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친구
두 사람은 너나 할 거 없이 함께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멍!”
리노가 짖었다. 리노 역시 불안해했다. 김서준이 리노에게 진정하라는 감정을 흘려보냈다.
“어떻게 된 거지? 게이트가 열렸다는 긴급 문자가 안 온 건가?”
“모르겠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얼른 가야 해. 거긴 세계수가 있어!”
“세계수?”
“옛날 우리 집 뒤에 있던 그 거목! 지금은 내 힘의 근원이야. 자세한 건 나중에!”
“그래! 일단 가자!”
전소민이 바람을 일으켰다. 김서준과 전소민의 몸을 둘러싼 바람이 천천히 두 사람을 공중에 띄웠다.
“기억나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물론이지. 가자!”
-휙!
파공성을 일으키며 두 사람의 몸이 허공을 갈랐다. 김서준은 온몸을 둘러싼 바람의 감각을 느꼈다.
‘바람의 날개. 오랜만이네.’
여러 명에게 ‘부유’ 효과를 주는 전소민의 시그니처 스킬. 한창 바쁠 때는 이동수단 대신 이 스킬로 돌아다니곤 했다.
‘이렇게 하는 거였지.’
몸의 기억을 따라 김서준이 양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몸을 감싼 바람이 움직이며 균형이 잡혔다.
“괜찮아?”
“어, 더 빨리 가도 돼! 아니, 더 빨리 가줘!”
김서준이 재촉했다. 세계수가 위험하다니. 조바심을 내도 부족했다. 심각한 표정을 본 전소민이 이내 한 번 더 기운을 끌어올렸다.
“저기다!”
대상을 찾은 전소민이 아래를 가리켰다.
‘골렘이야.’
레고처럼 네모 반듯한 돌 여러 개가 이어져 있는 외형은 분명 골렘이었다. A급 골렘이라면 꽤 위험한 몬스터.
김서준은 위험 속에서도 급한 불은 껐다는 안도감을 얻었다.
‘다행이야. 늦지 않았어.’
겨울을 맞이하는 산속 세계수가 있는 곳만 봄과 같이 파릇파릇하다. 그건 너무 눈에 띄었다.
특히 이상한 헌터나 산꾼들한테 걸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못해도 축복받은 송이버섯은 전부 다 훔쳐가겠지.’
이를 막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주변 환경에 맞게 위장해주는 마법 장비와 B급 쉴드 발생기를 설치해두었다.
‘그게 제대로 시간을 끌었나 보네.’
CCTV에서도 보였던 거처럼 골렘은 앞에 땅이 있는데 나아가질 못하니 당황한 듯 보였다.
“근데 왜 골렘이지?”
골렘은 보통 무언가를 지키는 수호병 역할을 하는 몬스터로 알려져있다. 그런 골렘이 왜 여기 있다는 말인가?
“모르겠어. 하지만 다른 반응은 느껴지지 않아.”
전소민의 기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S급 중에서도 단연 발군. 그녀가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 다행이었다.
“일단 멀리 물러나서 착지하자. 정확히 무슨 골렘인지 먼저 파악해야 해!”
“알겠어.”
일순간 바람이 일며 사방에서 풀숲이 흔들린다. 전소민의 연막전술이었다.
-스르륵.
돌이 마찰하는 소리를 내며 골렘이 네모난 바위 대가리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틈으로 김서준과 전소민은 각각 착지해 풀숲과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시야에 의지하나 보네. 역시나.’
마력에 의지했다면 이런 전술에 속지 않았으리라. 아니, 애초에 저 쉴드를 깨고 저 안으로 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시야 의지. 각진 몸체. 3m쯤 되는 크기. 그리고 저 붉은 눈까지. 확실해. A급 스톤 골렘이야. 상성은 최악이네.’
전소민은 바람 술사. 바람으로 부수고, 배고, 날려버리는 게 주특기다. 그런 그녀에게 물리 내성이 뛰어난 골렘은 최악의 적이었다.
‘혼자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둘이 오면 오히려 쉽지. 공략법이 확실하니까.’
김서준이 전소민을 바라봤다. 전소민 역시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더 숨을 이유가 없어. 바로 시작하자.’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소민도 따라 끄덕였다.
“저쪽으로 떼어내면서 싸워.”
“알겠어!”
시간 끌어! 내가 그동안 핵 찾을게!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은 그 옛날 그때처럼 자연스레 각자 할 일을 시작했다.
“합!”
땅을 박차는 전소민이 인벤토리에서 부채를 꺼냈다. ‘-촥’ 소리와 함께 펴진 부채가 바람을 일으켰다.
-촤라락!
바람의 칼날이 골렘의 단단한 바위 몸체를 긁는다. 흠집에 아랑곳하지 않는 골렘이 그대로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쾅!
여유롭게 전소민이 몸을 피했다. 그 모습에 여유가 넘친다.
‘역시 걱정할 필요 없겠어.’
김서준은 전소민으로부터 시선을 골렘으로 옮겼다.
‘시력 강화!’
마력을 극도로 끓어 올려 시력을 강화한다. 아무 직업도 없었던 헌터 시절, 김서준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했다.
그게 바로 감각 강화였다.
마력을 한가지 감각으로 모아 강화하는 능력은 대단하진 않지만 유용했다.
‘바로 지금 같은 경우에 말이지.’
암순응을 넘어 점점 시야가 훤해진다. 동시에 선명해졌다. 골렘의 몸에 그려진 뜻을 알 수 없는 문양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냐?’
스톤 골렘의 핵은 몸을 구성한 돌 중, 문양이 자꾸만 바뀌는 돌에 있다. 김서준은 빠르게 눈을 굴렸다.
“아직이야?”
조금씩 뒤로 밀리던 전소민이 물었다.
“조금만 기다려줘!”
‘젠장! 뭐야?’
이상했다. 벌써 수차례 몸을 훑었는데, 모든 문양에 변화가 없었다.
‘이럴 리가 없어. 우리가 아는 스톤 골렘이 아닌가?’
-쾅! 쾅! 쾅! 쾅!
굉음이 터져 연달아 터져 나왔다. 전소민이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빨리 대안을 찾아야 했다.
‘혹시?’
문득, 생각이 떠오른 김서준이 무릎을 폈다. 그리고는 황급히 달려 골렘의 뒤로 돌아갔다.
‘이거구나!’
골렘의 뒤통수에 있는 문양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게 보였다.
‘머리에 핵이 있었을 줄이야!’
수많은 골렘을 봤지만, 머리에 핵이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김서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머리야! 머리에 있어!”
“알겠어! 밀어내라! 마파람!”
전소민이 크게 부채를 휘둘렀다. 강한 바람이 일며 골렘이 이내 뒤로 주저앉았다.
동시에 공중으로 떠오르는 전소민.
보름달과 겹쳐진 그녀의 신형이 팔을 위로 쭉 뻗는다. 일대의 공기가 그녀가 든 부채 위로 모여든다. 낙엽과 돌 따위도 소용돌이친다.
“꿰뚫어라! 아돌(牙突)!”
목표한 곳을 완벽하게 꿰뚫는 바람의 창은 전소민의 의지를 따라 매섭게 쏘아졌다. 골렘도 이번에는 위기를 느꼈는지 양팔로 머리를 감쌌다.
-콰과광!
바람이 거대한 바위를 뚫고 파고들었다. 창과 방패의 경합 속에 부서진 돌의 잔해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쾅!
폭발이 일었다. 뿌옇게 먼지가 올라왔다. 돌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핵이 부서진 골렘이 무너지는 소리인 듯했다.
“후, 못 뚫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전소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던 그때였다.
삐그덕 소리와 함께 먼지 사이에서 검은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런!”
전소민이 몸을 빼려 했지만 늦었다. 골렘의 주먹이 그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먼지가 가라앉으며 상황이 보였다. 왼팔은 완전히 부서졌다.
반면 오른팔은 구멍이 있을 뿐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당연히 머리도 꽤 뚫지 못했다. 균열이 가득했지만, 어찌어찌 파괴만은 면한 듯했다.
‘생각보다 방어력이 좋았어. 젠장! 이렇게 잡힌 상태로는 어떻게 할 수가···.’
그 순간 골렘의 머리 위로 밝은 빛이 드리웠다. 빛은 금세 사라지고 그림자가 드리웠다.
-붕.
그림자를 만들어낸 황금빛 물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골렘은 막아낼 방법도 피할 힘도 없는지 그저 멍하니 그 물체를 바라봤다.
-쿵!
물체는 겨우 붙어있던 머리를 부숴버렸다. 골렘은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저게 뭐야?”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전소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트, 트랙터?”
긴장이 풀린 전소민의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후···. 다행이네.”
무너진 골렘 뒤로 황금빛 트랙터의 주인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있었다.
****
김서준의 집은 마을에서도 꽤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인명피해는 물론, 마을에서 소란을 듣고 찾아온 사람도 없었다.
‘재산 손해도 없었고. 무엇보다 세계수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두 사람은 함께 산으로 걸어 내려왔다. 마력을 너무 많이 쓴 전소민은 다시 바람의 날개를 사용할 여력이 없었다.
“와, 진짜 나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트랙터를 부를 줄 진짜 몰랐어!”
“나도 혹시 되나 했는데, 돼서 다행이었지. 그나저나 너 좀 약해진 거 아냐? 예전이었으면 바로 뚫었을 텐데.”
“아니거든? 내가 수련은 절대 안 거르는 거 너도 알잖아!”
“하긴, 네가 운동하고 수련은 절대 거를 애가 아니지. 그럼 그 골렘이 강했던 건가?”
전소민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같은 스톤 골렘들보다 훨씬 단단했어. 대체 그런 게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설마 게이트 없이 튀어나온 건 아니겠지?”
“아냐. 아까 보니까 게이트에 나무가 파먹힌 흔적 있더라.”
김서준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리노 때도 그렇고.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 장소가 주목을 받을 터.
‘이미 세계수가 터를 내린 상황에 그렇게 되면 곤란해.’
“내가 나중에 관리국에 이야기 한번 해야겠어. 게이트 여기 감지 안 되냐고.”
먼저 선수를 쳐서 의심을 차단했다. 전소민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리 시골이라도 이러면 안 되지. 여기 우리 없었으면 큰일 났을 거야.”
“네가 없었으면 이지.”
김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전소민은 문뜩 두 사람이 같이 웃고 떠들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좀 전까지 감돌던 어색함은 사라져 버렸다.
‘오랜만이다. 이 기분.’
이렇게 함께 게이트를 닫고는 서로 네가 잘했다며 떠들던 그 시절. 서로 티격태격하다가도 일 끝나면 웃으며 맥주를 마시러 가던 그 시절이 떠올라 울컥한다.
이내 그 벅참은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그래. 둘도 없는 동료. 그리고 소중한 친구였는데. 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뭐야, 그 표정은.”
“아, 아니야. 아무것도.”
“됐고, 이거나 받아.”
“뭐야?”
김서준이 붉은 수정을 내밀었다. 골렘의 마정석이었다.
“수고비는 받아야지. 고급 인력인데. 됐고 가서 맥주 한잔 더할까? 몬스터 잡고 마시는 맥주가 맛있잖아?”
김서준이 씽긋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그때의 감성을 떠올린 건 전소민뿐이 아닌 듯했다.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쓴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각각 샤워했다. 방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김서준이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거실로 내려왔다.
“응?”
나오니 모든 짐을 싸고 갈 준비를 마친 전소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가려고?”
“응. 가려고.”
“왜? 휴가 남았잖아?”
전소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말이 맞아. 이거 휴가 아냐. 나 너 다시 데려가려고 온 거야. 미안해. 서준아.”
전소민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 너를 데리러 온 것도, 너를 내보낸 것도 전부 미안해. 내가 다 자초해놓고···.”
전소민은 살짝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정말 친구라면 이렇게 찾아오면 안 되는 거였어. 아니, 네가 행복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바로 떠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전소민이 숙였던 고개를 들고 수줍게 말했다.
“그래도 한 번만 용서해줄 수 있다면, 계속 친구 해줄래?”
김서준이 씽긋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이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전소민도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부탁 안 해도 우린 계속 친구일 거야.”
“고마워. 그럼 나 이제 갈게!”
“정말? 이 야밤에 가게?”
전소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가야지. 이렇게 멋지게 사는 친구한테 떳떳하려면, 내가 친 사고는 내가 해결해야지. 이렇게 도망올 게 아니라.”
김서준이 슬쩍 미소를 띄웠다.
“멋지네. 내 친구. 힘내라.”
“고마워.”
인사를 마친 전소민이 케리어를 끌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고 나갈 채비를 마친 전소민이 갑자기 휙 돌아 말했다.
“저건 놓고 갈게. 친구끼리 수고비는 필요 없잖아? 망가진 트랙터도 고쳐야 하고. 그럼 나간다.”
“야···.”
전소민은 김서준의 대꾸도 듣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김서준은 탁자에 올려둔 마정석을 들어 올렸다. 한동안 마정석을 바라보던 김서준이 피식 웃었다.
“트랙터는 소환하는 거라 수리 안 해도 되는데···.”
****
골렘이 무너진 잔해만 남은 현장. 숨을 죽이고 필사적으로 숨어있던 그림자가 수풀에서 빠져나왔다.
“대...대박! 방금 그거.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지?”
태양과도 비슷한 황금빛 마력. 그 마력이 현현하는 순간, 주변에 있던 온 식물과 대지가 힘을 빌려주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건 뭔지 모르겠지만, 마력만은 확실해!’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이번에야 말로 정말 찾은 건가? 세계수...?”