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뭐야, 이게...?
아침부터 조깅을 나온 김서준은 곧장 세계수로 향했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못 본 기기들과 세계수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다행이야.’
쉴드 발생기나 마법 장치 모두 손상 없이 무사했다. 입구에 세워둔 값싼 센서 몇 개가 부서졌지만, 골렘이 등장했는데 이 정도로 끝인 건 천운이었다.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아리아.”
김서준이 세계수 앞에 서서 말했다. 순간 미풍이 불며 세계수가 흔들렸다. 마치 손을 흔들 듯 세계수의 가지가 살랑거렸다.
세계수와 인사를 마친 리노와 노움은 곧장 송이버섯으로 향했다. 리노의 꼬리가 격하게 흔들렸다.
“드디어 그 날이다움!”
“멍!!!”
노움도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매번 아침 산책마다 저 앞에서 군침을 흘리던 녀석들이 아니던가.
“자자. 진정하고. 내가 캐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노움은 새로 나기 시작한 송이버섯 개수 좀 확인하고.”
“알겠습니다움!”
버섯을 따기 위해 몸을 숙이자 은은한 솔향이 올라왔다. 향만으로도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잘 자랐네.”
대부분 10cm가 넘는 길이에 두께도 손가락 3개 수준. 거기에 갓과 몸통의 굵기가 비슷한 모양으로 임종철이 말한 최상품의 조건을 모조리 갖추고 있었다.
-탁.
김서준은 하나씩 조심스럽게 버섯을 채취했다. 가져왔던 봉투가 금세 가득 찼다.
김서준이 버섯을 전부 캐자 노움이 쪼르르 날아왔다.
“새로 자라는 버섯은 30개 정도입니다움!”
“다음에는 더 많이 자라겠네.”
신농의 힘이 강해지는 덕분일까. 점점 자라는 축복받은 송이버섯의 양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좀 아쉬워. 진짜 맛도 좋고 몸에도 좋아서 많이 나면 참 좋았을 텐데.’
김서준이 아쉬운 마음에 소나무의 기둥을 툭툭 쳤다. 그때였다.
[신농(神農)의 농사 숙련도가 높아졌습니다. 더 많은 나무에 축복 부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축복받은 나무의 수 : 3그루]
[최대 축복 가능한 나무의 수 : 10그루]
[7그루를 추가로 지정해주세요.]
“!!!!”
김서준의 눈이 휘 동그래졌다.
‘이렇게 확인을 해야 하는 거였구나!’
자라나는 버섯 수가 많아지길래 뭔가 다르다고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축복을 추가로 내린다던가, 어떤 능력을 부여할 만큼 힘이 강해졌을지는 몰랐다.
‘그나저나 이거 대박이잖아?’
3그루에서 30개의 송이버섯을 재배했는데, 이제 10그루로 늘어난다? 단순 계산하면 100개 정도. 이제 약 10kg의 축복받은 송이버섯을 한 달에 한 번은 채취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무슨 일입니까움?”
노움이 놀라 물었다. 김서준이 씽긋 웃었다.
“좋은 일.”
****
다양한 모습으로 푸른 싹을 뻗은 작물들이 텃밭을 완연하게 덮어버렸다. 그 위로는 이제 곧 재배 시기가 된다는 둥근 알림이 떠 있었다.
“움! 움! 움! 움!”
오늘도 어김없이 노움과 움들은 잡초 제거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최전방에서 함께 작업하던 김서준은 임종철의 방문에 잠시 밭을 벗어났다.
“오셨습니까?”
“잘 자랐구먼. 이번에도 풍작이여.”
“어르신의 가르침 덕입니다. ”
“아녀. 내가 뭐한 게 있다고. 그나저나 토종작물도 이렇게 잘 키워내고. 이제 프로 농사꾼이 다 되었어.”
“하하, 과찬이십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김서준이 멋쩍게 웃었다. 임종철은 그런 김서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 겸손마저 좋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첫 수확은 내일쯤 하면 되려나?”
“네. 그럴 거 같습니다.”
“텃밭에서 작물을 수확했으면 바로 요리를 해야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천 평의 땅이 장사라면 적겠지만, 텃밭으로는 꽤 컸다. 거기에 다른 농부에 비해 수확량도 많은 김서준이 아니던가.
“마을 분들께 재배한 작물을 좀 나눠 드리고 싶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어차피 저 먹을 양은 이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남아봐야 보관할 곳도 없고. 그래서 마을 주민분들에게 토종작물이 어떤 맛인지도 알려 드리고요.”
“하긴 다들 토종 종자로 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을 테니께. 나누면서 동시에 토종 작물을 홍보하는 일이겠구먼. 아주 좋은 생각이여.”
임종철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김서준을 바라봤다. 그 눈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졌다.
‘참 기특한 녀석이여.’
임종철이 김서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어르신, 시간 되시면 제가 식사를 한번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음?”
“덕분에 기르기 시작한 첫 작물이니까요. 어르신과 여사님께 가장 먼저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토종작물로 만든 요리를 우리에게 첫선을 보이고 싶다. 그건가?”
“그렇습니다.”
“물론 좋네만······.”
임종철이 대답에 뜸을 들였다.
‘왜 그러시지? 뭐가 걸리시는 게 있으신가?’
예상외의 반응에 의구심이 일었던 그때. 임종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네 생각도 좋지만, 내게 더 좋은 생각이 있는구먼.”
“좋은 생각이요?”
임종철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웃음이 재밌는 장난을 앞둔 소년처럼 보였다.
“아녀. 아녀.”
임종철이 손사래를 쳤다.
“근디 고건 무엇이여?”
임종철이 김서준이 옆에 놓아둔 스티로폼 상자를 보고 물었다.
“아, 이거 마침 드리려고 했습니다. 저번에 드렸던 축복받은 송이버섯입니다. 이번에는 좀 많이 자라서요.”
순간 임종철의 동공이 커졌다.
“그게 참말이여? 그 송이버섯이라고?”
“네 10뿌리 정도 담았습니다.”
“그 귀한 걸 10뿌리나? 이거 고마워서 우쨔.”
“아닙니다. 어르신. 도와주신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소소하죠.”
임종철이 슬쩍 눈을 좁히며 물었다.
“혹시 말여. 이거 인공 재배가 가능한 건 아니지?”
의심과 기대를 담은 듯한 질문. 김서준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그냥 운이 좋아서. 잘 자라는 위치를 찾은 거죠.”
비록 10그루로 늘었다지만, 인공 재배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재배하는 터를 찾았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했다.
“그렇구먼. 여튼 이거 너무 귀한 선물을 받았어. 다음부터는 이렇게 선물로 주지 말고 나한테 팔게나.”
“어르신께 어떻게 제가···.”
“아냐. 아냐. 이런 귀한 걸 선물로 받을 수는 없지. 저거 한 상자면 100만 원 내고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텐데 말이여.”
김서준이 흠칫했다. 송이버섯이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전에 kg당 20만 원쯤에 사 먹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래도 뛰어나니까 한 30~50만 원 정도일 줄 알았는데···.’
임종철이 말한 가격은 상상도 못 한 가격이었다.
“반응을 보니까 몰랐나 보구먼.”
“네. 그 정도일 줄은···.”
“최상품 송이버섯은 1kg에 50만 원이 넘지. 근데 이건 그보다 더 좋지 않은가? 게다가 말이여. 게다가 먹어봐서 알겠지만, 효과도 아주 직빵이잖여.”
“효과···.”
김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렇게 비쌀 줄 몰랐네요.”
“이거 철두철미한 줄 알았더니, 이런 빈틈도 있는구먼.”
“팔 생각을 안 해봐서요.”
“안 팔아도 가격은 알아봐. 농부가 농작물로 호구 당하면 안 되잖여.”
“알겠습니다. 어르신.”
김서준이 인사했다.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김서준은 리노와 노움에게 약속대로 축복받은 송이버섯을 주었다. 노움은 리노의 등에 타서 송이버섯을 쭉쭉 짖었다.
“리노공! 먹으라움!”
노움이 송이버섯을 입으로 가져다준다. 리노는 자연스레 그 버섯을 받아먹었다. 노움은 바로 조금 더 버섯을 찢어 이번에는 자신의 입에 집어넣었다.
“멍...”
“흠...향이 너무 좋다움.”
둘은 한입 먹자마자 탄성을 뱉었다. 마냥 조카 같은 아이들이 송이버섯을 먹고 감탄하는 모습이라니. 그 묘한 아이러니가 김서준의 눈에는 더 사랑스럽게 보였다.
“나도 먹어볼까.”
김서준은 하나 더 꺼내서 흙을 툭툭 털었다. ‘대’ 부분을 찢어 그 흰 살을 입에 집어 넣었다. 살짝 텁텁한 질감을 느끼며 한입을 문다.
“먹을 때마다 놀랍네...”
짙은 소나무 향이 입안에 쭉 퍼졌다. 소나무 숲 한가운데서 심호흡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진짜 맛있긴 하다.”
버섯 위에 송진을 바르면 이런 맛이 날까. 감탄스러운 맛에 흠뻑 젖어 있는데, 노움이 말했다.
“다 먹었다움! 아쉽다움!”
일부러 들으라는 듯한 말투. 은근히 더 먹고 싶다는 걸 어필하려는 전략인가보다.
“멍...”
리노는 풀이 죽는 모습으로 방향을 정했는지 답지 않게 낑낑거린다.
‘진짜 귀엽다니까.’
대번에 의도를 눈치챈 김서준의 광대가 어느새 위로 올라갔다.
‘역시 각각 한 개씩은 부족했나.’
오늘 캔 축복받은 송이버섯은 총 20개. 이제 남은 버섯은 7개. 한 개에 10만 원에 육박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서일까. 이렇게 되니 아까 어르신께 너무 많이 드렸나 하는 후회가 아주 잠깐 머리를 스쳤다.
“자, 여기.”
김서준은 두 개를 더 노움에게 주었다.
“가, 감사합니다움!”
“멍멍멍!!!”
둘의 표정이 밝다 못해 빛이 났다. 김서준이 그런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껴먹어. 이제 더 못 준다.”
“알겠습니다움!!”
“멍!!!”
대답과 함께 정말 찔끔찔끔 송이버섯을 찢는 노움. 김서준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소민이는 잘 하고 있나?’
잘 돌아갔다는 연락은 와 있었다. 김서준은 잘 해보라는 응원의 답장을 보냈다.
[걱정 마! 또 놀러 갈게!]
그리고 그게 두 사람 사이 마지막 연락이었다.
‘잘 해결할 수 있겠지.’
웃으며 작별했지만, 전소민의 눈에는 결단의 의지가 보였다. 그런 눈을 했을 때 자신의 친구가 어떤 능력을 보였는지, 김서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직 별다른 뉴스는 없네.”
뉴스는 전소민이 복귀했다가 전부였다. 이제 대안 고민에 들어갔을 테니, 특별할 건 없었다.
-지이이잉!
-위이이잉!
“이, 이런! 또?”
갑자기 휴대폰이 진동하더니 비상벨이 울렸다. 액정 상단에 알람이 나타났다.
[경고!!! '쉴드 발생기B'가 작동 불가 상태가 되었습니다!!!!]
김서준의 표정이 굳었다.
그 난리를 친 게 어제가 아니던가. 김서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둘러 CCTV 앱을 켰다.
“젠장!”
갈색 로브를 입은 누군가가 버젓이 세계수의 언덕에 입장했다. 위험했다. 이제 남은 건 울타리와 세계수에 걸어놓은 장치뿐이었다.
“리노!”
김서준이 리노를 불렀다. 대번에 김서준의 감정을 느낌 리노가 공중으로 높게 뛰었다. 하얀 광채가 리노를 뒤덮는다. 광채는 순식간에 커졌다.
“아우!!!”
긴 하울링과 함께 광채 속에서 새하얀 털을 가진 거대한 늑대가 나타났다. 양쪽 어금니를 번뜩이는 늑대는 타라는 듯 몸을 낮췄다.
“노움! 일단 들어가 있어!”
“움!”
소환을 해제한 김서준은 리노의 몸 위로 올라탔다.
“전속력으로 가자!”
“컹!”
본체로 돌아온 리노는 짧게 짖은 후 땅을 박찼다.
“괜찮아! 더 빨리!”
김서준이 재촉했다. 리노는 김서준이 떨어질까 전속력으로 달리지 못하고 있었다. 김서준은 리노를 잡은 근육을 팽창시키며 괜찮다는 감정을 흘려보냈다.
“컹!”
그러자 리노는 마치 바람이 된 듯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바람이 심해 김서준은 제대로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괜찮아!”
하지만, 김서준은 더욱 리노를 재촉했다. 쉴드가 깨졌다. 상대는 쉴드를 깰 수 있는 힘이 있다. 또한 쉴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깨고 들어왔다.
‘무슨 의도가 있는 거야.’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수와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지성이 없던 골렘 때보다도 훨씬 더 급박한 상황이었다.
길을 내달린 리노는 언덕도 성큼성큼 튀어 올랐다. 전소민과 날아가는 것보다도 빠른 듯했다.
“컹!!!”
리노가 땅을 높게 박찼다.
위장 장치가 부서진 언덕의 푸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로브를 쓴 침입자도 보였다. 침입자는 세계수의 울타리 앞에 서 있었다.
‘늦지 않았어.’
“리노 일단 바로 제압해!”
“컹!”
리노는 낙하하며 발톱을 세웠다. 기척을 눈치챈 침입자가 다급하게 뒤를 돌았다.
로브가 벗겨졌다. 모자 아래 있던 상아색 머리가 드러났다.
‘사람이 아니야?’
확실했다. 그 머리 사위로 튀어나온 귀가 유난히 뾰족했다. 사람은 저런 귀를 가질 수 없었다.
‘정체가 뭐지?’
정체불명의 여자가 김서준을 바라봤다. 푸른색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그 눈동자에 리노의 모습이 비친다.
“컹!”
리노가 울며 그녀를 덮쳤다.
‘어?’
아니, 덮치려 했다. 그런데 덮치기 직전 정체불명인 여자의 몸이 먼저 무너져내렸다.
-쿵!
착지한 리노는 쓰러진 몸을 발로 지그시 눌러 제압했다. 김서준은 리노의 등에서 내렸다.
그리고 직접 여자의 상태를 본 김서준이 말했다.
“...뭐야, 이게...? 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