막걸리랑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있대요!”

“멍!!”

“그런가움? 좋다움! 그것도 먹겠다움!”

“노움님은 안되세요. 막걸리는 술이거든요. 대신 사이다 어떠세요?”

“흠, 어쩔 수 없겠다움. 신농님이 술은 안 된다고 했으니까움. 알겠다움!”

“멍멍!”

저렇게 시장에 간다고 들떠 있는 걸 보니, 지금 부동산으로 가면 난리가 날 듯했다.

김서준은 아무 내색 없이 핸들을 꺾어 시장으로 향했다.

시골이지만 장날인 만큼 역시나 붐볐다. 일대의 주민이 전부 모인 듯했다.

“사람도 많고. 팔고 있는 과일이랑 채소도 많아요!”

“먹을 것도 많습니다움!”

“멍멍!!”

다들 차창에 얼굴을 들이밀고 정신없는 사이, 김서준은 주차장을 천천히 돌고 있었다.

“차 댈 데가 별로 없네.”

흙바닥에 선도 없는 투박한 주차장이 이런저런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김서준이 같은 자리를 한 바퀴 더 돌려는 순간 노움이 말했다.

“저기 있습니다움!”

김서준은 노움의 눈썰미에 감탄하며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차와 차 사이, 딱 한대가 더 들어갈 공간이 있었다.

“자, 그럼 다들 내릴까?”

김서준은 마치 유치원 소풍 인솔 나온 선생님처럼 셋을 옆에 꼭 붙였다.

“지켜야 할 게 뭐 있죠?”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되죠.”

“날아다니면 안 됩니다움!”

“멍!”

“좋았어. 갑시다.”

아주 귀여운 강아지와 그 강아지를 탄 작은 정령. 거기에 영화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요정까지.

“애가 아주 귀엽네.”

“외국인인가 본디 무지 예쁘구먼.”

“저 강아지 봐유. 너무 귀엽구먼유.”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그들을 보며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과한 관심에 혹시나 부담스러워할까. 걱정에 김서준이 셋을 힐끔거렸다.

‘그럴 틈이 없구나.’

셋은 시장을 구경하느라 빠져서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은 연신 이어지는 새로운 먹거리와 풍경에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서준 씨, 저거...”

“신농님. 저 빵을...”

“멍..”

“안 돼요. 밥부터 먹고 먹읍시다.”

맛있는 것이 즐비한 거리에 자꾸만 정신이 팔리는 일행들을 겨우 갈무리해, 김서준은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홍두깨 칼국수]

간판도 아니고 현수막으로 걸어놓은 가게 명이 보였다. 그 앞에는 길게 늘어선 손님들도 보였다.

“여전히 인기가 많네. 가격도 여전하고...”

아버지와 시장에 올 때면 꼭 들르던 식당이었다. 가격은 3,000원밖에 안 하고, 아주 단순한 모양이었지만 맛은 기가 막혔다.

‘헌터 때도 생각나곤 했지.’

김서준이 고인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이리로 줄 서요.”

줄을 선 셋의 얼굴이 설렘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외식은 셋 다 처음이구나.’

매번 김서준이 주는 음식 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는 셋이 저렇게 설레는 건 당연했다. 김서준은 괜히 미안했다.

‘어떻게 보면 해외 나온 거나 마찬가지인데. 자주 이렇게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가야겠네.’

-쿵!

그때 탁자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고개가 소리의 근원 쪽으로 휙 돌았다.

“아, 여전히 하시는구나!”

투명 타폴린(포장마차에 쓰이는 재질)으로 만든 천막 뒤 밀가루 포대가 잔뜩 쌓여있는 철판과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이 가게는 줄을 서 있는 동안 제면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진짜 반갑네.’

덩치가 조금 있는 아주머니는 패대기친 반죽을 홍두깨로 폈다. 그리고는 얇게 핀 반죽을 여러 겹으로 포개며 중식도 한 자루를 꺼냈다.

“잘 보세요. 이게 하이라이트입니다.”

김서준의 말에 셋이 눈을 빤짝였다.

-착! 착! 착! 착!

기계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칼이 반죽을 잘라 나갔다. 셋의 입에서 자연스레 감탄이 터져 나왔다.

“엄청나요. 장인이네요. 정말.”

“정말 멋지다움! 완전 소드마스터다움!”

“멍!!!”

자기 칭찬도 아니건만. 김서준은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두어 번 면 만들기를 더 봤을 때, 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날이 조금 쌀쌀했지만, 김서준은 일부러 바깥 자리에 앉았다.

‘저 좁은 데에 리노 데리고 들어가면 서빙하는 분도 불편하겠지.’

밖에 앉은 김서준은 곧장 소리쳤다.

“사장님 여기 칼국수 4개요.”

“네! 여기 칼국수 4개요!”

아주머니는 주문 접수와 함께, 수저와 김치를 내려놓았다.

“김치 매우니까 조심해요.”

김서준의 경고에도 과감하게 김치를 집어 든 엘린은 지난번처럼 얼굴이 빨개져 입에 부채질했다.

“그, 그래도 하, 맛있어요.”

그리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엘린.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엘프야. 근데 노움은 잘 먹네.’

아니 약간 음미를 하는 듯했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애늙은이 같다니까.’

근데 또 웃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귀여운 조카였다. 지금처럼.

잠시 후.

메뉴가 나왔다. 인사 후 엘린과 김서준은 수저를 들었다. 노움은 마법으로 소환한 개인 포크를 꺼냈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움”

“잘 먹을게요.”

“멍!”

김서준은 첫 국수를 입에 넣었다. 곧장 국수가 담긴 대접을 들어 국물을 호로록 들이켰다.

‘이거지.’

뜨끈한 국물. 짭조름하면서도 진한 사골육수. 대충 넣은 듯한 호박과 당근, 그리고 김 가루와 미원의 감칠맛까지.

추억 속의 그 맛 그대로의 맛이 입안에 몰아쳤다. 한껏 그 맛을 즐기던 김서준이 다시 한번 젓가락을 움직였다.

-아삭.

겉절이가 입안에서 아삭하게 씹혔다. 맵고 시원한 맛이 깔끔하게 입을 가셔줬다.

‘겉절이까지 여전하네. 좋다.’

한참 먹던 김서준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식탁이 너무 조용했다.

모두 말없이 먹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다만 엘린은 귀를 쫑긋거리기를 반복했고. 노움은 중간중간 ‘움.’ 하는 감탄을 뱉었다.

리노 역시 그릇에 머리를 박고 흡입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저거 봐, 강아지가 칼국수를 먹어.”

“저거 먹어도 되는 건가?”

“근데 잘 먹는데? 괜찮은가 봐.”

“와, 강아지도 저렇게 먹을 정도면 여기 진짜 맛있나 보다.”

주변 손님들이 수군거릴 정도였다.

‘다들 맛있나 보네. 다행이다.’

김서준은 안도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이어갔다.

칼국수로 시작한 시장탐방은 끊임없는 맛 기행으로 이어졌다.

“이래서 드라마 주인공들이 치킨을 그렇게 많이 먹는 건가요? 진짜 맛있어요!”

“생선 모양인데 생선 맛이 아니다움! 완전 달콤하다움! 안에 든 이 흰색은 뭐냐움!”

“멍!!! 멍!!!”

배부를 만도 한데, 끊임없이 먹는 세 사람을 보고 김서준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뭘 먹을까요?”

“전을 먹자움!”

“그래요.”

“멍!”

김서준이 이미 꽉 찬 배를 만지며 말했다.

“또 먹어요?”

“물론입니다움!”

“아직 괜찮은걸요.”

“멍멍!”

“...갑시다.”

김서준은 세 사람이 자신의 위 크기를 조절하는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코스를 마친 셋은 뿌듯한 표정으로 시장을 나오고 있었다.

“진짜 이 세계는 맛있는 게 많네요.”

“멍멍!”

“닭강정? 난 칼국수가 제일 좋았다움!”

‘그래도 즐거워해서 다행이네.’

문득 김서준은 자신의 광대가 뻐근하다는 걸 느꼈다. 너무 많이 웃은 탓이었다.

‘하긴 이렇게, 웃은 거 오랜만이지.’

김서준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기분 좋은 날씨. 한적한 오후. 좋은 요정과 정령, 그리고 늑대까지. 이 행복한 날의 공기를 기억하고 싶었다.

“음?”

주차장에 도착한 김서준이 놀라 눈을 좁혔다.

주차 위치와 번호판. 외형. 모든 게 익숙했다.

“내차 맞는데?”

김서준의 차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뭐야?”

자세히 보니 차 한 대가 김서준의 차를 비롯한 양옆의 차를 모두 막고 있었다. 김서준은 서둘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하. 이 자식들 또 이러고 갔네.”

“참아야죠. 괜히 밉보였다가 또 뭔 일 날 줄 알고요.”

“오늘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려나. 에휴.”

근심이 가득한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평만 늘어놓고 있었다. 김서준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혹시 차주랑 연락이 안 되나요?”

김서준이 차를 막고 있는 스타렉스를 보며 물었다.

“아, 이 검은색 차 주인이슈?”

머리가 살짝 벗겨진 배가 나온 아저씨가 물었다. 김서준이 대답했다.

“네. 이제 나가려고요.”

“에휴. 그 형씨도 이넘들 올 때까지 좀 기다려유.”

“이놈들이면, 이 스타렉스 차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려유. 이 차주들이 여기 경비한다고 새로 온 헌터들인데 아주 쌍놈들 이유. 맨날 이렇게 차 대놓고 뭔 임무랍시고 술 처먹고 온다니까. 이번에는 재수 없게 우리가 걸린 거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헌터 관리국은 상비 경비를 두지 않는다. 아니, 그럴 여력이 없었다. 언제나 인력난에 시달리지 않던가?

게이트가 열리면, 경고문자와 함께 출동하는 것도 겨우 감당할 정도.

그런 헌터관리국이 하물며 이런 촌구석은 더더욱 상비 경비를 둘리 만무했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불법주차잖아요. 그냥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넘들 헌터관리국 소속이라고 하니까, 경찰도 설설 기더구먼. 와 봤자 기다리라 하고 갈겨.”

뭔가 한참 잘못됐다.

‘사기꾼? 아니면 비리인가?’

아저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뿐이여? 특수 경비 자금이라고 세금도 걷는다니께. 몬스터에, 헌터까지. 요즘은 진짜 떠나야 한다 싶다니까.”

그 말에 옆에 있던 주민들이 거들었다.

"그러니까. 저번에 순이 네도 서울로 올라 갔잖여."

“횡포를 부릴 곳이 없어서 이런 작은 마을에서···. 에휴, 지랄도 풍년이여. 아주."

이렇게 둘 수는 없었다. ‘금천면’은 중요했다. 금산마을이 속해있는 면이면서 동시에, 종자의 터전이 될지도 모를 동네가 아니던가.

‘그런 동네가 양아치들 때문에 파탄 나게 생겼네.’

김서준은 차 앞 유리를 확인했다. 당당하게 적힌 전화번호. 그 위에 더 당당하게 붙어있는 헌터증이 보였다.

‘가지가지 하네.’

헌터니까 건들지 말라는 위세라도 부리겠다는 건가.

'등급이 B급?‘

느낌이 왔다. 어떤 부류인지. 김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여기 금천장 주차장인데요. 차 좀 빼주세요.”

[임무 중이라 안 돼요. 기다리세요.]

“무슨 임무 신데요?”

[비밀임무라서. 그냥 좀 기다려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비밀은 개뿔.’

김서준은 애써 인내심을 발휘해 침착하게 다시 한번 물었다.

“10분 내로 올 수 있습니까?”

[못 가요. 바빠서 이만···.]

“나도 바빠요. 그러면 그냥 견인합니다?”

[뭐? 견인?]

잠깐의 정적 후, 남자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그거 건드리면 감당 못 할 텐데···.]

한숨이 절로 나오는 말에 김서준이 목소리를 깔며 물었다.

“감당할 수 있으면. 그러면 내 맘대로 해도 되냐?”

[반말? 아저씨. 소문 못 들었어?]

“반말을 네가 먼저 했고. 된다는 이야기로 알겠다.”

뚝.

김서준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물었다.

“어떻게 온다고 혀유?”

“제가 그냥 견인하기로 했어요.”

“견인한다고? 그러다 또 큰일 나유.”

노움과 엘린, 리노를 한번 힐끔 바라본 김서준이 씽긋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고 잠깐 뒤로 다들 물러나 주실래요?”

김서준의 말에 사람들이 멀찌감치 물러났다.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물러났다.

그럼 금천면을 더럽히는 양아치를 한번 교육 좀 해볼까.

“소환. 트랙터.”

-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